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1976)

-조세희-  

◆ 소설 읽기  

● 줄거리

앉은뱅이와 꼽추, 몸도 성하지 않고 생활도 어려운 그들의 집이 무너져 버린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해 그들은 살 집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아파트 입주권이 나오지만, 입주금이 없어 시에서 주는 이주 보조금보다 약간 많은 돈을 받고 입주권을 팔고는 자신들의 집에 세든 사람들의 전세금을 계산해 주고 무일푼이 돼 버린 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었다. 동네의 다른 사람들은 집을 잃을 때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과 한 바탕 다툼을 벌였지만, 꼽추네 식구들은 가만히 있는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 집마저 잃어 버린 그들은 복수를 결심한다. 기름통까지 준비하고 마음도 굳게 먹는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적극적임에 반해 꼽추는 겁을 낸다. 앉은뱅이는 살이 피둥피둥한 부동산업자를 만나 그와 집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동산업자의 거짓말에 화가 난 앉은뱅이는 그를 차에 태운 후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잔인한 살인을 하게 된 앉은뱅이, 그와 함께 복수를 음모한 꼽추이지만, 그는 그런 앉은뱅이가 무서워진다. 앉은뱅이는 강냉이 기계를 사서 생활할 계획을 세우고 꼽추는 약장수를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그는 앉은뱅이의 복수심이 무서워 떠나겠다고 한다. 둘은 헤어지고 혼자 남은 앉은뱅이는 눈물을 흘린다.

● 인물의 성격

수학 교사 :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선생님.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 특정한 것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침. 즉 흑백 논리, 고정 관념을 탈피하라고 가르치는 교사

앉은뱅이 : 어렵게 살아가다 사기를 당한 억울한 인물.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부동산 업자를 살해

꼽추 : 앉은뱅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지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감. 부동산 업자를 살해하는 일에 동참하지만, 곧 자신의 행위를 후회함.

● 구성 단계

발단 : 액자소설의 겉 이야기로, 수학 교사가 '굴뚝 청소하는 아이'와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 해 줌.

전개 : 앉은뱅이네와  꼽추네가 도시 재개발의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음.

위기 : 꼽추와 함게 복수를 결심한 앉은뱅이가 부동산업자에게서 돈을 빼앗고, 그를 잔인하게 죽임.

절정 : 앉은뱅이의 폭력적인 복수에 환멸을 느낀 꼽추가 그와 함께 하지 않기로 함.

◆ 결말 : 수학 교사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곡면을 상정하며, 지식의 이기적 폭력화를 경고함.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12편 중 하나이다. 연작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낙원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난쟁이 일가의 삶을 통해,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빈민층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으로 1970년대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던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12편의 연작 소설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그 내용이 수학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제시되는 일종의 액자 소설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이하다. 1970년대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 속의 수학 교사가 학생들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형성시키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작가는 수학 교사의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뫼비우스의 띠'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부각시키며, 그것이 암시하는 바 즉, 세상 만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과 뒤를 구분할 수 없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실 혹은 진실인 것처럼 믿는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 따라서 현실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액자 소설의 속 이야기에 해당하는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는 1970년대 도시 재개발의 이면에 드리워진 빈민들의 처절한 삶의 절규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앉은뱅이와 꼽추는 연작의 다른 작품에 나타나는 '난쟁이'와 같은, 산업화된 거대 도시 자본 속에서의 무능력하고 무력한 존재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간 부동산업자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복수를 하지만, 복수의 과정에서 평소 꼽추네 집안 사람들보다 대가 약했던 앉은뱅이는 오히려 부동산업자에게 폭력적으로 복수를 한다. 돈을 빼앗고 휘발유를 뿌려 그를 불에 태워 버린다. 상식적으로는 비도덕적이고 비인륜적인 앉은뱅이의 복수이지만, '뫼비우스의 띠'라는 작품의 제목을 상기할 때, 그의 행동은 부동산업자를 비롯한 당대 사회가 앉은뱅이네와 꼽추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간 것과 같은 면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꼽추는 이렇게 동일한 폭력성에 환멸을 느끼며, 비록 힘들고 어려운 약장사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 길로 걸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한 현실 속에서 꼽추는 앉은뱅이에게서 돌아서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 앞에는 수학 교사가 굴뚝을 나온 두 아이의 우화와 뫼비우스의 띠의 수학적 개념을 소개하는 외부 이야기가 나온다. 수학 교사의 수업 장면이 앞뒤에 있고 그 사이에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가 끼여 있다. 그렇다면 뫼비우스의 띠가 갖는 개념에 근거해서 바라본 세계의 실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철거민들과 그들에게 입주권을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사들인 부동산 중개업자 사이의 갈등에서 피해자인 철거민이 다시 중개업자를 죽이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작가는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런 비극을 낳는 사회 구조의 모순에 눈을 돌릴 것을 요청하는 있는 것이다.

