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1960)

-최인훈-  

◆ 소설 읽기  

● 줄거리

이명준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이형도의 아들이다. 이형도는 박헌영과 더불어 남로당을 만들어 활약하다가 이북으로 도피한 자다. 그러나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철학도이다. 그에게는 넉넉한 집안의 딸인 윤애라는 사랑스런 여자 친구가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대치되어 있는 남북의 상황이 이명준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북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방송을 통해 남쪽을 비방 공격하는 선전을 하게 되고, 남쪽의 치안당국자들은 비위에 거슬리자 이명준을 불러 와 심한 추궁과 고문을 감행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명준은 세상이 싫어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여자 친구 윤애 집에 머물면서 바닷가를 배회하던 중, 이북으로 가는 밀선을 알선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명준은 이상적인 사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북으로 간다. 아버지는 민주주의 민족 통일 전선 선전 책임자로 있으면서 중류 부르조아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명준이 본 것은,잿빛 공화국이었다. 시민은 열기를 잃었고, 코뮤니스트들의 교양은 교조적인 것에 머물렀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일하는 보람이 아니라,위선과 독선, 치사한 아첨과 비굴이 넘치고 있었다.

명준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그의 아버지는 말없이 계속 따뜻한 정감을 자식에게 보여준다. 그런 어느 날, 자원해서 노동현장에서 일하다가 실족하여 부상을 당하게 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무용수인 은혜를 알게 된다. 퇴원해서 명준은 신문사의 명으로 남만주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집단 농장 취재를 떠난다. 거기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일종의 타성과 무기력뿐이었고, 이것을 기사화했을 때, 신문사 당간부들의 질책이 떨어지고, 개인주의와 소부르조아 근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의도를 왜곡시켜 기사를 쓴 자로 낙인 찍힌다. 그런 가운데서도 은혜와의 사랑은 익어가고, 은혜는 모스코바로 유학을 가도록 내정되고, 그러던 차에 6.25가 터진다.

전쟁 중에 명준은 북한 군관 신분으로 서울에 오면서 우익 사상범들을 다룬다. 거기서 뜻밖에 옛날 자기집 생활을 돌보아 준 변선생의 아들 태식을 만난다. 태식이 윤애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명준은 윤애를 농락하고 태식을 처형하고는 낙동강 전선으로 자원해서 나간다.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의 간호원이 되어 온 은혜를 만난다. 둘은 아비규환을 이룬 전선의 어느 동굴에서 사랑을 맹세하지만 약속한 다음 날에 은혜는 나타나지 않는다. 유엔군의 폭격에 그녀는 죽었고 명준은 포로로 잡히게 된다.

결국 명준은 북쪽과 똑같이 남쪽에도 그가 마음놓고 삶을 꾸려나갈 광장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휴전이 성립되고 포로수용소를 나오게 되자 중립국으로 갈 것을 희망한다. 그들을 태운 송환선은 인도로 향해가는 항로에서 남지나해를 지나간다. 뱃길에서 명준은 평소 익힌 영어 덕으로 통역 일을 본다. 그리고 그가 친해진 선장과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선장은 인도에 가면 조카를 명준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명준은 그런 말을 귀끝으로 흘린다. 그는 푸른 파도를 가르며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심한 고독을 느낀다. 그리고 바다를 푸른 광장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 날 명준이 탄 배에는 한 사람의 실종 사실이 선장에게 보고된다.

결국 명준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초월할 수 있는 광장, 이상적인 광장의 모습을 바다에서 발견하고 그 속으로 투신해 버리는 것이다.

● 인물의 성격

이명준 → 치열하게 남과 북을 오가면서 존재의 확인을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일종의 '지적 응석'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인물.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직시하고도 제3국을 선택한 것은 남과 북의 공간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음.

◆ 이형도 →  명준의 부친. 남로당원으로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 관리를 하고 있지만 명준에게 이상적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역시 회의의 대상이 됨.

