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1979)

-오정희-  

◆ 소설 읽기  

● 줄거리

주인공인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피난지로부터 항구 도시(인천) 외곽에 있는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그곳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물들과 낯선 모습의 중국식 적산 가옥, 그리고 기지촌과 미군 부대로 둘러 싸여 전형적인 전후(戰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거리를 배경으로 공복감과 해인초 냄새가 어우러져 피어 오르는 노란 빛의 환각적 이미지로 표상되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장의 조짐은 주인공이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창문에서 중국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순간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의 창백한 표정에 담긴 욕망의 시선이 주인공의 내부에서 움트고 있던 욕망과 내면을 일깨운 것이다. 주인공의 내면에 자리잡게 된 이러한 역동적인 욕망의 움직임은, 양공주 매기언니와 관계의 그늘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다 간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정적인 성장의 고뇌로 성숙되어 간다.

욕망의 역동적인 이미지와 죽음의 정적인 이미지가 교차하는 고독과 사색의 공간 속에서 주인공은 핏속에 순(筍)처럼 돋아 오르는 무언가를 감지한다. 그것은 마치 상처가 아무는 듯이,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장의 고비를 확인이라도 하듯, 주인공은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를 맞이한다.

● 인물의 성격

→ 소설의 화자인 열두 살의 소녀. 새로 이주한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성장의 아픔을 겪어감.

◆ 치옥 → 나의 '급우'. 의붓자식이며 매기언니의 동생임.

◆ 매기언니 → 양공주. 동거하던 흑인 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 중국인 남자 → 창백한 얼굴의 인물로 그와의 마주침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욕망과 내면을 자각하게 된다.

● 구성 단계

◆ 발단 : '나'와 식구들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이곳 항구 도시에 자리잡은 중국인 거리로 이주해 옴.

◆ 전개 : 중국인 거리의 낯선 풍경에 대한 인상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소개된다.

◆ 위기 : 치옥의 집에 놀러 간 '나'는 건너편 집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중국인 청년의 창백한 얼굴과 마주 치고는, 알 수 없는 슬픔과 비애를 느낀다.

◆ 절정 : '나'는 매기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성장의 고뇌를 내면화한다.

결말 : 어느 봄날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를 맞이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6.25 피난살이 도중에 인천으로 이주해 와 중국인 거리 속에 살게 된 한 소녀의 눈을 통하여, 전쟁이 가져온 비극상을 그려 보이고 있다. 흑인 병사와의 국제 결혼을 꿈꾸던 양공주의 죽음과,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어린 소녀들의 슬픈 감수성을 통해 전쟁이 낳은 비극과 그것이 어린 영혼에 준 상처를 날카로움을 동반한 담담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유년기 체험에 대한 기록으로 일종의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의 색채를 지닌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소녀가 전쟁의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중국인 거리에서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체험을 겪음으로써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는 줄거리 자체가 성장 소설의 구조인 것이다. 특히 양공주의 죽음 뒤 겪게 되는 초조(草潮)는 어린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는 알을 깨고 부활하는 새의 이미지처럼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작품의 중요한 소설적 장치는 '회상'의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의 유년기 체험을 화자가 기억을 통해 회상하는 형식은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참신한 소설 형식으로, 짧은 문장과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많은 의미를 담아 내고 있다. 특히 소설에서 후각적 이미지를 통한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해인초 냄새'는 유년기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통일되고, 연관된 것으로 결합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의 큰 특징인 성장소설적 형태와 회상의 형식을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기법은 유년기 화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 소녀가 성인으로 변모해 가는 통과제의를 유년기 시점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유년기 화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해인초 냄새, 회충약에 의한 배앓이, 새끼를 잡아먹는 고양이에 대한 묘사는 기억의 가장 깊숙한 저층에 자리잡고 있는 원체험으로서 소설의 구체성을 획득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아버지의 몰락으로 중국인 거리에 오게 된 국민학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작가는 이 거리 풍경을 매우 서정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이 관찰은 물론 외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적 현상은 곧 주인공의 내면 성찰로 이어지고, 그 외적 현상과 내면 성찰이 마주치면서 주인공은 성장을 하게 된다. 지금가지 살펴 보았듯이, 주인공의 성장의 징표는 여럿이다. 그 중 출생과 죽음에의 체험을 비롯하여 사춘기에의 눈뜸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할머니 병들어 죽고, 제니 언니가 지아비에게 학대 당해 죽는다. 어미 고양이가 일곱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낳아 죽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여덟 번째 아이를 낳는다. 이런 대립적인 서사 상황은 오정희 특유의 색채 이미지나 후각적 이미지 등에 의해 잘 조직되어 있다. 이 같은 죽음과 출생의 절실한 체험 속에서 어린 주인공은 환각적인 이미지로 여러 군데서 마주치던 중국인 남자와 감정적 접합을 하게 된다. 이른바 사춘기에로의 진입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성장소설, 전후소설

배경 : 전쟁 직후의 항구 도시에 위치한 중국인 거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특징

*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주인공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음.

