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1978)

-문순태-  

◆ 소설 읽기  

● 줄거리

1. 칠복은 장성댐이 건설되면서 농토를 잃어버리고 아내마저 달아나자 어린 딸을 업고 무일푼으로 호수 가로 돌아온 이래, 징을 울려 낚시꾼들을 방해하다가 매를 맞곤 하는 위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방울재가 호수에 잠겨버리자 호수 주변에 주막과 식당을 차려 놓고 낚시꾼과 관광객을 상대로 매운탕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 가는 처지인데, 칠복이가 장사를 방해하니 그를 동정하면서도 쫓아낼 궁리를 하게 된다.

2. 원래 칠복이는 조실부모하고 외가에서 눈칫밥 얻어먹으며 머슴처럼 장성했는데, 장가를 들 무렵에는 거의 내쫓기다시피 하며 집을 나오게 된다. 게다가 색시로 맞았다는 것이 도시물을 먹은 순덕이었다. 순덕이는 결혼한 지 한 달도 못되어 도시로 나가 살자고 성화였고, 애써 일궈논 논밭이 호수에 수몰되면서 칠복이는 어쩔 수 없이 광주시 산꼭대기 사글세 방으로 밀려나와 도시 생활을 한다. 순덕이는 며칠만에 식당 주방에 취업을 해서는 나날이 생기가 넘치며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는 반면, 농사일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기술도 없는 칠복은 면목없이 아내의 수입으로 먹고 살면서 어린 딸과 방구석에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농번기를 맞이해서 광주시 인근 장성읍에 나가 농사 품을 팔며 20만 원을 벌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칠복이는, 아내를 어떻게든 설득하여 다시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하며 돌아온다. 일부러 아내를 놀라게 해 주려고 소리 안 나게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순덕이가 웬 놈과 벌거벗고 누워 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눈이 뒤집힌 칠복이가 부엌으로 나가 식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엔 두 년놈은 벌써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그 다음날부터 식칼을 들고 순덕이를 찾아 다녔지만 행방을 알 수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칠복이는 아내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순덕이는 돌아오지 않고 칠복이는 점점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3. 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칠복은 징을 애지중지하며 잘 때도 꼭 베고 잔다. 마을 사람들은 징을 빼앗아 보기도 했으나, 칠복이는 살기(殺氣)를 보이며 제 징을 지킨다. 주민들은 칠복을 내쫓기로 하고 억지로 칠복이 부녀를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태운다. 칠복의 친구인 봉구는 칠복에게 이천원을 찔러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밤이 깊어지면서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봉구의 귀엔 바람 소리인지 징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 온다. 마을 사람들도 그 귀기(鬼氣) 서린 징소리에 몸을 떨며 잠을 뒤척인다.

● 인물의 성격

◆ 허칠복 → 방울재에서 자갈논을 부치며 살아가던 농민으로, 마을이 수몰되자 광주에서 도시 빈민 생활을 하다 아내에게 버림을 받고 딸 금순이와 함께 미쳐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수몰된 마을의 변해버린 생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패배적 인물이다.

◆ 임순덕 → 허칠복의 아내이며 방탕한 인물. 마을이 수몰된 후 도회지에 나와 식당에서 일하다 주방장의 유혹에 넘어가 칠복과 어린 딸을 두고 가출한 부도덕한 인물

◆ 금순 → 여섯 살 난 허칠복의 딸

◆ 강촌 영감 → 와락와락한 성질을 가진 회갑에 가까운 노인으로 방울재 주민. 마을이 수몰되자 호수 근처에서 매운탕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칠복이가 매운탕집의 운영을 방해하자 칠복이 부녀를 마을에서 매정하게 쫓아보내는 인물

봉구 → 칠복의 어릴 적 친구. 칠복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편이나, 끝내 칠복을 내쫓는데 합류함.

● 구성 단계

◆ 발단 : 장성호 주변의 수몰 마을. 칠복이 징을 두들겨대다가 낚시꾼들에게 구타당한다.

◆ 전개 : 어렵게 자라 순덕과 결혼하나 정당한 보상도 못받고 광주시 판자촌으로 밀려난 칠복의 과거

◆ 위기 : 순덕의 불륜과 가출. 칠복 부녀(父女)의 귀향

◆ 절정 : 마을 사람들이 공모하여 칠복을 내쫓아 버린다.