◆ 선 장 → 명준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로 삶에 대하여 어느 정도 스스로의 가치관을 지님.

◆ 무라지 → 석방자를 실어 나르는 인도 관리. 나태하고 방탕하여 삶에 대한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임.

◆ 윤애 → 명준의 남쪽 애인. 명준이 월북하자 명준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하여 평범하게 살아간다.

◆ 은혜 → 명준의 북쪽 애인. 발레리나였으나 북한군 간호 장교로 종군하다가,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전사한다. 명준의 삶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인이다.

◆ 변성제 → 명준 아버지의 친구로 아버지가 월북하자 명준을 돌봐 준다.

◆ 영미, 태식 → 변성제의 자식으로 전형적인 부르조아 인물이다.

● 구성 단계

◆ 발단 :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 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로 S서에 호출되어 심한 폭행과 모욕적인 취조를 받는다. 이로 인하여 남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북한다.

◆ 전개 : 월북한 명준은 아버지의 주선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어 일하나, 공산주의 사회의 현실에 매우 실망한다.

◆ 위기 : 명준이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은혜가 모스크바 공연을 떠나게 됨으로써 헤어지게 된다. 이후 명준은 남부전선에 배치되어 전투하는 중에 간호원으로 나와 있는 은혜를 다시 만나게 되나 은혜는 전사하고 만다. 명준은, 인민군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된다.

◆ 절정 : 포로 교환시 명준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거부하고 제3국인 중립국을 택한다.

◆ 결말 : 명준이 배를 타고 제3국인 인도에 거의 도착할 무렵, 더 이상 자신이 서 있을 광장이 없음을 느끼고 배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벽](1960)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분단의 상황, 이데올로기적인 대립 속에서 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구정권 하에서는 감히 다루지 못할 소재를 다룬 것으로, 4 · 19가 가져온 자유당 정권하의 모순과 비리를 북조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광장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독재주의를 위장하고 서구적 자유의 풍문으로 가득 차서 진실한 광장은 없고 밀실만이 존재하는 남한의 부조리한 광장이며, 다른 하나는 혁명이라는 풍문 속에 갇혀 있지만 진정한 혁명은 존재하지 않고 혁명의 화석만이 존재하는, 밀실은 인정되지 않고 허위에 가득찬 광장만이 존재하는 북한의 광장이다. 이명준은 이 두 개의 광장 모두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며 제3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명준의 이러한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명준이 제3국을 선택한 것은 남과 북의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만 받아들인 자신의 한계 때문이다. 즉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제3국행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조국의 문제에 대한 투철한 인식도, 광장을 개선할 만한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갈매기와 파도 그리고 제3국의 허망성에 의한 영원한 광장에의 귀의가 이 소설의 의미를 더해 준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대상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적 문체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다분히 사색적인 성향과 추상적인 문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무의식의 공간을 끌고 가는 것으로 갈매기가 등장하는데 이 갈매기는 은혜와 그의 딸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한과 북한에서 자신의 광장을 찾지 못한 명준이 제3국이라는 밀실로 들어가는 데에 새로운 밀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이로써 명준을 자살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구성면에서는 과거 회상과 현재 진행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중립국으로 가는 배 안이라는 현재적 상황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택하여, 자신이 배에서 투신 자살하기까지의 인과 관계를 밝히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사회소설, 분단소설

                          - 관념적, 철학적

배경

⑴ 시간 - 6.25 전후 (광복∼전쟁 종전)

⑵ 공간 - 제3국으로 석방 포로들을 싣고 가는 배 안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있는 남한과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의 북한

⑶ 사상 - 분단 이데올로기와 실존주의

* 배경이 지닌 의미 (이 작품은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타고르 호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적인 배경은 우리 민족의 혼란기에 속하는 광복으로부터 종전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주인공은 남과 북을 오가며 방황한다. 작자는 남한의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 북한이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부자유를 보여줌으로써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실제의 시 · 공간적 배경은 타고르 호에서의 이틀, 회상의 시 · 공간적 배경은 광복에서부터 한국 전쟁 종전에 이르는 시기의 남한과 북한(주로 서울과 평양)을 설정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배경은 이데올로기의 실상과 허상을 밝히기 위한 장치로 이용된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독백체와 관념적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 띠고, 이명준의 심리적 갈등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장으로 표현해 낸다.

