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1981)

-이문열-  

◆ 소설 읽기  

● 줄거리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고죽은 5, 6세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의 손에서 자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죽의 아버지는 천 석 재산을 유람과 주색 잡기로 탕진하고 끝내는 건강까지 상해 서른 몇에 요절한 한량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개가를 해 버렸다고 한다. 숙부 또한 고죽이 열 살 되던 해, 그를 남의 손에 맡겨 버리고 상해로 독립운동을 떠난다. 숙부가 고죽을 부탁한 사람은 유명한 서예가 석담 선생이었는데, 그는 숙부와 동문이요 오랜 지기로,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는 영남 명유의 후예였다. 선생은 당시 뛰어난 서예가로 추앙받고 있었고 수하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집안도 넉넉해서 고죽 하나 거둬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죽을 거두어주기는 하되, 다른 문하생들처럼 서예를 가르쳐주지 않으려 한 점이다. 오히려 고죽을 신식학교에 보내 새로운 학문을 배우도록 했다. 그러나 고죽은 신학문보다는 석담의 서예 쪽에 더 마음이 끌렸다. 어깨 너머로 글씨를 배우고 석담 몰래 글씨를 써보던 고죽은 심지어 석담의 집안 살림까지도 도맡아 하며 서예를 배우게 된다. 고죽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재주가 뛰어나서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가 이미 온 동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석담은 이렇게 재주가 승한 아이는 오히려 염려가 된다고 한사코 제자 삼기를 꺼려했다. 심지어는 왠지 악연이라며 고죽을 내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죽을 문하에 받아들여 가르치지만 따뜻한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고죽은 이런 스승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스승의 곁을 떠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죽은 스승을 떠나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주를 뽐내기도 하고 부호의 지원을 받아 풍족한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스승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스승 또한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제자의 재주를 아끼고 있었다. 정신적 가치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예술을 추구했던 스승과 예술 그 자체를 추구했던 고죽은 서로 예술관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은 유언으로 제장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고죽 또한 그 유지를 받드는 것으로 석담에 대한 애증을 풀고 화해를 이루어냈다. 그 이후 고죽은 스승 못지 않게 저명한 서예가가 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다. 그리고 이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씨들을 사모으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스승이 말한 최고의 예술 경지 즉 금시조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일평생 자신이 완성해놓은 예술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다시 평가해보면 어딘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고죽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불살라 버린다. 예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거기에 못 미침을 깨달았기에 금시조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명성과 헛된 가치들을 버리는 이 순간, 고죽은 예술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 인물의 성격

고죽 → 작품의 주인공, 숙부에 의해 자란 고죽은 서예가 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그 후 스승에 대한 애증으로 일관한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거둬들여 불태운다. 스승 석담에 대해 애증이 많았고, 스승을 비판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관 즉 자신의 생각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나중에는 스승의 예술관을 이해하게 된다.

석담 → 구한말 서예가, '예(藝)'보다 '도(道)'를 더 우선시하는 인물. 어린 고죽을 거두어주고 문하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제자의 승한 재기가 진정한 예술을 창조해내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그를 혹독하게 다룬다. 예술이란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구성 단계

발단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전개 스승 석담은 고죽을 제자로 인정하지 않고 한사코 그를 내치려 한다. 고죽은 스승에 대한 애증 속에서 27살 때 집을 나가 약간의 성취감을 맛보지만 다시 스승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2년 뒤 겨우 용서받고 제자로 받아들여지나 고죽과 석담은 대립되는 예술관으로 이내 서로 논쟁을 벌인다. 다시 집을 나갔다 돌아온 고죽을 석담은 또다시 받아들여주고 이러한 애증의 사제 관계는 석담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위기 회상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고죽은 젊은 제자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난다. 화랑을 돌며 자신의 서예 작품들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절정 화랑을 돌며 자신의 예술 인생을 정리해가던 고죽은 삶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스승 석담의 예술관을 이해하게 된다.

