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도시(1978)

-이청준-  

◆ 소설 읽기  

● 줄거리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 날 해질녘, 한 사내가 감옥에서 풀려 나온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초라한 행색의 사내는 교도소 길목을 빠져 나와서 공원 입구에 있는 '방생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곳에는 새 장수가 방생을 외치면서 손님을 끌고 있었다. 방생하는 모습을 감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다음날부터 공원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모은 돈으로 옥중 동료들을 대신해 방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석방되는 날 면회 오도록 연락해 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사내는 며칠을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새 장수의 비정한 상술을 보게 된다. 새 장수는 새들의 날개죽지 밑을 가위질해서 멀리 날지 못하게 한 후, 손님들이 그 새를 방생하면 한밤중에 몰래 후레쉬를 들고 다니며 근처 공원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을 다시 잡아다가 조롱 속에 가두는 거을 보게 된 것이다. 사내는 새 장수의 그런 비정한 상술에 분노를 느끼지만 새 장수는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밤, 새 장수에게 쫓기던 새 한 마리가 사내의 품속으로 숨어 들어오게 된다. 그 새는 사내가 전에 방생한 새였다. 사내는 그 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위한 방생을 계속한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옥중 동료들과의 어약을 기필코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을 따르는 그 새를 데리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인물의 성격

◆ 사내 → 오랫동안 복역 생활을 한 죄수로,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옥중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물임.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새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남으로써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통해 거대한 위선과 억압에 꺾이지 않는 참사랑의 모습을 실현하고 있음.

◆ 새 장수(젊은이) → 새 날개 속 깃을 잘라 놓고 새들을 다시 잡아 파는 잔인함을 가진 인물로 현대 사회의 잔인성을 상징하는 인물임. 젊은이가 운영하는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삶을 하나의 사실로 제시하고 있음.

● 이해와 감상

<잔인한 도시>는 제2회 동인 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심층적인 인간 소외 의식을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종래의 평면적인 리얼리즘에서 맛볼 수 없던 새롭고 깊은 감동의 공간을 창조해 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새 장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 삶을 하나의 리얼리티로 제시하고 있으며, 죄수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러한 악순환의 끈을 끊어 버리고 인간 상주(常住)의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인간의 꿈과 휴머니즘적 주제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어두운 현실과 밝은 이상을 설득력 있는 구상적 이미지로 다 같이 부각시킴으로써 관념적인 주제에 박진감 있는 현실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잔인한 도시>는 70~80년대 절대적 사회의 부정적인 국면을 드러내면서 인간 구원의 절대적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이청준이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진실에 대한 탐구의 소산이다. 백동테 안경의 젊은이가 운영하는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원래 방생의 집은 새들의 자유를 통해 갇힌 이들의 자유를 기원하는, 오래 전 감옥을 나온 한 노인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가 상업적으로 변화되면서 방색으로 인해 새들은 더 이상 멀리 나갈 수 없도록 강제로 날개를 찢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위협에 처하게 된다. / 새를 방생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꿈꾸어 왔던 사내는 젊은이의 사악한 상술을 알고 난 뒤에 분노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가 없다. 자유를 갈망하던 자신의 의지가 또 한번 꺾였는데도 사내는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주고 날개가 찢긴 새를 다시 사들인 뒤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새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작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통해 거대한 위선과 억압에 꺾이지 않는 참사랑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작품의 상황 설정의 독특함이 돋보이면서도 진기한 상황을 한갓된 기이함으로 처리해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 이청준의 미덕인 치열한 장인 정신과 차분하고 논리적인 문체의 힘에서 비롯된다. 소설의 초두에서 새의 비상은 노인이 동경해 온 자유를 의미했다. 그러나 새의 비밀을 알아낸 종반부의 노인에게는 새가 더 이상 자유로움의 표상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내의 손을 벗어날 수 없게 운명지어진 초라한 미물일 뿐이며, 출감한 이후에도 마땅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노인의 모습과 동일한 것이다. 노인은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나 아들은 오지 않는다. 그는 새와 함께 남쪽의 따뜻한 고향을 향해 내려간다. 그러나 그 고향이 진실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곳이 진실로 따뜻한 곳인지 등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불구의 새를 품고 있는 노인의 가슴이야말로 바로 그 따뜻한 곳의 근원이며, 그러므로 그가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나 따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말미에 나타나는 비애의 색조조차도 그 훈훈함의 일부일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적 → 어느 가을