◆ 결말 :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비 소리에 뒤섞인 징 소리를 들으며 칠복이의 한(恨)에 몸을 떤다.

● 이해와 감상

 문순태는 단편 3편과 중편 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연작 소설 「징소리」에서 한국 농촌의 근대화 과정에서 대규모 댐 건설로 생겨난 수몰 지역 실향민들의 아픔을 담아냈다. 그는 단편소설 <징소리>(1978)를 시작으로 1979년 <저녁 징소리>와 중편 <말 하는 징소리> 및 <무서운 징소리>를 썼으며, 1980년 단편 <마지막 징소리>와 중편 <달빛 아래 징소리>를 집필해 「징소리」(1933)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간했다. 이 작품은 전남 장성의 수몰 지역 실향민들에게 맺힌 '한'을 징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문순태는 '창작 노트'에서 그의 소설 주제인 '한'을 주자의 오성(五性), 곧 기쁨, 분노, 욕심, 두려움 그리고 슬픔의 감정이라고 밝힌다. 음악기학적으로 보면, 징소리는 이 작품 속에서 기(氣)가 통하지 못하는 실향민들의 온갖 맺힘, 곧 한을 풀어내는 기화(氣化)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작용하고 있다.

<징소리>는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엮어가는 '고향 상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농촌에 불어닥친 산업화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향이란 단순히 현실적 공간으로서 태어난 장소가 아닌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곧 인간성을 되찾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황폐한 삶이 6.25 이후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역사와 깊숙한 연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징소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원적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각박한 현실에서 뿌리 뽑혀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며, 다른 하나는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여 세속적 행복을 추구한 인물이다. 주인공 허칠복은 입체적 인물도 아니며 성격의 발전도 없는 구시대적 인물의 전형이다. 그는 지금의 부조리하고 인간성 상실의 현실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고향을 존재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대 산업 사회를 거부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징소리>에서 '징소리'는 단순한 금속성의 울음이 아닌 방울재 사람들의 혼의 울음이며, 동시에 인간다운 혼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고향을 일깨우는 깨우침의 소리를 의미한다. 고향을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 파악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적 이상을 갈구하는 소리이며,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인간화를 부르짖는 소리이다.

1970년대의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 아래 속절없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부문이 두드러지는, 사회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자리잡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 ― 농촌 진흥과 노동자 복지, 환경 보존 등은 아예 제기조차 될 수 없도록 경제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분배의 불공정성과 부정 부패, 인권 유린, 황금 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불거졌다. 한마디로 말해 1970년대는 전통 사회의 붕괴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 시기라 하겠다. 이러한 시기에 작가는 그는 주로 자신의 성장지인 전남 일대의 농촌을 주목하며,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으며 선량하나 무지한 민중들이 어떻게 희생되는가 하는 점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칠복'으로 대표되는 농촌 빈민(또, 그대로 도시의 빈민이기도 함)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우리 농민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구체화하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사회 고발적 비판 소설, 연작소설(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후에 연작의 형태를 거쳐 장편으로 완성되는 소설이다. '말하는 징소리', '저녁 징 소리' 등 5편을 모아 장편으로 완성함)

배경 : 1970년대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 마을(장성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징소리'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함.

* 주로 서술에 의해 사건을 전개함.

◆ 주제

* 실향민들이 겪는 고향 상실의 아픔

*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촌 출신 도시 빈민들(실향민)의 고달픈 삶

● 생각해 볼 문제

1. 이 글에서 징소리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물에 잠긴 고향에 돌아와 칠복이가 치는 징소리 : 고향을 잃은 한과 현실에 대한 서러움의 표현이자 과거로 회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소리

   칠복이를 쫓아낸 후 마을 사람들에게 환청처럼 들리는 징소리 : 갈 곳 없는 칠복이를, 생계를 위해 쫓아낸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소리

2. 이 작품의 마지막에 들려오는 징소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겠는가?

⇒ 그를 강제로 쫓아냈다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소리로 들림.

