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1995)

-김소진-  

◆ 소설 읽기  

● 줄거리

자전거 도둑이 생겼다. 누군가 나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네 꼬마로 생각하였으나 내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은 동네 에어로빅 강사였다. 이 일을 계기로 나와 그녀는 서로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나는 자전거 도둑을 보면서 영화 <자전거 도둑>을 생각했다.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브루노는 나와 많이 닮아 있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볼 때마다 기억하기 싫은 나의 어린 시절을 환기시켜 준다.

주인공인 나는 어린 시절 구멍 가게를 꾸려 나가는 아버지를 도와 도매상으로 물건을 떼러 다녔다. 어느 날 계산 착오로 소주 두 병이 빠져 있음을 알게 되나, 혹부리 주인 영감은 결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후 아버지는 소주 두 병을 슬쩍 담음으로써 그 손해를 보상받으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주인 영감에게 그 사실이 발견되고, 그 순간 나는 겁에 질린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둑이라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실제 도둑질을 한 아버지는 혹부리 영감의 교육 정신에 격려 받아 내 뺨을 갈긴다. 이 일을 겪은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혹부리 영감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다. 혹부리 영감의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 하수도를 통해 가게에 침입하고 그곳에 오물을 뿌려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나의 복수로 인하여 혹부리 영감의 집은 파산을 하고 혹부리 영감은 죽게 된다.

내가 어릴 적의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녀도 어릴 적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자전거 도둑인 그녀는 어린 시절, 간질 때문에 정상적인 성장을 멈춘 오빠에게 성적 상처를 받은 존재이다. 그녀는 엄마가 집을 비우며 부탁했던 오빠의 식사 심부름이 두려워, 며칠 동안 그를 방치한 나머지 간접 살인을 하게 된 아픔을 지니고 있다.

나와 그녀는, 현실의 그림자이자 아픈 환영인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확인한 후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회피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우연히 그녀를 만났으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쳐서 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서둘러 허둥지둥 자전거 전용도로를 벗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 인물의 성격

나(김승호) → 신문 기자.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지닌 인물로, 아버지와 자신을 영화 <자전거 도둑>의 등장 인물들과 동일시함.

◆ 서미혜 → 에어로빅 강사.  어릴 적 오빠에 대한 상처를 지닌 인물로, 간질 환자였던 오빠를 죽게 한 것은 자신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음.

● 구성 단계

발단 : 자전거 도둑이 위층 젊은 여자임을 알고 호기심을 가짐.

◆ 전개 : 영화 <자전거 도둑>을 보고 '나'의 유년기를 회상함.

◆ 위기 : 아버지에게 수모를 준 혹부리영감을 죽음에 이르게 함.

◆ 절정 : 서미혜가 간질병에 걸린 오빠를 방치해 죽게 만듦.

