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1981)

-이문열-  

◆ 소설 읽기  

● 줄거리

◆ 제1부 : <하구(河口)>

고등학교(1학년)를 중퇴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나는 자신의 헝클어진 삶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해 볼 생각으로 형에게 편지를 쓴다. 형의 답장을 받고 강진에 도착한 나는 그 곳의 모래장에서 형님의 사업을 도와 사무실에서 일하며 틈틈이 대입 검정고시 준비를 한다. 모래장사 동업자 사이인 최광탁과 박용칠의 싸움을 보게 되고, 그들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어느 날 장티푸스에 걸려 일을 도울 수 없게 되었는데, 점차 회복을 하면서 산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을 무작정 사귀기 시작하여 김성구란 건달과, 강진의 유일한 대학생인 서동호, 그리고 별장집의 남매를 알게 된다. 그들 중 서동호에게 수학 지도를 받다가 그의 아버지인 서노인의 내력에 관해서 듣게 된다. 서울로 올라가 시험을 치르고, 목표했던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은 후 돌아온 강진에서 황의 죽음(폐병)을 듣게 되고, 그 남매의 숨겨진 이야기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날 밤 서둘러 강진을 떠난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찾은 강진에서 김성구를 만나 그를 통하여 정마담이 된 별장집 누이 동생을 만난다. 그녀가 나를 좋아했다는 김성구의 말을 뒤로 우리는 나의 유적과 그녀의 복수가 끝나지 않았다는 확인을 한다.

 

◆ 제2부 : <우리 기쁜 젊은 날>

대학에 입학한 첫 해 학창 생활을 값지게 보낼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배회, 가난에 대한 무게로 피로해 한다. 도서관에서 하가(河哥)를 만나 친구가 된다. 우리는 이념이 짙은 모임에서 김형을 만나 그 모임의 허상을 통해 뜻을 같이하게 된다. 학기가 새로 시작되고 학생운동은 무참히 짓밟힌다. 나와 하가는 김형의 소개로 문학 서클에 가입하지만 말썽을 일으키고 축출된다. 당시 우리들은 단골 술집을 으레 쩌그노트라 불렀는데, '골목 안집'으로 통하던 이름 없는 대폿집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몇 개의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필기 노트가 인연이 되어 혜연과 사귀게 되지만, 가정 환경의 차이로 열등감을 느끼고 함께 간 파티에서 말썽을 일으킨 뒤 헤어진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해따기'라는 우화를 쓴다. 술과 연애로 궁핍 속에서 고민하던 중 뜻밖에 맡은 번역일을 하러 들어간 싸구려 여인숙에서 신문팔이 소년을 만나 그에게 압도되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하가와 김형이 떠나고, 민속 서클 대표들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나마 최후의 소속 집단이었던 과에서 고립되어 서글퍼하던 중 김형의 죽음을 보고 까닭모르르 허무와 절망에 도시를 떠난다.

 

◆ 제3부 : <그 해 겨울>

도시를 떠나 탄광과 어촌 등을 떠돌다가 어느 여관 겸 술집에서 자리를 잡고 방우(허드렛일 하는 사람)로 일한다. 나는 방랑의 동기가 여러 가지 혼란과 피로, 허무와 절망의 분위기였다고 회상한다. 낮에는 술집, 밤에는 요정으로 변하는 여관에서 내가 하는 일이 처음에는 고된 것이었지만 차츰 익숙해진다. 나는 요정에 오는 공무원들의 온갖 비리와 요정 색시들의 불쌍한 처지를 떠올린다. 나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떠나기로 결심한다. 바다를 향해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가 한 폐병쟁이를 만나 나 자신의 허황된 생각들을 꿰뚫어보는 그의 말에 괴로워한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칼을 가는 사내를 발견한다. 우연히 들른 중국집에서 친척 누님을 만나 유부남을 사랑한 누님의 과거를 알게 된다. 아름다운 창수령의 주막에서 칼을 갈던 사내를 다시 만난다. 사라진 사내를 따라 서둘러 주막을 나왔다가 토끼몰이를 하고 돌아오는 청년들과 4H회관에서 술자리를 한다. 추위에 눈을 뜬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유서를 쓴다. 의식을 잃을 때쯤 칼 가는 사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로부터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내와 헤어져 바다를 바라보다가 생명 자체에 포함된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한다. 바닷가에서 칼 가는 사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사내가 칼을 던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가지고 다니던 약을 바다에 던진다. 칼 가는 사내의 사연을 듣고 상행 열차에 탄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될 봄을 느낀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장편소설이라는 단서를 달고 출간되었지만, 실제로는 2년 여에 걸쳐 발표한 3편의 중편을 3부작 형식으로 한 데 묶은 것이다. 원래는 발표 순서가 <그 해 겨울>,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의 순이었으나, 한 데 묶이면서 작품 내적 시간 순서에 따라 각각의 중편은 그 자체로 완결 구조를 갖춘 독립된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일인칭 서술자 '나'로 나타나는 한 젊은 주인공의 방황과 고뇌를 통한 정신적 성장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어서,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볼 수도 있다.

