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배(1995) -윤후명- |
◆ 소설 읽기 |
● 줄거리 |
나는 얼마 전에 세검정으로 이사를 했는데, 옆집과의 경계에 속한 축대 밑 땅에 침엽수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옆집에 드나드는 정원사에게 물어본 결과 그 침엽수가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나무를 통해 지난 가을 어느 날 먼 나라로 떠났던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그곳 중앙아시아에 가게 된 것은 '문류다'라는 여자가 쓴 「말 배우는 아이」라는 한 편의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아이에 대한 글이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실상이 알려지게 되었고, 한국 교육원은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그곳에 들어가서 동포들에게 모국의 말과 글을 비롯하여 역사와 문화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내게 그 글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담당자라고 칭하면서 그 글에 대한 평을 부탁했다. 또, 가능하면 한국의 발표 기관에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취재 일거리를 한 건 엮어서 러시아로 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 여행에 중앙아시아를 함께 들를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글의 주인공인 소년을 만나보는 것도 좋으리라 여겼고, 글을 쓴 류다가 주인공 소년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마중나온 한국 교육원 직원은 중앙아시아가 처한 오늘의 현실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애쓰고 있었으나, 그 대부분은 비행기를 타고 오며 옆에 앉은 두 한국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거나 민족주의의 횡포로 우리 동포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신문에서도 다 본 적이 있는 얘기였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나는 서울에서와 달리 이제 비로소 내 방, 내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 그는 교육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답게 말했다. 비록 우리 민족이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그곳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쫓겨왔어도 우리 민족만의 그 교육열 때문에 비교적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에 50달러 하는 호텔 방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빵을 몇 개 가져다 준 다음 위험에 대해 몇 마디 더 강조하며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가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꺼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얼마 전에 내게 글을 보여주었던 류다가 지금 어디 있는지 물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류다에 대해 꼭 물어봐야 했다는 쪽으로 몰입되었다. 모국어를 배우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다음 날 느닷없이 교육원에서 전화가 걸려 와 마침 차편이 있어서 내가 있는 호텔로 보내니 우슈토베라는 곳을 다녀오라고 거의 강권하다시피 했다. 그리하여 한글학교 선생과 함께 우슈토베를 향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우연히 류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한글 선생이 류다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류다라는 여자가 그런 글을 써서 거기서 상을 받았으며, 그 글이 '고려일보'에도 났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도 우슈토베가 고향이라고 했다. 한글 선생은 우슈토베에 도착하자마자 류다의 오빠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여 점심 때 식당으로 불러냈다.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오빠 친구는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알마아타에 살던 그녀네가 키르키즈스탄으로 간 것은 벌써 몇 달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키르키즈스탄에는 이식쿨이라는 큰 호수가 유명한데, 사철 눈이 쌓인 천산의 봉우리 아래 있는 그 호수는 소련 시대에도 휴양지로 유명했다고 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내 머리를 자극했다. 그러던 나는 한글 선생이나 미하일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곳까지 가 볼 수는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말에 미하일은 한참 동안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마침내 자기도 이 기회에 류다의 오빠를 찾아가 한번 만날 겸 같이 가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하여 출발한 여행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왼쪽으로 천산의 지맥을 바라보며 그저 짧고 빈약한 풀들이 펼쳐진 초원의 한가운데를 평균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만 갈 뿐이었다. 계절은 그곳 동포들 말로 '여자 여름'인 초가을인데도 벌써 초원은 누런 풀들뿐이었다. 출발한 지 네 시간쯤 지나서 카자흐스탄의 마지막 마을인 게오르기예프카 마을을 지나고 멀잖아 키르기즈스탄 땅으로 들어섰다. 카자흐스탄 땅과는 다르게 키르기즈스탄 땅은 푸른빛이 짙었다. 