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황당 인보기(1955)

-정한숙-  

◆ 소설 읽기  

● 줄거리

수하인(水河人) 강명진은 친우 석운(石雲) 이경수가 벼슬길에 오르게 되자, 그 인사로 선물을 무얼로 할까 고심한다. 벼슬하게 되었으니 지필묵연은 소용이 없을 듯하여 아취(雅趣)와 실용을 함께 지닌 것이 인장(印章) 한 방(壹方)이겠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석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시장 뒷골목을 지나다 잡상들이 벌여 놓은 물건 중에서 희귀한 전황석(田黃石)을 구하게 된다. 강명진은 평생이 도장 새기는 일과 산홍이라는 기생과 함께 보낸 나날이었다. 누님 같은 마누라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산홍이에게 마음을 붙이고 살아온 것이다. 산홍의 집에서 그는 열심히 인장을 새긴다. '석운 이경수지인 산수(石雲李慶秀之印山水)'라 찍어 보고는 새로운 의욕이 가슴 속에 솟아오름을 느낀다.

석운의 집을 찾아가니 그는 퇴근하지 않았고, 언제 올지 기약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아내에게 대신 인장을 전한다. 그의 아내는 그 선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오준(吳俊)은 석운의 집무실을 무상으로 출입하는 자다. 석운은 오준에게 그 도장을 보여준다. 오준은 그 도장이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 말하며,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석운의 결재 도장을 새로 파 주리라 한다. 석운은 조금 섭섭했지만 오준과의 의리로 말을 못한다. 그러면서 수하인 강명진 생각을 한다. 멋이 있는 사람이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고.

오준이 도장방에 들러 주인이 권하는 석재에 결재 도장을 비싼 값으로 새기게 된다. 오준은 수하인의 전황석 도장을 두고 값을 흥정한다. 주인은 수하인에게 필법(筆法)과 도법(刀法)을 배운 인물이라 그 도장을 수하인에게 돌려 주고 싶어한다. 계혈석으로 결재 도장을 파기로 흥정이 된다. 젊은 도장방 주인이 그 도장을 가지고 수하인을 찾아와서는 그 일을 소상히 말한다. 수하인이 가져가라 하지만 도저히 가지고 갈 수 없어 그 도장을 두고 떠난다. 수하인은 친구에게 버림을 받은 듯싶어 섭섭해한다. 산홍이와 술을 나누며 대금을 불어 본다. 가락을 짚는 손끝은 허무한 인정에 떨리고, 지그시 감은 눈에 눈물이 젖어든다.

이튿날 도장방 젊은 주인에게 계혈석 도장을 새겨 주기로 한 약속 때문에 그 일에 몰두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전황석에 포자(布字)를 할 때와는 달리 계혈석에는 손이 떨려 포자가 되지 않는다. 젊은 주인에게 포자를 부탁하고 지도법(遲刀法)으로 새긴다. 수하인의 솜씨답지 않은 인면(印面)이다. 젊은 도장방 주인이 술을 권할 양으로 붙잡지만 수하인은 그대로 밖으로 나와 버린다.

수하인은 칼을 버릴 결심을 하고 전황석 도장을 꺼내어 본다. 돌에 묻어 있는 손때의 아운(雅韻)과 고졸(古拙)한 품에 새롭게 흥분이 된다. 산홍이 곁에서 참지로 책 한 권을 매고 난 뒤 그는 천을 헤아리는 도장들을 연대순으로 찍어간다. 맨 나중에 전황석 한 방도 찍어 놓고는 비로소 지금까지의 삶에 보람을 느낀다. 산홍이가 갈라 놓은 먹으로 표지에 '전황당인보(田黃堂印譜)'라고 쓴다.

● 인물의 성격

◆ 수하인 강명진 성품이 곧고 단아한 인물. 문방사우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이며 현실적인 출세나 명리보다는 옛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심성을 지닌 고풍스런 인물임.

◆ 석운 이경수배금 사상에 물든 세속적 인물로, 벼슬을 하게 되자 더욱 현실에 눈이 멀어 옛 친구의 성의와 뜻을 저 버리는 인물임.

◆ 석운의 아내 → 청탁성 선물 및 돈에 재미를 느끼는 인물, 전통에 무지한 세속적 인물의 전형임.

◆ 오  준 →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경박한 인물임. 그는 현실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우며, 옛것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줄 모르는 인물을 대변함.

◆ 도장방 주인 → 석운을 선생 격으로 모시는 인물로, 전통적 정서와 가치를 아는 인물임.

● 이해와 감상

<전황당 인보기>는 우정의 미묘성과 사라져 가는 전통의 미풍을 전아한 문체로 그린 작품으로, 속세에 눈이 먼 사람과 문방사우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 사이의 갈등과 삶의 애수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정한숙 문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인 전통의 현대적 파악이라는 측면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전아한 문체로 전통에 대한 향수를 통해서 현실의 황폐한 삶의 모습을 서정적인 세계로 끌어들이는 소설적 기법은 정한숙의 개성적 세계로 평가된다.

이 소설은 서사성보다는 서정적 세계 제시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다 보니, 연민의 정서와 애잔한 정조를 띠면서 고풍한 멋이 풍겨나온다. 이 소설의 서사구조는 '관계에 진출한 친구에게 도장을 선물하지만, 그 도장이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와 서운해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의 서사 구조로는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한다.  따라서, 복잡한 스토리의 전개를 뒤로 하고 옛 것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제시하여 잔잔한 정서를 유발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지절(志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선비로서의 면모'와 '장인(匠人)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선비의 면모를 통해서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지절과 아취(雅趣)'를 드러내며, 장인의 면모를 통해서는 '기예(技藝)의 멋과 일에의 집착, 그 세계만이 지니는 신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형상화하고자는 전통의 속성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묵은 세계의 육중함, 그 속에 은밀히 도사리고 있는 보수성의 정신적 가치, 그것이 쇠잔되어 가는 것에 대한 잔잔한 슬픔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세태비판적-

◆ 배경 : 전쟁 직후의 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애잔한 정조와 연민의 정서가 두드러짐.

              고풍스런 분위기와 문체가 드러남.

◆ 주제 전통과 정신주의가 퇴락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고결한 정신주의자의 자부심

◆ 출전 : <한국일보>(1955) 신춘문예에 당선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의 문체는 주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이 작품의 주제는 정신적 품격과 지절(志節)이다. 이런 정신적 높이와 고풍한 품격에 어울리게 문체는 고아하다. 이렇게 문체와 주제가 상응하고 있어서 작품을 더욱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경지로 이끌고 있다.

2. 수하인의 생활적 품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 수하인은 정신적 지조와 예술적 아취가 밴 멋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3. 이 작품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전통적 덕목은 무엇인가?

⇒ 선비정신과 같은 정신적 지조, 기예의 멋, 장인 정신 등 생활의 품격과 멋이라고 할 수 있다.

4. 수하인이 친구에게 줄 선물로 '도장'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 당사자가 도장의 장인이었다는 것.  도장이 아취와 실용을 겸비한 것이기 때문에.

5.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 주인공이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새긴 도장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마는 데서, 정신적 지조와 먼 세계로 빠져 버린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제 정신적 품격이 인정되지 않는 세태가 되어 버린 것을 절감할 때 주인공은 비애에 젖어 드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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