1인칭 '나'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토로하고 주변 인물들의 삶의 관찰하고 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품으로, 서술자 '나'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찾고 미래의 불안하지 않은 삶을 위해 대학에 진학한 인물로서 지적 방황과 고뇌 속에서 점차 성장해 간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각 부마다 다른데, 제1부 <하구>의 배경은 부산직할시 강진이라는 하구이고, 제2부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나'가 다니고 있는 서울의 한 대학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제3부 <그 해 겨울>은 태백산맥과 대진이라는 바닷가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거나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룬 것으로, 대학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지식과 교양의 성장과정, 젊은이의 낭만적인 열정과 사랑, 지성과 긍지, 성장기 대학생들의 애환 등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작품 내적 시간으로 3년 가까운 방황과 고뇌의 기간은 작가 이문열의 실제 경력과 거의 어긋나지 않는다. 스스로 밝힌 작가 연보에 의하면 48년생인 그는 65년에 안동고등학교를 그만두고 3년간 '건달'로 떠돌다가 대입 검정을 거쳐 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67년은 바로 대입 검정을 준비하던 시기이며, 이 시기는 <하구>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연보에는 이어서 '1969년 <사대 문학회>에 들면서 작가 지망생이 됨. 1970년 안정된 직업을 위해 사범 시험 준비 시작'이라고 되어 있는데, 입학 이후 69년 가을 까지의 기간이 <우리 기쁜 젊은 날>에 대응한다. 그러고 보면 <그 해 겨울>은 69년 겨울에 해당하는데, <그 해 겨울>의 그 치열한 성인식을 통해 어렵게 도달한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라는 깨달음과  연보의 '1970년 안정된 직업을 위해 사범 시험 준비 시작'이라는 대목이 부조화를 이루어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그러나 이 <젊은 날의 초상>이 비록 자전적 작품이긴 하지만 자서전이 아닌 소설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설 속 서사적 자아인 '나'와 현실에서의 경험적 자아인 작가는 같은 차원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이 작가 체험의 단순한 소설적 형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리면 그 작품의 많은 의미 있는 부분을 놓치게 되므로, 소설적 관점에서 작품의 내적 구조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에는 자아와 세계의 구조적 대립과 그 대결 양상이 선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인공과 대립 대결함으로써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에 본질적 작용을 하지 않고 실제적으로는 주인공과 동류에 속하는 등장 인물들의 역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구>에서의 최광탁과 박용칠은 단순한 관찰 대상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의 하가와 김형은 주인공의 열정적인 면(하가)과 사변적인 면(김형)이 각각 강조되어 있는 주인공의 동행일 분이다. 또한 <그 해 겨울>에 등장하는 중요한 두 인물인 친척 누님과 칼갈이 사내 역시 마찬가지다. 둘 다 배신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인물로서, 주인공이 어렵게 도달한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라는 깨달음에 주인공보다 먼저 도달해 있거나(누님) 주인공과 거의 동시에 도달하는(칼갈이 사내) 것이다. 따라서 이들도 본질적으로는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의 하가나 김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자아와 세계의 대립과 대결이 선명치 않은 대신 <젊은 날의 초상>에는 회고의 주체인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1인칭 서술자 '나'는 위상을 달리하여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야기'되는' 나 즉 과거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하는' 나 즉 회고하는 '나'이다. 작품 속에서는 후자가 거침없이 작품 표면에 튀어나와 부단한 간섭을 행한다. 작품 외적 자아가 표면으로 튀어나와 직접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행위가 거듭 되풀이되면서 지속성을 얻음에 따라, <젊은 날의 초상>은 단순한 회고적 서술에 그치지 않고 작품 외적 자아의 작품 내적 자아에 대한 적극적 대결의 성격까지 띠게 된다. 그런데 이 '대결'은 일반적으로 작품 외적 자아의 주도 하에 수행되어, 결국 현재 입장에서의 과거에 대한 일방적 의미 부여나 마찬가지가 된다.

