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서정인-  

◆ 소설 읽기  

● 줄거리

진눈깨비가 내리는 버스 안, '외투 속에 머리를 웅크린 사나이', '밤색 잠바에 흰 목도리를 한 사나이', '가색 고깔 모자를 쓴 사나이', 그 옆자리에 여자. 이 세 명의 남자는 입대에 대해 각자의 생각에 젖는다.

검은 색안경을 쓴 사람이 차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나간다. 그에 대해 세 명의 남자는 각각 불쾌해하기도 하고, 환상에 젖어 보기도 하고, 질색을 하기도 한다.

삼십 분 동안 손님을 기다리게 해 놓고, 운전사와 차장은 손님이 적은 걸 보고 오히려 불쾌해 한다. 차가 움직이자 '고깔모자'는 자연스럽게 여자에게 기대고, 여자는 피하는 척한다. 그는 여자에게 세 사람의 관계를 말해 준다. 박씨인 자신은 전직 국민학교 교사로 하숙집 주인이고, 대학생 김씨와 세무서 직원 이씨는 자기 집 하숙생이라고 말한다. '잠바를 입은 이씨'는 차장의 엉덩이가 크다고 생각하면서 껌을 건넨다. 박씨는 여자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여자의 근황도 듣는다. 김씨는 시치미를 떼고 알고도 모르는 척한다. 그게 그는 즐겁다. 이씨는 차장과 말을 나눈 걸 흡족해한다.

차가 군하리에 멎었다 떠난다. 세 사람은 차 안의 사람들이 왜 여기에 내리지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여자가 저만치 달아나고 박씨가 쫓아간다. 그들은 잠시 말을 주고 받는다. 여자가 사라진 대문까지 세 사람이 가 보고,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사람들에게 혼사가 있는 집을 물어 길을 걷는다.

얼큰하게 취해 그들이 나오고 있다. 버스가 끊겼기 때문에 결혼하는 집에서 받은 천원으로 그 여자의 '서울집'으로 가기로 한다. 먼저 간 곳은 술집이 아니라 여인숙이었다. 술집은 이 다음 집이라고 하는데도 김씨는 취해 방으로 들어간다. 주사와 선생은 술집으로 갔다. 소년이 김씨에게 호야불을 가지고 온다. 반장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공부를 잘 한다구? 그래 열심히 해라. 김씨는 가난 때문에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하나씩 떠오른다. 한참 뒤 잠 속으로 빠져든다.

이씨는 이제 자기와 재미를 보자며 여자를 끌어안는다. 여자가 빠져 나오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씨는 여자만 보면 매력적인 웃음을 보인다. 박씨는 그런 이씨가 밉다. 이씨는 김씨를 좋아한다. 이씨가 여자에게 대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여자는 '어머 대학생!' 하며 여자는 이씨의 말을 경청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는 놀란다. 눈이 내리고 있다. 신부는 눈이 내려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김씨의 방으로 몰래 들어간다. 헝클어진 김씨의 자세를 고쳐 뉘고 얼굴을 본다. 대학생! 여자는 호야를 불어 끈다. 밖에서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그녀가 남겨 논 발자국을 하얗게 지우면서.

● 인물의 성격

김씨 → 늙은 대학생. 가난 때문에 좌절을 맛본 이상주의자. 겉으로 잘 내색하지 않는 우울한 패배주의자

이씨 → 세무서 직원.농담을 즐기며 멋내기를 좋아한다.  속물 근성이 다분한 인물

박씨 → 전직 국민학교 교사.  김씨와 이씨의 하숙집 주인.   세상을 자기 식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하나, 그 행동이 비애감 즉, 패이소스(pathos)를 지닌다.

서울집 → 술집 작부. 버스에서 세 사내를 만난다. 신부(新婦)의 꿈을 꾸는 여자

● 구성 단계

발단 : 버스 안. 혼삿집에 가는 세 사내와 그들과 동석한 술집 여자

전개 : 그들의 회상 속에 인간적 면모가 암시되며, 각자의 기질이 드러난다.

