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1936)

-이태준-  

◆ 소설 읽기  

● 줄거리

'그'는 괴벽한 문체로 인해 독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작가이다. 수입이 적어서 한 달에 이십 원이 드는 하숙 생활도 힘겨워 궁여지책으로 부자인 친구의 여름 별장 방 하나를 빌어서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그는 배가 고픈 것을 잊기 위해 잠을 잘 정도로 가난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까마귀가 날아와 울 때 그것을 불길하게 생각하는 통설과는 달리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마다 그는 남포에 석유를 붓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어둠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별장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한 여인과 만난다. 그 여인은 요양차 이곳에 온 폐병 환자였다. 다음 날부터 정원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몇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그는 이 여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녀가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이 자포자기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 여인은 아직 저명하지 않은 이 작가를 알아보고 그에게 자주 놀러 온다. 그는 자신의 곤궁이나 그 여인의 허약함을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하고자 한다.

특히 그녀는 거의 병적으로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며, 까마귀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여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 그녀의 애인이 될 것과, 까마귀에 대한 그녀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하여 까마귀를 잡아 그 내장을 직접 확인시켜 줄 계획을 세우고는 실제로 까마귀를 잡아 매달아 놓는다. 그러나 그녀는 며칠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얼마 후 그녀의 상여가 나간다.

까마귀는 이날 저녁에도 이따금씩 까르르 하고 독특하게 울고 있었다.

● 인물의 성격

 그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독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작가이다. 까마귀를 자신의 친구로 삼고 있으며, 폐병에 걸린 한 여인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여인 → 폐병 환자이며 요양 중에 있는 인물이다. 까마귀를 매우 싫어하는 인물이며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이 여인의 죽음을 암시한다.

● 이해와 감상

<까마귀>는 1936년 1월 '조광'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태준의 단편에서 보여준 현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를 테면 1930년대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만연되었던 일종의 '사(死)의 찬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까마귀>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길한 새로 보고 있으며, 까마귀가 울면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따라서 까마귀를 친구로 삼는 것은 죽음을 가까이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죽음과 같은 소멸의 아름다움에 경도된 까닭은 죽음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고풍스럽고 음습한 한 별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폐병에 걸린 젊은 여자와 인기 없는 작가라는 인물을 설정해 놓고 폐병 환자인 여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감각적 묘사 능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색창연한 친구의 별장이 시각적으로 묘사되고 여기에 까마귀의 울음 소리라는 청각적 묘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복합 감각으로 이끌고 있다. 더욱이 작가는 까마귀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작품의 정조를 음습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역할 뿐만 아니라 젊은 여인의 죽음이라는 암시적인 기능까지 예견하는 복선(伏線)의 구실도 담당하고 있다.

1930년대 많은 작가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죽음을 노래하고 절망을 아름답게 그린 것은 비단 이 소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문학에서 아름다움이란 때로는 악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태준의 이 작품에 드러난 화자의 가난도, 여주인공의 병도, 그 정혼자의 사랑도, 여주인공에 대한 화자의 감정도 모두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더구나 일반이 싫어하는 까마귀마저 친구로 생각한 것은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이것은 작가가 삶의 비극성이나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간파하고도 그것을 역설적으로 미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소멸의 미학이고 죽음의 미학이다. 이를 테면 이 작품에서 죽음의 상징으로 까마귀가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여기에 젊은 여인의 사랑과 죽음이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부각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이기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비극적 인간상의 극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것으로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때 철저히 그런 절망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작가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시도해 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단편 소설, 유미주의적

