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1986)

-양귀자-  

◆ 소설 읽기  

● 줄거리

은혜네 가족은 서울에서의 전세방 생활을 청산하고 부천 원미동에 연립을 한 채 사서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한 달이 멀다 하고 생기는 하자 탓에 수월찮은 돈을 날린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문제가 생겨 광복절 날 임씨와 젊은 일꾼 한 명을 불러 수리를 맡기게 된다.

그(은혜 아버지)는 임씨의 본업이 연탄 배달에 어설픈 막일꾼이라는 소리를 듣고 욕실 공사를 맡긴 것을 후회하며 시종일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질 못한다. 그리고 의외로 공사가 간단해진 것을 안 그의 아내는 견적서대로 돈 주기를 아까워한다. 하지만 임씨는 한 푼이 아쉬운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옥상 공사까지 정성껏 해주고는 일을 마친다. 또한 일 한 만큼만 계산해서 견적서를 수정하고 옥상 공사는 '서비스'라고 말한다.

임씨와 한 잔 더 하게 된 그는 임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임씨는 비 오는 날이면 구로구 가리봉동의 스웨터 공장 사장에게 못 받은 연탄 값 80만원을 받으러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돈을 받으면 도시에서의 상처투성이 삶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엉터리 견적으로 주인을 속이는 일꾼이라고 종일토록 의심하며 손해 볼까 두려워 궁리를 거듭하던 자신의 꼴을 부끄러워하며 임씨와 같은 토끼띠라 우기면서까지 그와의 동일성을 찾으려 하면서 임씨의 처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 인물의 성격

◆ 그(은혜 아빠) : 사소한 자기 이익에 걱정하고 의심하는 소시민적 인물이다. 처음에는 임씨를 못미더워하다가 차츰 그를 신뢰하게 됨.

◆ 임씨 : 전형적인 도시 빈민 노동자. 연탄 가게를 운영하며 막일을 하거나 남의 집을 보수해주는 수리공으로 살아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자임.

◆ 김 반장 : 행복 슈퍼의 주인. 넉살이 좋고 낙천적인 성격의 인물임.

◆ 아내(은혜 엄마) : 인색할 정도로 알뜰한 주부로 견적서대로 돈 주기를 아까워하다가 임씨가 새로 낸 견적에 가장 놀라워 함.

● 이해와 감상

<원미동 사람들> 연작에는 성장과 소외, 풍족함과 빈곤, 폭압과 자유에의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갈등하며 공존했던 80년대의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한 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진실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부끄러움을 환기시킴으로써 희망을 건져 올리기'는 '지금 여기'에도 절실한 명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욕탕 수리 공사를 하게 된 광복절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집 안과 집 밖의 이중 구성이며, 집 안이 갈등의 공간이라면 집 밖은 화해와 희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무기력한 소시민의 삶의 대변자 '그' →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면서 서술자 역할을 하는 '그'는 1980년대 당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품으면서도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성을 띠지는 않았던 무기력한 소시민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 '그'는 서울에서 일하는 월급쟁이로, 어쩔 수 없는 소시민 근성 때문에 정직한 노동자인 임 씨를 의심하고, 돈 몇 푼을 깎기 위해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그러나 임 씨의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임 씨에 대해 미안함을 갖는 것을 보면 비교적 양심적인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술잔을 함께 나누며, 술김에 흘러나오는 임 씨의 세상에 대한 원망과 무력감을 듣는 것뿐이다. 도와줄 방법이 없기에 자괴감을 느끼며 답답한 마음을 갖는 것이 '그'의 현실인 것이다.

이 작품은 도시 하층민의 정직한 노동과 삶의 애환을 통해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고발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경멸과 불신의 대상이었던 도시 하층민으로부터 비롯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임씨와는 다른 처지임을 강조하던 그(은혜 아버지)가 나중에는 정작 같지도 않은 나이까지 속여 가며 같음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에 대한 그의 오만과 불신이 임씨의 정직함과 순박함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은 임씨의 것이고, 부끄러움은 은혜 아버지와 그를 닮아 있을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웃에 대한 믿음은 이 부끄러움을 통해서 온다. 임씨와 계급적 대립의 자리에 위치하는 자로는 연탄 값 떼어 먹고 야반도주한 스웨터 공장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악덕 기업주가 더 크게 사업을 하는 장소가 바로 가리봉동이니, 당시 가리봉동의 노동착취를 짐작할 만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여 도시 중산층인 주인공의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을 낱낱이 까발린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시점을 주인공에게만 적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인물인 아내와 임씨 등에 대한 서술은 주인공의 눈을 거친 관찰자적 시점에서 재현된다.