위기 : 밤늦게 혼삿집에 다녀온 그들은 술집에 모인다. 깊은 침묵에 빠지는 김씨, 삶의 낙오자임을 되뇜.

절정 : 홀로 여인숙에 투숙한 김씨. 공부 잘하는 소년을 통하여 삶의 전락 과정을 회상한다.

결말 : 신부의 꿈을 꾸는 술집 여인은 대학생 김씨에게 순수한 사모의 감정을 지닌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부분은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뒷부분은 군하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세 명의 남자가 시골의 혼삿집을 찾아 갔다가 주막에서 술을 마신다는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작가는 격렬하지 않은 잔잔한 어조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1960년대 후반에 발표된 이 작품은 문제작으로 당시 문단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 소설의 주된 등장인물은 늙은 대학생 김씨, 세무서 직원 이씨, 국민학교 선생이었던 박씨와 서울집이라는 술집의 작부이다. 세 명의 남자는 일행이다. 그들은 누구의 결혼식에 참례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 있다. 그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길을 떠나지만, 공통적인 교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각각의 생각들을 하고 있다. 진눈깨비에 대한 반응과 색안경을 쓴 사람에 대한 반응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 김씨는 결혼식에 참례하고 돌아오다 여인숙에 들게 되는데, 공부를 잘해 반장을 하는 여인숙의 소년을 보고, 학교에서 천재였던 사람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주제가 드러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교육과 현실이 괴리되고 있는 분열된 모습에서 찾아낼 수 있다. 천재를 파멸하게 만드는 왜곡된 사회 구조와 교육에 의해 완성된 시민으로의 길이 막히게 되면서 지식인은 출세주의자가 되어 사회 구조에 편입되거나, 아니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남게 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소설에서 세무서 주사인 이씨와 대학생 김씨는 각각 전자와 후자를 의미한다. 작가는 여기에서 은근히 대학생 김씨의 편을 들고 있는데, 이는 왜곡된 사회 구조에 편입되지 않고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작가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수법은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버스가 출발하기 전의 장면에서는 인물들이 익명으로 나타나고(외투속에 웅크린 사람, 잠바를 입은 사람, 고깔 모자의 사나이 등으로 나타냄) 뚜렷한 사건전개도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작품의 주제, 즉 삶의 허구성과 무상성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눈의 이미지는 술집 작부가 대학생 김씨의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듯이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삶의 무상성을 다루면서도 그 무상성을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극복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서정과 지성이 뒤범벅된 묘한 세계를 보여준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 단편소설

◆ 배경 : 1960년대 눈 내리는 겨울 어느 날, 버스 안, 군하리 주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압축되고 생략된 표현을 통해 지적 쾌감을 불러 일으킴.

* 표현의 섬세함과 세련됨, 낯설게 하기와 같은 시적인 태도를 보임.

* 과거의 삶을 회상하며 꿈을 되찾고자 하는 비감(悲感)어린 분위기

◆ 출전 : <창작과 비평>(1968)

◆ 주제

* 삶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소시민적 비애

* 각자의 환상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과 그 애환

● 생각해 볼 문제

1. 제목이 된 '강'은 어떤 의미망을 형성하는가 ?

⇒ '강'의 흐름처럼 인간의 삶도 제작기 애환을 지닌 채, 그렇게 모두 세월 속에 흘러간다.

2. 세 남자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이 차를 타고 가는 행위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그들은 같은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이며, 현재 같은 목적을 가지고 버스에 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렇게 제각각이다. 인간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삶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꾸려간다.

3. 김씨에게 찾아가는 여자의 심정을 유추해 보자.

⇒ '대학생'이란 신분만으로 김씨는 그녀에게 충분히 환상적이다. 술집 여자에 비해서 너무 높은 세계에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도 환상에 젖어 대학생을 찾아가는 것이다.