<젊은 날의 초상>은 젊은 주인공이 정서적 충동과 지적 모험을 겪으면서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작가는 성장기에 겪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그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자신이 체험한 바 있는 젊음의 시절, 그 정신적 충격과 아픔의 시련 등을 근간으로 소설적 구성의 완결성을 시도하였다. 그가 끈기 있게 추적하고 있는 젊음의 시기는 성년의 단계로 입문해 가는 가장 격렬한 변화의 시기이며, 이 시기에 겪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방황과 그 고통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기성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제의'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갈등과 방황은 대체로 그 원인이 내면적인 것에 있다기보다는 외면적인 것에서 찾아진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부조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념과 현실의 간격, 개인적 욕망과 그 좌절 등으로 갈등이 젊음의 충동 속에서 더욱 격렬해지고 방황의 몸부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 같은 문제를 전혀 외면하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견디면서 끊임없이 자기 확인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고통을 내면화하고 갈등을 넘어서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소설의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더 큰 육체적 고통을 부여하였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삶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단계에 올라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발견',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 등은 이 소설의 핵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과정은 곧 자기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그의 방황은 새로운 것을 구하며 방황하고, 방황하면서 더 큰 것을 찾고자 하는 데에 그 참뜻이 있다.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갈등은 결국 새로운 내일을 맞으려는 변혁의 의지에 다름이 없으며, 바로 이러한 갈등이 어쩌면 인간의 의식에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 생의 기본적인 리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이 갈등의 리듬을 타고 새로이 전개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 속 주인공이 겪은 모든 체험과 그 아픔은, 고통을 통해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고뇌를 겪으면서 새로운 지적 세계에 폭넓게 접근하며, 방황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는 점에서 자기 생의 새로운 발견과 그에 따른 성장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장편소설, 성장소설, 자전적, 회고적 소설

◆ 배경 : 1970년대 서울, 강진, 동해 등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특징

* 3부작으로 구성됨.

* 회상의 구조를 사용하여 사건을 요약적으로 전달

* 1인칭 독백체를 사용하여 인물의 내면 심리를 구체적으로 그림.

주제 허무의 극복과 진정한 삶의 성장 모색

                 성장기에 겪는 삶의 고뇌와 극복의지

● 생각해 볼 문제

1. '겨울바다'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 '나'는 언제든 자살할 수 있도록 가방에 화공약품을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겨울 바다를 찾는다. 이 때의 겨울 바다는 주인공의 절망이 최고조에 다다랐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배경이다. 하지만 그 겨울 바다에서 '나'는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끝인 줄 알았던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한 것이다. '겨울'은 한 해의 끝이며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다. '바다' 역시 육지의 끝이며 육지의 시작이다. 이렇게 볼 때 '겨울 바다'는 절망, 끝을 의미함과 동시에 희망과 시작을 뜻하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작가 이문열

작가 이문열은 1948년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원철, 어머니 조남현 사이의 3남 2녀 중 3남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인데 그곳은 집성촌으로 그의 옛집이 있는 원리동에서 백 가구 가까운 일가가 지금도 살고 있다.

세 살 되던 해인 1950년 6 · 25가 일어나자 아버지가 월북하여 외가인 경북 영천에 내려가 잠시 머물렀는데 그 후 아버지는 망령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다치기 쉬운 유년시절을 온통 장악하고, 그의 가치관 정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 고향은 분명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이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는 인연을 갖지 못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천석 재산을 팔아 허망한 건국사업에 열중하시던 아버님 덕분에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청운동의, 지금은 헐려 버린 어느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 뒤로도 2년간 나는 서울거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자라다가 세 살 때 6 · 25가 터지면서 어머님의 친정인 영천을 거쳐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 갑자기 가장을 잃고 어린 5남매와 시어머니만 남게 되자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던 고가와 전답에 의지하기 위해 어머님게서 주장하신 귀향이었다." (산문,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중에서)

 

1951년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돌아가는 등 수 차례 이사하였다. 성장기의 이문열은 크게 보아 세 번의 귀향과 실향을 거듭하게 된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 서울로 이사하여 종암 국민학교를 다녔고, 또 밀양으로 이사하여 밀양 국민학교로 전학하는 등 안동, 서울, 밀양을 떠돌아 다닌다.

 

"밀양은 여러 가지로 내게는 감회어린 도시다. 내가 밀양으로 간 것은 열 살 때이고 떠날 때가 열네 살 때였으니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셈이다. 내 애틋한 유년의 추억은 거의 밀양에서의 것이고 내 친구의 대부분도 그때 사귄 친구들이다. 이제는 만난 지가 40년이 가까워 오는 친구들, 거기다가 그곳에는 내게 유일한 졸업장을 준 밀양국민학교가 있다."

 

중학교를 한 학기 다니다가 중퇴한 그는 3년 동안 큰형을 도와 황무지 2만평을 개간하는 일을 도우며 지낸다.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965년 큰 이유 없이 학교를 중퇴하고 끝없는 유적이 다시 시작한다.

