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아름다운 동네(1986)

-양귀자-  

◆ 소설 읽기  

● 줄거리

어느 추운 겨울날, 화물차 짐칸에 실려서 서로의 체온과 담요로 추위를 참아내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부천시 원미동 23통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원미동엔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바둥대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우리 동네 지주(地主)라고 불리우는 강 노인은 시가 몇 억짜리 땅에 한사코 푸성귀 따위나 가꾸겠다고 고집하는 통에 고흥댁과 박씨는 온갖 감언이설을 다 늘어놓지만 허사이다. 결국 강 노인은 큰아들 용규에게 빚을 준 동네 사람 여덟 명의 빚 독촉에 팔고 만다.

몽달씨(氏)라는 별명을 가진, 약간 돈 원미동 시인도 이곳에 산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무시를 받아가며 김 반장 가게에서 일곱 살짜리와 노닥거리며 지낸다.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깡패를 만나 물씬 두들겨 맞는다. 김 반장은 오히려 그를 쫓아낸다. 이런 김 반장의 행동을 모두 엿본 일곱 살짜리 아이는 큰 소리로 동네 사람들을 부른다. 그러나 지물포점의 주씨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

은혜네는 이사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천장과 벽에 습기가 배어 물이 흐르고 작은방의 난방 파이프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다 이번에는 목욕탕 사건이 터지는 통에 연탄 가게와 지물포를 겸한 주씨에게 일을 맡긴다. 주씨가 이것저것 다 고친다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트집을 잡으며 공사비 바가지를 씌울까 봐 아내는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주씨는 18만원이라는 견적보다 훨씬 적은 7만원을 받고 공사를 한다. 서비스로 옥상 공사까지 해 주며 오히려 미안해 한다. 일이 끝난 후 주씨와 술을 마시며 주씨 자신의 고생담을 듣게 된다. 또, 가리봉동을 비 오는 날마다 간다는 말도 듣는다.

행복 사진관을 하는 엄씨는 한강 인삼찻집을 하는 30대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남편의 외도를 안 부인이 인삼찻집 여자와 대판 싸움을 하는 통에 바람피운 것이 들통난 엄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엄씨는 인삼찻집 여자에 대해 미안함과 동정심을 갖는다. 결국 인삼찻집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눈총에 못이겨 힘들게 낸 찻집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경자 친구가 하게 될 화장품 할인 코너가 들어선다.

경호네는 연탄 주문, 쌀 배달 등으로 알뜰히 살아 김포 슈퍼까지 내게 되자, 김 반장의 형제 슈퍼와 출혈 경쟁이 붙는 바람에, 헐값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동네 사람들만 신바람이 난다.

그런 와중에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 사이에 싱싱 청과물점이 생겨 부식 일체와 완주 김까지 팔았다. 이것을 알게 된 경호네와 김 반장은 휴전을 맺고 힘을 합쳐 싱싱 청과물의 수입을 막아 버린다. 약이 오른 싱싱 청과물은 김 반장에게 대들어 싸움이 붙지만 김 반장에게 물씬 얻어맞는다. 이 싸움으로 김 반장은 신임을 잃어 동네 사람들의 미움만 산다.

연립 주택의 지하실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은 용변 보는 일에 눈치를 보느라 힘들어 한다. 주인집 화장실 사용이 쉽지 않아서 그 동안 남의 집 신세를 져 가며 그럭저럭 해결해 왔다. 그런데, 이집 저집에서 문단속을 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더욱 난처해진 '나'는 주인집을 잔뜩 원망한다. 하지만 주인집 여자는 유부남을 끌어들여 사는 처지라서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를 오히려 동정하게 되었다.

● 인물의 성격

: 관찰자, 원미동으로 이사옴.

몽달씨 : 원미동 시인으로 불리는 인물로, 폭력을 당하지만 꿈을 잃지는 않음.

경호네 : 억척스럽고 성실하며 성격이 원만하고 예의바름.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면모도 보임.

김 반장 : 생활력이 강하고 자신의 이익에 악착같으며 인정이 없음.

시내 엄마 : 인정이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자신에게 불리해지며 태도가 급변함(가장 입체적인 인물)

고흥댁 : 이해타산적이고 경박하며 노골적인 성격임.

● 이해와 감상

원미동 연작에서 이웃과 이웃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이해의 모습은 '일용할 양식'에 잘 나타나 있다. 형제 슈퍼와 김포 슈퍼 사이에 벌어지는 고객 확보 전쟁과 그것을 유용하게 이용하려 드는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갈등과 미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것이며, 이기적인 뿌리를 가진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조그만 판매 경쟁이 감정적인 경쟁 심리로 발전하고, 마침내는 이해 타산을 따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부추겨서 온 동네를 더 황량하게 만든다. 따라서 원미동이라는 조그만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이 두 상점의 갈등과 불화는 함께 사는 사회에서 인간들이 지켜야 할 이해와 공존의 원리를 재치 있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양귀자가 그려 보이는 원미동은 작고도 큰 세계이다. 그 세계는 소설 속에서는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그 장소에 살고 있는 몇몇 인물들이 펼쳐보이는 작은 삶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양귀자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는 커다란 세계이다. 그것은 원미동의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부천, 부평, 주안, 시흥, 안양, 군포, 그리고 서울 변두리의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우리는 원미동을 만난다. 원미동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양귀자의 역설적 표현을 빌면 '가나안에서 무릉도원까지'의 아득한 거리에 있는 동네가 아니라, '기어이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할 우리들의 동네이다. 그러므로 원미동은 작고도 큰 세계이다.