4. 등장인물의 명명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며, 그것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등장인물을 명명함에 있어서 그것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감추었다가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것은 소설을 지적으로 읽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의 주된 정조인 환상적 신비로움의 세계로 이끌고 가려고 한다. 이 작품은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런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라 하겠다.

5. 이 작품의 '눈'은 주제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가 ?

⇒ 첫장면에서 진눈깨비가 내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함박눈이 내린다. 세 사람은 '눈'에 의해 감상적 분위기에 젖고, 과거를 떠올린다. '눈'은 그들에게 추억을 환기하는 상관물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눈'은 술집 여자가 신부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뜨리게 하고, 그녀는 대학생을 찾아간다. 그런 방 안 풍경과 함께 밖에는 함박눈이 쏟아진다. '눈'의 내림과 함께 모두 환상에 젖게 되는 것이다.

6. 김씨가 소년을 통해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은 어떤 실상을 띠고 있는가?

⇒ 가난하나 공부를 잘해 청운의 꿈을 지녔지만,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를 체험하고 있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소년의 명패에서 읽는다. 그리고 깊은 설움에 잠긴다.

● 더 읽을거리

이 작품의 주제는 소외된 삶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정인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 작품도 삶을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직한 무기력하고 쓸쓸한 생활의 모습을 매우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제목이 '강'이라고 하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는 실제로 강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이란 제목은 강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어떤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강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모습은 덧없이 흘러가는 모습에 가깝다. 보람차거나 아름답거나 즐겁지 못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인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소설의 구체적인 모양으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작가는 무엇보다도 인물이나 문체, 그리고 시점에 주의를 기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선 자기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김씨, 이씨, 박씨로 표현될 뿐이다. 작가가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이 인물들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같이 이 인물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보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소설의 무대가 인물들의 생활현장을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그런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의 대화는 기껏해야 날씨나 고향이나 술먹는 일 정도의 소재에 국한되어 있다. 대화가 상투적이거나 하찮은 소재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속에서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터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장의 현실로부터 소외된 채 고립되어 있고,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그 인물은 바로 술집여자다. 그녀는 겉으로는 하찮고 타락한 생활습관에 젖어 있지만 삶에 대한 순진한 소망과 사랑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있다. 작푸의 마지막 부분에서 눈내리는 풍경을 즐겁게 만끽하거나 초라한 모습으로 잠든 대학생 김씨에게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모성애를 대표하면서 이 작품에 따뜻한 삶의 가능성을 심어놓게 된다. 덧없고 쓸쓸한 인생의 정에 따뜻한 사랑의 흐름이 보태어지는 것이다.

문체의 경우,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이 현재형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장의 간결함은 대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간결한 문장들은 장면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모양을 깔끔하게 돋보이게 만든다. 군더더기 같은 수식어들이 과감하게 생략됨으로써 서술되는 상황이나 장면 하나하나가 팽팽한 긴장감과 참신한 탄력성을 간직하는 효과가 생겨나고 그래서 무기력하고 쓸쓸한 삶의 모습이 지루하게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현재형의 문장들은 상황이나 장면에 생생한 구체성과 현장성을 보장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결국 소외된 삶의 현실이 간직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분위기는 탄력성과 생동감을 간직한 문체 덕분에 지리함이 아니라 참신한 주목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시점이 주제와 연관되는 효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런 효과를 가장 잘 보며주는 장면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장갑 낀 손이 쑥 들어오더니 턱과 뺨 위로 수염이 검실검실 돋은 운전수의 머리를 차 안으로 끌어들인다. 머리가 들어오자 잠바가 따라 들어오고 그 뒤로 호주먼께가 허옇게 닳은 낡은 고리뗑 바지가 딸려 들어온다." 운전수가 버스에 올라타는 동작이 철저하게 수동적인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운전수의 손이 "운전수의 머리를 차 안으로 끌어들인다."라고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은 삶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기력하게, 또는 기계처럼 수동적으로 살아야 하는 현대 소시민의 운명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효과를 참신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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