갈등구조 : 개인과 사회(이데올로기)와의 갈등

주제

*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미 추구

* 분단의 과정과 비극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과 전후소설과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

⇒ 전후소설이 전후의 상처와 그로 인한 절망, 그리고 무기력과 허무를 주로 그림으로써 전쟁의 본질적인 문제, 즉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다루지 못하였던 반면 이 작품은 남북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다룸.

2. 이명준이 제3국행을 택한 이유는 ?

⇒ 이념적 대립이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

3. 이명준의 자살을 결행하게 되는 이유는 ?

⇒ 중립국행 결의가 결국은 밀실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때 그는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부활을 꿈꾼다. 은혜와 그의 딸이 죽음을 통해 절대 자유와 평화로 재생되었듯이 부활의 공간인 바다에 뛰어들어 새롭게 소생하고자 함.

4. '주인공의 중립국 선택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현실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광장과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광장이 없는 현실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인 것이다.

5. '큰 새' 와 '작은 새'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은혜와 그의 딸의 화신으로, 죽음을 넘어 새로 태어난 부활의 상징이자 사랑의 결정체

6. '갈매기' 와 '바다'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이 작품 전체를 통해 갈매기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활용된다. 우선 이명준의 항해하는 내내 동행해 오던 갈매기는 이명준이 자살해 버림으로써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서 갈매기는 이명준의 의식이 투사된 대상이 된다. 또한 이명준은 두 마리의 갈매기에서 죽은 은혜와 죽은 자신의 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이명준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끝끝내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갈매기는 이명준에 있어서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 삶의 흔적이다. 자신이 탄 배를 끝까지 따라다니는 갈매기를 통해 이명준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을 만나고, 그런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한편, 이 소 설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원형적 의미로 쓰인다. 이명준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은혜와 그 아기에 대한 사랑의 희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인공은 인간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랑을 구한다. 여기서 자살은 가치 있는 삶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7.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①주인공이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의 문학적 상징과 ②'바다'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① 방황하는 회색 지식인인 명준의 새로운 탄생으로 이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 또는 역사에 절망한 지식인의 마지막 항거의 몸짓

② 바다(=푸른광장) :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초월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광장이요, 자유와 이상이 넘치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 더 읽을거리

◆ 소설에 나타나는 광장과 밀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 광장은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을 맞기 위하여 현실과 교차되는 장소이며, 타인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사회적 실현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밀실은 현실로부터 차단된 곳이지만 자유가 보장되는 자기만의 공간이다.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이다.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란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의 상호 관계와 작용 속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 사회의 역사적 조건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갈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영위하는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의 '밀실'이라는 두 개념을 통해 남과 북의 당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남한은 토론의 장으로서의 광장이 사멸하고 독재주의를 위장한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이 난무하고, 타락한 개인의 밀실만이 존재하는 텅빈 광장이다.  북한은 정열이 없는, 혁명이라는 풍문만이 난무하고 진정한 자유가 없는 구속의 공간과 이데올로기의 밀실만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광장이 부재하는 남한과 진정한 밀실이 부재하는 북한의 현실인 것이다.