 

"나는 그 편지(형에게 보낸 것)에 우선 목적 없는 내 떠돌이 생활의 쓰라림과 서글픔을 은근하게 과장하고, 속절없이 늘어만 가는 나이에 대한 초조와 불안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내 믿음과는 달리 정말로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벌서 어른들처럼 머리를 길 게 길러 넘기고 어른들의 옷을 입고, 술이며 담배 같은 어른들의 악습과 심지어는 시시껄렁한 타락까지 흉내내고는 있었지만, 나이로는 여전히 아이도 어른도 아니었으며, 정규의 학교과정은 밟지 않고 있었으나 또한 책과 지식과는 완전히 벗어난 생활도 아니어서 학생이랄 수도 건달이랄 수도 없었다. 당시 내 깊은 우려 중의 하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평균치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솔직하게 썼다."  (<하구> 중에서)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대학 사범대 국어과에 진학, 작가의 꿈을 안고 사대문학회에서 활동하였다 1969년 고시공부를 시작, 1970년 대학을 중퇴하였으나 고시와 문단 등단에 실패하고 1973년 군에 입대하였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데뷔 원년부터 <사람의 아들>, <들소>,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어둠의 그늘>, <황제를 위하여>, <달팽이의 외출>, <이 황량한 역에서>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된 능란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과 사랑을 받는 국민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이문열의 문학세계는 종교와 예술관,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를 다루며, 정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부터 역사나 우화의 형식 등 소설 기법도 다채롭다. 이러한 작가의 소설은 크게 두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황제를 위하여>,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현실을 하나의 체계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이며, 장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소설로서 작가적 성향을 높인 작품들이다. 다른 하나는 연작 장편으로 <젊은 날의 초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과 같이 작가 자신의 실존적 번민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특히 1986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12년만에 완성한 대하소설 <변경>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72년 유신 전야까지를 배경으로 전쟁과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몰락해가는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서사'로 꼽는 것으로 작가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며, 우리 문학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1999년 호암예술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적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990년 <금시조>와 <그 해 겨울>이, 1991년 <새하곡>,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1992년 <금시조>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또 1998년 미국의 출판 에이전시 뉴욕 와일리사와 전속계약을 맺기도 했다. 1993년 계간 <상상>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세종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9년 현재 부악문원 대표로 있다.

1979년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금시조>로 동인문학상(1982), <황제를 위하여>로 대한민국문학상(1983), <영웅시대>로 중앙문화대상(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1987), <시인과 도둑>으로 현대문학상(1992),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으로 21세기 문학상(1998), <변경>으로 호암예술상(1999) 등을 수상했다.

 

