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1997)

-김소진-  

◆ 소설 읽기  

● 줄거리

'나'는 재개발 이야기가 한창인 미아리 셋집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그곳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느 겨울 이른 새벽, '나'는 오줌을 누러 나왔다가 같은 공동 주택 이웃인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깨뜨리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눈사람을 만들어 그 속에 단지를 숨겨 놓고는 고민하며 일부러 더러운 곳을 찾아 바깥을 돌아다니다 들어온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눈사람도, 깨진 항아리도 모두 사라져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한다. '나'는 그런 세계가 낯설어 울음을 터뜨린다.

회상을 마친 '나'는 재개발 지역에서 '창이 형'을 만나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빈집에 들어가 깨진 항아리에 똥을 누고는 '나'를 지탱해 왔던 기억, 그 기억의 기반이 되었던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다.

● 인물의 성격

 나(민홍) → 주인공. 빈민촌에서 겪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는 인물로, 자신이 살아온 동네가 재개발되는 것에 안타까워 함.

어머니 →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미아리 동네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내가 그 동네에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 주며, 특히 어린 시절 요강에 대한 터부의식이 매우 강했던 인물임.

창이 형 → 몸이 골골한데다 직장이 없이 가끔씩 아버지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도왔으나, 지금은 동네의 재개발과 관련하여 조합 일을 보고 있으며 장가도 갔음.

국희 → 예전엔 형부와의 불륜을 포함해서 나 또한 희롱을 할 정도 막돼 먹은 아가씨였으나, 지금은 창이 형과 결혼하여 다정하게 살고 있음.

● 이해와 감상

짠지 단지를 깨고 두려움에 떨었던 사건을 통해 한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른 새벽 소변을 보러 변소에 다녀오다가 짠지 단지를 깬 주인공은 그 단지를 안에 넣고 눈사람을 만들어 깨진 단지를 가려 순간적으로나마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애쓴다. 이렇게 순수한 모습의 아이는 자신이 지닌 그 순수함과 실제 세계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며 성장한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시간 구조

현재

과거(회상)

현재

셋집에 볼일이 생겨 미아리 재개발 지역에 감.

어릴 적 항아리를 깨뜨리고 눈사람으로 덮음.

유년 시절의 기억을 지탱해 주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함.

 

'그릇'의 상징성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는 그릇과 관련된 세 개의 상징물이 등장한다. 바로 '어머니의 요강',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빈집의 깨진 항아리'가 그것이다. 이 세 상징물은 음식과 배설을 담는 그릇으로 '풍요로움'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이 그릇들이 모두 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풍요로움의 파괴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인이 된 현재의 '나'가 빈집에서 발견한 깨진 항아리에 똥을 누는 행위는 파괴된 풍요로움을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는 한 소년이 자신과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 내면서, 동시에 그러한 소년 시절의 기억이 깃든 장소가 허물어지는 상황에 대한 현재적 자아의 무기력한 절망을 묘사한 작품이다. 소설 속의 어린 '나'에게 성장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주변일 뿐이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인식적 충격은 성인이 된 현재의 '나'까지 이어져, '나'는 자신의 존재 기반이 되어주던 미아리 산동네가 재개발로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어떤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성장에 대해, 그리고 기억과 공간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짠지 단지를 깨고 두려움에 떨었던 사건을 통해 한 어린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눈사람을 만들어 깨진 단지를 가리며 순간적으로나마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애쓰는 아이의 순수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순수함과 실제 세계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것이 바로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을 꼼꼼하게 되짚으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의 시선을 잃지 않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 90년대 이전의 소설 속에 나타난 과거가 시대와 민족의 아픔과 추구하는 이념을 그리기 위해 존재했다면, 소설가 김소진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보이는 과거는 그저 개인이 가진 소소한 기억의 흔적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소소한 기억의 나열은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추억의 회고가 아닌, 지금 여전히 유의미한 기억들을 재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기억의 재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과거를 통해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다고 할 것이다. // 하얀 눈사람 속에 우리가 '짐작한 것과는 다른' 검은 항아리가 숨겨져 있는 그림을 상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소진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것과는 달리 돌아가는 세상'이다. 눈이 녹으면서 보게 된 검은 항아리의 실체는 우리에게는 낯선, 그러나 결국은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인 것이다. 작가의 눈을 통해서 보게 된 세상은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돌아가는 세상이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그는 세상에서 그의 존재가 생각한 것과 같이 무겁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그의 깨달음은 소설 속 '나'의 의식에 투영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 소설 속에서 '나'는 자신의 기억 속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공간의 실체가 그의 내면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말하게 하고 있다. 나의 서사는 기억을 지배하는 공간에서의 과거 시간으로의 회귀의 과정으로 보여지고 있다. 유년 시절의 경험에 그가 끊임없이 현실을 지배받는 이유는 그것이 '중심적 자아'가 아닌, 세상의 '주변일 뿐인 자아'를 깨닫게 되는 충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서 깨어나고 중심이 아닌, 변두리를 맴도는 주변인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내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음으로 우리는 보다 편하게 그의 내면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목소리는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의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내면의 흐름과 심리적 상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성장 소설