3.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칠복(七福)'이며, 그의 아내의 이름은 '순덕(順德)'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의 이름을 명명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 주인공의 이름인 '칠복'과 그의 인생은 정반대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 했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복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아내의 이름인 '순덕'도 마찬가지다. 순한 덕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그녀는 끝내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도 버려둔 채, 도망치는 여인이다. 작가는 사건과 이름이 가지는 상반된 명명을 통해 아이러니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4. 이 작품은 '방울재'와 '광주'라는 이분법적 공간 배치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공간 배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 보자.

⇒ '방울재'가 칠복이 끊임없이 돌아가고자 하는 공간, 즉 공동체적 질서가 그대로 안존하는 공간이라면, '광주'는 도회지를 꿈꾸는 순덕이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울재'에서 '광주'로의 공간 이동은 공동체적 질서에서 산업화된 질서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 영원한 소재 '고향'과 '恨'이란 주제의 결합

- 문순태의 <징소리> -

-문순태           

1. 소설 공간으로서의 고향

소설에 있어서 무대가 되는 공간은 인물이나 주제, 플롯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소설의 공간이란 인물과 사건이 되는 모든 환경적 영역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이란 시간을 초월하며, 또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보편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물론 한정된 시대의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소설의 경우처럼 특수한 공간이 있을 수 있다.

내 소설의 공간은 나의 고향이다. 나의 고향은 광주 무등산 너머, 행정구역으로 전남 담양군 남면 구산리이다. 나는 내 고향의 하늘, 골짜기, 들, 작은 동산, 하천, 마을 풍경을 객관적으로 소설 속의 무대로 그리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작가로서의 감정을 개입시켜, 주관적이고도 관념적인 공간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내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은 인물의 성격, 사상, 정서와 절대적인 관계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이 그 공간에서 체험한 역사를 통해서 삶의 변질된 과정이나 결과까지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기 때문에 내 소설의 공간은 바로 스토리이며 주제이고 인물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내 소설은 공간 즉 환경에 따라서 스토리와 주제가 정해지며 인물의 성격까지도 변화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2. 소재 선택과 구성 단계

나는 <징소리>를 통해 고향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아픔과 그들이 다시 고향을 찾기 위하여 방황하고 고통을 겪어온 과정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연작 장편소설 <징소리>의 소재는 바로 '고향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징소리>의 소재를 찾기까지 실제로 댐 공사 때문에 고향을 잃어 버린 사람들을 여러 차례 만날 수가 있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상하기 위해 수몰지의 현장을 답사하기도 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서 <징소리>의 소재로 택하게 되었으며 스토리를 엮어나갔다.

첫 번째 단계 : 광주은행에서 주최한 어린이 저축 작문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수몰지 어린이의 고향을 잃어 버린 사연이 담긴 글을 읽게 되었다. 어린 딸한테 저금통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물에 잠겨 버린 한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한이 한데 뒤엉켜 있음직한 징을 팔아 버린, 그 소녀의 아버지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왔다. 나는 이때 그 징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졌다.

두 번째 단계 : 어느 날, 국민교육헌장 사건으로 해직이 된 전남대학교의 이홍길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그동안 장성댐 상류에 방을 얻어 책을 읽으며 지냈다고 하면서, 댐이 생길 때 고향을 떠났던 수몰민들이 상당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댐의 상류에서 매운탕을 끓여 팔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징을 팔아 저금통장을 갖게 된 수몰지 소녀의 작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 교수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장성댐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 번째 단계 : 나는 장성댐에 가 보았다. 거대한 콘크리트의 구조물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나는 수몰이 되어 버린 그곳에서 태어나서 53년을 살아오고 있다는 우체국장의 안내를 받아, 보트를 타고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바라보았던 호수와, 호수의 한가운데서 내려다본 물 속은 충격적일 만큼 엄청나게 달랐다. 맑은 물속에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을 앞 팽나무며, 좁고 홰뜰홰뜰 구부러진 고샅과 두껍다리, 우물, 돌담, 불에 그을린 감나무와 세모진 안마당, 그리고 부엌의 부뚜막이며 구들이 깔린 방과 돌로 쌓아올린 굴뚝이며 장독대, 물 속에 모든 마을이 무덤처럼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 물 속에,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소리며, 해가 져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을 거칠게 불러대는 어머니들의 지친 목소리, 컹컹 개 짖는 소리, 낮닭 우는 소리, 음매 하는 송아지 울음까지도 그대로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싶었다.