제목의 '뫼비우스의 띠'는 사물의 현상과 본질, 참과 거짓, 흑과 백이 서로 다른 면에 놓일 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 동일한 면에서 지배되는 법칙에 적용을 받는 것일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은 당대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는 그의 연작에서, 사회적인 모순이 흑과 백, 참과 거짓, 선과 악, 노동자와 자본가, 철거민과 도시 민민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그 근본이 있음을 암시한다.

*출처 : 글동산 국어 <문원각>

 

'뫼비우스의 띠'가 던지는 메시지 → <뫼비우스의 띠>에 등장하는 교사는 그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입시보다 더 중요한 인간학을 가르쳐 주고자 한다. 작가 조세희는 난쟁이가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배우는 지식이 인간 사회의 윤리 확립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분화된 근대 세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인의 저항만으로는 거대한 조직체의 테두리조차 변화시키기 힘들지만 학생들이 사회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회 변화의 실마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해방 이후 출간된 우리 나라의 소설 중 가장 기념비적 작품으로 불리고 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층의 아픔을 모더니즘적 방법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사실주의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대 한국 문단에서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환상과 사실이 병치되고, 과거와 현재가 넘나들며, 서술자 시점이 자유롭게 이동되고, 시적 환상이 이루어지는 노동 소설은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발표된 노동 소설들은 대부분 산업화 시대에서 소외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폭로하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액자소설, 연작소설, 사실주의적 소설

◆ 성격 : 사회 비판적, 동화적, 환상적, 우화적, 은유적

◆ 배경

* 시간적 → 70년대 도시 재개발 과정

* 공간적 → 재개발 지역(행복동이라는 가상의 공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 액자식 구성

* 짧고 간결한 문체

* 대화와 행동에 의한 사건 전개

* 상징적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함.

* 과감한 생략을 통해 사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함.

* 우화적 기법으로 사회의 부조리성을 풍자적으로 고발

◆ 구성 : 굴뚝청소, 뫼비우스의 띠(개념의 제시) ⇒ 앉은뱅이와 꼽추 이야기(뫼비우스의 띠를 보여주는 사례) ⇒ 고정관념의 편협한 시각에 대해 경고하면서 현실 속에서 적용해 볼 것을 권함.

◆ 출전 : 『세대』(1976)

◆ 주제 산업화의 진행 과정에서 도시 빈민층(철거민)들이 겪는 비참한 삶의 고통과 소외

             사물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고 본질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촉구함.

● 생각해 볼 문제

1. 수학 교사가 들려 준 굴뚝 청소 이야기는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

(1)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각자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해 보자.

*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다.

*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다.

* 두 아이 모두 얼굴을 씻을 것이다.

 

(2) 만약 자신의 생각이 이야기 속의 교사의 말과 일치했다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교사의 설명과 비교해 보자. 그리고 일치하지 않았다면 교사의 설명이 어떠한 면에서 잘못되었는지 설명해 보자.

→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한 경우는 교사의 설명과 일치한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처럼 자신의 얼굴도 당연히 지저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씻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한 경우는 제3자의 입장에서 상식을 적용한 경우이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세계와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아 우리의 대상 인식에 방해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교사가 처음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설명은 이러한 점에서 타당성을 지닌다. 또한 굴뚝 청소는 두 아이가 모두 했으므로 청소 후 두 아이 모두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3) 교사가 같은 질문을 또 던지고 다른 대답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두 번째 대답에 대한 설명의 타당성을 따져 보면서 생각해 보자.

→ 세계와 대상에 대한 본질적 인식은 이분법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달리 한 것 은 안과 밖, 흑백 논리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지닌다. 두 아이가 함께 굴뚝을 청소했다면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일 수는 없다. 우리가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상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따라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일깨우고자 한 것이 교사의 의도이다.

 

(4)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 교사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지, 사물에 대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각자 말해 보자.