결말 고죽은 그동안 모아온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게 하고 그날 밤 불길 속에서 홀연히 솟아오르는 금시조의 비상을 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둔다.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서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 세월에 걸친 대립 의식이, 죽음에 임박한 제자의 회상에 의해 펼쳐지는 소설이다. 글씨를 쓰는 것이 예(藝)인가 도(道)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愛憎)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고죽의 회상을 통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불사르게 한다. 그것은 석담과 고죽에 의해 대표되는 두 개의 상인한 예술관이 맞부딪치며 타오르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죽이 추구해 온 자족적(自足的)인 존재로서의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飛翔)을 본다. 스승이 그의 재기를 억누르기 위해 내려 주었던 교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무엇보다도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예술혼의 진정성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982년 제 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이문열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스승 석담과 제자 고죽 사이의 애증과 갈등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일명 예술가 소설로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문열은 <젊은 날의 초상>, <들소>, <시인> 등 예술가 소설 계열의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시조>는 그의 예술관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미주의 또는 탐미주의로 요약되는 이문열의 예술관은 주인공 고죽처럼 예술 지상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예술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는 없으며 예술 그 자체로 분명한 목적과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문열의 예술관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크게 부각되던 1980년대 상황에서는 많은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이 강한 우리 문단에서 작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이자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문학이 민중을 계도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당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이문열은 철저하게 문학 그 자체만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문열은 다른 작가들과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금시조>의 고죽은 그런 작가 자신의 분신처럼 보인다.

작가 이문열은 일견 두 예술가의 대조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고죽의 예술관이 더 가치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자율성과 유미주의에 대한 옹호는 작가의 다른 예술가 소설에서도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예술이 사회적 효용성에 봉사하거나 도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값진 것이라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야말로 고죽이 자기부정을 통해 이뤄 낸 예술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생동안 그 자신을 이끈 미적 충동의 총결산인 자기 작품들을 모두 불태우는 행위야말로 가장 예술지상주의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서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 세월에 걸친 대립의식이, 죽음에 임박한 제자의 회상에 의해 펼쳐지는 소설이다. 글씨는 쓰는 것이 예(藝)인가 도(道)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愛憎)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고죽의 회상을 통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불사르게 한다. 그것은 석담과 고죽에 의해 대표되는 두 개의 상이한 예술관이 맞부딪치며 타오르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죽이 추구해 온 자족적인 존재로서의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을 본다. 스승이 그의 재기를 억누르기 위해 내려 주었던 교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무엇보다도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예술혼의 진정성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중편, 순수, 유미주의 소설, 예술가 소설

성격 : 관념적, 이상적, 동양적, 현학적

배경

* 시간적 → 일제시대 ~ 1980년대

* 공간적 → 전국 각지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예술관의 차이

* 석담(스승) → '도(道)'를 중시하는 동양적 예술관(예술의 보편주의)

                        예술이란 정신적 가치 즉, 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 고죽(제자) → '예(藝), 미(美)'를 중시하는 서양적 예술관(예술의 상대주의)

                        예술이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쟁 : 매죽 논쟁, 예도 논쟁

제목의 의미 : 자기 부정을 통해 도달한 예술의 절대 경지

출전 : 현대문학(1981)

주제 스승과 제자가 추구해 온 진정한 예술혼

              자기 부정을 통한 예술혼의 완성

● 생각해 볼 문제

1. 제목 '금시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 고죽은 스승 석담이 써준 '금시벽해 향상도하'라는 글귀에 나오는 금시조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했다. 석담은 예술의 궁극적 이상태로 금시조를 제시해준 것인데, 이는 제자가 지나치게 재예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입으로 불을 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는 전설의 새 금시조는 마군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있다고 한다. 석담은 그런 힘찬 기상을 고죽에게 요구한 것인데, 막상 고죽은 다른 의미로 금시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석담과는 달리,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 대신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세를 보이는 금시조, 즉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금시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고죽이 꿈속에서 본 금시조는 그가 일생을 다바쳐 추구해 온 예술적 이상 즉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 더 읽을거리