작가의 말 → 1981년 겨울,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전철을 타고 부천까지 가서 복덕방을 기웃거리던 나는 이 도시의 동네 이름 중에 '원미동'이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미동이라니,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니. 동네 이름 앞에서 나는 그만 할 말을 잊었다. 무던히도 춥던 그 겨울, 며칠째 서울로 경기도로 집을 구하러 다니던 내 앞에 던져진 그 동네 이름은 그대로 내 가슴에 박혀 하나의 화두가 되어 버렸다. 이후 십 년 간 원미동에 살면서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삶이 지어내는 온갖 쓸쓸한 표정들은 마침 내가 작가였기 때문에 고스란히 기록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록들은 또한, 나만의 믿음이었지만, 8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초상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한층 더 부지런히 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점차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 화두는 '원미동'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양귀자, '조선일보', 1997년 12월 8일 자 기사문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소설, 연작소설, 단편소설

◆ 성격 : 사실적, 비판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3인칭 관찰자 시점

◆ 특성

* 광복절 휴일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 '그(은혜 아빠)'의 시선을 통해 임씨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 주제 : 도시 빈민층의 소외감과 무력감

◆ '원미동'의 상징적 의미 : 원미동은 행정 구역상 경기도 부천에 속한 서울 인근의 주변 도시로, 빠른 속도로 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변두리 동네로 그려진다. 한자로 풀면 '원미동'은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로 해석이 되는데, 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은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그곳 소시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1980년대 우리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공가으로 설정되어 있다. 11개의 단편 곳곳에서 원미동은 옛 것이 사라져 가고 마구잡이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를 토앻 작가는 사라져 가는 옛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대인이 겪는 소외감,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이기적으로 변해 갈 수밖에 없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 생각해 볼 문제(교과서)

1. 이 소설의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목욕탕 수리를 하러 온 임씨의 행색을 보고 '그'와 아내는 못 미더워 한다.

아내는 공사를 끝낸 임씨에게 옥상도 손봐 달라고 부탁한다.

임씨는 늦은 시간까지 성실하게 일하며 옥상 공사를 마무리한다.

임씨는 최종 견적 금액을 처음보다 많이 낮춰서 부르고, 옥상 공사는 '서비스'라고 말한다.

임씨와 '그'는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임씨가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게 된 사연을 들으며 '그'는 착잡해 한다.

 

2. 임씨와 '그'에 대해 다음 사항을 알아보자.

 

임씨

'그'

가족 관계

아내와 아이 넷

아내와 노모, 딸(은혜)

주거 형태

월세 삼만 원짜리 지하실 방

허름하지만 자기 집

특성

정직하고 성실하지만 가난함.

이해타산적이고 소시민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낌.

 

3.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임씨에 대한 '그'의 심정과 그 이유를 말해 보자.

 

공사 전

 

공사 후

'그'의 심정

못미더움

미안함, 고마움

                                                ↓                                ↓

이유

행색이 초라해서, 본업이 연탄 배달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공사비를 부풀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등.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며 정직하게 비용을 청구하는 임씨의 모습을 보고서

(2) '그'가 임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다음]

"나중에는 당신 역시 맨션아파트에 살게 되고 달걀 프라이쯤은 역겨워서, 곰국은 물배만 채우니 싫어서 갖은 음식 타박에 비 오는 날에는 양주나 찔끔거리며 사는 인생이 될 것이오."

→ 오늘날의 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서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4. 이 소설의 제목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해 보자.

(1) 임씨가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스웨터 공장 사장이 떼어먹은 연탄 값 팔십만 원을 받아 내기 위해서이다.

(2) 임씨와 스웨터 공장 사장의 가치관을 비교해 보자.

임씨

스웨터 공장 사장

성실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해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

(3) (1), (2)를 바탕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자.

→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는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을 조화롭게 극복할 때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

 

5. 문학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임씨가 실제 인물이라고 할 때, 오늘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해 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 성실한 삶을 살고 있겠지만 여전히 가난한 노동자의 모습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연탄에 대한 수요는 예전보다 더 줄었고, 우리 사회의 모순도 아직까지 다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토의해 보자.

→ 어울려 시는 다른 구성원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또한 갈등 상황을 조율하고자 하는 노력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자세도 필요하다.