그곳이야말로 진짜 초원이며, 여지껏 황량한 풍경에 비하면 낙원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대평원은 차를 달려 나아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결국은 양쪽의 두 산맥이 마주치며 좁은 협곡을 만들고 있었다. 여덟 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하여 우리는 하룻밤 묵을 방을 구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먹을 것도 없었을 뿐더러, 난방이 필요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방안에는 온기라곤 없었다. 허기와 추위를 달래며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류다의 오빠 비탈리를 만난 것은 다음날 아침 깨어나자마자였다. 날이 밝자 즉시 미하일이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했다. 나는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때 무심코 눈을 든 나는 웅대하고 장엄한 산이 검푸르게 앞을 가로막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시사철 눈쌓인 산봉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역시 직접 본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내가 그 설산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걸 안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차에 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하일에게 류다는 어디 멀리 있느냐는 식으로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뜻을 미하일이 비탈리에게 무엇이라고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고갯짓에 그가 다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우리는 텅 빈 유원지를 가로질러 이식쿨로 향했다. 이식쿨에 도착하여 나는 드넓은 호수의 푸른 물을 바라보았다. 멀리, 산봉우리가 푸른 물에 비치고 산봉우리의 흰 눈도 푸른 물에 비치고 있었다. 과연 깊고 넓은 호수였다. 호수 구경을 다소 싱겁게 마치고 돌아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소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 뒤를 돌아다 본 미하일이 퓨다가 왔다고 소리쳤다. 그들끼리 서로 몇 마디의 러시아말이 오가고 난 뒤에 내가 소개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라고 또박또박 인사를 건네며 맑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을 여행하며 느낀 미진한 마음이 그녀의 "안녕하십니까"에 눈 녹듯 스러지는 듯 싶었다. 그녀가 그 그늘에 서 있던 나무가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였다. 아마도 유원지(휴양지)가 북적거리던 시절, 무슨 기념으로 심은 나무일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매우 짧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곧 알마아타로 돌아가야 했고, 또 내가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안녕하십니까"를 전혀 새로운 의미로 말하는 처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서 호수를 바라보았을 때, 물에 비치던 하얀 만년설의 산봉우리를 눈에 그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러시아 전설에 나오는 하얀 배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깨달은 나는 입속으로 가만히 "안녕하십니까"를 되뇌었다. |
● 구성 단계 |
◆ 발단 : '나'는 러시아 취재 여행을 계획하던 중 류다의 글(사이프러스 나무를 매개로 한 '말 배우는 아이'라는 제목의 글)을 접하게 된다. '나'는 러시아로 가는 도중 류다를 만나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 전개 : '나'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파악하고, 류다가 사는 곳과 '하얀 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 위기 : '나'는 류다의 오빠 친구인 미하일과 이 씨 성을 가진 스타니슬라브와 함께 키르키즈스탄의 이식쿨 호수를 찾아간다. ◆ 절정 :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이식쿨 호수에 도착하게 되지만 호수를 보고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 결말 : '나'는 갑작스럽게 이식쿨에서 류다를 만나며, 우리말로 인사하는 류다를 만난 후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천산에서 '하얀 배'를 발견한다. |
● 이해와 감상 |
◆ 나는 우연한 기회에 중앙아시아의 한 마을에서 한국어(모국어)를 배우고 있는 '류다'라는 고려인 처녀가 쓴 <말 배우는 아이>라는 글을 읽는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류다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수만 리 낯선 이국땅에서 고려인 처녀의 입을 통해 듣는 '안녕하십니까'라는 평범한 모국어 인사말은 전연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오며 나는 민족과 우리말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는다. 사실 나의 그 기나긴 여정은 갇힌 삶, 뿌리뽑힌 삶, 현실 질서에 묶인 남루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탈출 욕망의 실현이다. 그리고 외부 세계에의 동경과 그 구원의 표상인 '하얀 배'를 찾아 떠나는 류다라는 인물을 향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부터 천리마의 전설이 깃들인 초원,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며 그 밑이 바이칼호와 통한다는 호수 이식쿨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나의 눈에 비친 풍경이 섬세한 서정적 언어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간간이 국내에서의 나의 곤궁한 삶이 회상 형식으로 교차되면서 소설 속의 언어 · 공간 · 인물의 세 요소가 마치 하나의 섬세한 직물처럼 짜여지고, 여정의 온갖 행위와 이야기들은 거기에 잘 어울리는 무늬로서 존재한다. 