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1966)

-김승옥-  

◆ 소설 읽기  

● 줄거리

윤희중은 오래만에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 간다. 무진은 안개가 많고 특징이 별로 없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이다. 그가 고향에 가게 될 때에는 항상 무엇엔가 쫓기며 갈등할 때나 현실에서 좌절했을 때였다. 이번에도 처가에서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전무로 선출되기 위해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오는 길이다. 서른세 살의 나는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하여 얼마 후 제약 회사 전무가 될 예정이다. 모든 일은 장인과 처가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나에게 무진은 어머니의 산소가 있고 또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밤에 중학 동창으로 세무서장이 되어 있는 '조'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 박 선생과, 같은 학교 음악 선생인 하인숙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 술자리에서 가곡이 아닌 유행가를 부르는 여선생에게서 연민 비슷한 정을 느낀다. 술자리에서 파하고 나오는 길에 후배인 박선생이 하선생을 좋아한다는 것, 그런데 하선생은 출세한 세무서장인 '조'를 좋아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하인숙과 단둘이 귀가하고 되었는데 그녀가 자기를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다음 날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다음날 윤희중은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머니의 묘에 성묘를 하고 오다가 방죽에서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여인의 죽음에서 젊었을 적 무진을 탈출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세무서장 '조'를 찾아간다. 그는 다소 자랑스러운 듯이 윤을 대한다. 윤희중은 '조'에게 하인숙과 결혼할 거냐고 물었고, '조'는 하인숙의 배경이 초라한 것을 이유로 대면서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여긴다. 단지 하 선생이 '조'에게 귀찮게 따라다닌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랑의 편지를 보내고 있는 후배 박선생이 불쌍해진다.

세무서에서 나와 하인숙과 약속된 바닷가 방죽으로 나간다. 방죽을 걷다가 예전에 살던 집에 찾아가 인사하고 옛날 살던 방에서 하인숙과 잠시 머무른다. 하인숙은 서울로 데려가 줄 것을 애원한다.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하마하고 약속한다. 이튿날 아침, 갑자기 상경하라는 전보가 온다. 윤희중은 하인숙에게 남기는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에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는 무진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 인물의 성격

나(윤희중) → 무진 출신으로 서울에서 출세한 33세의 제약회사 간부. 장인이 경영하는 제약회사의 전무 자리에 오르기로 되어 있으나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고향 무진에 가지만 허무를 느낄 뿐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그래서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내부엔 자신에 대한 회의와 쓸쓸함이 있다. 속물적 세계를 거부하면서도 결국엔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와 타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잣집 데릴사위여서 출세가 보장된 처지이나, 그의 의식은 안개로 상징되는 허무주의에 짙게 물들어 있음.

※ 허무의 심연에서 벗어나 자기를 찾기 위해 무진에 와서 하인숙이란 여자를 만나 그녀를 통해, 젊은이가 가질 수 있는 고매한 이상이나 순정을 팽개치고 보다 현세적 이익을 추구하는 속물적 인간이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의를 되새기게 되지만, 아내의 전보를 받고 상경함으로써 자기 찾기 노력을 포기하게 되는, 즉 타락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물

하선생(하인숙) →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나온 후 무진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주인공 '나'처럼 허무주의에 빠져 있으며 무진을 탈출하고자 하나 그 삶을 수용하면서 그곳에 머무는 인물이다. 가치지향적 삶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타락한 삶을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주인공 '나'와 가장 유사한 인물이며 나의 순수한 영혼과 세속적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면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 '나'의 친구로 고시에 합격한 뒤, 그곳의 세무서장으로 있다. 오로지 출세와 성공에만 관심있는 세속주의자이다.

→ 하선생을 좋아하고 주인공을 존경하는 고향 후배로, 하선생과 함께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로서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나의 과거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 구성 단계

발단 : 잠시 쉬기 위해 고향 무진에 돌아온 주인공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어둡던 청년시절을 연상

◆ 전개 : 후배 박과 함께 친구 조를 방문한 '나'는 성악을 전공한 하선생을 만남.