◆ 결말 : 서미혜가 다른 자전거를 훔침.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영화 <자전거 도둑>을 매개로 하여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와 '서미혜', 그리고 영화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유년기의 상처 환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는 에어로빅 강사 서미혜를 보고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며 유년기의 상처를 환기하게 된다.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혹부리 영감에게 비참한 수모를 당해야 했던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영화 속의 상황과 동일시되어 '나'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각인되어 있다. 서미혜도 영화 속의 인물과 자신의 오빠를 동일시하며 자책감에 빠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처는 성격이 다른 것임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잊어 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아버지의 삶이 강하게 제시된다. 강한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나약함을 닮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에서 작가의 의식이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나약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일로 제시된 것이 혹부리 영감의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단지 아버지의 복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무능한 아버지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겠다는 어린 나의 다부진 소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서미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 보면 둘 다 간접 살인에 해당되는 셈이지만, '나'와는 다르게 서미혜는 강자인 혹부리영감이 아닌 약자인 오빠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불쌍한 오빠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자전거 몰래 타기'가 제시되고 있다. 서미혜는 더 이상 '나'의 자전거를 몰래 타지 않는다. 이제 '몰래' 타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소진 소설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첩경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다. 김소진은 그의 첫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서문에서 "데뷰작 '쥐잡기'가 소설이기에 앞서 애틋했던 아버지께 부치는 제문(祭文)이었듯이, 이후의 작품들도 그러한 제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 고백을 통하여 자기 소설의 성격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김소진은 아버지(내지는 아버지 세대)의 존재와 삶을 되묻고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는 도정으로 소설을 썼던, 우리 시대의 질박한 이야기꾼이었다. 그런 까닭에 김소진의 소설 쓰기는 일그러진 아버지의 초상을 복원하기 위한 역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소진이 스스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한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의 존재 묻기'가 곧 김소진 문학의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자전거 도둑>은 결코 긴 분량의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담긴 서사성은 종횡무진이다. 시간적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재는 어른이 된 '나'가 '나'의 자전거를 훔쳐 타는 서미혜와 관계를 맺게 되는 1990년대이며, 여기에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매개로 한 '나'의 어린 시절과 '서미혜'의 어린 시절이라는 두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서미혜가 '나'의 자전거를 훔쳐 탐. → '나'는 영화 '자전거 도둑'을 연상함. → '나'의 어린 날의 곤혹스런 추억①(도둑 누명) → '나'는 서미혜와 영화 '자전거 도둑'을 같이 봄. → '나'의 어린 날의 곤혹스런 추억②(혹부리 영감의 죽음) → 자전거 도둑 서미혜의 과거 고백(오빠의 죽음) → 오늘날의 풍정(서미혜는 다시 다른 자전거를 훔쳐 탐.)

여기서 오늘날의 풍정은 '나'가 '미혜'의 고백을 듣고 난 뒤 '미혜'와의 만남을 기피하게 되고, '미혜'는 '나'의 자전거에 손을 대지 않고 낯선 새 자전거를 타는 것을 말한다. '나'가 '미혜'를 기피하는 것은 도덕성 때문이고, '미혜'는 이런 '나'를 그녀답게 조소해 버리는 것이다. 이 관계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이 소설의 플롯이다. <자전거 도둑>은 플롯이 매우 짜임새 있고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회상적)

◆ 배경

* 현재 → 1990년대 서울 주변의 신도시

* 과거 → 두 인물의 유년기 고향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 각기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작품이 진행됨.

* 역순행적 구성(현재 - 과거 - 현재)

주제 ⇒  인간 관계에서 발생한 유년기의 내면적 상처 환기

◆ 출전 : <문예중앙>(1995)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에서 '나'와 '브루노'는 서로 동일시되고 있다. '나'와 '브루노'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해 보자.

⇒ 나의 아버지는 소주 두 병 때문에, 브루노의 아버지 안토니오는 자전거 때문에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모를 당해야 했다. '나'와 '브루노'는 가난 때문에 아들 앞에서 무너져 내려야 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한 유년기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2.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미혜는 더 이상 '나'의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다시 훔쳐 타고 있다. 서미혜가 다른 자전거를 훔쳐 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 서미혜는 오빠를 다락에 가둔 채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그녀로 하여금 자전거 도둑이 되게 한 것이다. 즉 그녀는 '자전거 도둑 → 간질 → 오빠'로 이어지는 매개의 연속에서 스스로 자전거 도둑이 됨으로써 오빠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심리적 보상 욕구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훔쳐 타는 것을 '나'가 알아 버렸으니 그녀는 더 이상 자전거 도둑이 될 수 없다. 그녀는 반드시 자전거 도둑이 되어야만 오빠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따라서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 여전히 간질이었던 오빠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작품에서 '나'와 '서미혜'는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으면서도,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차이점 또한 있다. '나'와 '서미혜'가 느끼는 감정의 성격이 다르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

⇒ 나의 상처는 무능한 아버지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원인 제공자였던 가해자 혹부리영감에게 복수를 했다. 아버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스스로가 가해자의 입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혹부리영감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미혜의 상처는 오빠에서 비롯되었으면서도 기실은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간질 발작을 일으킨 오빠는 혹부리영감 같은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가 상처투성이었음에도 서미혜는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즉 상처에 상처를 덧칠한 것이다. 따라서 서미혜가 느끼는 죄책감은 나와는 다르게 회복하기 힘든 성격의 것이다.