탐색의 과정, 그 소설적 미학    -권영민-

1.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긴 하지만, 작가 이문열의 <그 해 겨울>(1979)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필자는 강의 시간 중에 학생들과 함께 이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의 격렬한 정서의 파탄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한번쯤은 '젊음의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음미해 볼 만한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에서였고, 특히 이 소설의 구조적 속성이 이른 바 '피카레스크' 소설 형식에도 관련되며 '탐색의 과정'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음을 예시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당시 이 소설을 함께 읽었던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타났다. 우선 상당수의 학생들은 소설 속의 주인공 '나'를 작가인 이문열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소설의 내용이 작가 체험의 소설적 형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소설보다는 작가 이문열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지적인 고뇌를 어느 정도 읽어낸 또 다른 학생들은 주인공의 지나친 자기 과시, 정서적 편향성, 지적 자만 등을 지적하기도 하면서, 그러한 모든 결함이 현실적인 상황의 위압과 육체적 고통을 인내함으로써 드디어 극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감동적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소설 속의 주인공과 그들 자신의 위치를 비교해 보면서, 안일한 삶의 태도로 현실에 타협해 온 자신들의 나약한 문제의식을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순진성을 보여 준 경우도 있었다. 이들 학생들이 지적했던 내용 중에서 지금껏 기억에 새로운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해 겨울>에서 주인공이 겪는 그 겨울 동안의 체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한 체험을 겪어야만 했던 그 겨울 이전의 상황이 소설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필자 자신은 이러한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일인칭 소설에서 흔히 지적되고 있는 '사실성에 대한 환상'을 설명하기도 했고, 스토리 자체에 내재하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작품 구조의 완결성을 애써 강조하였다. 특히 <그 해 겨울>에서 주인공이 겪는 그 겨울 동안의 체험 이전의 상황을 분명히 제시한다는 것은 오히려 소설의 긴장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작가 이문열은 <그 해 겨울>을 발표한 후에 거의 이 년에 가까운 시간적 간격을 두고 <하구>와 <우리 기쁜 젊은 날>을 발표하여, 소설 <그 해 겨울>에 선행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소설화함으로써 <하구> → <우리 기쁜 젊은 날> → <그 해 겨울>에 이르는 삼부작을 완성하고 말았다. <그 해 겨울>을 강의실에서 함께 읽었던 당시의 필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연유가 되어 필자는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을 소설 속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좀더 자세히 읽게 되었고, 이들 세 작품이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서 지니고 있는 의미와 그 전체적인 성격을 검토해 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로 이어지는 이문열의 삼부작은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중간소설로서 그 균형을 갖춘 채 독자적인 의미를 구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 젊은 주인공(소설 속에서는 '나'라는 일인칭의 서술자로 등장)이 정서적 충동과 지적 모험을 겪으면서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주인공인 '나'의 경우에 겪게 되는 젊음의 시절은 외견상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그 첫 단계는 주인공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현실 사회와는 아무런 삶의 접점도 공유하지 못한 채 유리된 상태에서 타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가지 생의 방향을 스스로 가늠하기 시작하는 고통의 시절(이 시기는 주인공이 성년에 접어드는 단계이며, 작품 <하구>를 통해 극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이며, 둘째의 단계는 모든 자유로운 사고와 비판적 행위도 용납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대학생활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자신의 내면적인 지적 욕구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고뇌의 시절이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세 번째의 단계는 삼부작 중에서 가장 먼저 발표된 <그 해 겨울>의 내용과 연결된는데, 지적인 욕구와 자기 감정의 충일 상태를 끝내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이 대학 캠퍼스를 버리고 무작정 현실 속에 뛰어들어 끝없이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헤매며, 진정한 생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몸부림쳤던 방황의 시절이 그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끝없는 방황으로 점철되어 있는 주인공의 젊은 시절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고뇌를 겪으면서 새로운 지적 세계에 폭넓게 접근하며, 방황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는 전망적인 결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 자신이 겪는 모든 체험과 그 아픔은 자기 생의 새로운 발견과 그에 따른 성장을 의미하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주인공 '나'는 젊음이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는 온갖 충동 속에서 끝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힘을 지탱하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스스로에 의해 시인되고 충만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절망이라는 것이 존재의 끝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함께 해당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에서 볼 수 있는 소설적 서술의 유형은 세 편의 작품이 모두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회고적인 서술 방법을 취하고 있는 점에서 그 일관성이 드러난다. 그러한 방법은 서술상의 초점과 성격의 핵심이 주인공인 '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일인칭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들 작품에서는 지나 버린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주인공의 오늘의 입장이 거의 은폐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세 편의 소설은 주인공의 개인적 체험과 그 추억담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지난 시절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그 목표가 아님은 분명하다. 지나간 세월이 동경과 향수의 대상으로만 남는다면,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한낱 감상적인 개인의 회고 취향에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작가 이문열이 삼부작에 붙인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제목만 보더라도, 이들 세 작품은 가장 격렬한 삶의 순간들로 엮어지는 젊은 날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체험의 내용이 인간의 삶의 한 단계로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인 '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인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적인 인물들은 비록 지나가 버린 시기이긴 하지만, 한 시대의 젊은 층의 의식에 깊이 관련된다. 여기서 한 시대란 지난 1960년대(<우리 기쁜 젊은 날>에 '아직 풍요의 1970년대가 열리기 전이어서' 운운하는 구절이 있다.)를 뜻하며,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그 시대적 분위기가 소배경으로 등장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1960년대의 젊음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방황은 내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에서 연유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상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실체로 구체화되기란 어려운 여러 가지 제약을 지니고 있다.

작가 이문열의 경우에는 자세히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대학 중퇴'라는 그의 개인적 이력이 소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밀착됨으로써 용케도 이 위험스런 균형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세 작품은 모두 서사적인 자아로서의 주인공인 '나'와 현실적 자아로서의 작가 이문열의 구별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 놓여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단순히, 서사적인 자아인 '나'의 체험과 그 진술이라기에는 작품의 내용이 대부분 작가의 의식에 지배되고 있는 점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은 작가 자신의 경험적 축적을 자서전적인 구성법에 의거하여 펼쳐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정은 이 세 편의 작품이 소설 속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 세 작품을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생각할 때 각 작품에 대한 순차적인 경험이 전체적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로 그 내용이 진전되면서 작품의 의미가 더욱 심화되고 그 내적 구성력이 더욱 짜임새 있게 이루어지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다.

