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1977)

-이청준-  

◆ 소설 읽기  

● 줄거리

내일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말해 버리자 노인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들에게 편안한 잠자리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하는 마음에 쉽게 체념해 버린다. 나는 밖으로 나와 오리나무 그늘 아래 앉아 집을 내려다 본다. 버섯처럼 보이는 단칸 오두막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다. 나는 노인에게 빚이 없다. 노인도 나에게 빚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형은 주벽으로 재산을 탕진했고, 세 아이와 형수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장남의 역할을 물려받았고, 노인이 내게 베푼 것도 없고 나도 사느라고 노인에게 해 준 것도 없었다. 피차 빚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노인의 눈치가 이상했다. 지붕 개량 사업 얘기를 노인이 꺼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지붕개량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속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잠자리에서 아무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내는 오늘 아침, 늙은 노인네에게 그렇게밖에 응대할 수 없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내도 노인의 말을 들었고, 노인에 대한 나의 속마음도 읽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노인의 집 뒤꼍으로 들어서니 방 안에서 아내의 말이 들린다. 기어이 집 문제를 꺼내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아내에게 사후를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은 뒤에 단칸방에 시신이 놓이면,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올 것이며, 식구들은 어디서 거처하느냐는 것이다. 아내는 또, 크고 넓었다는 옛날 집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노인의 기억 속에 있는 넓은 집을 상기시켜 만족한 느낌이라도 가져 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아내는 노인의 소망을 잠재우기보다는 후벼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드디어 옷궤 이야기로 옮아갔다. 17,8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형은 술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마침내 집마저 팔아 넘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K시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던 나는 소식이 궁금해 집으로 돌아왔고, 집은 팔려 있었다. 노인은 이미 팔린 집의 주인에게 간청하여 내가 오면 하룻밤을 잘 수 있도록 부탁을 해 두었고, 우리 집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그 옷궤를 그 집에 갖다 놓았던 것이다.

아내는 또, 나를 새벽같이 일어나 밥지어 먹이고 보낼 때의 심정을 캐묻는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밖에서 엿듣고 있는 것을 알고서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야기를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어 장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저녁과 함께 막걸리를 주며 한 잠 푹 쉬고 내일 떠나라고 한다. 나는 어쨌거나 이 고비를 넘겨가고  있다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잠결에 노인과 아내의 대화가 들린다. 노인은 그 날의 새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벽에 아들을 장터 차부까지 데려다 주던 이야기였다. 아들과 함게 눈이 가득 내린 어둑한 산길을 걸어 차부에 닿았고, 나는 차에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나 또한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이후를 말하고 있었다. 무심한 운전사가 급하게 아들을 태우고 떠난 뒤에도 어둠은 걷히지 않았고, 망연히 차부에 앉았다가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발자국이 눈 위에 선명했고, 그 길을 되밟고 있는 노인은 아들이 달려올 것만 같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잿등까지 와서 동네를 한참 쳐다보다가 그 길로는 차마 동네를 바로 들어설 수가 없어 눈을 털고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던 아내가 나를 깨운다. 나는 자는 척해야 했다. 뜨거운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흐트러지지 않은 음성으로 계속했다. 아침 햇살이 눈에 시렸고, 그 시린 눈으로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 차마 동네 골목을 들어갈 수 없어,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자고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다고.

● 인물의 성격

→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어려웠을 때 부모가 자신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려 지붕개량 사업에 돈이 필요하다는 모친의 의사를 무시한다. 자식 노릇을 못한 자신이나 자식 뒷바라지를 못해 준 어머니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진 이기적 인물이다

아내 →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의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하는 인물이다. 모친을 매정하게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노인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노인(어머니) →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나, 집안의 옛 영광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과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책감으로, 자식에게 속시원히 말도 하지 못하는 깊은 한을 간직한 노인네.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고향에 대해 그리움과 함께 증오감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어떤 일로 인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고, 고향에서의 특수한 체험을 통해 인간적 화해에 도달하게 되는 귀향형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하는 '나'와, 집안의 불행이나 재앙을 자신의 부덕함과 박복에다 돌리는 어머니, 그리고 화해에 도달하게 하는 매개 인물로서의 '아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 잠자리에서 노모와 자신의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그동안 외면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심정적으로 화해하게 되는 주제의식을 표출시키고 있다.

이 소설의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비밀스러움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가면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 긴장감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속내를 감추고 있던 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노출시키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지붕 개량 문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듯 이야기를 꺼낸 것을 시작으로, 노인은 자신의 진의를 한꺼풀씩 드러낸다. 한 단계 진행될 때 마다 그것은 진정한 의도가 아니고, 도 그 단계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이렇게 반복되는 가운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녀의 한은 깊고 오래된 것으로 부각된다.