* 대화나 독백 등이 화자의 서술과 형식적으로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됨.

                      (화자와 독자의 거리가 가깝게 됨)

주제 정신적인 성장의 고통과 그 형상화

◆ 출전 : <문학과 지성>(1979. 봄호)에 발표됨.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볼 때, 맨 마지막 문장 '초조였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 초조는 여자의 최초의 월경을 말한다. 성장의 고비를 넘어서면서 화자의 삶은 새로운 지평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치옥이는 미장원에 취직했으며, 중국인 청년은 그녀를 손짓하여 부르고는 빵과 등이 담긴 종이 꾸러미를 건넨다. 그리고 어머니는 난산 속에 여덟 번째 아이를 낳고, 화자는 자신의 성장을 확인이라도 하듯 초조를 맞이하게 되는데, 육체적 성숙과 정신적 성장이 상호 관련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2.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설명해 보자.

⇒ 우선 성장을 이루어 가는 출발점은 주인공이 치옥을 매개로 하여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중국인 거리의 낯선 풍물들과 새로운 문화적 환경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섬뜩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하는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성장은 이와 같은 문화적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욕망의 역동적 이미지와 죽음의 정적 이미지의 단계를 거치면서 진행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창문에서 중국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장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순간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바, 그의 창백한 표정에 담긴 욕망의 시선이 주인공의 내부에서 움트고 있던 욕망과 내면을 일깨운다. 한편 주인공의 내면에 자리잡게 된 이러한 역동적인 욕망의 움직임은, 양공주 매기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정적인 성장의 고뇌로 성숙되어 간다.

이처럼 욕망과 내면의 발견, 그리고 죽음과 고독에 대한 인식을 거치면서 주인공의 삶은 새로운 지평 위에 놓이게 된다. 수없이 다가올 내일을 향해 열려 있는 그 세계는, 이제 막 성장의 고비를 겪고 있는 주인공에게는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들로 뒤범벅된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한 막막함과 절망감을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체험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성장은 한 개의 번데기가 자신의 껍질을 찢고 나비가 되어 세상으로 나오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3. 이 작품에서 '석탄'이 갖는 기능에 대해 말해 보자.

⇒ 이 소설에서 석탄은 여러 장면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화차에서 조개탄을 훔쳐서 간식 거리로 바꾸고, 할머니는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빨아 말리며 탄가루 때문에 못 살 동네라고 혀를 찬다. 또 담임선생님은 중국인 거리에 사는 아이들에게 묻은 탄가루를 씻겨 내고, 집 짓는 인부들은 해인초를 끓이기 위해 조개탄을 태운다. 이처럼 석탄은 작품 곳곳에서 등장하여 여러 장면을 하나로 묶어서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 더 읽을거리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

우미영 평설 위원 / 한양대 강사

 

한국 사회는 1970년대 산업화 이후 전(全) 지구적인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되었다. 이로써 국가의 모든 생산 양식은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산업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여성들의 위치도 크게 변했다. 사회작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여성들은 노동을 통해 받는 임금으로 생활하는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몸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 역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 계층과 달리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고등 교육까지 받은 여성 계층 또한 두텁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 현상과 맞물려 1960~70년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보수적 여성 의식에 대한 반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삶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깨닫는 여성의 모습이 문학의 중심 테마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정희(1947~ )문학이 탄생했다.

오정희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여성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 자각에서 출발한다. 특히 등단작인 <완구점 여인>(1968)을 비롯한 <중국인 거리>(1979), <유년의 뜰>(1980) 등은 어린 소녀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 체험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인 거리>는 '여성 성장 소설'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준다.

주인공 '나'의 회상 부분까지 포함한다면, 이 작품은 아홉 살인 주인공이 성장해 열세 살이 되기까지를 다룬다. 그 시간 속에서 주인공은 중국인 거리에서 아이들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밀가루를 훔치고 석탄을 훔쳐 파는 철모르는 아홉 살 소녀에서, 대본집에서 빌려온 연애소설을 읽으며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열세 살 소녀로 자란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발견하는 초경(初更)의 흔적까지 고려해 본다면, 이 소설은 아홉 살 소녀가 생리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성적(性的) 징후를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세상 체험을 대상으로 한다.

