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의 겨울(1982)

-최일남-  

◆ 소설 읽기  

● 줄거리

나보다 열 여섯 살이나 위인 누님은 두 번이나 결혼을 했으나 소박을 맞고 쫓겨와 친정살이를 하고 있다. 나는 누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나를 감싸주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누님을 쥐어박으며 욕을 해대고 어떤 때는 같이 죽자며 서럽게 우는 걸 볼 때는 마음이 심란하고 아프다.

그러던 중, 광복이 되어 신탁통치를 두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세상은 뒤숭숭해졌다. 양측은 서로 질세라 군중대회를 열었고, 상대방에 대한 습격과 파괴가 잇달았다. 누님의 세 번째 결혼 얘기가 나온 것이 이 무렵이었다. 상대방은 이웃 동네에 사는 홀아비로 마흔이 넘었고 딸린 아이가 셋이나 되었으며 직업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집도 사정이 급했으므로 누님을 시집보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누님은 돌아왔고, 매부도 곧 따라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매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오래오래 속닥거리고, 등사판을 밀어 무언가 찍어내고, 또 밤을 세우기도 하였다. 매부는 공산당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일에 누님이 적극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님에게 일에서 손을 떼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누님은 매부에게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매부가 누님을 아주 위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도 차차 매부의 일을 도와주었다. 매부가 당신의 딸을 위해 주고 사람 대접을 해주니 거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께도 그만두도록 말했으나 어머니 역시 막무가내였다. 그러다가 누님은 경찰에 잡혔다. 매부는 다행히 잡히지 않았으나 그 뒤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얼마 만에 풀려 나온 누님은 혼자 4, 5년을 살다가 신장병으로 죽었다. 누님은 죽기 전에 그때 왜 그렇게 열을 내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 인물의 성격

→ 국민학교 5학년 학생으로 이 소설의 화자이며 관찰자이다. 누님을 좋아하면서 누님을 걱정해주는 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 누님 → 나보다 16살이나 위인 누님으로, 가는 귀가 먹었으며 두 번이나 소박을 맞고 친정인 우리 집에 와서 살고 있다. 식구들로부터도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바보 취급을 받고 있으며, 세 번째 배우자인 매부와 결혼하고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이용만 당하고 버림을 받는다. 이후에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죽는다.

◆ 어머니 → 부잣집 침모로 일하고 있으며, 누님에 대해 속상해 하는 마음이 무식하게 표출될 때가 많다. 나중에

● 구성 단계

◆ 발단 : 누이에 대한 소개, 가는 귀가 먹고 두 번이나 소박맞아 친정에서 살고 있음.

◆ 전개 : 누이의 세 번째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감.

◆ 위기 : 신탁통치 찬성 운동을 하는 매부를 누이와 어머니가 도움.

◆ 절정 / 결말 : 누이가 경찰에 잡히고 출감한 후에 병이 악화되어 결국 누이는 죽게 되고, 나는 그 겨울에 죽은 누이를 생각함.

● 이해와 감상

한 가족사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 내지 애정이 사상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사상보다도 인간적인 면이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도외시하던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의 주제로 놓인다.