주인공 이명준이 추구하는 세상은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며,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광장과 밀실이 단절되어 있는 남북한의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은 한국 전쟁이라는 광장을 거쳐 또 다른 밀실인 중립국을 선택하지만,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통해 이데올로기 선택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이러한 광장과 밀실이 서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 관련자료 : 『소설은 결국 '현실'이었다

《광장》의 삶을 선택한 전쟁 포로 주영복(朱榮福)씨와 최인훈(崔仁勳)씨의 만남

이명준이 '크레파스보다 진한' 남지나해 바다에 투신한 뒤 작가는 참 많은 항의를 받았다. "왜 그토록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게 했느냐"고. 그로부터 꼭 36년, 그리고 6 · 25가 터진 지 40년만에 작가는 '살아 돌아온' 이명준을 만났다. 이런 일도 있는가!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이명준이 '남지나해'(자살의 유혹)를 견뎌내고도 수십 년을 살아낸 것이다. 전 인민군 소좌 주영복. 그 스물 여섯의 청년 혁명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광장》의 작가와 마주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 이제 다시 《광장》을 쓴다면 이명준을 투신시키지 않을 것이다."

주영복씨는 이명준의 분신과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인민군으로 남하해서 반공 포로가 됐으며, 남과 북 양쪽에 절망하고 중립국인 인도를 택해 고국을 떠나는 생애의 큰 줄거리뿐 아니라, 그의 '전우' 이명준의 정신적 생애와 그 '인격'마저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그는 지적인 인물이며 절제된 페시미스트이다. 이명준이 타고난 지적 탐험가였으며 독서광이었듯이 그 역시 일어 · 러시아어 · 중국어에 능통하며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남다르다. 이명준처럼 솔로호프 · 톨스토이 · 위고와 같은 금서를 남의 눈을 피해 읽어냈으며, 자기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포로가 된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 어긋나게 무리의 대표격이 되어 더 큰 무게의 갈등과 맞닥뜨려야 했던 일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마리 갈매기와의 항해, 남과 북의 두 여인에게 찍힌 이 '각인'의 일치는 주영복과 이명준이 동일시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최인훈씨의 불광동 2층 응접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과 바로 그 역사의 탐구자라는 인연에다 동향인(함경도)임이 밝혀져 한결 자연스럽게 얘기가 풀려 나갔다.

 

<주영복씨의 생애 - 아직도 무국적자>

주영복씨는 김좌진 장군의 재정참모였던 주국언씨의 아들로 1924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났다. 일본군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차출되어 끌려갔으나 해방 후 고향 나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나서 북한 체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약혼녀 이인숙과의 결혼도 '불가' 판정을 받는다. 인민군 소좌로 6   25에 뛰어든 것은 그의 나이 26세 때. 수원에서 경옥을 만나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미군의 포로가 돼 거제도에 수용된다. 1954년 2월 중립국인 인도를 향해 출항, 배 위에서 돌아오지 못할 조국을 생각하며 몹시 울었다. 이후 브라질을 거쳐 현재 미국에 거주 중.

 

: 제가 분단 문제를 많이 다룬 작가라고 해서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신문 · 잡지사에서 연락이 오곤 합니다.

: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도 싫다, 남한도 싫다 해서 제3국으로 갈 때는 '타국에다 뼈를 묻는다.'는 비장한 각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서 과거도 고향도 다시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80년에 한국에 왔는데, 누가 "당신네들처럼 중립국에 간 사람 얘기가 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도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이때 최인훈씨가 자신의 저서 《광장》에 저자 서명을 해서 건네주었다.)

: 지금부터 30년 전에 쓴 것입니다. 그때만큼 그 당시를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을 거예요. 대학생이었는데 학년이 막 끝나 방학을 했을 때 신문에서 처음 포로 문제를 읽었어요. 전쟁이 끝나면 으레 고향에 간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북한 송환도 거부하고 남한에 남기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 숫자가 76명이든 7명이든 왜 이런 경우가 발생했는가? 여기에 한국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하는 충격이 오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 양해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 소설은 인도행 포로 76명 중 아무하고도 관련이 없이 제 상상의 공방에서 지어낸 얘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실대로 쓰는 기록도 아니고. 단지 그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한 한국인 청년의 운명을 지어낸다면 이런 청년을 그려내겠다 한 것입니다.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속'을, 죽음을 담보로 하고 선택해야 했던 현대 한국인의 정치적 초상화로서 말입니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겠으나 선생님께만은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것입니다.