'어린 소녀'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흔히 '어린 소녀'라고 하면 순수함, 귀여움 등의 밝고 맑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 거리>에 등장하는 소녀의 이미지는 그러한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인 거리의 아이들 중 "아기는 한밤중 천사가 안고 오는 것이라든지 배꼽으로 방긋 웃으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믿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이들은 아기란 "여자의 벌거벗은 두 다리 짬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온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배가 고프면 제분 공장에 몰래 들어가 밀가루도 훔쳐 먹고 화차(火車)에서 석탕을 훔쳐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쓰기도 하는 아이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가난한 현실 때문에 자기들 나름의 생존 방식과 세상의 이치를 일찌감치 깨달은 아이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조금은 되바라지고 당돌하며 그래서 당차기도 하다.

이것은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중국인 거리'라는 공간적 특성과도 맞물린다. 그들이 사는 가난한 중국인 거리는 이 도시의 '그림자였고 불가사의한 미소였으며 천칭의 한쪽 손에 얹여 한없이 기우는 수은이었다. 또한 기우뚱 침몰하기 시작한 배의, 이미 물에 잠긴 고물이었다'. 이곳에는 중국인도 살고 흑인도 살고 창녀도 산다. 당돌한 소녀 '나'의 예리한 눈은 삶의 밑바닥 같은 중국인 거리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주인공 '나'가 중국인 거리를 그리는 방식은 철저히 감각적이다. 그녀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소리, 냄새 그리고 색채를 통해서다. 처음 중국인 거리에 이사왔을 때 그녀가 처음 느낀 것은, 알 수 없지만 무척이나 친숙한 어떤 냄새였다. "무슨 냄새였던가." 해인초의 '노란빛 냄새'로 판명된 그것은 그녀에게는 유년의 냄새였다.

아, 그제야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냄새는 낯선 감정을 대번에 지우고 거리는 친숙하고 구체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나른한 행복감이었고 전날 떠나는 피난지의 마을에 깔 먹여진 색채였으며 유년의 기억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주로 시각(sight)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여성들은 시각보다는 촉각(touch)에 근거하여 세계를 인식한다고 한다. 오정희의 작품에는 이 둘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나타나긴 하지만, 앞의 인용문은 특히 냄새나 색채 같은 감각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세계 인식과 감각적 글쓰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소년이든 소녀이든 성장기에는 누구나 미래 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중국인 거리>의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녀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녀의 관심을 끄는 첫 번째 대상은 '언덕 위의 이층집'과 그곳에 사는 중국인 남자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존재인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이질적 존재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호기심의 대상일 수 있다. 그는 소녀적 감수성과 상상력의 구체적인 대상이 되어 그녀의 의식 한 켠에 늘 존재하게 된다. 그녀는 이발소에서 그의 시선을 느끼고, 죽은 고양이의 행렬을 뒤따를 때 그의 '슬픈 듯, 노여운 듯 어쩌면 희미하게 웃는 듯한 알 수 없는 눈길'을 느낀다. 이처럼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은 그에 대한 그녀의 관심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 대상은 어머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부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동정하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이러한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친구 치옥이에게 '우리 엄마도 계모야.'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또 '나는 얼마나 자주 정말 내가 의붓자식이었기를, 그래서 맘대로 나가 버릴 수 있기를 바랐는지 몰랐다.'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어머니의 삶을 부정하는 '나'의 태도가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입덧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했다. 어머니의 구역질에는 그렇게 비통하고 처절한 데가 있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여성으로서 여성의 삶에 대해 동정한다.

주인공 '나'의 어머니 상(像)은, 여덟 번이나 계속된 어머니의 임신과 출산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 상은 자식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어머니 또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어머니가 아닌, 늘 동생을 임신한 상태인 어머니가 입덧 등으로 괴로워하고 또 힘겨운 출산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만들어진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이다. 그렇다면 여덟 번이라는 임신 횟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정희는 '나'와 늘 임신한 상태인 어머니를 통해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지 또 그러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성장한 딸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의 출산과 '나'의 초자(初潮)가 병치되면서 '나'가 느끼게 되는 절망감과 막막함은, 초조를 통해 여성의 길에 들어선 자신의 삶과, 죽음 같은 출산의 고통을 느끼는 어머니의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연유한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결국 엄마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따스한 핏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筍)을,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을 느끼고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여자 아이로 성장한다. 여성의 삶, 어머니의 삶이 변한다면 소녀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 또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 거리>는 여자 아이가 세상을 보고 느끼는 고유한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뿐 아니라 여성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과 '여성의 삶'을 다시 한 반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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