* 공간적 → 어느 도시의 교도소 근처 공원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목 :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대 사회'의 상징

◆ 주제

* 현실에 대한 현대인의 소외와 인간 상실의 문명 비판

* 폭력과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추구함.

* 도시의 비정함에 대한 비판과 자유에 대한 갈망

● 더 읽을거리

◆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오는 줄거리

날씨가 제법 싸늘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해질녘, 그 사내가 문득 교도소 길목을 조그맣게 걸어 나왔다. 교도소는 과연 죄수가 없는 유령의 집으로 변해진 것도 아니었다. 종신형자들만이 수감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날 저녁 사내가 그 길목을 걸어나온 것은 바로 그런 모든 의문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답인 셈이었다. 그가 2백 여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을 빠져나와 공원 입구에까지 닿았을 때였다.

―― 새들은 하늘과 숲이 그립습니다. 새들에게 날을 자유를 베풉시다. 자비로운 방생은 당신의 자유로 보답받게 됩니다. ――

공원 입구에 새장의 새를 사서 제 보금자리로 날려 보내게 해 주는 이른바 방생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어떤 중년 사내가 그 새를 날려 보내주는 것을 구경하게 된다. 이튿날 아침, 그는 아침 산책을 하는 늙은 관리인처럼 주의 깊게 숲 속의 산책길과 길가의 벤치 근처들,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판 일대를 구석구석 살피고 돌아다니면서 동전과 담배 꽁초를 주었다. 새 장사는 성업이었다. 그는 새를 사서 날려보냈다. 포르륵…… 가벼운 날갯소리를 남기며 공원 숲쪽으로 조그맣게 사라져 가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 주름 투성이의 웃음이 가득 번졌다. 그는 새 가게 주인과 얘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감옥에 가게 된 것은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험한 뱃길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여편네라는 계집년이 새서방을 들여다 재우고 있는데 그놈이 하필 일정 때 형사 앞잡이 노릇으로 위세깨나 부려오던 놈이라. 헌데 결과는 년놈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고 나만 이렇게 가막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가막소 살이가 그새 무슨 이력이 붙었는지 나중엔 웬 덫에라도 걸린 사람같이 가막소만 나오면 한동안 부근을 뱅뱅 맴돌다가 결국은 다시 그렇게 되어 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어디 찾아갈 곳이 없느냐고 가게 주인이 묻자 고향 동네엔 아들이 있다고 했고, 그럼 왜 아들이 찾아오지 않느냐고 하자, 편지가 아마 늦게 들어간 것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사내는 아닌게 아니라 자신의 출감을 마중하러 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사실인 듯 보였다. 그는 정말로 무슨 올가미 같은 것에 발목을 매인 날짐승처럼 공원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공원 흙바닥을 뒤져 동전을 모아 새를 사서 날려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새를 파는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그야 나도 언제까지나 여기 이러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겠지요. 아들 녀석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 발로 녀석을 찾아 나서야지. 하지만 아직은 좀더 기다려 봐야지요. 여태까지 소식이 닿지 못했더라도 금명간에 편지가 닿을 수도 있겠구 녀석이 혹 소식을 받고 달려 왔다가 길이라도 엇갈리는 날이면 녀석의 낭패가 얼마나 하겠소. ―

그럼 노인장께선 가막소 친구분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새를 사실 작정이냐고 묻자 그는 형편만 닿으면 그리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해질 무렵 그는 또 새를 사러 가게로 갔다. 그러자 가게집 주인이 말했다. 이 새의 소유권을 통째로 판 게 아니라 새를 숲으로 날려보낼 방생의 권리를 팔았을 뿐이라고 ……, 그러면서 새를 댁으로 가져가실 수는 절대로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손님들에게 새의 방생권을 파는 것이지 구속을 파는 건 아니라며 그만큼 새의 자유를 지켜줄 줄 안다고 했다.