: 이 소설을 쓴 목적이 우리가 인간 찌꺼기였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선의로 출발했다면 감사할 것이고 존경할 것입니다.

:  제 나름의 동정과 이해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믿습니다. 6 · 25는 어느 한쪽도 정의를 가지지 않은 전쟁이었어요.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실력을 겨룬 것뿐이지요. 그런 전쟁에서 절대절명의 명분도 없이 죽은 영혼을 위무할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중립국을 택한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은 골짜기를 걸은 것이지요.

: 사실 저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립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민군 소령까지 한 데다 POW(전쟁 포로)라는 글자가 평생 따라다닐 테니 조금만 삐걱하면 요주의 인물이 되었을 거예요. 물론 북에도 여기 안기부 같은 것이 있지만, 날개를 쭉 펴고 노래하며 밭갈이하는 것을 둥경한 나를 그렇게 두들겨 팼어요. 맞고 보니 적개심이 생기더군요. 두 주권에 봉사했으나 패가망신했고 두 주권에 반대했더니 '요놈의 회색분자" 해요. 김일성은 회색 분자를 이승만보다 더 증오해요. 하여간 엎드린 김에 뭐한다고, 살다보니깐 이젠 중립국이 더 좋은 것 같아요.

: 저는 일제 하에서도 살았고 김일성 찬가도 불러보았습니다. 장교로 국군에도 복무했고 지금은 서울시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모두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본)이 나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속였고 김일성이라는 사람은 청산리 전투 같은 큰 전과를 올린 독립 선배도 있는데 감히 그들을 제치고 공을 독차지했어요. 김일성 정도의 애국자와 항일 운동자는 그 위패를 모시자면 큰 수레 여러 대에 차고 넘쳐요. 그러나 그는 어떤 경위에 의해 뽑혀 나왔을 뿐이고, 그 전과가 그저 그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권위를 주장했어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이승만은 독립 운동 과정에서도 동지들에게 폐를 끼친 사람이예요. 4 · 19까지 그가 나라를 다스린 태도는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노인이 했던 것 이상이 못 되었어요. 미국에서 그만한 문명을 보았던 사람이 말입니다.

: 저는 일본 · 러시아 · 북한 · 남한 · 인도 · 브라질 · 미국 등 7개 나라의 국가를 부르며 살았어요. 지금도 무국적으로 남아 있고, 통일된 조국의 국가를 한번 더 불러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제주의라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국경이 없이 모든 사람이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무국적으로 40년 간을 떠돈 그가 내린 결론인 '국제주의'는 최인훈씨가 또 다른 작품 《태풍》에서 제시한 미래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광장에서, 또 한 사람은 밀실에 칩거해서 집요하게 매달려 얻은 이 결론의 일치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 그런데 인도행을 결정했던 분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 인도 · 브라질 · 아르헨티나 · 멕시코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요. 이미 사망한 사람이 서너 명 되고 … . 그 후 이북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 서너 명 되는데 남한으로 온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인천으로 옮겨와 대기했다가 인도로 가셨던 거지요?

: 두트 준장 납치사건으로 수용소 내의 처절한 살상이 알려지자 그곳에서 북에 가겠다는 포로와 안 가겠다는 포로를 분류해, 가지 않을 사람은 육지로 보냈지요. 그런데 이 가지 않을 사람들은 '고향에도 못 가지만 공산주의를 했던 이력 때문에 남한도 안 될 것이다' 생각하고 인도 캠프로 탈출하기 시작했어요. 수용소 내의 반공 포로들의 과잉 애국심으로 분위기가 살벌했지요.

(최인훈씨는 이 때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 포로가 포로를 체포해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20세기 한국 포로 수용소에서 있었던 겁니다. 나도 위기를 감지했지만 결국 당했어요. 지하실에 한 달간 감금당했는데, 고문으로 절뚝거리는 체하고 지내다가 한밤에 철조망을 넘었어요. 공병 출신이라 성공했지요.