배경

* 시간 : 1990년대

* 공간 : 서울 미아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표현상 특징

* 회상적, 상징적 성격

*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남.

* 성장소설의 양상이 잘 드러남.

주제세계 인식을 통한 정신적 성장, 기억의 터전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 더 읽을거리

◆ 김소진의 문학 세계

김소진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50년대에서 90년대까지다.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중에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북쪽에 가족을 두고 남쪽을 택한 인물이며(쥐잡기 개흘레꾼, 처순, 사랑니 앓기), 그 이후 경제적 무능력과 심성의 나약함으로 가부장적인 권위를 상실한 비굴하고 초라한 인물이다. 한편, 철원네로 불려지는 어머니는 그런 남편과는 달리 생활력이 강하고 때로는 그악스러울 정도로 강하고 고집스럽게 그려져 있다. 물론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가는 '나'의 유년 시절의 경험의 대부분은 이러한 양친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대체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인물로서 운동권에 몸담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억을 지닌 채로 90년대를 살아간다. 이와 같은 인물 설정과 시간 구조는 김소진 소설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여러 작품에서 약간씩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1991년 단편 소설 '쥐잡기'로 김소진이 등단한 이후 그에게 쏟아졌던 여러 가지 찬사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은 소위 그의 '국어 실력'에 관한 것이다. 영어 번역체 같은 문장이 횡행하는 가운데 문법과 시제가 정확한 완결된 문장을 구사하는 그의 글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것이었다. 군복무 시절 국어사전을 통째로 외워 버렸다는 그의 어휘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또한 90년대 들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는 평가에 걸맞게 성실하고도 집요한 그의 문체는 긴장감조차 준다. 김소진의 첫 소설집이 소재와 충분한 거리를 둔 작가의 화법이었다면 마지막 소설집에 와서는 그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 화자는 주로 3인칭이거나 작가의 분신으로 생각되는 1인칭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벌레는 단 과육 속에 깃든다'의 1인칭 여성 화자는 그런 점에서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당했던 일종의 성추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련히 떠올리거나, 남녀의 애정 관계를 벌레와 과육에 비유하는 남편에게 자신은 단 과육이냐며 흡족해 하는 여주인공을 설정한 점은 여성심리에 대한 무지에서 온 일종의 실패로 보인다. 반면, '울프강의 세월'에서 보이는 남성성에 대한 파악은 감각적이고 탁월하다. 작가 김소진이 그려내는 남녀의 애정 관계는 자연스럽긴 하나 낭만적 사랑이 배제된 탓에 에로티시즘이 강하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 나오는 국희나 '춘하 돌아오다'의 춘하 등은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는 배제된 채 그렇게 철저히 세간의 눈이라 할 만한 관점으로 그려진 여성들이다. 그의 작품이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소진의 소설들은 대체로 자전적인 경향이 강하며 초기의 소설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는 전형성이다. 작가가 다루는 인물과 소재와 사건들이 얼마만큼 시대적 현실의 한 부분을 적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김소진의 이야기들은 일차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소재의 소설적 형상화 과정에 있어서 끈질기고도 단단한 문장과 구성으로 소설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불행히도 마지막 소설집이 되어 버린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김소진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나서는 변화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 대해

