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극장(1983)

-박태순-  

◆ 소설 읽기  

● 줄거리

4 · 19혁명 이후 엿새째 되는 날 주인공 '나'는 친구들과 만나 시위 도중 죽은 친구인 평길이의 무덤을 찾아간다. 거리의 분위기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군인들이 거리마다 도열해 있었고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 있었다. 마치 전쟁이 한 바탕 지나간 느낌 속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정부패와 학정에 대한 분노로 '임화수를 잡아라'라며 폭동을 일으킨 인파 속에 주인공 일행은 합류하고 만다. 사람들은 평화극장으로 밀려들어가 극장을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한다. '나' 역시 무의식 중에 앞에 보이는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이성을 되찾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흥분한 군중들은 스크린을 찢고, 좌석 의자를 부수고, 극장을 때려 부수다가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 마을의 주민들이 몰려와 불을 지르면 마을이 타 버린다고 결사적으로 말리지만, 흥분한 군중들이 그 소리를 들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가 누군가 군인들이 오고 있다고 외치자, 군중들은 황급히 퇴각해 버리고, 장내에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무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게 된다. 나는 과연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의심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온 군인들에게 발각될까 꼼짝않고 누워서 밤을 보낸다. 날이 밝자 나는 잠든 군인들을 조심하며 살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나가면서 몇 명의 민간인들을 더 만난다. 그들은 극장 밖으로 나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 인물의 성격

◆ 나 →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로, 낮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도시의 살벌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밤이면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와 행복과 후진국의 부패를 논하는 지식인적 인물이다. 하지만 성난 군중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평화극장을 부수러 가는 군중 → 이승만 정권의 부패를 상징하는 공간인 '평화극장'을 부수는 성난 군중들은, 극장의 기물을 부수고 스크린을 찢고 방화를 하며 위반의 체험을 만끽하면서 해방감을 발산한다.

데모대의 방화를 필사적으로 막으며 일상생활에 충실하고자 하는 또다른 군중들

● 이해와 감상

<무너진 극장>은 이승만 정권의 붕괴 직전인 4월 25일에 일어난 사건과, 이 사건과 관련된 나의 생각을 회상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대학생으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적극 참여한다. 젊은이들은 낮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도시의 살벌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밤이면 술집에 모여 민주주의와 자유와 행복과 후진국의 부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술을 마시던 나와 친구들은 이승만 정권의 부패를 가시적으로 상징하는 공간인 '평화극장'을 부수러 가는 인파에 동참하게 되지만, 나는 성난 군중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지니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본다. 군중들은 극장의 기물을 부수고 스크린을 찢으며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무질서에로의 해방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파괴는 한편으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곧 시위대를 무질서와 광기의 수준으로까지 몰고 간다. 이에 나는 군중들의 행동에 적극 동참하지 않고 다소 냉정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러한 냉정한 시선은 당시의 판단이라기보다는 4 · 19를 역사적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즉 사후 비판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4 · 19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 즉 혁명 이후 위정자들의 협소한 현실 인식에 대한 비판과 군사쿠테타로 인한 좌절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이 소설의 결말 즉 '혁명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생각을 낳게 하였다.

<무너진 극장>과 4 · 19

이 작품은 4 · 19 세대 작가 박태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의 기쁨과 동시에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고, 1950년 6 · 25 전쟁을 겪으며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국가를 재건하고 국가 경제를 일으켜야 할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온갖 정치적 부정과 탄압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에 실망한 국민들이 1956년 민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에게 압도적인지지를 보내게 되었고, 이에 불안해진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에 있을 정부통령 선거를 대비해 선거 1년 전부터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계획했다. 대구에서는 1960년 2월 28일, 민주당 선거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등교시키자 대구지역 고교생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거센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 3월 15일 사상 유례가 없는 추악하고 불법적인 부정선거가 치러졌다.

마산에서는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 참가햇던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시 중앙부두 앞바다에 시체로 떠올랐고, 이에 분노한 마산 시민들은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전국적으로 자유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4월 18일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고려대생들에게 정치깡패들이 무차별 테러를 가했고, 이를 주도한 것이 소설에나오는 평화극장의 임화수였다. 수십 명의 학생이 부상당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마침내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이 날,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주 신념에 불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에게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지만 혁명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어지자 자유당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였지만 민심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종말을 결정짓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제자들의 희생에 가슴 아파하던 대학교수들이 시민과 학생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4월 26일, 서울 시내엔 삼엄한 경계태세가 취해졌고 시위대의 규모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교수단 시위 이후 국민들의 요구는 이승만의 하야로 모아졌다. 경무대를 지키던 계엄군은 실탄을 장전한 상태였지만, 처음부터 엄정 중립의 입장을 지켜 군은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다. 사태수습이 불가능함을 알아차린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 성명을 발표. 마침내 불의에 항거한 민주 이념이 승리했다. 1960년 8월, 의원 내각제의 장면 내각이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평길이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평길이의 죽음은 단순한 한 인간의 죽음으로 국한시켜 생각할 수만은 없다. 즉 평길은 소설속 주인공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부정한 정권에 대해 시위를 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불의에 항거한 시민이다. 그러므로 평길이의 죽음은 4 · 19라는 혁명의 주체로서 희생된 시민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다.

평길이의 무덤은 부정 선거와 오도된 민주주의를 규탄하다가 죽은 사람의 묘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누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찾기 힘든 그의 무덤은 평길이가 왜 죽어야만 했는가를 생각한다면 결코 그에게 합당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당시 혁명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참히 방치되고 있었다.