◆ 위기 : 한밤중에 하선생과 함께 걷던 '나'는 그녀로부터 우울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

절정 : 성묘길에 목격한 자살한 사람의 시체, 육체적 관계를 맺은 하선생의 조바심을 통해 순수했던 과거를 다시 접하게 된 '나'는 그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함.

◆ 결말 :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드디어 '나'는 과거를 배신한 채 무진을 떠남.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1960년대 한 지식인의 자화상을 통해 당대인의 내면 풍경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떠남-돌아옴-떠남"의 구조로 되어 있고 "길"이라고 하는 인생의 상징적 의미 속에 인간의 삶의 도정을 내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린다. 현실적으로 출세한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번민과 고통이라는 내면적 공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고독한 존재인 '나', 나의 젊은 날의 내면 풍경이 바로 '안개'로 상징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가시성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의식이 안개라는 사물과 연결되면서 주제를 심화해 나간다.

김승옥의 이 작품은 무진으로의 여행을 통해 현실적 세계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지만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고 마는 주인공을 통해 무력한 현대인의 모습을 형성화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무진은 주인공을 비롯한 현대인이 외면하고 있는 어둡고 우울하고 때론 순수한 내면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무진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공간적 이동은 주인공의 의식 세계의 변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윤희중이 무진에서 만난 세 인물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되새기게 하는 분신과는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한때의 순수했던 열정과 세속적인 욕망과 타락한 현재의 모습까지를 복합적으로 되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일으킨다.

이 작품은 이전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바람, 햇빛, 안개 등의 자연을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단순한 환경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허무의식을 드러내는 상징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비평가는 '감수성의 혁신'이라고 불렀거니와, 그만큼 발표 당시에는 낯설고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소설의 고유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혼돈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는 바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던 1960년대 전반기 사회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주류를 이루던 현실주의적 전통에서 벗어나, 자아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풍속의 차원에서 묘사했다는 점도 큰 의의를 지닌다. 그래서 당시 김승옥의 소설은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특히 무진 기행은 영화로도 만들어져(제목:<안개>)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 특히 감각적이고 섬세한 언어 구사와 문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무진이라는 안개로 덮이는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혼돈의 현대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안개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무진의 삶은, 우리 인간의 내부에 은밀히 웅크리고 있는 일탈과 욕정의 끈질긴 욕망과 관련되어 있고, 서울은 원초적 인간성이 사라진 공간이다.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양자를 오가는 존재들이다. 서울은 분명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두 개의 삶에서 방황하고 있는 1960년대 지식인의 내면 풍경이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무   진

서   울

다시 무진

다시 서울

* 모멸과 오욕에 찬 나날

* 수음과 같은 일탈의 삶

 

* 햇볕이 있는 곳

* 그러나 자기를 잃는 곳

 

* 엉뚱한 생각

* 은밀한 욕정

* 하인숙과의 정사

* 자기 정체성이 드러남

 

* 안정된 삶이 보장된 곳

* 정체성을 감추는 곳.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귀향소설, 순수소설(서정적, 몽환적)

배경

* 공간적 ⇒ 안개로 대표되는 무진과 현실적으로 타락한 공간의 서울

* 시대적 ⇒ 물질 만능주의와 허무주의, 배금사상이 사회에 만연했던 1960년대

※ 허무주의∼ 실재나 진리따위 기존의 모든 제도나 가치를 부정하는 주장이나 경향

※ 배금사상∼ 돈이나 돈의 힘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어 그것에 집착하는 주의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구성 : 여로형 구성('떠남 - 추억의 공간 - 복귀'의 구조)

표현 : 고뇌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작가 특유의 감수성으로 표현해 냄.