이 작품은 소년의 눈에 비친 누님의 행적을 통해 해방의 혼란기에 전개된 이념 투쟁이라는 것이 어떤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는가를 파헤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것이며 그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소설이다. 이 글은 해방 직후 전개되었던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투쟁의 모습을 소년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소년은 이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누이가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봐 투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였다. 작가는 소년과 그의 누이를 통해 이념의 잣대로 인간애를 도외시하던 당시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나'이다. 나보다 열 여섯 살이나 위인 누님은 두 번이나 결혼을 했으나 소박을 맞고 쫓겨와 친정살이를 하고 있다. 나는 누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나를 감싸주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누님을 쥐어박으며 욕을 해대고 어떤 때는 같이 죽자며 서럽게 우는 걸 볼 때는 마음이 심란하고 아프다. 그러던 중 광복이 되어 신탁통치를 두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세상은 뒤숭숭해졌다. 양측은 서로 질세라 군중대회를 열었고, 상대방에 대한 습격과 파괴가 잇달았다. 누님의 세 번째 결혼 얘기가 나온 것이 이 무렵이었다. 상대방은 이웃 동네에 사는 홀아비로 마흔이 넘었고 딸린 아이가 셋이나 되었으며 직업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집도 사정이 급했으므로 누님을 시집보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누님은 돌아왔고, 매부도 곧 따라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매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오래오래  속닥거리고, 등사판을 밀어 무언가 찍어내고, 또 밤을 세우기도 하였다. 매부는 공산당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일에 누님이 적극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님에게 일에서 손을 떼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누님은 매부에게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매부가 누님을 아주 위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도 차차 매부의 일을 도와 주었다. 매부가 당신의 딸을 위해 주고 사람 대접을 해 주니 거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께도 그만두도록 말했으나 어머니 역시 막무가내였다. 그러다가 누님은 경찰에 잡혔다. 매부는 다행히 잡히지 않았으나 그 뒤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얼마 만에 풀려나온 누님은 혼자 4, 5년을 살다가 신장병으로 죽었다. 누님은 죽기 전에 그때 왜 그렇게 열을 내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사상보다도 인간적인 면이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도외시하던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의 주제로 놓인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 성격 : 소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해방 직후의 상황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

배경 : 해방 직후의 혼란기(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이 대립되던 시기)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어린 화자)

◆ 주제 해방 공간에서의 평범한 사람들의 혼란스런 삶

             이념이나 사상보다 위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

◆ 출전 : <문학사상>(1982. 11)

● 더 읽을거리

삶의 진실과 소설적 상상력     :   권영민(문학평론가, 서울대교수)

1. 치밀한 현실 접근 -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

작가 최일남의 문단 생활이 1953년 잡지 「문예」에 발표된 단편소설 <쑥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문단 경력이 40년에 가깝고, 또한 갑년(甲年)을 눈앞에 둔 노령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요즘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년배의 작가들이 대개 전후세대 문인들이며, 대부분이 1950년 전후문학이라는 하나의 단위 개념에 묶인 채 작품활동을 마감해 버린 점을 생각한다면, 최일남의 문학 활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임에 틀림없다.

최일남의 문학은 젊음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이란 작가의식의 치열성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문단의 원로를 자처하지도 않으며, 붓을 내던진 채 작가 행세를 하지도 않는다. 그는 글을 쓰는 일에 매달리며, 현실에 당당히 대들면서 쓴다. 그의 문학적 패기는 그가 지켜온 글 쓰는 자세, 그 자체로 자리잡고 있다. 최일남 문학의 젊음은 그의 작가적 시각이나 태도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소설은 어정쩡한 타협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법이 없다. 가야할 길과 버려야 할 것들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태도의 냉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언어는 구슬리는 말이 더 많고, 그의 이야기 속에는 소박한 인간미가 깃들여 있다. 다만 현실의 비리와 모순에 대해서만은 비정의 냉혹성을 보일 뿐이다.

최일남의 문학은 언제나 새롭다. 기법이나 표현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발견과 그 해석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최근에 나온 창작집의 서문에 실린 최일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최일남 문학의 새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샘물이 샘물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은 우선 끝내 다하지 않는 줄기찬 생명력 때문이다. 콸콸 쏟아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을 보인다면 그건 샘물이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항상 그만한 물줄기를 쉼없이 뿜어내는 데에 샘물의 값어치는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샘물이 언제나 샘물로 존재하는 것은 마침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만을 스스로 절제하면서 꾸준히 토해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건수를 뽑아낸다든지 대장균이 득시글거리는 더러운 물을 흘려보낸다면 그건 이미 샘물이 아니다. 자기 안에서 잡동사니를 걸러낸 다음 청정한 진국만을 생산해내는 데에 샘물의 귀중함은 있다."

 

최일남의 문학이 샘물과 같은 신선함과 꾸준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냐에 있다. 물론 그것은 최일남의 작가적 기질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 과작이었던 그가 70년대 이후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이면서 삶의 현실에 치밀한 접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작가적 성실성 이외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바로 그것이 그의 작가적 기질이라면, 그는 보기드문 이야기꾼의 기질을 다듬어 온 셈이다.

