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죽음(1923)

-현진건-  

◆ 소설 읽기  

● 줄거리

3월 그믐날 '나'는 시골 본가로부터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시골로 내려간다. 여든을 둘이나 넘은 할머니는 연로한 나이 탓에 작년 봄부터 기운이 쇠진하여 가끔 가물가물했었고 이미 여러 번 자손들이 바쁜 걸음을 하기도 했었다.

곡성이 들릴 듯한 사립문을 들어서니 할머니의 병세는 이미 악화되어 있었다. 멀리 떠나 있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 긴장된 며칠을 보내는 가운데 집안 내의 효부로 알려진 중모(仲母)는 할머니 곁에서 연일 밤을 새워 가며 할머니를 간호하고 빨리 기운을 회복하길 빌며 염불을 외운다. 그러나 이러한 중모의 행동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할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나' 또한 '놀라운 효성을 부리는 게 도무지 우리 야단칠 밑천을 장만하는 게로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는 정신이 흐릿해져 자손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된다.

할머니가 겪는 고통을 염려하기보다는 빨리 현재의 상황이 끝장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자손들은 직장으로 인해 무작정 눌러 있을 수도 없어, 한의나 양의를 불러 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내일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과는 달리 하루하루가 다르게 할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었고, 몇 주일은 염려 없다는 말에 안심한 자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떠나고 '나'도 할머니에게 곧 완쾌되실 거라고 위로하며 서울로 올라온다.

어느 화창한 봄날, 우이동 벚꽃놀이를 막 나가려는 때에 '나'는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 인물의 성격

◈ 나 → 위독하신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으며 진심으로 할머니를 생각하는 작중 화자

◈ 중모 → 효성이 지극해 보이나 형식적이며 집안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면이 강하며, 이를 구실로 자손들의 불효함을 꾸짖고 권위를 세우려는 인물

◈ 아버지 → 집안의 어른으로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나 중모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인물

◆ 할머니 → 죽음을 거부하는 허망한 몸짓으로 갈등의 요인이 되는 인물

● 구성 단계

◈ 발단 : 시골 본가의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음.

◈ 전개 :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이고, 중모는 극진히 간호를 함.

◈ 위기 : 중모의 행동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비웃음거리가 된 할머니

◈ 절정 : 모인 일가친척들이 호전되는 할머니를 두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떠남

◈ 결말 :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보로 받음.

● 이해와 감상

1923년 <백조>에 발표된 이 소설은 할머니의 임종을 중심으로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임종을 지키는 여러 가족들의 심리와 행동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마음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묘미는 구성적 측면에 있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깨끗하게 봄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우이동 벚꽃놀이를 나가다가 사망 전보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객관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하여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로 끝나는 대칭을 이루는 구조도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의 태도나 목소리는 비교적 담담하다. 이것은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있는 태도 때문이다.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행태를 담담히 서술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비극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냉정하게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의도는 할머니의 죽음이 주는 슬픔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심리와 행동을 그리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에 즈음한 일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리려고 한 것은, 할머니의 죽음 그 자체나 그 죽음의 슬픔이라기보다는 할머니의 죽음에 임하는 가족들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결국 할머니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더 집착하고 있음을 말하려고 한 것이 이 작품의 창작의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높이 사는 효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도덕적 우월감, 남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태도, 남의 고통의 한가운데로 접근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그것을 판단하는 일 등 인간의 삶에 내재된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두고 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산 중모의 효행에 담긴 의미 →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모가 예법을 다하여 정성을 바친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그려진 중모의 할머니에 대한 극진한 보살핌은 다른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만큼 지극하다. 이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모의 그 정성은 결국 자신의 도덕적 우월을 과시하고 강화하기 위한 점이 다분히 있는 것으로 그 보살핌은 결국 허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모가 할머니의 위중한 상태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닌 조카들을 야단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나온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1920년대, 3월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른 봄날~화창한 봄날)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상 특징

* 독특한 결말처리 → 극적인 효과와 아픔의 여운을 남김.

* 계절적 배경의 효과 →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대비하여 비극성을 돋보이게 함.

◈ 갈등구조 : 나를 비롯한 자손들과 중모의 갈등, 중모와 아버지의 갈등

◈ 주제 인간의 허위의식 풍자,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손들의 이기적 태도 비판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효'의 의미를 서술해 보자.

⇒ 근대화 이전 농촌에서는 효란 대가족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인 근대화 사회에 접어든 1920년대에 이르면 대가족 문화의 근간으로서의 효는 그 의의를 상실하고 만다. 젊은이 패들은 할머니의 임종 앞에서 어떤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느끼기보다 자기의 편의를 좇아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이것은 근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이익 추구라는 속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진정한 효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효는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더 읽을거리

 현진건의 작품 세계

제1기에서는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 지식층의 사회에 대한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전환기를 살아가는 인물이 과거의 전통적 요소와 새로운 근대적 요소의 부조화를 겪으며 비로소 자아에 눈을 뜨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 시대 의식을 각성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제2기에서는 식민지 정책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의식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모순을 파악해 낸다. 특히 사회 계층의 양극화 현상과 하층 계급의 불행을 주시했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심화, 확산되어 식민지 사회의 허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제3기에서는 1930년대 군국주의 시기에 이르러 탄압이 강화되자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유토피아 의식으로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 나갔다. 이러한 의식이 현실 도피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우나 타협의 가능성을 상실한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대응양식을 창출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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