중앙아시아의 그 넓은 공간―작가가 만들어 낸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언어 공간―은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보여주기'로 옮아가는 소설미학적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이 작품에서 류다는 우리말의 순수성을 간직하여 미래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상징적 존재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삶과 모국어의 의미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언어를 통해 '하얀 배'라는 환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1995년 제1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윤후명은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여로형 소설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작품화하고 있다. ◆ 윤후명 소설의 특징 윤후명의 소설은 '존재 탐구를 위한 여정'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윤후명은 대부분의 작품을 항상 어딘가로 떠나는 자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숙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하얀 배>는 주인공이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스토리는 빈약하다. 다만 여행지에서 보고 들을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거나 내면을 환기함으로써 자아성찰의 매개체로 삼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체 역시 자성적 에세이류에 가깝다. ◆ 제목 '하얀 배'의 의미 1. 표면적 의미 → 키르키스스탄의 소설가 칭기스 아이트마토프의 소설 제목이다. 아이트마토프의 이 소설은 부모가 이혼해 할아버지 집에 와서 살게 된 소년이 호숫가에 떠 있는 '하얀 배'를 보고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배를 따라가기를 꿈꾸는 이야기인데, 이는 버림받은 이들의 노스탤지어를 상징한다. 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류다라는 소녀가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을 그리워 한다는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과 구제의 표상'임. 2. 상징적 의미 * 류다 → 조국에 대한 동경 * 나 → 류다를 통해 느낀 감동을 표현하는 소재 |
● 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현대, 중편, 여로형 소설 ◆ 배경 * 현대 * 서울과 중앙아시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상 특징 * 상징적, 환상적 성격 * 이국의 풍경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제시함. * 자전적 성격의 여로형 소설임(여행에서 만난 대상을 통해 자신의 삶과 그것을 이루는 요소들의 의미를 깨달음). * 우리말의 소중한 가치를 신비로운 공간과 결합시켜 새롭게 일깨워 줌. * 기행문적 성격을 지님(여정에 따른 견문과 감상이 드러남). * 상징적 소재를 활용해 주제 의식을 전달함(하얀 배-동경, 사이프러스-이방인). * 동명의 키르키즈스탄 소설 <하얀 배>(칭기스 아이트마토프)와 관련이 있음. ◆ 주제 ⇒ 고국을 그리워하며 민족어를 지키고 있는 이산민들의 삶에서 받은 감동 |
● 더 읽을거리 |
◆ 퍼온 글 이 작품의 서술자는 작품 속의 기자이다. 카자흐스탄의 문 류다라는 사람의 글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카자흐스탄에 가게 된 서술자의 여정을 그리면서, 중앙아시아의 이국적인 풍광과 재외 동포들의 삶과 의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 아름답고 신선하고 감동적인 언어 공간 -이어령- 윤후명의 <하얀 배>를 읽으면서 이상의 <공지>가 생각났다. 아직도 도시에는 공지라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상은 빌딩과 아스팔트에 파묻힌 도시 풍경을 바라보면서 천하에 '두 다리를 뻗을 만한' 공지조차 남아 있지 않음을 탄식한다. 덕수궁의 연못에 얼음이 얼어 갑작스레 뜻하지 않은 공지가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가도 그 위에 스케이트를 지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는 곧 실망을 한다. 도심에서 잡초가 우거진 공터를 목격하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곧 고층 빌딩이 들어설 빌딩 신축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절망한다. 결국 그는 자기 방 속의 왜꼬아리 화분의 흙을 바라보면서 천하에 공지라고는 요 분 안에 놓인 땅 한 군데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다리를 뻗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공간이라고 탄식한다. 만약에 이상이 우리 곁에 있어 그 같은 '공지 찾기'를 소설로 썼다면 바로 윤후명의 <하얀 배>와 같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후명의 그 공지 탐색은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와 류다라는 교포 소년, 아니 소녀에 의해 펼쳐진다. 낙타가시만이 있는 사막에서 천리마의 전설이 사는 초원 그리고 천산과 그 만년설이 녹아 흘러 만들어 놓은 호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낯선 공간의 이미지와 상징의 그물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 내부에 남아 있는 삶, 더 좁혀서 말하자면 오염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국인의 생명력과 그 역사의 바탕을 보게 된다. 그러나 윤후명은 과거의 흔적으로서의 '공지 찾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얀 배'에 이끌려 도달하게 될 '공지 만들기'로 나간다. 