: 그럼 그 76명이 그런 식으로 탈출해서 모인 사람들인가요?

: 아니예요. 그러니까 1954년 1월 20일, 이 날이 중립국 관리위원단의 포로 억류 기간이 6개월이 되는 마지막 날인데 인도가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줬어요. 포로수용소 마당에 삼거리를 만들어놓고 똑바로 가면 남한, 왼쪽으로 가면 북한, 오른쪽으로 가면 제3국으로 가는 거예요. 이 삼거리에서 운명의 선택을 하는 거지요. 여기서 인도행을 선택한 사람이 40명이나 나왔어요. 이렇게 해서 인도 캠프에 모인 숫자가 약 1백명 되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탈출자가 생기더군요. 하여간 포로들은 수없이 저울질했던 거지요.

(《광장》의 이명준은 그 '저울질'의 순간을 이렇게 남겨놓고 있다. "북조선 같은 데서, 적에게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명준은 자기한테 돌아온 운명을 한탄했다. 제국주의자들의 균을 묻혀가지고 온 자로서, 일이 있을 적마다 끌려 나와 참회해야 할 것이었다. (…) 그렇다면? 남녘을 택할 것인가? 명준의 눈에는, 남한이란 키에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었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

: 결국 배에 올라서야 저울질이 끝나는 거지요.

: 인도까지는 며칠 걸렸습니까?

: 16일 걸렸어요. 인천에서 홍콩까지 4일, 홍콩에서 싱가포르까지 4일, 싱가포르에서 마드라스까지 8일 해서 16일이지요.

: 그동안 한번도 상륙하지 않았나요?

: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지요.

(최인훈씨는 이 부분을 몹시 궁금해 했다. 《광장》에서 이명준은 홍콩에서 상륙하고 싶어하는 포로의 대표격으로 양자간에 끼어 갈등의 순간을 겪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배 안에서의 이명준의 심정을 자살로 몰아가는 한 배경이 된다)

: 배는 얼마만한 크기였습니까?

: 2만 2천톤짜리였지요. 2차 대전 당시의 군대 수송선인데 시설이 아주 잘 돼 있었어요.

: 배에는 포로들 말고 인도군도 있었나요?

주 : 그렇지요. 당시 한국전에 참가한 5개 대대 약 5천명 중 일부와 함께 철수했어요. 선장은 영국인이었고 선원도 영국인이었어요. 선실이 넓고 이층 침대로 되어 있었지요.

: 선내 활동은 자유로웠나요?

: 예, 트럼프도 치고….

: 문은 한쪽에 나 있었나요?

: 예, 복도로 통하는 문이 한쪽에 있었고 다른 쪽엔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었지요. 폭이 약 40m 됐을까요.

(《광장》의 '타고르호'와 이 배가 아주 흡사해 배 위 아래의 정경 묘사에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자 작가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런데 이 미소는 다음 순간 주영복씨가 인천항을 떠날 때의 광경과 심정을 이야기하자 놀라움으로 변했다.)

: 인천에서 배가 움직이던 순간을 나는 평생 못 잊습니다. 아직도 나는 그때 갈매기를 못잊어요. "야, 인천 떠난다"하며 모두들, 인도군들까지 배 위로 올라왔어요. 아, 그런데 갈매기 50여마리가 일제히 따라오는 거예요. '야, 고향 갈매기가 따라오는구나.' '갈매기여, 우리와 함께 갑시다'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지요. 그런데 무정하게도 한 마리씩 이탈하고 마지막 두 마리가 마스트에 앉아 있어요.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는 두 마리가 배를 빙 돌더니 북쪽으로 휙 날아가버립니다. 그리고 갈매기가 없어진 하늘에 여자 둘의 얼굴이 나타나는 거예요. 야 이거 제가 미친 게 아닌가 했어요.