걸작이라 불리는 예술 작품을 대할 때면 흔히 그 작품 내면에 담긴 예술혼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진정한 걸작이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모양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그것이 표상하는 내용의 위대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극도로 정제되어 작품에 주입된 예술가의 정신 그 자체라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정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언설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예술가의 천재적 재능일까 혹은 재능과 기예를 넘어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 그 무엇일까. 아니, 예술혼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경외심을 갖고 대해야 하는 예술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 시대의 앞서가는 예술가의 한 명으로서, 이문열은 아마도 자신을 붙들어매고 있는 예술이라는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금시조>를 썼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가 제시하고자 하는 예술과 예술가의 상(像)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정해진 답으로 이르는 과정의 사색과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한 혼란스런 노력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이 작품은 그 자신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이면서도 평생에 걸쳐 예술에 대한 고뇌로 방황했던 고죽의 노년 현실과 과거 회상이 계속 엇갈리며 진행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알려져 있는 대로, 두 주인공인 고죽과 스승 석담 선생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여 창조된 인물들이다. 석담 선생의 모델이 된 서병오 선생은 나이 18세에 대원군으로부터 석재(石齋)란 아호를 지어받고 시(詩), 서(書), 화(畵), 금(琴), 기(碁), 박(博), 의(醫), 변(辯) 모두에 능하다 하여 팔능거사(八能居士)로 불리웠던 한말의 거유(巨儒)이고, 고죽의 모델이 된 서동균 선생은 석재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화 공부에 정진하며 평생 대나무 그림만 그리겠다는 뜻으로 죽농(竹農)이란 아호를 썼으며 말년에는 초, 중년에 남발한 자신의 타작들을 대부분 찾아내어 모두 불살라 없앤 후 타계한 인물이다. 비록 허구적 상상력에 바탕한 소설이긴 하나, 그 제재를 실제 존재했던 현실에서 취했다는 점은 소설적 긴장을 더욱 팽팽히 유지시켜 주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고죽과 석담 선생은 운명적으로 서로 대립적이며 상호 지양적인 관계에 위치지워져 있다. 숙부의 손에 이끌려 석담 선생의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된 그 순간부터 석담 선생은 열살 난 고죽의 예인적 기질과 그 운명을 직감했던 것이다. 석담 선생이 무너져 가는 전통의 끝자락에서 기예(技藝)가 아닌 도(道)를 완수하고자 애썼던 인물이라면, 고죽은 예술을 예술로 대하지 않는 전통에 반발해 유미적 가치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이들의 대립은 이른 바 매죽 논쟁과 예도 논쟁을 통해 첨예하게 드러난다. 대상에 충실한 물화(物畵)를 지향할 것인지 아니면 물(物)의 실상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그려내는 심화(心畵)의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가 소설적 긴장을 유지하는 핵심적 대립 구도이다.