네 번째 단계  : 나는 다시 댐의 상류로 올라가서 물가에 판자로 가건물을 짓고 댐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파는, 돌아온 수몰민 몇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보상금을 받아서 인근 도시로 나가 사글세 방을 얻고 남은 돈을 밑천 삼아 포장마차를 내보았으나, 평생을 흙 파는 일만 해 온 그들로서는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알거지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농사품을 팔고 살더라도 고향산천 곁에 있고 싶어 돌아왔다고 하였다. / 나는 고향에 돌아와서 농사품을 팔거나, 장성호를 찾아오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매운탕을 끓여 팔아서 목줄을 지탱하고 있는 수몰민들을 만나서, 뿔뿔이 헤어진 그들의 옛날 이웃들의 소식을 물었다. 그리고 광주에 나와서, 고향을 떠나온 수몰민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먼지처럼 도시의 밑바닥으로 철저하게 침잠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만이 가라앉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대로 고향에서 가꾸어왔던 문화와 역사까지도 흔적조차 없이 도시의 밑바닥으로 매몰되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다섯 번째 단계 : 마지막으로 징을 팔아서 저금통장을 갖게 된 소녀의 아버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수몰지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으며, 마을에서는 이름난 징채잡이로, 고향을 떠나올 때 마을 소유인 징을 가지고 나왔다. 그 역시 얼마 안 되는 보상금을 받아 가까운 도시 광주로 나왔으나, 일정한 자리를 얻지 못하고 날품팔이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고향을 떠나온 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그 즈음에는 취하지 않는 날이 없다시피 하였다. 그의 소원은 다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 다섯 단계를 종합하여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다 소설 소재가 될 수는 없다. 우선 이야기를 종합해 보고 나서 그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하여 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지 재고해 봐야 한다. 그 이야기의 배경과 작자의 정서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야만 충분하게 소화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하여 그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바로 주제와 연결된다. 그러니까 작가가 어떤 소재와 만났을 때, 먼저 그 소재 속에서 주제를 끄집어 낼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동기의 구체화라고도 한다. 작가가 어떤 소재에서 느끼는 충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할 문제를 생각하는 단계를 말한다. 즉, 소재라는 올로 주제라는 천을 짜는 단계, 소재를 발견하고 주제를 유출해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제를 추상적 관념으로 규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단계에서 작가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제란 작가가 쓰려고 한 소재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구체화시켜 보려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는 소재 안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소재는 많으나 주제를 창조할 만한 소재는 그리 흔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소재는 작가의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경험을 통해서 얼마든지 얻어질 수 있으나, 주제는 작가의 깊은 세계관, 철학관, 인생관, 작가정신을 통해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3. 주제로서의 '고향상실의 한'

나는 <징소리>라는 소설을 통해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어 버린 수몰지구 농민들의 '고향상실의 아픔'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잃어 버린 것은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적 의미로서의 '고향'이 아니라, 그들이 겪어온 역사, 문화, 정서, 인간관계까지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징소리>를 통해서 한을 이원적 감정으로 파악하였다. 소극적 의미, 즉 패배주의적 감정으로서의 한은 뉘우침, 소원, 불평, 한숨, 탄식, 체념에 해당되고, 적극적 의미, 즉 의지적 감정으로서의 한은 원통, 원한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원한 감정을 복수의지로 발전시키지 않고, 끈끈한 생명력의 의지, 용서와 화해로 풀어보려고 하였다. 수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결코 끝까지 좌절하지 않으며, 생명력의 한으로,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다시 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의지력으로 키워나갔다. 그리고 6 · 25 때 죽이고 죽임을 당한 원한 관계에 있어서도 용서와 화해를 시도하였다.