작가 이문열이 이 작품을 하나의 장편소설로 발표하지 않고 삼부작을 의도한 것은, 그 자신이 선택한 제재의 독특한 성질(여기서는 격렬한 삶의 순간으로 이루어지는 젊음이 바로 그것이다)에 알맞은 이완된 형식을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연작 형태의 구성법에 의거하고 있는 이 삼부작은 확실히 한 편의 에피소딕한 장편소설과 독립된 세 편의 중편소설의 집합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기에 주인공인 '나'의 의식의 추이는 각 작품에 그려진 시간과 공간의 배경에 따라 단절과 연관을 함께 드러내면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3.

이문열의 삼부작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은 한마디로 말하여 젊음의 소설임이 틀림없다. 이문열의 작가적 관심은 그의 화제작 <사람의 아들>, <들소> 등에서처럼 주로 풍자적 관심을 배제한 관념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기에 이들 작품은 신과 인간의 문제, 인간의 존재와 그 의미 등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작업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은 소재 자체의 경험적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는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에서 오히려 삶의 현실에 더욱 밀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성장기에 겪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그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자신이 체험한 바 있는 젊음의 시절, 그 정신적 충격과 아픔의 시련 등을 근간으로 소설적 구성의 완결성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특징적인 면묘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문열의 문학세계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삶의 제의적(祭儀的) 과정과 연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삼부작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에서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는 젊음의 시기는 성년의 단계로 입문해 가는 격렬한 변화의 시기이며, 이 시기에 겪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방황과 그 고통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기성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제의'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통과제의'의 첫 단계에 삼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가 되는 작품 <하구>가 가로놓인다는 사실은 그 제목 자체가 암시하고 있는 의미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작품 <하구>에서 그려지고 있는 '열아홉 나이를 넘김' 시절이란 생의 과정에서 격렬한 삶의 현실과 어느 정도 유리되어 있던 유년기 또는 소년기를 벗어나는 단계에 속한다. 이 시기는 제목 자체가 말해 주듯이 긴 강물의 흐름이 이제 막 바다와 마주치게 되는 <하구>의 단계와 일치한다. <하구>에 이르면,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며 바다라는 이질적인 세계에 편입되어 버린다. 이 때에 겪을 수밖에 없는 충격과 변화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성년에 도달하는 순간 직면하게 되는 가장 치열한 삶의 체험과 자연스럽게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작품 <하구>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주인공인 '나'는 할 일 없이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젊은이로 그려져 있다. 그러다가 형이 일하고 있는 '강진'에 일단 정착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된 경위나 그때의 내 신세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심하다. 그 열흘 전쯤 나는 어느 낯선 도시의 싸구려 하숙방에서 형에게 길고 간곡한 편지를 썼었다. 이것저것 사업에 실패를 거듭하다 그곳 강진까지 밀려나 조그만 발동선으로 모래 장사를 하고 있던, 세상에서 하나뿐이고 또 내게는 아버지나 다를 바 없는 형이었다.

나는 그 편지에서 우선 목적없는 내 떠돌이 생할의 쓰라림과 서글픔을 은근하게 과장해서, 속절없이 늘어만 가는 나이에 대한 초조와 불안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내 믿음과는 달리 정말로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벌써부터 어른들처럼 머리를 길게 길러 넘기고 어른들의 옷을 입고, 술이며 담배 같은 어른들의 악습과 심지어는 그들의 시시껄렁한 타락까지 흉내내고는 있었지만 나이로는 여전히 아이도 어른도 아니었으며, 정규의 학교과정은 밟지 않고 있었으나 또한 책과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생활도 아니어서 학생이랄 수도 건달이랄 수도 없었다. 당시의 내 깊은 우려 중의 하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평균치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솔직하게 썼다. 그리고 함부로 뛰쳐나온 형의 그늘에 대한 진한 향수를 내비침과 함께, 만약 다시 받아들여만 준다면 지난날의 나로 돌아가, 무분별한 충동으로 턱없이 헝클어놓은 삶을 정리하고, 늦었지만 가능하면 모든 점에서 새로이 시작해 보고 싶다고 썼다.

 

약간 인용이 길어지긴 했지만, 이와 같은 연유에 의해  '나'는 결국 '형'이 생활하고 있는 '강진'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 일단 여기서 그 동안의 무절제의 방랑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직은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접어드는 순간에, 작가 이문열은 서사적 자아인 '나'와 세계(여기서는 '강진'에서의 새로운 삶이 된다)의 직접적인 대결방식을 완화하기 위해 그 중간에 '형'이라는 매개항을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만일 이 중간적 매개항으로서의 '형'의 존재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면, 서사적 자아와 세계의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지 않앗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소설의 줄거리 가운데에서 '형'의 사업과 그 일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는 삽화적 내용들을 통해 더욱 분명히 밝혀진다.