 

2. 소설적 어조의 변화 - 객관적 진술의 '장면화'

최일남의 문학적 출발은 등단 작품인 <쑥이야기>의 내용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지향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농촌의 가난한 삶이 소재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난 그 자체보다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토속적인 배경,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삼고 있는 소설적 주제, 그리고 치밀한 묘사력을 구사하는 문체 등이 이 작품의 짜임새를 단단하게 한다. 이 작품은 궁핍한 현실을 비관적으로 문제삼거나 그 대안을 내세우지 않는 대신에,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 초점을 둠으로써 특이한 페이소스를 자아내고 있다. 최일남의 초기 작품 가운데 평판작이었던 <동행>이나 <갈구> 등도 그 경향은 비슷하다. 이 작품들에서는 보다 더 내적인 것에 몰두하여 인간 정신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한다. 특히 소설 <동행>은 일종의 휴머니즘적 미학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소설적 접근법은 당대적 현실 문제에 대한 정공법적인 접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전쟁의 공포와 전후의 혼란을 겪은 50년대 후반의 상황으로 본다면, 인간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해석이란 어떤 의미에서 현실성과 거리가 먼 관념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왜곡된 현실 속에서는 현실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없이 삶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학적 경향은 50년대 전후문학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 분단과 6 · 25전쟁을 거치면서 분단 상황이 고착화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가 더욱 가중되자, 문학은 당대성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해석에 매달린 적도 있다. 민족 전체의 삶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문학의 방향이 관념적인 것에 기울었던 것이다. 민족의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50년대의 전후 문학은 치열한 문제의식만을 제기한 채 그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삶의 단편성을 그리는 것에 만족해야 햇으며, 결과적으로 전후문학이라는 고정된 시대개념 속으로 함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상당수의 전후세대 작가들이 60년대 이후에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시대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최일남은 60년대의 시대적 전환기를 과작으로 보내면서 자기 정립의 노력을 계속한다. 그것은 곧바로 그의 소설적 지향의 놀라운 변화로 나타났으며, 그 구체적인 결과가 <서울 사람들>과 <타령>이라는 작품집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최일남은 인간의 내적인 면에 대한 통찰보다 삶의 현실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기 문학 폭을 넓히기 시작한 셈이다. <타령>이라는 작품집이 보여주는 세태 묘사와 현실 풍자는 최일남 문학의 중심적 테마로 자리잡았고, 바로 그러한 주제의식의 철저성이 그를 70년대 문단의 복판에 서게 하였음은 물론이다.

<타령>이 간행될 무렵 최일남의 소설은 몇 가지 새로운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소설적 거리의 조정이 능란해지기 시작한 점을 손꼽을 수 있다. 경험적 자아로서의 작가 자신과 서사적 자아로서의 대상 인물 사이의 거리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작가 스스로가 자기 소설의 세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소설적 소재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작가가 냉철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다.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 물질 만능적인 세태, 근대화의 시책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농촌의 궁핍 등이 풍자적인 언어와 비판적인 시각으로 형상화되면서 최일남의 문학은 서사성의 진폭을 더하고 독자들의 감응력도 커지게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설적인 어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최일남의 소설은 진술의 객관성에 기초한 '장면화'의 수법이 이채롭다. 그의 언어는 산문의 호흡을 적절하게 살리면서 소설적 장면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풍자적 요건이 가미된다. 최일남의 소설이 세태 풍자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소설적 거리의 조정과 어조의 조화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작자 자신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비판 정신이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작품집 <타령>에 수록되어 있는 <아라비안 나이트>, <타령>, <흔들리는 성> 등은 대부분 도시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세태와 인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짤막한 에피소드의 결합을 통해 도시 변두리 서민들의 일상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타령>의 경우에도 서울 변두리 시장 바닥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아놓음으로써 한 시대의 삶의 풍속도를 제시한다.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장면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작품 내적인 현실과의 거리 조정에 능란한 수법을 활용함으로써 성공한다. <타령>과 같은 작품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최일남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역사적 비판의식과 소시민적 삶에 대한 통찰