평길이의 무덤은 비록 초라했지만, 작가는 평길이의 죽음을 단지 부정적으로만 인식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무덤과 함께 새로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배경을 제시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하나의 초석으로서 작용될 것임을 내비추고 있었다. 즉 4 · 19는 이승만 정권으로 상징되었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 올바른 이데올로기를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 됨을 작가는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나)이 극장에 엎드려 있었던 이유

사람들은 극장에 몰려가 극장 내의 모든 기물을 부수며 파괴한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로 극장의 입구부터 현수막, 스크린, 극장의 관람석 등 극장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때려 부수면서 그들의 분노를 표현한다. 그리고 점점 그들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파괴 본성을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쾌감을 느끼고 더욱 흥분하게 된다.

주인공 역시 사람들처럼 파괴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극장을 부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주인공의 이러한 파괴 행위 속의 내면의식은 절망감 속에서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며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욱 파괴 행위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처음 사람들은 부정한 정권에 대한 반발로 극장을 부수기 시작하지만 이내 파괴의 쾌감에 젖어 비이성적인 양상을 보이며 그러한 파괴에서 오는 쾌감 뒤의 공포감에 스스로 빠져들어 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파괴행위에 참여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 위에 엎드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비록 자신이 집단 심리에 휩싸여 파괴의 행위를 하였지만, 그들의 행동이 결코 혁명의 대의에 비추어 떳떳한 폭력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의식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극장 파괴에 있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냉혹한 도취,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왜곡된 광장, 또는 완성된 무질서 상태는 어떻게 제지 받아야 할 것인지 주인공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파괴하고자 하였던 폭력에 의한 이승만 정권과, 그들이 한 파괴행위는 정권과 대립하면서도 어느 일면으로는 닮아가고 있었음을 알고 주인공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혼란은 사람들의 파괴행위 속에서,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적막한 극장 안에서 혼자 남아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극장의 의미

베이컨의 4가지 우상론 중에서 '극장의 우상'이 있다. 극장에서 상연하는 영화와 연극을 보면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에도 그것을 실재인 양 착각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이 '극장의 우상'은 본래의 철학적 해석으로는 앞서 성립해 있던 철학적 가치체계에 속박되어 나의 판단을 그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에는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으로 해석 가능하고 지배자의 논리에 아무런 비판 없이 추종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임화수의 평화극장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그동안 이승만 정권의 '극장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무너뜨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민들의 주요한 놀이 공간의 하나이자 독재 정권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사용된 3S 가운데 하나로 시민들의 정서와 의식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던 극장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불합리한 권력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화수의 평화극장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라기보다는 ―― 비록 임화수가 스케이프고우트에 불과하였다고 하여도 ―― 시민에게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직시가 아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의 강요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으로 대표되는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와 우민정책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무너진 극장은 4 · 19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4 · 19라는 거대한 민중의 힘으로 얻어낸 혁명 이후에 당연히 얻어야 했던 정치적인 승리와 바로서야 했던 이 땅의 민주화가 바로 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너진 극장은 4 · 19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로운 것을 바라는 염원을 동력으로 무언가가 없어진 곳에는 필연적으로 그것보다 나은 새로운 것이 요구된다. 무너뜨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바뀐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무너뜨린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 그런 맥락에서 군사쿠테타 이후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간 것도 4 · 19도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무너진 채로 남겨지게 되었다.

소설 속에 나타난 4 · 19의 한계성

소설 내에서는 4 · 19에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극장을 파괴하는 데모대와 불을 끄기 위해 등장하는 동네 사람들. 전자는 극장을 파괴하며 무질서한 광기의 모습을 보이고 후자의 사람들은 혁명의 대열에서 비켜서 자신들의 재산과 안전만을 지키기 위한 모습을 통해서 각각의 한계를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이 글에서는 혁명을 위한 보통 사람들의 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우상을 파기하기 위한, 혁명을 진행하기 위한 데모대의 광기 어린 폭력적인 행위는 기존 정권의 수단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닮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폭력성에 반대하는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이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데모단의 한계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인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불을 저지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위는 전형적인 소시민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행동을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혁명을 위한 움직임에 반한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도 혁명의 수단에 있어서 그들만의 방식을 가지지 못한 데모단의 모습처럼 한계가 명확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얼마 안 가서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한 순간의 흥분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기억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어느덧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힘들여 끌어올렸던 그 무질서의 위대한 형식이 역사성 속의 미아처럼 다만 한 순간의 고립에 불과하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여전히 의연히 버티고 있음을 보았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 사실주의, 현실비판소설

◆ 배경 : 4 · 19 직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4 · 19 혁명의 진정한 의미(정신)에 대한 모색

◆ 제목

* 불합리한 권력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 4 · 19 자체를 상징하며, '절반의 성공'을 의미하기도 함.

* '극장'은 독재 정권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위해 사용된 도구를 의미함.

◆ 의의

* 예술적 형상화는 다소 떨어지지만,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의미를 지님.

* 학생과 교수 등 지식인에 의한 관념론적 혁명이 아니라, 보통의 소시민들에 의한 실천적인 혁명론으로 구체화된 작품이다.

● 더 읽을거리

박태순 문학의 특징

전쟁과 4 · 19, 5 · 16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이에 대한 저항의식을 형상화한 현실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대두되었다. 박태순은 196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4 · 19 세대 작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4 · 19 혁명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 정권의 하야를 요구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그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green37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