● 더 읽을거리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이 구절을 들으면, 강남의 신흥 부유층들의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어 뜯은 젊은 시인 유하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 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던 이 시집의 독특한 제목은, 그러나 사실 지난 1986년에 발표된 양귀자의 단편소설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의 패러디인 셈이다.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변두리 인생들의 기구한 삶의 내력과 애환을 담아낸 연작소설집인 <원미동 사람들> 중의 한 편인 이 작품에서 우리는 매우 정직하게 살아가는 한 집수리공을 만나게 된다. 양귀자의 작품 세계 전반이 일단 작가 자신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민중적 삶에 대한 연민적 감정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변두리에서 살고 있을망정 집을 소유하고 있고 샐러리맨으로 그런 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고 있는 중산층 인물인 '그'의 눈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사보를 편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에서 전세 살이를 전전하다가 얼마 전 부천시 원미동의 연립 주택을 하나 사서 이사해 온 그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집의 하자 보수공사에 시달리다가, 이번에는 목욕탕에서 물이 아래층 집으로 새는 사건에 맞닥뜨린다. 이웃 사람의 소개로 임씨라는 인물에게 공사를 맡기는데, 그가 사실은 연탈배달부로서 여름 한철에만 이것저것 잡일을 하는 어설픈 막일꾼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그의 기분이 언짢아진다. 더욱이 보조일꾼으로 데리고 온 젊은이의 약빠른 태도는 영 그의 눈에 차지 않으며, 임씨의 반지빠른 말솜씨조차 그에게는 영악스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미덥지 않게 보인 인상과는 달리 임씨는 그런 대로 일을 진척시켜 어느새 물이 새는 부분을 찾아내고 일은 다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알려준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애초에 임씨가 올린 견적서의 공사비에 비해 일이 너무 수월하게 끝날 것으로 보이자, 아내가 억울해하기 시작하고 그 역시 수상쩍어 하는 눈빛을 거두지 못한다. 게다가 온갖 직업을 다 겪어 보았다는 임씨의 내력을 듣고서도 그는 "견적에서 돈 남기도 공사에서 또 돈 남기는 재주는 임씨가 막판에 배운 못된 기술"일 거라고 의심한다.

어쨌든 목욕탕 공사는 여섯시쯤에 마무리 되지만, 임씨는 남은 시멘트로 손볼 다른 데가 있으면 마저 일을 해주겠다고 하여 내친 김에 그간 심각하지는 않아 미루고 있었던 옥상 방수공사까지 하게 된다. 젊은 보조 일꾼이 일찌감치부터 사라지고 나서는 그 역시 임씨의 일을 거들며 의외로 시간을 끈 옥상 공사는 여름밤이 이슥해서야 마무리된다. 이처럼 늦게까지 옥상공사를 마무리하는 임씨의 일솜씨와 철저함을, 같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겪고 나서야 그는 앞서 품었던 의심을 어느 정도는 거둔다. 하지만 옥상 공사까지 시켜놓고는 돈을 다 내주기가 아깝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아내 앞에서 임씨는 애초에 목욕탕 전체를 뜯을지 몰라 18만원으로 올려 쓴 견적서에서 이것저것 제하고는 7만원만 주시면 된다고 한다. 옥상 공사는 '서비스'였다고 덧붙이면서. 그리고 그가 바라는 대가라고는 겨울에 연탄을 자기 집에서 대어달라는 것뿐이었다.

결국 일꾼들이란 영악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그와 그의 아내의 일반적인 기대를 집수리공 임씨가 보기좋게 저 버리는 것이 이작품의 골자인 셈이다. 마흔이 되도록 지하 셋방에 살며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곰국 한번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바로 임씨의 직업의식이 이와 같이 정직함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임을 그는 깨닫게 된다.

정직하게 살면 이처럼 세상 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임씨가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을 마친 뒤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임씨가 그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이러하다. 쉐타 공장하던 사장에게 일 년 내 연탄을 대줬는데 그가 연탄값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해 가지고는 가리봉동에 가서 더 큰 공장을 차렸다는 것, 비오는 날이면 일거리가 없어서, 아니 일거리가 없는 비오는 날이라야 그 돈 80만원을 받으러 줄창 찾아가지만, 그 사장은 온갖 핑계를 대며 결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씨는 드디어 술이 취해 부르짖는다. "어떤 놈은 몇 억씩 챙겨 먹고 어떤 놈은 한 달 내내 뼈품을 팔아도 이십만 원 벌이가 달랑달랑한데, 외제 자가용 타고 다니며 꺼덕거리는 놈, 룸싸롱에서 몇 십만원씩 팁 뿌리는 놈은 무슨 재주로 그리 사는 거야? 죽일 놈들. 죽여! 죽여!" 그리고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죽일 놈들' 속에는 자신도 섞여 있는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들어 임씨를 달래지 못하고는 울적한 마음으로 취한 임씨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짤막한 단편이지만, 이 작품에는 한 순박한 막벌이꾼의 정직한 세상살이가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하는지가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정직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 임씨의 모습이 결코 과장적이지 않은 감동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작품은 우리에게 되묻기도 한다. 우리들은 임씨가 말하는 저 '죽일놈들' 속에 과연 끼지 않을 것인가?