→ '뫼비우스의 띠'는 안쪽과 바깥쪽이 구별되지 않는 단측 곡면이다. 우리가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고, 흑과 백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수학교사가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일깨우고자 한 것은 흑백 논리, 고정 관념을 깨뜨리려는 인식이다. 자신들에게 올 돈을 가로챈 부동산업자를 납치하고 죽인 앉은뱅이와 꼽추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결국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황을 수업 상황과 연관시킴으로써 의미 전달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작품이다.

 

2. 이 작품의 서사 구조가 갖는 특징과 효과는 무엇인가?

→ 시간의 흐름이 과거와 현재가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혼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등장 인물과 서술자가 내면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3. 액자 소설 형식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액자 소설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여 신뢰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외부 이야기를 통해 내부 이야기의 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4. 꼽추가 말하는 '완전한 사람'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사회적 약자인 꼽추에게는 완전한 사람이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지킬 힘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꼽추에게 약장수는 강인한 육체적 힘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5. 제목에 대해 알아보자.

→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일컫는다. 작가는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의 특성을 고려하여, 당시의 사회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는 사회임을 '뫼비우스의 띠'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안과 밖이 존재한다고 믿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진실인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상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각성, 즉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것, 비판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의 내용이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기 당한 돈을 찾기 위해 부동산 업자를 납치해 불태워 죽임으로써 원래 피해자였던 앉은뱅이와 꼽추는 가해자의 처지로 바뀌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는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를 쉽게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징이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아이들처럼 부동산 업자는 자신의 더러움을 알지 못하고, 앉은뱅이와 꼽추로 대변되는 소외 계층도 자신의 깨끗함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끝내 부동산 업자를 불태워 죽인 앉은뱅이처럼 당장의 이익을 위해 쉽게 행동하는 지식의 간사함을 고발하는 것 또한 뫼비우스의 띠가 상징하는 의미의 하나이며, 다른 한편으로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는 점에서 빈부의 격차 없이 평등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더 읽을거리

◆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이 상징하는 것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제군은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입학 시험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를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면 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첫머리에 놓여 있는 <뫼비우스의 띠>에는 뫼비우스의 띠와 뫼비우스의 입체를 생각해 보라는, 고교 3학년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수학 교사의 말이 작품 앞뒤에 놓여 있고, 그 사이에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가 끼여 있다. 그 이야기는, 헐값으로 딱지(재개발 지역의 입주권)를 넘긴 앉은뱅이와 꼽추가 브로커의 농간을 알아채고 그를 살해 · 복수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연작의 첫머리에 암호처럼 놓여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소설 속 수학 교사의 말을 들어 보자.

"내가 마지막 시간에 왜 굴뚝 이야기나 하고, 띠 이야기를 하는지 제군은 생각해 주리라 믿는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 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여기에서 교사가 공동체의 선을 위한 사회적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한 쪽 면만 갖는 곡면의 세계, 즉 뫼비우스의 띠의 눈으로 보는 세계의 구체적 실상은 무엇인가.

철거민들과 그들에게서 입주권을 터무니 없이 싼 값으로 사들인 부동산업자 사이의 갈등에서 피해자인 철거민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경제적 착취에 맞서는 또 다른 폭력)이 그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할 수 없는 현실, 여기에 안팎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놓여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와 같은 비극적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런 비극을 낳는 사회 구조의 모순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안팎이 없는 닫힌 공간을 보여주는 <클라인 씨의 병>(뫼비우스의 입체)도 연작의 주제를 전달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나갈 수 없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 <클라인 씨의 병>에서 )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세상은 그러나 현실에 실재하지는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힘과 부의 편중은 갇힘과 나눔을 피할 수 없는 질서로 만들어 놓았다. 난쟁이 일가가 살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클라인 씨의 병이 보여주는 것은 '갇힘이 착각일 수 있다'는 발상의 뒤집음이다. 그것은 갇힘이 불변하는 절대적 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환기시키는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에 기대어 작가는 헤어날 길 없는 절망적 현실에 갇힌 난쟁이에게 꿈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살며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가 그것이다.

이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가 난쟁이의 경우에는 '달나라'이다. '이 땅에서 끝까지 고생하다 바짝 마른 몰골로 죽기' 전에 '힘든 일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두기' 전에 난쟁이가 가고 싶어하는 '달나라'는 물론 상상 속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상상 속의 세계는 난쟁이가 그린 '사랑'의 세계이다.

상상 속에서나 그 존재가 가능할 기묘한 현실이 클라인 씨의 병처럼 엄연한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이상, 난쟁이가 소망한 또 하나의 상상 속의 세계가 실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난쟁이의 소망이 우화적인 색채를 띠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무게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작가의 현실 인식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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