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1929)

-한설야-  

◆ 소설 읽기  

● 줄거리

주인공 창선은 간도로 이주해 갔다가 4년만에 처자를 이끌고 함경도의 어촌인 창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 사이 고향에는 벽돌집과 공장이 들어서고 낯선 사람들만이 오고 간다. 그리고 살 길은 공장의 노동자로 취업을 하거나 화전민으로 전락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얼마 못 되어서 이 고장 백성들은 상투를 자르고 공장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써 주는 것은 아니다. 맨 힘차고 뼈 굵고 거슬거슬하고 나이 젊고 우둥퉁하고 미욱스럽게 생긴 사람만 공장의 노동자로 뽑았다. 그리고 거기서 까불여난 늙고 약한 사람은 개똥밭 농사나 짓고 은어 부스러기 고기잡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살림을 온통 보따리에 꾸둥쳐 지고는 영원 장진으로 떠나갔다. 화전이나 해 먹을까 해서이다.

창선이는 요행이 고장 노동자로 뽑혔다. 상투를 자르고 감발 차고 부삽 들고 콘크리트 반죽하는 생소한 사람이 되었다.

● 이해와 감상

'창리'라는 작은 마을의 변화를 통해 식민지 조선이 일제에 의해 착취되고 자본주의화되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가난했지만 물고기가 풍성하게 잡히고 평화롭던 마을 창리에는 공장, 사택, 기찻길이 들어서고 창리 사람들은 구룡리로 이주해 간다. 창리의 변화는, 어업을 불가능하게 하고 마을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궁핍한 삶에 내몰려 화전민으로 떠돌게 된다. 이 작품은 이처럼 농어촌의 착취와 몰락, 이농을 기본으로 하는 식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창리 마을의 붕괴와 집단 이주, 청년들의 노동자화를 통해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소설이 다른 경향 소설에 비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식민 착취의 문제점을 민중들의 현실 생활에서 포착하고, 어촌 마을의 전원 생활과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주제의식만을 전면에 내세우던 당시 카프 소설의 관행을 탈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농민층이 분해되어 공장 노동자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식민지의 공업화가 결국 농어촌의 착취와 몰락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 또한 농민과 노동자가 서로 다른 계층이 아닌 동맹적 관계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간도에서 가난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돌아온 창선 일가의 눈앞에는 황폐하게 변해 버린 고향만이 펼쳐져 있다. 어린 시절 공동체의 즐거움이 남아 있던 고향은 사라지고 다만 헐벗은 고향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가난에 못 이겨 떠났고, 그리고 결국은 돌아온 고향에서 창선은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계층 이동을 한다. 표면적으로도 이 작품은 상당히 넓은 시간적 폭을 지니고 있지만, 그 공간의 범위에 있어서도 한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광범위함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창선의 개인사는 단순한 한 인물의 역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전 민중을 대표하는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민중의 계층 이동을 보여 주는 생생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을 통해서 보여지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계층 변화 과정은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그로 인한 간도 이주, 그리고 거기에서도 가난을 견디지 못해서 유랑민이 되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공장의 노동자가 되는 수난의 연속이다. <과도기>의 작품이 뛰어난 형상력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계층 변화의 과정을 조금의 작위적인 주관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면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의 프로문학이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지나치게 정형화시키느라 도식성을 많이 노출했던 데 반해서, <과도기>는 각 계층이 형성되기까지의 계층 분화의 과정을 역사적 안목에서 원인과 결과를 통찰해 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공동체적 삶의 형태와 그것의 붕괴 이후 간도 이주, 그리고 유랑민 생활, 그 뒤의 노동자로서의 생활의 시작이라는 작품 공간의 배열은 창선이라는 한 개인의 계층 이동 현상이 단순히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변화, 역사 발전의 변화에 원인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창선의 귀향이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작가 한설야의 새로운 전망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창선에게 있어 고향은 중복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숙명적 공간이다. 어린 시절의 건강한 삶에 대한 추억이 묻혀 있는 그리운 곳, 그러나 지금은 황폐할 대로 황폐한 불행한 고향, 그렇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 고향에 남는다는 마지막 결말 처리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새로운 도약을 예시하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과도기>도 이러한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1929년 신경향파 문학을 마무리하고 한 단계 비약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째, 이 작품은 당시 최서해로 대표되는 신경향파 소설이 주로 전망이 없는 폐쇄된 만주체험만을 다룬 데 비해 만주를 포기하고 귀향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둘째 귀향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조선의 농촌 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한편, 노동자 계층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었던 당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소설사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당대 소설사의 두 흐름을 이 작품이 통합했다는 데 있다. 당대 신경향파 소설은 최서해적 경향과 박영희적 경향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전자가 주로 사실이나 체험에 근거를 둔 창작 경향이라면, 후자는 주로 지식인 작가의 관념의 표출을 창작의 주요 방법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들이 극도의 궁핍 속에 놓여 있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가 없는 상태였고, 후자의 경우는 관념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낙관주의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두 한계를 일정한 수준에서 모두 극복하는 단초를 이 작품이 마련했던 것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작가 한설야는 노동자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투재아는 과정을 그린 <씨름>(1929), <황혼>(1936) 등을 발표하게 된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프로소설(프롤레타리아 문학)