(이 대목은 이번 대담의 압권이었다. 《광장》의 독자라면 다 알겠지만 두 마리 갈매기는 이 책의 가장 주요한 '오브제'이다. 포로 이명준이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남지나해에 투신할 때까지 줄기차게 배를 따라오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를 반추하게 하는 것도 이 두 마리 갈매기이다. 이명준에게 이 두 마리 갈매기는 두 여성을 상징한다. 남쪽과 북쪽에서 각기 사랑했던 여인 윤애와 은혜. 한 명은 이명준의 첫사랑이요 또 하나는 이명준을 따라 인민군에 자원, 간호병으로 출격해 결국 폭격에 죽고 마는 여인이다. 그런데 주영복, 그가 인천항에서부터 갈매기를 그의 가슴에 포착하고 그의 여인들로 의인화하여 함께 항해하는 것이다. 마치 이명준과 갈매기처럼. 물론 항구의 갈매기는 개연성을 갖는 것이고 치밀한 작가라면 이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매기가 이처럼 큰 의미를 부여받은 채 함께 항해하고, 더구나 그것이 남과 북의, 그리고 과거의 두 여인으로 의인화된다는 것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대담의 자리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여기서 잠깐 주영복의 '갈매기'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의 갈매기 하나는 이인숙, 북에 두고 온 약혼녀이다. 둘 다 남쪽으로 넘어 간 반동 가족을 가진 처지인 이 한 쌍의 연인은 당으로부터 결혼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당시 인민군 장교 신분이었던 주영복은 "정 결혼하려거든 군복을 벗고 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뇌한다. 그러나 그는 출전했으며 곧 약혼녀가 자신도 함께 참전하면 당의 '충성도 시험'에 합격해 결혼이 성사될 것으로 생각하고 간호병으로 뒤따라 나갔다가 대동강 전선에서 폭격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또 하나의 갈매기는 경옥이라는 여인. 인숙이 죽은 후 주영복씨가 수원에서 인연을 맺은 여자다. 그녀는 결혼 후 2년만에 남편이 여순 바란 사건으로 죽고 오빠가 남로당원이었으며 부친이 월북하 '혁명가족'의 딸이었다. 그러나 경옥 역시 부역자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았다.)

: 그 겨울의 추운 기후가 어느 바다쯤 가니까 더워졌습니까?

: 홍콩에 가니까 목선에서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더군요. 어떤 목선에서는 바나나와 귤을 싣고 팔더군요.

(이명준이 남지나해 어디쯤에서 투신했다면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 그때만 해도 내가 젊어서 격한 마음으로 내 심정을 다 드러낸 느낌이에요. 지금의 나 같으면 자살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제2편을 위한 작가적 포석으로라도 이명준으로 하여금 그 아픔을 거쳐서 살아가게 했을 거예요.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지로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죽음과 마찬가지의 고독과 공포와 절망의 단계를 거쳤겠지요. 민족 공동체를 버리면서 거쳤을 영혼의 죽음에 대한 통과의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에게 그런 최후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았기 때문에 현행본에서는 갈매기 중 한 마리를 두 사람의 딸로 바꾸어서 생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적어놓았습니다.

: 아직도 '포로문학'에 관심이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 전쟁에 관한 것 이외에는 작가로서 열정이 별로 없어요. 전쟁이나 사랑이 자기 영혼에 한번 낙인 찍히면 일생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조그만 목소리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면 제3국을 택했던 사람들,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인훈씨의 말처럼, 오늘날 한반도는 그 기본적 구조가 그때와 똑같이 결박당한 채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그 때문에 오늘과 같은 두 사람의 훗일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불광동을 나와 임진각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주영복씨는 자꾸 목이 메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조국을 위하여' 등의 표어가 세워진 통일로를 달리며 내내 침묵을 지키다가 단 한 번 말문을 열었다.

"최선생, 임진각에서 그 다리를 건너 장단역을 지나고 개성쯤 가다 어느 지점에 서면 통곡할 것 같아요."

김현숙 기자(시사저널 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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