석담 선생의 명성과 기품에 눌린 채 자신의 예술을 뜻대로 펼치지 못하던 고죽은 스승에 대한 반항과 재능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심에 세속으로의 방랑여행을 떠난다. 제법 안목이 있는 돈많은 지주나 지역의 유지들에게 서화를 그려주고 그 대가로 향락과 돈푼을 제공받는 나날들이 계속되지만, 그러한 생활은 그의 예술적 성취욕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하고 자괴감만 키워줄 뿐이다. 값싼 찬사와 경망스런 환대 속에 방랑하던 그가 매향을 만나 벌이는 행동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매향의 속치마 위에다 고죽이 태연한 척 그려낸 것은 마르고 비틀어진 가지에 채 피지도 않은 봉오리만 두엇 매달린 매화, 즉 자신의 것이 아닌 석담선생의 매화였다. 그리고는 매화가 왜 그리 춥고 외롭느냐는 매향의 질문에 "정사초의 난에 뿌리가 드러나지 않은 걸 보았느냐"라고 반문한다. 후일 매죽 논쟁에서 "정사초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가 비천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강변하던 고죽이기에, 비록 작중 화자는 이 상황을 두고 "나중까지도 알 수 없던 것은 그가 친 매였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술하고 있지만, 그 그림은 고죽의 평생에 걸친 고뇌와 방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앙상하고 추운 매화, 이파리를 다 잃어 버린 대나무 그림이 상징하는 망국의 한과 부끄러움이야말로 석담선생은 그림에 담아야 할 강개이자 도라고 생각했고, 고죽은 그림이 한낱 선비의 강개를 의탁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방에 들어앉아 먹이나 갈고 있지 말고 나가서 싸우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반격한다. 이렇듯 스승의 예술관에 반대해 예술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보여주던 고죽이 정작 매향에게 그려준 것은 스승의 매화였으니, 겉으로는 반항해도 마음 속에는 스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상 그가 방황을 하며 느끼는 허무와 고독도 자신의 예술이 속인들에게는 환대받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으며 그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줄 사람은 바로 자신이 끊임없이 거부하는 스승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망국의 한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정사초의 기개를 애써 무시하고 그와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손은 정사초의 그림을 따라가는 모순된 상황은, 후에 자신의 인생에 던지는 자조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장부로서 이 땅에 태어나 한평생을 먹이나 갈고 붓이나 어루면서 보내도 괜찮은 것인가."는 자문은 이전까지 보여줬던 그의 태도와는 다른, 예술의 또다른 차원에 관한 질문이다. 다르게 풀어 말하면, 과연 예술은 무엇인가, 사회와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하는 예술, 예술가 자신만을 위한 예술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고죽은 아직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노환에 시달리던 석담 선생이 마지막 기력을 짜내 쓰던 글씨를 보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심술궂은 질문을 던지는 데서, 과연 예술가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당신은 말해 줄 수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제자의 오만한 정면 도전에 노기등등해진 스승은 마침내 격렬하게 분노를 토해낸다. 일찍이 첫 번째 방황에서 돌아온 혈기 넘치는 제자에게 침묵으로 웅변하듯 써줬던 "今翅碧海 香象渡河"의 경지,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제자의 항변은, 그곳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스승의 한평생과 예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고죽에게 벼루 뚜껑을 집어 던지며 부르짖는 "내 일찍이 네놈의 천골을 알아보았더니라."라는 석담 선생의 일갈로, 두 사람의 오랜 악연이 극적으로 재확인되며 팽팽한 긴장은 맥없이 풀려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질긴 악연일 따름이었을까. 석담 선생의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던 고죽은 석담 선생의 위독 소식을 알리기 위한 운곡 선생의 방문으로 충격을 받은 뒤 자기 정화를 위해 오대산 어느 산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와의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색바랜 벽화 속에 그려진 금시조였다. 금빛 날개를 퍼덕이며 심해 속 용을 잡아올리는 금시조의 환상을 접한 그는 비로소 그 광경을 보는 것으로서 이미 자신의 삶은 충분히 성취된 것이라던 스승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과 스승이 그토록 대립하고 갈등하던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예술이 그것의 미적 기능을 무시하고 도(道)와 가치만을 담아내려 하거나 혹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여 그 안에 담겨야 할 정신을 도외시하고 기예로만 흐르거나 한다면 그것을 두고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죽이 보았던 금시조의 환상은, 언뜻 서로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였던 두 개의 가치가 금시조의 비상에서 보듯 실은 서로 화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는 극적 반전을 이루어낸다. 금시조의 비상은 바로 道와 美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서만 창조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라는 점에서 고죽의 오랜 화두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완전히 절연된 듯 보였던 두 사람은, 과거에는 대립과 갈등의 상징이었던 금시조를 매개로 하여 다시금 질긴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고죽의 타고난 운명과 재질은 이미 세상에 없어진 스승과 완전한 화해를 이루도록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스승과의 화해를 가능하게 해 줬던 금시조가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고죽의 독자적인 미적 성취 혹은 예술적 완성을 상징하는 관념이 새로 변형되어 버린 것이다. 작중 화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듯 고죽의 서화론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서예를 글씨보다는 그림으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물화(物畵)와 심화(心畵)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노년의 고죽은 예전에 스승과 벌였던 매죽 논쟁, 예도 논쟁의 입장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자신이 평생 만들어낸 작품들을 거둬 들이는 모습은 그러한 서화론이 과연 자신의 작품에 올바로 구현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임종의 순간에 최후의 작품까지 끝끝내 인정하지 못한 채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참으로 애처로울 정도이다. 그토록 맹렬히 추구해왔던 예술에의 삶은 결국 의도했던 지향점으로 귀결되지 못한 채 종결을 고한다. "나는 그것들에서 솟아오르는 금시조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것으로 내 삶이 온전한 것으로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설령 내가 그 새를 보았다 한들 과연 그러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하는 고죽은 언젠가 스승의 집착을 힐난하던 철없는 제자의 모습과 놀랍게도 닮아있다. 그리고 마치 석담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스승의 넋두리를 말없는 침묵으로 거부하는 제자 초헌의 모습까지도. 그렇다면 석담 선생의 금시조와 고죽의 금시조는 결국 서로 다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같은 하늘에는 양존할 수 없는 새였던 것일까. 고죽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본 비상하는 금시조는 그 등장이 얼핏 예상되었음에도 상당히 뜻밖이다. 모든 허망한 명예와 처절한 고뇌가 한달음의 불길 속에 재로 변하는 장면에서, 소멸과 불멸이라는 예술적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음은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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