배경 :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 특징

* 뿌리뽑힌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림.

* 고향 상실의 모티프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함.

* 식민지 조선의 자본주의화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함.

*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의 몰락과 농민의 노동자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림. 

주제식민지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뿌리 뽑힌 민중의 삶

● 더 읽을거리

■ 1930년대 전후의 프로 문학

* 프로문학의 성립 : 1930년을 전후해서 일제의 독점 자본은 만주와 중국 본토까지 지배할 야욕으로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 지방에 대륙 진출을 휘한 대공업을 발달시켰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새로 형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농민 운동과 함께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때마침 소련이 성립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급속히 유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회주의 사상을 작품을 통해 구현하려는 많은 작가들을 배출시켰다. 이들이 표방한 문학이 곧 프로문학(프롤레타리아 문학)이었으며, 그들의 조직이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KAPF)였다. 카프라는 조직이 결성되기 전부터 시작된 신경향파 문학은 프로문학의 초보 단계로 규정된다.

* 문학을 계급 투쟁의 무기로 파악하다. : 프로문학의 문인들은 기아와 공포가 지배하는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이 현실을 뒤엎을 주체로서 무산자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을 부각시켰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계급 투쟁의 고취에 예술이 봉사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강조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기영의 <서화><고향>, 조명희의 <낙동강>, 강경애의 <인간문제> 등이 주목할 작품으로 꼽히는데, 이 소설들은 대체로 생경했던 여타 프로문학 작품에 비해 높은 작품성과 사실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카프 작가들의 전반적인 작품들은 과도한 목적 의식으로 인해서 추상적인 관념이 앞서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 카프의 활동 : '염군사'와 '파스큐라(PASKYURA)'라는 두 좌익 작가 단체가 합쳐서 이루어진 카프는 박영희, 김기진, 김영팔, 이익상, 이상화, 김복진, 송영 등을 발기인으로 1925년 결성되었고, 조명희, 최서해, 이기영, 한설야, 임화, 안막, 권환, 김남천 등 당대의 젊은 문인들을 회원으로 하였던 강력한 문인 운동 단체였다. '내용. 형식' 논쟁 등 창작 기법과 작가의 예술관을 둘러싸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였던 카프는 1935년 일제의 탄압으로 와해됨으로써 그 이상의 변모를 보여 주지 못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시와 소설 영화 등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작품 활동보다 논쟁을 중심으로 한 평론이 주축이었다. 평론적인 주도자였던 임화, 창작과 평론을 겸했던 김남천, 낭만파 시인으로 출발하였다가 프로 소설과 평론을 전개한 박영희, 박영희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김기진, 초창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카프 해산을 전후하여 전향한 백철 등이 있다. 소설에서는 최서해, 이기영, 조명희, 김남천, 한설야, 이북명, 송영 등이 대표적이다. <상록수>의 심훈이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도 초창기 카프 조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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