출전 : <사상계>(1964)

주제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허무주의적 의식

* 진정한 자아를 버리고 현실에 타협해 버리는 현대인의 자기반성

* 안개로 상징되는 허무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한 젊은이의 귀향 체험

● 생각해 볼 문제

1. '안개'의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존재론적 허무감의 상징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등이 뒤섞여 있는 혼돈의 상태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주인공 '나'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며, 현실과 단절시키는 매개적 역할을 하는 소재로도  기능한다.

 

2. 윤희중이 무진을 떠나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이유를 말해 보자.

⇒ 윤희중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무진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런 삶에 빠지지만 결국 서울로 향하고 만다. 무진을 관념으로 보지 않고 진실로 체험하지 않는 한, 언제든 서울로 가게 되어 있다. 서울은 무진에서보다 자신의 안락을 제공할 요소가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서울의 힘을 택하며, 여기에서 양심적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순수와 이상을 버리고 세속적 현실과 타협하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3. 주인공이 다니러 온 고향 무진과 거기에서 만난 하선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고향 무진은 주인공을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연민과 감상이 지배하는 과거로 이끌어가는 요소

    하선생은 주인공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분신과도 같은 인물임.

 

4. 이 작품에 나오는 자연은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연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 나오는 자연과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 <메밀꽃 필 무렵> : 등장인물들이 활동하는 공간적 배경,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소.

    <무진기행> : 등장인물의 내면 상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즉 축축한 바람과 자욱한 안개는 감상과 고뇌에 빠져 있던 주인공의 과거의 내면을 드러내는 요소임.

 

5. 아내의 생각은 어떤 풍조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가?

⇒ 아내의 생각은 혈연과 지연에 의해 충분히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권력을 얻는다면 삶의 순수성마저 버릴 수 있는 시대의 전형적인 속물인 것 같다. 남편을 승진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밀 줄도 아는 사람인 것이다.

 

6. 주인공 윤희중은 순수로 상징되는 고향을 버리고 세속적 행복이 보장된 아내의 제약 회사 즉 반복되는 일상인 서울을 선택했다. 이때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개인의 의지인가 아니면 사회적 환경인가? 아니면 경우에 따라 다른 것인가?

⇒ 뒤르켕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변수는 집단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이, 적어도 그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적응하고 생존하고자 한다면, 자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매우 좁다. 따라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의해 소명된다고 보는 사회 실재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윤희중의 결정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7. 주인공 윤희중은 무진에서 미친 여자, 자살한 여자 등을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들은 무진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 무진의 안개는 출구가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과 함께 자기 존재의식이 희미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은 무진에 가면서 만나는 여자들은 미쳤거나 자살한 여자들이다. 하인숙 역시 매번 미칠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이들은 모두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질서로부터 다소간 멀어져 있는 소외된 인물들이다. 특히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광기는 혼돈과 어둠의 공간으로서의 무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8. 작품의 결말 부분에 나오는 '전보'와 '편지'의 상징성에 대해 말해 보자.

⇒ 편지와 전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편지는 개인의 내면이나 정감을 표시하는 보다 전통적인 의사소통 수단이고, 전보는 실용성이 강조되는 수단이다. '나'와 '아내'는 전보를 통해 연결된다. '나'가 편지를 찢어 버리고, 아내가 보낸 전보의 내용대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따르는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이다.

● 더 읽을거리

현실과 이상의 대립 구조

<무진 기행>의 주인공 '나'의 기행은 '서울 = 현실', '무진 = 이상'으로 대립시키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구조를 띤다. 작품의 인물 또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데 박은 순수한 인간성을, 조는 속물로 대변된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하인숙의 모습은 곧 주인공 '나'의 모습과 같다. 나는 무진에서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상 쪽으로 기울지만, 서울의 아내로부터 올라오라는 전보를 받자 서울의 현실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현실의 벽을 다시 느끼며 이것을 수긍하는 변명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상과 순수를 버리고 현실의 속물이 되어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모호한 이중적 배경인 '안개'라는 상징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안개'는 주인공이 혼돈의 시대 속에 살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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