나는 내 소설을 통하여 원한 감정을 휴머니즘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원한을 안겨준 쪽도 원한을 받은 쪽도 공동의 아픔과 이해를 통해, 건강하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4. 인물 창조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소설가는 인물을 창조한다는 말이 있다. 소설에서 인물의 창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는 말이다. 소설은 주제가 창조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인물 역시 창조적이어야 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허칠복이라는 조선적 인물을 만들어냈다. 허칠복은 이 시대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현실의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1970년대를 사는 조선시대 인간이다. 오늘에 살면서 조선적 의식에 갇혀 있고, 오늘에 살면서 미래를 꿈꾸는 과거형이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만을 꿈꾸는 비현실적 존재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인물을 창조할 때는 입체적이어야 한다, 성격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 성격의 부면이 잘 나타나야 한다, 일차원적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이 특징이 없고 따분하며 보잘것없는 인물이면 독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안다. 작가는 자기가 만들어내는 작중 인물을 개성의 눈을 가지고 보아야 하며, 작중 인물의 행동은 자기 성격으로부터 연유되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징소리>의 주인공 허칠복은 입체적 인물도 아니며, 성격의 발전도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일차원적 인물에 머물고 마는, 특징도 별로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이름 자체가 수십 년 전에 어느 시골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데다가, 그의 정서와 의식은 한 세기 전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구시대적 인물의 전형이다. 내가 일부러 이같은 인물을 설정한 것은 주인공이 지금의 부조리하고 인간성이 황폐해 버린 현실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2원적으로 구분하였다. 그 하나의 유형은 오늘의 모순투성이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물들이고, 또 다른 유형은 부조리한 오늘의 현실과 타협하며, 세속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전자는 오늘의 현실에서 완전히 뿌리 뽑힌 사람들이고 후자는 병든 오늘의 현실에 뿌리를 박고 안주한 사람들이다. 뿌리 뽑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물들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착근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고향을 혐오하는 인물들이다.

고향을 배신한 인물 유형은 반인간적이며, 고향을 지키고 고향을 되찾으려고 하는 인물 유형은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의 인물군들이 선과 악으로 대치되는 도식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반목이나 대립적 갈등 구조를 만들지 않았다. 고향을 포기한 사람들과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 문제보다 삶의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고향을 포기한 사람들은 고향에서 스스로 멀어지려고 하는 가치관에,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회귀하려는 가치관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즉 나는 이 소설에서 고향을 양면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그 하나는 현실적인 의미의 고향이며 다른 또 하나는 근원적이고도 존재론적 고향을 의미한다.

5. 징소리의 상징성

나는 <징소리>에서 그 소리를 인간다운 인간의 외침으로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금속성의 울림이 아니라, 방울재 사람들의 혼의 울음이며, 동시에 인간다운 혼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그 혼을 다시 일깨우려는 깨우침의 소리이기도 한 것이었다.

잊었던 고향을 불러일으키는 징소리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일깨우는 소리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공동체적 이상을 갈망하는 소리인 동시에 산업화의 뒤안길에 밀려 뿌리 뽑힌 삶으로부터 인간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는 부르짖음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징소리와 대치되는 소리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6 · 26 때 사람들을 무참히 살상한 총소리를 상기시켰다. 징소리가 인간 회복을 소망하는 소리라면 총소리는 이에 대치하여 작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인간 파멸의 소리인 것이다.

두 번째 상징은 불의에 대해 항거하는 소리이며 정의를 외치는 소리이며, 폐쇄된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외쳐대는 소리이다. '무서운 징소리'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마을을 파괴한 박천도를 타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몰려갈 때 징소리가 울렸다. 징소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박천도 사장의 타도를 외쳤고 마을 사람들이 그 소리를 알아들은 것이다. 여기서 징소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불법과 비리에 대항하는 민중의 선언인 동시에 정의의 절규 바로 그것이다.

결국 징소리의 상징성은 고향을 인간 존재 양식으로 파악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적 이상세계를 갈구하는 소리, 산업사회가 빚은 물신주의를 거부하는 소리,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부름의 소리,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인간화를 부르짖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다소 부족하였고,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이 고향을 되찾기 위해 투쟁적 의지가 약할 뿐만 아니라, 감상주의에 빠져 버린 경향마저 있으며, 인물 설정이 도식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 반성도 해 본다.

-'소설, 나는 이렇게 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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