최일남의 소설은 작품집 <누님의 겨울>(1984)에 이르러 삶의 현실과 더욱 팽팽한 긴장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손꼽아 헤어보니>(1979)를 간행할 무렵부터 세태의 풍자적 재구성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 작가 최일남은 역사적 비판의식과 소시민적 삶의 허구성에 대한 자기성찰에 몰두하고 있다. 이 무렵 그는 정치 세력의 폭력에 의해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인간의 삶의 도리가 모두 파괴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오히려 상실의 시대에 걸맞게 삶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 작업에 임하게 된다.

최일남이 가장 주목한 문제의 영역은 급속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비롯한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성의 상실 문제이다. 그는 농촌의 피폐와 농민의 이농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악착같이 서울 생활을 견뎌내어 돈을 모으고 어느새 자신의 신분을 과장하려드는 '출세한 촌놈'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들 문제적인 인물들은 물질주의에 빠져들어 삶의 진실을 외면하고 허황된 자기 과시에 들떠 있다. 소설 <차 마시는 소리>나 <우화> 등은 모두 '출세한 촌놈'들의 졸부 행세가 소재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삶의 참다운 가치 기준을 잊어 버린 주인공들의 행태를 희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들이야말로 세태의 풍자적인 재구성의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고향에 갔더란다>라든지, <서울의 초상> 등과 같은 화제작도 비슷한 경향의 작품이다. <고향에 갔더란다>의 주인공도 역시 출세한 촌놈이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을 찾는다. 고향의 친구들이나 그를 기억하는 고향 사람들이 모두 그의 금의환향을 축복해주고 부러워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전혀 잘못된 예상임이 드러난다. 고향은 이미 옛날의 모습이 아니며, 고향 사람들도 옛날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보다도 더 계산적이며, 더욱 까탈스럽게 고향사람들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고향만은 옛날처럼 낙후된 모습으로 그대로 있어 주길 기대했던 주인공의 소시민적 자기 우월감은 여지없이 깨어져 버리고 고향 산천과 인심의 변화가 오히려 주인공을 당혹하게 한다. 이 작품은 인정 세태의 변화를 농촌과 도시 두 곳에 표적을 두고 동시에 조망하고 있는 셈인데, 출세한 촌놈의 허위의식과 함께 농촌 사람들의 교활한 변모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최일남의 작가적 관심이 이처럼 세태의 변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삶의 가치의 타락에 대한 비판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물론 새로운 도덕률이나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은 문제의 확인을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황의 제시에 주력할 뿐이다.

1980년대 초기 최일남의 소설 가운데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문제 영역은 자신의 소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해방 전후 상황의 소설적 재구 작업이다. 이같은 소재의 발굴은 왜곡된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치고자 하는 역사적 비판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질곡 속에서 벗어난 해방이 민족 국가의 건설에 이르기 전에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정리해 보고 있는 것이다. <노래>, <영웅들>, <누님의 겨울>, <증인> 등이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대개 두 가지 차원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문제삼는다. 하나는 일제 지배하에서의 친일 문제와 연관된 사회 윤리적인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민족 분단 과정에서의 이념의 충돌과 갈등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다. 작가는 해방 직후 친일파의 득세 과정을 보면서 민족적 정기를 내세워 단죄하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형태가 가능해진 사회 구조적 모순에 관심을 기울이다. 일제에 항거하면서 곤욕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해방 조국에서도 여전히 좌절과 몰락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 현실로 인하여, 민족의 분열이 초래되고 결국은 이념적 대립에까지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 이들 작품의 골격이다.  