거기에서 창조된 공간과 인물이 바로 유원지의 사이프러스 나무 밑에 서 있는 류다라는 한 인물을 향한 탐색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류다는 미래를 만들어 내는 공지로서의 언어인 '한국말'이기도 한 것이다. 류다가 막 배우기 시작한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 말입니다!" 라고 외치면 갑자기 '개양귀비 꽃밭이 수런거리고 숲속의 들고양이들이 귀를 쫑긋거리고 커다란 까마귀들이 전나무 가지를 치고 날았으며 사막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돌소금이 하얗게 깔린 사막으로 큰 바람이 불고 천산에서 빙하가 우르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중앙아시아의 그 공간' ― 윤후명이 만들어 낸 이 아름답고 신선하고 감동적인 그 언어 공간은 '이야기'에서 '보여주기'로 옮아가는 소설 미학의 궁극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소설 속에서는 언어 · 공간 · 인물의 세 요소가 섬세한 하나의 직물처럼 짜여져 있으며 온갖 행위와 이야기들은 그 무의의 하나로서 존재한다. "안녕하십니까"라는 평범한 인사말인데도 전연 새로운 의미로 들려오는 류다의 그 '한국말' 그리고 멀리 동방의 조상 나라를 동경하며 마음속에 그리는 전설의 '하얀 배'는, 바로 우리가 앞으로 써야 할 '소설 언어'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 아름답고 꿈 같은 작품 세계를 부각한 <하얀 배> -최일남- <하얀 배>는 윤후명의 장기를 다시 살린 작품이다. 일단 바깥으로 나갔다가 자화상으로 유턴하는 안목인데, 이번엔 말에 중심을 두었다. 중앙아시아를 달리며 만나는 나무와 강과 마을과 국경 묘사는 아름답다. 그리고 막막한 꿈을 꾸게 만든다. 천산 아래 호수까지 허위단심 찾아간 '류다'와의 상면을 불과 몇 줄로 처리한 절제의 묘라든가, 소녀 곁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자기 집의 그것을 연결시키는 능청에 격이 있다. 하지만 소설의 배가 너무 부르다. 중간에서 의도적으로 해설하는 시간이 지루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나들이 길의 사유를 통해 나를 응시하는 작법이 좀 잦은 것 같다.
◆ <시사저널>에서 문학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어이다. 문학은 일인칭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일인칭의 언어이다. 최근 단편 <하얀 배>로 '95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윤후명 씨의 수상 소감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문학은 바깥으로 나아가 외치는 문학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물음을 던지는 문학"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일인칭 질문의 한 절정이 <하얀 배>였다. 사이프러스라는 침엽수와 류다라는 중앙아시아 동포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언어에 의지해 소설은 카자흐스탄 ― 알마아타, 우즈베키스탄 ― 타슈켄트, 키르기스탄 ― 비슈켁, 타지키스탄 ― 듀산베를 찾아간다. 이 지명에 낯선 만큼, 우리는 우리 근대사의 비극에 낯선 것이라고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하얀 배>는 역사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개인의 내면과 언어의 뿌리를 천착한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느니 저떻느니 하는 투의, 이른바 큰 이야기는 내 몫이 아니었다' 고 소설의 화자 '나'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중앙아시아는 먼저 단절감과 고립감으로 다가온다. 한국어를 쓰면 호텔값을 비싸게 치러야 한다며 '나'의 입을 틀어막는 현지 동포의 충고 앞에서 모국어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나'의 취재 여행은 류다라는 한 동포 여인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뀌는데, 류다는 서울에 있는 '나'에게 <말을 배우는 아이>라는 수필을 보내온 여인이었다. 류다가 쓴 글은 들판에 나가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 말입니다.'라고 외치며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한 동포 소년에 관한 것이었다. 모국과 중앙아시아는 일본어와 러시아어라는 '외국어'의 강제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국은 모국어를 되찾았지만, 모국어를 지키면서 러시아어를 함께 사용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지금 네 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자국 민족어 사용을 공식화하는 정책 앞에서 새로운 고통을 받고 있다. 동포들은 현지 '민족어'에 등한했던 것이다. 민족 분규는 본질적으로 언어 갈등이었다. 타의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들어갔던 고려인들은 다시 살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다시 유민이 되어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류다라는 젊은 동포 여인은 개양귀비꽃이 만발한 중앙아시아 들판에서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것이었다. 류다가 외치는 '안녕하십니까'는 결국 작가가 자기 자신과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에게 하는 진지한 인사말이었다. 무엇이 안녕하고, 무엇이 또 안녕하지 않은 것인가. 존재의, 민족의 안녕은 어디에서 말미암은 것인가라고 캐묻는 것이다. "떨어져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방법론이다. 아득한 곳에 가서 우리 정신의 핵심인 말과 그 안에 담긴 얼과 부딪쳐 본 것이다."라고 윤씨는 말했다. '협궤열차'를 타고 허무주의의 한 극지까지 다녀온 윤후명 씨는 그 시절을 '자멸파(자멸파)'의 세월이라고 말한다. 그 자멸파의 땅이었던 서해안을 떠나 이제 그는 언어 속으로 포복해 나아가고 있다. "자기 동질성이란 언어의 동질성이다. 자기의 본질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윤씨는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