― 그런데 젊은인 도무지 이 많은 새들을 다 어디서 구해 들이고 있는겐가? ―

사내의 실수는 그 한 마디 뿐이었다. 젊은이가 차갑고 무거운 위협기로 그를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태산으로 사내는 이날 밤 또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공원 근처의 숲 나무 걸상에 자는데 그가 새를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환한 빛줄기가 장대처럼 이리저리 숲을 헤치면서 새들을 잡고 있었다. 끊임없이 빛줄기를 들이대며 잠든 새들을 열매 따듯 사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줄기가 자신을 비추는 것을 알고 몸을 움츠렸다. 다음날 사내는 가막소에서 죽어 나간 늙은이를 위해서 새를 사겠다고 했으나 젊은이는 그저 남의 일 대신하듯 냉랭한 눈길뿐 표정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젊은이의 새 가게 앞에 지치고 남루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튿날 아침 그맘때였다. 하지만 이날도 그는 새를 사지 않았다. 젊은이의 눈치를 살펴 가며 말수작을 건네 오는 일도 없었다. 사내의 거동은 며칠 동안이나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에게 새 가게 주인은 그가 아드님이 시골에 궁전을 지어 놓고 영감님을 모시러 오는 중이라고 얘기를 해서 사내를 비웃고 무안을 주었다.

헌데 그러한 어느 날 밤, 그 공원 벤치 숲에서 추운 새우잠을 견디고 있었는데 자정을 지난 무렵 다시 새 사냥이 시작되었다. 불빛을 보고 놀란 새 한 마리가 그의 손으로 왔다. 그리고 녀석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사내가 잠이 깨었을 때 새는 물론 자취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날 아침 어느 날보다도 기분이 가벼웠다. 그리고 새를 파는 젊은이와도 화해를 한다. 그리고 전에 놓아주었던 새를 찾아서 산다.

그러나 사내는 뭐가 이상해졋는지 숲 속으로 놓아주려던 녀석을 다시 가슴팍 밑으로 끌어내리고 날개를 들추고 벌려진 날갯죽지 밑을 유심히 살폈다. 녀석의 양쪽 날개 밑에는 무슨 가위 같은 물건으로 속 깃을 잘라 낸 자국이 역력했다.

사내는 일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며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게 됐는지 짐작이 안 가는 듯 멍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히 잘려 나간 녀석의 속 날개 깃 자국을 들여다 보고 있던 사내의 눈길에 이윽고 어떤 세찬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새를 거머쥔 손에 으스러지도록 힘을 주며 말없이 그의 거동만 훔쳐보고 있던 젊은이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 세찬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는 사내의 눈길은 사람까지 온통 달라 보이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분노 때문에 손과 입술까지 마구 떨리고 있었다. 새를 파는 남자는 사내가 마침내 새의 날개 밑을 들춰내 버리자 몹쓸 비밀을 들키고만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러나 될 수록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듯이 뻔뻔스럽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끝끝내 사내의 눈길만 맞받고 있었다.

사내는 그 새를 데리고 길을 떠나면서 말했다.

― 녀석도 아마 잘했다고 할게야. 글쎄 이렇게 내가 제 발로 녀석을 찾아 나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리도 거기서 겨울을 지낼 뻔했질 않았나 말이다.―

그것은 그가 찾아가는 남쪽 동네였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의 혈육(아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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