이러한 최일남의 역사인식이 총체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자리에 그의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1982)이 놓여 있다. <거룩한 응달>은 해방과 분단과 6 · 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도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대응하는 구도를 드러낸다. 서로 다른 운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친일분자였던 동생과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형의 변모 과정이 특히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재산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 주인공 가운데 동생의 이력은 다채롭기조차 하다. 일제시대 지방의 고급관리로 자기 재산을 지키며 황국신민임을 자처한 동생은 해방과 함께 친일분자로 지목된다. 그는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고 구속되기에 이르지만, 친일파에 대한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정권에 힘입어 결국은 석방된다. 그리고는 한동안 형의 집에서 은신한다. 독립운동가인 형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를 은폐할 수 있게 된 그는 형의 후광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결국은 화려한 자기 변신에 성공한다.

그러나 형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른 삶의 길을 택한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의 공을 떠벌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생의 변절을 대신 벌받기라도 하듯 야인으로 묻혀 지내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장남은 6 · 25 전쟁 중에 부상으로 장애자가 되고 차남은 좌익 운동에 가담하다가 사살되어 집안이 파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거룩한 응달>은 친일분자들의 기회주의적 변신과 득세를 보여주면서, 모순의 현실이 결국은 민족 분단의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한 가족의 내부적 갈등을 통해 민족사의 곡절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물의 대비적인 설정 자체가 갖는 도식성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작가의식이 이 작품의 큰 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이다.

 

4. 역사와 현실을 껴안는 총체적 인식의 길트기

최일남은 1980년대의 막바지에 장편소설 <숨통>(1989)과 작품집 <그대 말이 있었네>(1989)를 내놓고 있다. 이 두 권의 소설집은 작가 최일남 자신에게는 80년대의 문단 활동을 마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전환기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현실 상황으로 보아서도 매우 상징적인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먼저 <숨통>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로 이어지는 정치권력의 확대 과정과 그 폭력적인 형태를 한 신문사의 내면 풍경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이 소설에는 우리가 살아온 한 시대의 역사적 현장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욕이 담겨 있다. 정치 권력의 횡포, 언론의 무기력, 지식인의 우유부단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최일남이 지향해 온 민중적 정서와는 또 다른 소설적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소설 <숨통>은 1970년대의 상황적 모순을 초래한 문제 집단으로서 정치 권력과 지식층의 형태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최일남 소설의 대부분이 서민층의 삶의 모습을 통해 진실한 인간의 면모를 확인시켜 온 점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사회 지배층의 속성을 집단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의 시대 상황과 정치의 폭력화 현상이 권력층과 지식층에 의해 오도된 지배논리의 확대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작품에서 다시 확인하고 반성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권력의 메카니즘에 대응했던 언론의 자세를 본질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자기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의 뒷이야기가 어떻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이 작품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어떻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이 작품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작가 최일남은 <숨통>에서 작품 속의 시점 인물을 신문기자의 신분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기자의 시각과 소설가적인 관점을 서로 중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고안은 사실성과 진실성을 동시에 겨냥하고, 이는 작가의 서술적 균형 감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과 언론에 대한 탄압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의 기록을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재구성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 서술상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기록성 자체의 의미만을 강조한다면, 자칫 다큐멘트에 떨어질 수 있고 개인적 체험의 진술에 의존할 경우 회고적 진술의 단조로움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이 기록의 고정성이나 회고적 진술의 심정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있는 것은 서술적인 거리를 완벽하게 조절하고 있는 작가의 수법 때문이다. 바로 그 객관적 거리의 확보가 소설의 리얼리티를 더욱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소설 <숨통>은 그 구성상의 특성과 주제의식으로 보아 '지식인 소설'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현실의 밑바닥을 조명하는 작가의 통찰력보다는 지식층의 삶과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더욱 주목하게 될 경우, 작가 최일남의 소설 세계가 세태 풍속의 차원을 어느 사이에 넘어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최일남은 작품집 <그때 말이 있었네>에 수록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현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다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비판적인 지식인의 입장에서 현실의 문제성에 도전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소설적 소재도 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회 정치적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에 집중되고 있다. 지명 수배자가 되어 피신하는 반체제 인사, 고뇌하는 운동권의 학생, 생존 투쟁에 앞장서는 노동자 등이 최일남이 주로 다루게 된 인물들이다.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그리면서 세태의 묘사와 풍자를 계속해 온 이 작가에게는, 새로운 문제적인 계층의 인물들이 그만큼 중요한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소설 <메마른 손>, <환멸의 끄트머리>, <힘을 먹는 다슬기> 등은 모두 이러한 인물들이 소설의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물결무늬 물방개>나 <철갑을 두른 듯>과 같은 작품에서는 자신의 보신에 급급한 지식인의 모습이나 허명에 매달리는 재벌의 과욕 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진다.