4. 혹부리영감이 아버지로 하여금 '나'를 벌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 혹부리 영감은 소주를 훔친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면서 아버지에게 아들을 벌주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아픔을 더 처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 더 읽을거리

◆ 김소진(1963~1997)

도시적 감수성의 개인주의가 득세하던 90년대에 김소진의 작품은 도시 서민들의 곤궁한 삶과 거대조직에서 낙오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 어린 묘사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현장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특히 작가 특유의 질박하면서도 다듬어진 한국어는 눈밝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주목의 대상이었다. 95년부터는 다니던 신문사마저 그만두고 '전업작가'로서의 의욕을 불태웠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췌장암이 그의 운명을 덮쳤고, 동료 문인들의 간절한 기원을 뒤로 하고 끝내 97년 4월 34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 인터넷에서 퍼온 글

요절한 문인의 죽음이 대개 그러하듯 김소진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자신의 유년시절 미군과의 억압적 관계와 비교하며, '한국' 사회에서의 '나'를 환기시킨 <달개비꽃>의 발표 시기가 95년이었다. 이러한 그의 적확한 현실감각이 그의 이른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본고는 김소진의 작품 세계를 아버지와 가족사 문제, 민중들의 삶에 대한 형상화, 90년대 지식인의 갈등이라는 세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의 리얼리즘적 성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바탕으로 김소진이 결국 아버지의 삶이 우리 민중의 삶이었으며, 또한 그 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는 기억을 통한 글쓰기가 결국은 현재와 맞닿아 있음을 분명히 하고 '헛 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자리를 모색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는 김소진의 건강한 민중관이다. 김소진의 민중들의 삶에 대한 형상화는 70년대 자기 체험에서 끌어올린 공동체적인 애정관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달동네 민중과 현 사회 민중에 대한 묘사는 과거의 기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과 삶에 대한 긍정을 현 사회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80년대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민중관을 넘어서는 것이다.

80년대 이후의 지식인 상 비판이 그 마지막이다. '헛 것'에 과도하게 경도되었거나 변절한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요, 현실에 순응해 가는 소시민적 지식인들에 대한 자기 풍자까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는 김소진의 균형 감각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열린 사회'라는 것이 관념적인 '헛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튼실한 윤리 감각 위에 세워져야 할 민중의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 세 축은 명확한 경계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도시 민중의 일상적 삶과 전쟁과 분단으로 비루한 삶을 영위해 나갔던 아버지의 초상, 변혁적 이념에서 변절한 지식인, 소시민적 지식인의 사적 욕망 등을 다양하게 형상화해 내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에 대한 현실적 묘사는 80년대 리얼리즘이 갖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면서 90년대의 신세대 작가들로 구분되는 이들의 소설과 변별점을 갖는 지점이다. 특히 김소진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많은 90년대 작가들의 거부하는 세계에 여전히 시선을 고정시키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보여줌으로써 90년대 소설사에 있어 독특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이 밑바탕에는 균형감 있는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한 '윤리의식'과  역사를 인식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김소진이 소설로 완성하려던 궁극적 목표는 문학을 통해 민중의 삶에 기여하는 것,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 김소진의 회상적 글쓰기

김소진이 소설을 발표하던 90년대는 이데올로기적 대립 구도가 무너지고 사회 전반에 탈정치화가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이때 김소진은 이념의 시각에 의해 간과되어온 '사소한 개인'을 당대 현실 속에, 역사 속에 복원해 놓으면서 민중의 삶과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 사회와 역사를 재현한다. 그의 시각은 역사에 대한 상투적 인식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소설쓰기를 통해 '근대적 주체'가 가지게 되는 새로운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김소진의 역사의식은 표현 매체인 언어와 구성방식인 회상 기법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의 '육화된' 언어 사용은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반역사주의적 태도와 관련이 있으며, 역사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한 글쓰기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소설 구성에 있어서도 영향을 준다. 회상을 통한 글쓰기는 실체로서의 역사를 환기하는데, 이에 김소진의 소설은 회상의 글쓰기와 반성적 역사의식이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윤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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