1. 기억의 끈질긴 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는 재개발을 앞둔 유년의 동네 미아리에서 현재의 '나'가 느끼는 상실감과 유년의 기억이 교차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나'는 유년의 동네가 사라질 위기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적극적인 대응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 ……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 라는 자조 섞인 고백은 "이미 철거가 다 끝난 폐허의 등성이" 처럼 쓸쓸함을 전해준다. 그러나 빈집에 들어가 똥을 누는 '나'의 행위에는 유년의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있다. 유년의 동네가 사라짐으로써 "허약한 기억"이 훼손되리라는 위험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의 끈질김"에 의해 어떤 출구를 찾는다. 현재적 삶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따뜻함이 있었던 유년 시절은 되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되며,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함을 주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도 유년의 기억은 이러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2. 공동체적 삶의 따스함

그렇다면 기억의 끈질긴 힘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지붕 아홉 가구의 장석조네 집" 풍경이 전해주는 공동체적 삶의 따스함에 뿌리내리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귀다툼하는 삶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공동체적 삶의 끈끈함을 전해준다. 하룻 동안의 가출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고 고백하지만, 그 낯선 세계는 어떠한 폭력성도 내재하지 않는다.

3. 어른스러운 유년 화자의 시점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 등장하는 유년의 화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른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조로증에 빠진 유년의 '나'에게는 현재의 '나'에 의한 편집자적 논평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어른스러운 유년 화자의 시점 선택으로 인해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유년 시절은 회상적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동화 속 같던 온 세상이 한 순간에 흰빛 절망감의 구렁텅이로 변하던" 순간의 유년의 깨달음 다시 현재로 오버랩된다. 눈사람 속에 금이 간 검은 항아리를 감추었던 유년의 '나'가 느낀 '피로감'은 다시 현재의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다.

김소진은 유년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들임으로써 현재적 '나'의 무력함을 우회해서 얘기하고 있다. "정신적 흔들림"에서 연유하는 '피로감'을 느끼는 유년의 '나'는 사실 현재의 '나'가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상황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세계와 자아 사이의 거리감을 절감하면서 유년의 '나'가 얻은 깨달음, 즉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이나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프레한 깨달음"은 유년의 동네가 상실될 위기 상황에서 세계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의 무력감을 노출하는 것이다.

4. 전통적 터부 의식을 통한 자조적인 야유

김소진의 소설에서는 전통적 터부 의식이 주된 모티프나 소재로 차용된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는 항아리에 대한 터부(taboo)가 나타난다. 터부는 일반적으로 금기를 지칭하는 것인데, 어원적으로는 폴리네시아의 미개 사회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 함부로 손대거나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사물이나 행위 · 언어 따위, 또는 그것에 대한 종교적 금기를 말한다. 터부를 파기할 경우 동티가 생기게 된다. 동티란 흙이나 돌을 잘못 다루어 지신의 노여움을 사서 받는 재앙,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건드려서 생긴 걱정이나 불행이다. 항아리에 대한 터부 의식과 동티에 반응하는 양상이 유년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서 다른 모습을 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을 요한다. 유년의 '나'는 눈사람 속에 금이 간 검은 항아리를 감춰 둠으로써 자신에게 닥칠 동티를 유보하거나 은폐하려 한다. (유년의 '나'가 아이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은 사실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부분에서만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폐허가 된 유년의 동네에서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눈다. '깨진 항아리'는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동티"가 생길 것을 암시하는데 그 속에서 똥을 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왜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데 울고 싶어졌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나'는 개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며 "서러운 아이처럼" 울고 싶다가도 "구린내가 나는 두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바짝 쑤셔박고 굵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황금빛 똥을" 쳐다보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낀다. 서러움은 유년의 동네가 없어진다는 데서 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에 젖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동티" ― 유년의 동네가 없어지는 위기 상황 ― 앞에서 똥이라도 누는 것으로써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야유하려는 욕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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