「원미동 사람들」에는 성장과 소외, 풍족과 빈곤, 폭압과 자유에의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갈등하여 공존했던 80년대의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원미동'의 세계가 문제적인 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진실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원미동'은 멀리 있지만 아름다운 혹은 멀리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희망의 공간적 이름이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춥고 어두운 네프스끼 거리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양귀자 선생의 「원미동 사람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이제 우리 독자들도 마음 깊은 곳에 낯익은 거리를 하나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을 알든 모르든, 그곳을 다녀갔든 한 번도 걸음하지 않았든,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며 원미동 23통 거리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나 친숙한 거리가 된 것이다.

양귀자 소설을 읽는 일은 참 즐겁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아무 부담 없이 글의 행간에 따라들어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기분좋은 미소를 짓게 되고, 그렇게 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 속에 딱딱하게 응고되어 있던 덩어리가 어느새 감동으로 물렁이기 때문이다.

양귀자를 만나는 일은 더 즐겁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귀를 기울여 잘 들어줄 줄 알고, 들은 이야기에 그만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탄력성 있는 공처럼 다시 되돌려주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미리 그어놓은 선이나 눈금으로 상대를 재는 자를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귀자 소설을 읽는 일과 양귀자를 만나는 일이 같은 행동의 다른 방법처럼 느껴진다. 흔히들 글이 곧 그 사람이라고 하는데, 바로 양귀자 같은 작가가 있기 때문에, 그 말이 절멸되거나 변질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에게 그런 즐거움을 주고 있는 양귀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은 작가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양귀자 소설이 많이 팔리고, 그러면서도 문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더더구나 작가 자신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사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양귀자는 다른 관점으로 말한다.

"글쎄요, 소설이든 제 속마음이든 많이 읽힌다는 뜻이네요. 비평가나 독자나 다 원하는 만큼만 읽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무엇을 갖고 있든 읽는 사람들이 많이 원하기 때문일 거예요."

양귀자 소설이 많이 팔린, 즉 많이 읽힌 예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는 독자가 아니더라도, 지난해에 발간된 『천년의 사랑』이나 92년에 나온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소문을 통해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읽힌 책들은 그것만이 아니다. 87년에 출간된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과 89년의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90년의 『희망』등 일부 창작집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바 있다.

한편 그는 『원미동 사람들』로 88년에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하고,「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받고, 올해에는 단편「곰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시상되는 요한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우수한 중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적지 않은 문학상을 도둑맞았다는 말도 함께 듣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연작소설, 세태소설

배경 : 1980년대 부천시 원미동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 특징

*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건이 전개됨.(추보식 구성)

* 구체적인 공간(원미동)을 배경으로 삼아 사실성이 두드러짐.

* 등장 인물의 사투리 사용으로 원미동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실감나게 드러남.

* 인물의 성격 및 심리 변화에 관해 서술자의 요약적 설명이 보임.(전지적 시점)

◆ 주제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꿈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배경인 '원미동'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 보자.

⇒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장 평균적이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또한 물질 만능과 극도의 개인주의 속에서 서로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 처한 비극의 동네이지만, 다시금 꿈과 희망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삶의 현장이다. 원미동이라는 그 말 자체는 역설적 표현이다.

2. 이 작품에서 원미동 시인이 이유없이 당한 폭력에 대해 형제슈퍼 김반장이 방관한 이유는 무엇인가?

⇒ 한마디로 말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 없이 행해지는 비합법적 폭력은 삶의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기 일쑤이다. 그 폭력은 우리의 육체에 직접 가해지기도 하지만, 정신적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한 폭력과 두려움 앞에서 개인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으며,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을 땐, 그것이 그다지 두려운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인의 무관심과 극도의 이기주의는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아 버리게 되고 만다. 김반장 역시도 굳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상황이 바로 나의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함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 양귀자

5남 2녀 중 다섯 오빠 밑의 첫 딸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만 5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후 큰오빠가 아버지 노릇을 대신한다. 어린 시절 만화를 즐겨 보았으며 이광수의 <유정>을 읽고 문학적 충격을 받았다. 전주여고에 다니면서 백일장과 문예 현상 공모에 참가하였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습작하였다. 1973년 여고를 졸업한 뒤 한 해를 쉬다가 다음 해 문예장학생으로 원광대 국문과에 입학하고 대학생활의 태반을 학보사 일로 보낸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다. J.라브뤼예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을 읽고 문학과 작가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졸업 후 삼 년 간 세 군대 중고등학교와 서울의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1982년에 부천 원미동으로 이사하면서 전세방 생활을 청산한다. 1985년에 첫 창작집 『귀머거리 새』를 냈으며, 두 번째 창작집인 『원미동 사람들』(1987)은 1986~1987년에 걸쳐 쓴 단편을 모은 대표작으로 경기도 부천의 한 동네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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