'강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갖가지 육체적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결국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출구로서 대학 진학을 꿈꾼다. 그리고 결국은 소설 속의 표현 그대로 '행운은 두 번째도 내 편이 되어 나는 그럭저럭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미숙한 삶의 경지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년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겪게 되는 괴로운 시련, 말하자면 '이니시에이션'의 의미와 일치한다. 물론 소설 <하구>에서 주인공인 '나'의 경우에 겪게 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단순히 삶의 방향을 새로이 전환시키거나 변혁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과 시련 속에서 충격과 변화를 겪는 동안의 정신적 방황과 갈등이 곧 삶의 기본적인 리듬일 수 있으며, 그러한 리듬의 재현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진'에서의 생활을 통해 얻어내고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나'의 의식의 추이를 골격으로 하는 소설의 구조상 거의 무의미한 삽화로 인정될 수밖에 없지만,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중요시된다. '나'는 '강진'에서의 고통스런 생활 가운데에서 '별장집 남매', '서동호와 그 부친', '모래장의 최광탁과 박용칠' 등의 인물들과 알게 되는데, 이들은 '나'에게 삶의 진실과 그 허울을 함께 암시해 주기도 하며('별장집 남매'의 경우), 삶의 태도의 의연함과 그 정직성을 말해 주기도 하며('서동호와 그 부친'의 경우), 미천한 삶의 바닥에서도 자기 삶의 방식을 착실하게 터득하고 있음('최광탁과 박용칠'의 경우)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하구>에서 주인공이 삶의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했다거나 모든 고뇌와 시련의 과정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다분히 잠정적이며 유보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진'의 생활이 삶의 뼈저린 경험과 충격을 강조하기에 충분하며, 소설이 요구하는 서사적 자아와 세계의 구조적 대립을 어느 정도 노출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인식의 성장이 가능했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그것이 '나'의 인식에 숱한 정서적 손상을 초래함으로써 또 다른 '유적(流謫)'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가 이문열이 그려내고 있는 또 다른 그 '유적'의 과정은 <하구>를 벗어난 주인공 '나'의 짧은 대학생활을 그려내고 있는 <우리 기쁜 젊은 날>로 이어진다. 소설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어찌 보면 삼부작 중에서, 주인공의 상황적 여건이 다른 두 편의 경우에 비해 가장 바람직했다고 할 수도 있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선택된 위치에 오르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한 셈이다. 더구나 주인공인 '나'는 대학이라는 새로운 집단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삶의 참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열정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학생활은 가정교사 자리에 얽매임으로써 자기 생활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그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지난날 나태했던 게으름의 습벽 때문에 학교생활 자체가 점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터무니없는 지적 욕구로 인하여 오히려 '나'는 참다운 삶의 방향 감각을 상실할 정도로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도 서사적 자아인 '나'와 세계(대학생활)의 구조적 대립이라는 소설적 요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지는 않는다. <하구>의 경우 '형'을 매개항으로 하여 이루어진 생활이 있었다면,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는 중간적 매개항이 아닌 '길의 동행자'로서의 두 사람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가'와 '김형'이 바로 그들이다. 다분히 열정적인 '하가'와 사변적인 '김형',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나'의 만남은 지나간 1960년대의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전형적인 대응방식에 속한다. 작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젊음의 물결을 이들 세 인물의 행위와 사고를 통해 재현하고 있을 뿐, 소설의 양식이 요구하는 자아의 내적 성숙을 기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세 구절로써 <우리 기쁜 젊은 날>로 기억되는 대학생활을 청산하고 있는데, 스스로 진술하고 있듯이 '영광인 동시에 오욕이고, 비상이었으되 몰락인 그 이듬해'의 또다른 방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현재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날 것.'

 

출발에 즈음하여 새로 마련한 두툼한 수첩의 맨 앞장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의 한 구절로 생각된다.

 

4.