이 소설은 어머니와 아들간에 벌어진 심리적 거리감이 점점 좁혀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나는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부터 일탈해 있거나, 일탈할려고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지칭하는 데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돈 문제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까지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나에게는 빚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이야기가 '옷궤'에 대한 것까지 이어지고, 새벽 눈길에 '나'를 읍내 차부에 까지 바래다 준 일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가지의 이야기는 '나'도 체험을 공유한 것이기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의 이야기에 의해 어머니만이 간직한 한이 비로소 드러나고, '나'는 어머니의 한에 접근해 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심정적인 합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타난 어머니의 한은, 아들을 배웅해주고 혼자 돌아오는 눈길에 선명한 모자의 나란한 발자국을 보며 흘린 어머니의 눈물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에의 그리움, 옛 집을 잃은 서러움과 부끄러움, 아들에게 따뜻한 집안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과 부끄러움, 이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고갯마루에서 동네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망연히 동네를 내려다 보았던 것이다. '나'가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부르고, 부모에게 빚이 없다고 자위하는 동안, 어머니는 '옷궤'를 들여놓을 번 듯한 집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옷궤가 있던 커다란 옛 집,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고  함께 밤을 새울 때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옷궤, 그리고 눈길을 걸을 때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옷궤를 들여놓을 큰 방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눈길'이 주는 이미지는 '나'와 '어머니'에게 각기 따로 작용한다. '나'에게 있어서 '눈길'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쓰라린 추억과 몰락해 버린 집안과 스스로 자수성가해야만 하는 운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있어서 '눈길'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상징물로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혹독한 시련이면서도 따스한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귀향소설

성격 : 회고적, 상징적, 서정적

배경 : 1970년대 어느 해 겨울, 시골

구성 : 역순행적 구성

이 작품은 '나'가 급작스럽게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나'가 그러한 말을 하는 원인이 된 어젯밤 노인과의 대화가 제시된다. 그리고 다시 오늘로 돌아와 아내와 노인의 대화가 전개되는데, 이 대화의 내용은 과거 노인과 '나'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점심

내일 아침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말함.

어젯밤

노인이 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냄.

오늘 오후

아내가 노인에게서 옛집과 옷궤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냄.

오늘 저녁, 밤

노인이 '그 날 새벽'의 눈길에 대한 이야기를 함.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 눈길에서의 추억을 통한 인간적인 화해

* 집안의 몰락이 준 어머니의 깊은 한 - 아들에의 미안함, 몰락의 부끄러움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의 형식적 특징을 말해 보자.

⇒ 독자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가 점차 그 비밀에 접근해 가도록 거리를 좁혀 간다. 이로 인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면서, 주제인 한의 세계로 집중시켜 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2. 어머니를 '노인'이라 지칭하고, 자꾸만 '빚이 없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 모자간의 정신적 거리감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모자간의 유대는 단순한 혈연관계에 불과하지 끈끈한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말들이다.

3. 이 소설에서 아내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말해 보자.

⇒ 아내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정서적 거리 가운데에 놓여 있으면서, 둘 사이의 거리감을 눈치채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배려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가 서사적 사건의 인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어머니의 깊은 한을 들추어내게 하는 역할만을 맡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 흐름을 주도하는 계기를 계속 만들면서 서사적 흐름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4. '옷궤'의 의미를 말해보자.

⇒ 옷궤는 과거의 삶이 투영된 상관물이다. 옷궤에는 커다란 집에서 살던 자부와 함께 영락한 집안의 비애까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사랑과 참담한 아픔이 스며 있는 상관물이다.

* 나 : 잊고 싶은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물건, 빚문서(노인의 사랑)와 같은 불편함을 주는 존재

* 노인 : 집을 지켜 온 흔적, 엣집 살림살이의 흔적, 아들에 대한 애정, 노인의 마지막 자존심

* 아내 : 노인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수단, 남편과 노인을 화해시킬 수 있는 수단

5. '불빛'과 '햇살'의 의미는?

⇒ '불빛'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은 '나'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햇살'은 자식과 집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노인의 부끄러움과 슬픔을 드러내는 소재로 서로 대응되고 있다.

6. 눈길의 상징적 의미는?

⇒ 이 작품에서 '눈길'은 두 번 등장한다. 노인과 '나'가 차를 타러 가기 위해 헤치고 나가는 눈길과 나를 떠나보낸 노인이 홀로 되돌아오는 눈길이다.

* 나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자수성가해야 하는 고난의 삶

* 노인 : 아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 혼자서 겪어야 하는 아픔과 시련, 몰락한 집안에서 겪어 온 인고의 삶

● 더 읽을거리

◆ 자전적 소설인 '눈길'

이 작품은 이청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작가는 실제로 형으로 인해 집안의 몰락을 겪었고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눈길을 이렇게 썼다.'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눈길'은 그러니까 나 혼자 쓴 소설이 아니라 내 어머니와 아내 셋이서 함께 쓴 소설인 셈이다, 오랜 세월 가려져 온 그 새벽 헤어짐 이후의 두려운 사연을 당신의 삶 속에 간직해 온 어머니나 그 헌 옷궤에 담긴 설운 사연을 실마리 삼아 끝내 그 무고한 아픔의 실체를 드러내 준 아내가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green37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