● 참고 자료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주요 내용

◆ '멀고 아름다운 동네' : 전셋집을 전전하던 '그'는 살 집을 찾아 여기저기를 알아보고 다니던 중 서울의 외곽에 위치한 부천의 원미동에 간신히 매매 계약을 체결한다. 추운 겨울, '그'는 노모와 아이 그리고 만삭의 아내를 트럭에 태우고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이름을 가진 원미동으로 이사 온다.

◆ '불씨' : '그'는 직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하고, 장사를 하겠다고 나섰던 아내는 막심한 손해를 보고 문을 닫고 말았다. 관리직이었던 아내는 막심한 손해를 보고 문을 닫고 말았다. 관리직이었던 '그'는 적어도 외판원만은 되고 싶지 않았으나 줄어만 가는 살림에 끝내 '전통문화연구회'라는 곳의 외판원이 된다. 월급은 판매한 만큼 수당을 받는 것이었는데, '그'는 제품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한다. 터미널 대합실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가누던 '그'는 마침내 옆에 앉아 있던 짐꾼 권씨에게 처음으로 제품 설명을 하게 된다.

◆ '마지막 땅' : 강 노인은 원미동 일대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그 땅을 좋은 값에 팔라고 성화지만 강 노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땅에 채소를 심어 가꿀 뿐이다. 강 노인은 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떠올린다. 예전에 땅은 생의 근본이었다. 변해 버린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던 강 노인은 계속 그 땅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 자식들을 위해서 땅을 팔기로 결심한다.

◆ '원미동 시인' : 몽달 씨는 어딘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항상 시를 쓰고 외우고 다니기 때문에 원미동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나'의 친구로는 몽달 씨와 형제 슈퍼 김 반장이 있다. 어느 날 밤, '나'는 웬 남자 두 명이 이유 없이 몽달 씨를 구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게를 망칠까 봐 구타당하는 몽달 씨를 외면하는 형제 슈퍼 김 반장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몽달 씨는 여전히 형제 슈퍼에서 김 반장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 '나'는 몽달 씨가 왜 그 일을 알면서도 바보인 양 모른 척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한 마리의 나그네 쥐' : 전철을 타고 출근하던 '그'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그 공간 속에 있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 옴을 느낀다. '그'를 옭아매고 있는 사람들, 군중들에 대한 공포가 불현듯 엄습한다. '그'는 마침내 숨쉬기도 힘들 만큼 밀폐된 공간으로 인식되는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나 원미산 자락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 행방불명이 된다.

◆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 이 작품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에서 주인공이었던 '그'가 집의 욕실 바닥 수리를 임씨에게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물포 주씨에게서 소개 받은 임씨는 여름에는 집수리를 하러 다니고 겨울에는 연탄을 배달하며 산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연탄 값을 떼어 먹고 도망가 버린 공장 사장에게 돈을 받으러 가리봉동에 간다.

◆ '방울새' :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구경을 간 '그녀'는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며 현재 감옥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남편을 떠올린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던 남편은 감옥의 철창 너머에서 생기를 잃어 버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벌레처럼 버둥거리며 살아 내야만 하는 많은 날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 '찻집 여자' : 동네에서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유명했던 행복 사진관의 엄씨는 한강 인삼 찻집의 홍 마담과 연애 사건을 일으킨다. 엄씨와 홍 마담의 사랑은 곧 그의 아내와 동네 사람들에게 발각되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홍 마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동네를 떠나 주길 드러내 놓고 바란다. 엄씨는 홍 마담에게 미안함과 동정심을 느낀다.

◆ '일용할 양식' : 원미동 23통 일대에서 쌀과 연탄만을 취급하던 경호네가 김포 슈퍼로 이름을 바꾸고 온갖 생활필수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하자 그 옆자리의 김 반장네 형제 슈퍼에서도 경쟁적으로 쌀과 연탄을 배달하기 시작한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서로 밑천 잘라먹기식의 장사도 마다 않는다. 그런 두 가게 사이에 싱싱 청과물이 문을 열자 경호네와 김 반장은 함께 싱싱 청과물을 고립시켜 결국 문을 닫게 만든다.

◆ '지하 생활자' : 공장 기술자인 '그'는 밤마다 느껴지는 변의 때문에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처음 연립 주택의 지하실 방을 계약할 때는 주인집의 화장실을 함께 쓰기로 한 것이었으나 주인집 여자는 '그'에게 한 번도 대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가 다니는 공장에서는 월급을 올려 달라는 파업이 진행 중이지만 사장의 형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한편 '그'는 주인집 여자가 누군가를 두려워하여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살아온 것임을 알게 된다.

◆ '한계령' : '나'는 어느 날 고향 친구 박은자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이제는 미나 박이라는 이름으로 나이트 클럽이나 스탠드 바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그녀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옛날을 회상한다. 미나 박은 상처 입고 넘어지는 실패의 되풀이 속에서 오늘의 그녀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넘듯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그녀가 있고 자신의 형제도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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