잃어 버린 옷깃의 단추를 찾는 것은 참된 의미의 탐색은 아니다. 탐색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아직껏 경험하지 못한 어떤 대상에 대한 추구를 뜻한다고 오든 W.H.Auden은 말한다. 인간은 결코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체험을 되풀이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은 언제나 새롭게 겹쳐지는 것이므로 인간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항상 변화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이 끝없이 열려 있는 미래의 어떤 것에 전념한다면, 그 사고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 뻗어 있는 길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비록 목적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그 자체로서 확실한 방향으로 고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문열의 삼부작 중에서 그 마지막의 이야기가 되는 <그 해 겨울>은 비록 고통스런 방황의 과정이긴 하지만 더 큰 것을 향한 탐색의 길과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방황은 이미 언급한 <우리 기쁜 젊은 날>의 결말에서 '확실한 앎, 더 큰 가치, 더 큰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방황의 과정은 광부가 되겠다는 생각, 어부가 되려던 의도와는 달리 산촌의 여관 겸 술집에서 '방우' 노릇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곳에서 타락한 삶의 작태와 실상을 스스로 체득하기 시작한 '나'는 자신이 열렬히 도달하고자 하는 결단에 접근하기 위해 그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바다를 향한다.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는 백 리 길에서 '나'는 몇 사람의 길동무를 만나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는 눈 덮인 '창수령'의 육십 리 길 재를 넘게 되며, 눈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대진'이라는 작은 포구에 도착하여 바닷가로 나가, 자신을 바다에까지 이끌었던 이유를 스스로 묻는다. 하지만 '나'의 방황에 '혼연한 종말을 가져다준 소리'를 듣지 못하며, 오히려 파도에 휩쓸려 떠오르지 못하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보는 순간 '위기에 자극된 생명력은 갑작스런 불꽃'처럼 스스로의 의식을 일깨우게 된다. '절망이란 존재의 끝이 아니고 진정한 출발'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 '나'는 지금껏 지니고 있던 유서와 약을 자신의 감상과 함께 바다에 내던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개략적인 내용으로 보아 소설 <그 해 겨울>은 주인공인 '나'의 방황인 여로(旅路)로 그 의미가 집약된다. 흔히 소설에서의 시간은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라는 명제로서 그 구조가 드러난다.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산골에서, 경상도의 어느 산촌, 그리고 동해바다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그 해 겨울> 동안의 시간은 결국 '나'의 방황의 여로를 통해 구체화되며, 이 여로 자체가 결국은 작품의 내용을 지탱하는 구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작품 <그 해 겨울>의 소설적 공간임은 물론이다. '길'은 움직이는 삶의 과정이며, 그 자체로서 이미 생명을 지닌다. 서울에서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다시 서울로 이어지는 길, 그 과정의 길이에 대응하는 시간이 <그 해 겨울>이라는 특정의 시간으로 귀착되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인 '나'의 방황의 여로는 회귀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 여로가 서울에서 바다라는 직선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결국 주인공의 '결단'은 바다에서의 죽음의 의지로 표출되고 말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단'은 오히려 새로운 차원에서의 삶에 대한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길'의 출발지인 원점(서울)으로 회귀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 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詐欺師)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 버린 우리를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

역시 눈비로 얼룩진 그날의 수첩은 그렇게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그 갑작스럽고 당돌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따른 원인모를 허탈과 슬픔에까지 극복해 낸 것 같지는 않다. 절망의 확인이란 아무리 냉철한 이성이라도 그것만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그 바닷가의 바위에 기대 한동안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진술에서 '나'의 의식은 드디어 '나' 자신이 유일한 자기임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만큼 자아의 성숙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갑작스럽고 당돌한 결론'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라는 판단이 삶의 진실한 의미를 뜻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탄생이며 죽음이 그 종말인 인간의 삶과 같이, 소설 <그 해 겨울>로써 주인공인 '나'의 방황은 모두 끝났다. '나'는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대학생활)로부터 이탈함으로써 그 뒤에 따르는 고통의 여정을 자초했지만, 그것은 결코 고통의 시간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보다 높은 진실의 차원에서 삶에의 새로운 만남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해 겨울>에서 그려지고 있는 주인공인 '나'의 방황은 덧없이 흘러 다닌다거나 정처없이 돌아 다닌다는 뜻의 방황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구하며 방황하고, 방황하면서 더 큰 것을 찾고자 하는 데에 그 참뜻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단'을 감행하고자 방황하는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탐색의 주인공이며, 대학을 버리고 고통스런 방황의 과정을 거쳐 다시 출발지로 돌아감으로써, 격리 → 시련 → 재편입의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갈등은 결국 새로운 내일을 맞으려는 변혁의 의지에 다름이 없으며, 바로 이러한 갈등이 어쩌면 인간의 의식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생의 기본적인 리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이 갈등의 리듬을 타고 새로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소설 <그 해 겨울>의 감동은 바로 이러한 삶의 리얼리티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5.

이제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로 이어지는 삼부작이 매듭지어짐으로써 작가 이문열은 우리 시대의 격동을 지나 버린 젊음의 격정 속에 함께 포괄하고자 했던 그의 작업을 일단 마무리한 셈이다. 그러나 작가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간 젊음이 아니라 오늘의 삶 그 자체이다. 이문열이 자기 체험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이 펼쳐나갈 소설을 또다시 기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기대를 위해 <그 해 겨울>의 한 구절을 들어 이문열의 목소리로 바꾸어봄으로써 그 확신을 거듭 강조해 두고자 한다.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고…….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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