배경

* 시간적 → 어느 늦가을 ~ 겨울

* 공간적 → 고풍스럽고 음습한 별장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

● 더 읽을거리

◆ 소설이란 문장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이태준의 작가적 전성기였던 1930년대 중반은 카프 중심의 문단이 해체되면서 프로문학의 기세가 한풀 꺾이던 시기였다. 카프는 민족과 문학, 사회와 문학에 관한 여러 주제의 논쟁들을 주도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이념적으로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박영희의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취지의 전향 선언에서 잘 나타나듯이, 카프의 문학은 그 과도한 목적의식성으로 인해 이른바 '미적 근대성'이나 '예술적 자율성'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면이 없지 않다. 1930년대 한국문학은 따라서 이념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언어적 자율성에 입각한 예술로서의 문학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구인회', 그 중에서도 특히 이태준의 업적이 인정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탁월한 산문가이기도 했던 이태준은 그의 저서 <문장강화>(1940)에서 이런 발언을 한다. "문자가 회화로 전화하지 않는 한, 발음할 수 있는 문자인 한, 문장은 언어의 기록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장이 발화된 언어의 기록에 불과할 경우 그것은 아직 문학적 언어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으로 쓰인 텍스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소설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태준의 문학관이었다. 엄밀하게 말해 이광수에서 프로문학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이태준 이전의 한국 소설가들은 문학적 언어의 자율성보다는 주로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문사(문사)'에 가까웠지, 예술가이자 전문적인 작가라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다. 이태준의 <오몽녀>, <꽃나무는 심어 놓고>, <달밤>, <영월영감>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야 한국의 소설은 계몽주의와 목적의식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어 예술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 문체(style)와 이미지(image)로 죽음과 사랑의 허무함을 표현한 <까마귀>

단편 <까마귀>의 주인공인 '그'는 작품 초입 '늘 괴벽한 문체를 고집하여 독자를 널리 갖지 못하는' 작가로 소개된다. 이 '괴벽한 문체'란 말에는 작가 이태준의 자의식이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체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야말로 작가 이태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편 <까마귀>가 1930년대 한국문학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서사나 주제 때문이 아니라 문장의 어조와 스타일 때문이었다. 가령 그가 자신이 기거하는 방의 주변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 몇 구절을 보자.

"미닫이와 들창도 다 갑창까지 드린 데다 벽장문과 두껍다지에는 유명한 화가인지 아닌지 몰라도 낙관이 있는 사군자며 기명 절지가 붙어 있다. 밖으로 문 위에는 추성각이라는 추사체의 현판이 걸려 있고 양쪽 처마끝에는 파랗게 녹슬은 풍경이 창연히 달려 있다."

묘사는 현미경적이고 묘사를 위해 사용된 언어는 고풍스러울 뿐만 아니라 고르고 고른 흔적이 역력하다. 작품 전체가 저런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품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그 문장들이 묘사하고 있는 강렬한 색채 이미지들의 대조다. 작품 초입부터 '죽음'을 암시하며 마을 전체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까마귀, 추운 겨울 산촌에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 그리고 폐병을 앓는 처녀의 각혈과 까마귀가 흘리는 피가 대조를 이루면서 죽음과 삶과 사랑의 허무함을 그린 한 편의 우울한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이태준 자신이 <문장강화>에서 말한 바, "회화로 전화된 문자"의 모범적 사례에 해당한다.

◆ 1940년대 이후 이태준의 행적

1930년대 전성기를 지나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태준은 불안한 행적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이 시기는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날로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에 따라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조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태준도 마찬가지였는데, 1940년 자신이 발행하던 잡지 『문장』에 <토끼 이야기>, <지원병 훈련소의 1일> 같은 친일 경향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후 '조선문인협회'와 '황군위문작가단' 같은 친일 문인 단체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1942년에는 일제가 재정한 '조선예술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약하고 섬세했던 그는 죄책감 때문인지, 1943년 <왕자 호동>을 발표한 후 절필하고, 고향 춸원에 칩거한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이후 이태준이 보여준 변모는 놀라운 것이었다. 뜻밖에도 이전 카프의 논객이었던 임화, 김남천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참여한 그는 1946년 2월 '전국 문학자 대회'의 선봉에 섰을 뿐만 아니라, 좌파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 집행위원회의 부위원장까지 역임한다.

이 단체의 기관지인 『문학』에 일종의 전향 고백서에 해당하는 <해방 전후>를 발표해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문학상을 받은 것도 이태준이다. 이후 상황의 변화에 따라 1946년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 그는 초기에는 제법 후한 대접을 받다가 결국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어 숙청당한다. 함흥에서 공장 노동자로 전락한 이후의 행적은 묘연하다. 그러나 30년대 그가 시도했던 단편 소설의 예술화 작업은 이후 정비석, 김동리, 현덕, 박노갑, 황순원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쳐 한국 순수문학의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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