이들 소설들에는 소박한 인정도 삶의 애환도 담겨 있지 않다. 인간미가 담긴 풍자의 시선도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냉소적인 언어가 담겨 있을 뿐이다.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과거가 여전히 현실 속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현실을 보면서 작가는 비정한 질책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경향은 현실에 대한 전망의 부재 상태에서 빚어진 것이다. 사회적 민주화를 요구해 온 시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시 등장하는 권위주의가 오히려 더 큰 민주화의 장애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며, 부정적인 현실 진단에 더욱 다급함을 느끼게 될 것도 사실이다. 최일남의 작가적 고뇌도 전망 부재의 현실만을 그려야 하는 답답함에 있음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는 일이다.

투옥된 운동권 학생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고달픈 심사를 그려낸 <그때 말이 있었네.>라든지, 일상의 삶을 체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때까치>, <희망은 묘지 위에> 등에는 현실에 대한 비애의 감정마저 깃들여 있다. 이같은 작가의 시각은 독자를 감싸안는 소설적 감동 대신에 독자마저 밀쳐 버리는 냉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일남의 관점 자체가 사시적(斜視的)인 것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의 현실이 '닫힘'의 시대를 넘어서 더 큰 '열림'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최일남의 시각에 일말의 불안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성실성을 믿는 독자라면, 그의 문학이 다시 인간미의 추구를 위해 새로운 문제 영역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의 문학은 이제 드디어 역사와 현실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삶의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5. 역설과 풍자 언어로 상황 뒤바꾸기 - 산문정신의 규범

최일남의 문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 성격을 같이한다. 현실과 역사를 넘나드는 그의 문학적 주제가 문제적인 영역으로 돌출되어 있고, 풍자적 시각과 비판적 어조를 융합시킨 그의 소설적 언어가 산문정신의 규범을 말해주듯 변화를 드러낸다. 그는 언제나 자기 문학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나선다. 그가 열정적인 작가로 끈질기게 소설의 창작에 임하고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을 최선의 삶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일남의 문학이 우리들의 삶과 함께 하며, 그의 이름이 언제나 낯설지 않게 여겨지는 것도 그의 문학이 우리들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최일남은 끊임없이 자신의 문단적 활동 범위를 넓혀 왔고, 끈질기게 자기 문학의 주제를 심화시켜 온 작가이다. 그는 50년대의 암울한 전후 상황 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 속에서 인간정신의 참모습을 찾는다. 비교적 과작이었던 60년대를 넘기면서 그의 문학적 시각은 현실의 모순과 왜곡된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비리를 고발하기도 하였고, 소외된 인간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인다. 폭력화한 정치의 시대에도 그의 문학은 비판적인 작가의식을 더욱 앞세운다. 그는 지금도 생동하는 현실의 한복판에 서서, 진실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항상 '오늘의 작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최일남의 문학은 그의 문단적 활동이 시작된 이래 대개 세 가지의 특징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 첫째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농민, 힘없는 도시의 서민들, 자기 생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못난 소시민들이 대부분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자질구레한 삶 속에는 최일남이 아끼고 사랑하는 풋풋한 인간미가 스며 있다. 둘째는 현실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투철한 작가의식을 지켜오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 만능의 세태, 타락한 정치, 위선적인 지식 등은 모두 그가 꼬집고 배척해 온 대상들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결코 목청을 돋구는 일이 없다. 역설과 풍자의 언어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수법에 의해 그의 문학 정신이 더욱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인상의 통일과 효과의 집중을 위해 그의 문학이 대부분 단편적인 양식으로 고정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 영역의 폭으로 보아, 단편성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적 체질로 보아서 짧은 호흡의 문학적 양식이 최일남에게는 더욱 기능적인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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