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1(1980)

-박완서-  

◆ 소설 읽기  

● 줄거리

일제시대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을 서울로 데리고 가서 성공시킨다는 생각에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나(딸)를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다가 8살이 되던 해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시킬 것이라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신여성(新女性)'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주었다. 인왕산 기슭의 현저동 산동네 셋방에서 엄마는 오기 어린 교육에의 집념으로 오빠와 나를 삯바느질해 가며 키우게 된다.

나는 어머니의 신여성이 뭔지 잘 모르지만 어머니의 간섭과 통제 하에 생활하게 된다. 친구 사귐도, 노는 공간에 대한 것도 어머니의 생각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그림을 매우 잘 그리는 아이와 놀게 되고, 그 아이가 주인집 담벼락에 주인여자를 욕보이는 그림을 그린 것이 내가 그린 양 되어서, 주인집 아저씨로부터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어머니는 서울에서 당당히 자립하여 성공한 후에야 시골에 연락을 할 것이라는 당초의 계획을 접고, 자기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쓰게 된다.

또한 내가 주로 노는 공간이 교도소 앞 넓은 마당인 것을 안 어머니는, 당초에 내가 다닐 학교로 계획한 데를 바꾸어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로 나를 보낼 생각을 하신다. 그리하여 서울에 계신 먼 친척뻘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의 위장 전입을 추진하게 된다. 겨우 찾아서는 나를 매동 초등학교로 보내게 된다. 나는 전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불행히도 매동학교는 전차가 아니라 인왕산 산기슭을 넘어가야 하는 매우 고된 등하교를 해야 하였다.

시골집에 큰맘먹고 보내준 돈은 서울에서는 푼돈이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보태어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꼭대기로 올라가 집을 마련하였다. 그래도 어엿한 6간 짜리 기와집이었다. 어머니는 지긋지긋한 대문밖의 상황을 무시하고 이 기와집만큼은 극진히 아꼈다. 이사간 첫날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어머니는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 밖이긴 하지만…."이라며 감개무량해 하였다.

나는 매동학교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고, 1학년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신여성'의 모든 것을 갖춘 듯한 분이셨다. 또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골고루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하시지만, 나는 담임선생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같은 분이 나 같은 아이까지도 사랑해 주실 것 같지 않았기에 항상 멀찌감치에 서서 손톱만 물어뜯었다.

현저동 산꼭대기 괴불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10여년을 살았다. 오빠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긴 했지만, 우리를 서울 문안으로 들어가 살게 할 번 듯한 집을 살 만큼의 성공은 못됐다. 2차 세계대전이 다가올 무렵부터는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워졌고 인심은 더욱 흉흉해져 갔다. 막판엔 여자 정신대의 공포까지 겹쳤다. 마침내 어머니는 서울 문안으로의 이사가 아니라 일제의 횡포를 피해 시골로 잠시 피난을 결정한다. 피난살이 반 년만에 해방이 되어 먼저 상경한 오빠는 문안의 평지에다 집을 번듯하게 마련하였고, 그 후 살림은 순조롭게 늘어나 좀더 나은 집으로 이사도 몇 번 다녔다.

이후의 어머니는 현저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안하게 살게 되었지만, 항상 기억은 그곳에 매여있는 듯했고, 결국 현저동에서의 힘들고 어려웠던 삶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서울 생활의 말뚝이 박혔던 곳인 셈이었다.

● 인물의 성격

◆ 어머니 →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잃고는 자식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을 통해서는 실현시키지 못하고 타인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게 되며, 자존심이 강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가정을 이끌어나간다.

◆ 오빠 → 어머니의 기대를 이고, 가정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으며,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기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길을 간다고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도 의젓하고 자신이 받는 기대에 대해 알고 있으며, 철없는 동생을 꾸짖는 모습에서 동생이 자신을 본받게끔 노력한다. 이는 비단 아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장남이라는 것이 그를 어른스럽게 만들었다고 본다.

◆ 나 → 신여성이 되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결국 순종한다. 신여성이 되기 위한 교육은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고의 전환이 되지는 못한다. 자신을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한 어머니덕에 폐쇄적으로 누리고 싶은 것은 누리면서 살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서 볼 수는 있었다.

● 이해와 감상

박완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엄마의 말뚝>은 세 편으로 구성된 단편 연작이다. 특히 <엄마의 말뚝2>는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엄마의 말뚝3>은 화장되어 강물에 뿌려지기를 바랐던 엄마의 소망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공원 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각각의 단편 소설은 독립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엄마의 삶을 단순히 한 개인의 사적인 역사에 머무르게 그리기보다는, 가족사 · 민족사의 차원으로 고양시켜 보여 주고 있다.

1979년에 발표된 <엄마의 말뚝 1>은 서술자의 유년 시절 체험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연작에서 '말뚝'은 새롭게 마련된 삶의 근거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빠의 죽음에 관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연작에서의 '말뚝'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회한,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작소설의 첫 번째 작품인 <엄마의 말뚝1>은 시골 고향에서 남편을 잃은 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등지고 어린 오누이만 데리고 서울로 상경한 어머니가 마침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억척스러움과 의지로 곤궁한 생활을 극복하며 서울에 터를 잡는다. 어머니의 모습이 작가의 유년기와 함께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인간적인 교감과 중년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매개로 하여,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 상황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냈는데,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억척스러움과 의지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 미친 영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중편소설, 연작소설(1,2,3), 실존주의 소설, 성장소설

배경

* 시간적 → 해방 직후

* 공간적 → 사대문 밖 현저동(지금의 무악동)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특징 : 서술자인 '나'가 격동의 시기를 이겨온 엄마의 집념을 회고적으로 서술함.

주제 엄마의 억척스러운 생활 의지에 대한 성찰

◆ 출전 : <문학사상>(1980)

제목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 이 작품에서 말뚝은 어머니와 가족들의 서울 입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서울에서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인 '문 안'에서 살아가려는 엄마의 삶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나'가 엄마에게 느끼는 정신적 구속감을 의미하기도 하며 오빠의 비극적 죽음에 초점을 맞추면, 오빠의 죽음을 가슴에 말뚝처럼 박고 살아온 엄마의 한으로 볼 수도 있다.

● 더 읽을거리

박완서(1931~ )

경기도 개풍 출생.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된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숙명 여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 6 · 25로 중퇴.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늦은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하면서 그 특유의 신랄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밀한 갈등의 기미를 포착하여 삶의 진상을 드러내는 작품의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박완서의 작품 세계 : 증언과 기록에의 소명           -신수정(문학평론가)-

1. 박완서 문학의 우물

이미 '문학사'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작가를 대상으로 무엇을 새롭게 이야기할 것인가. 많은 이들에 의해 수차례 논의되어진 결론을 다시금 되풀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가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망설이게 한다. 사실 박완서는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최근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소설에 드러나는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나 가족사에 근거한 분단 비극의 형상화, 그리고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페미니즘이나 생명 사상에 대한 따뜻하고도 설득력 있는 공감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가 천착해 온 주제들은 한결같이 우리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형성해 온 바 있다. 작가를 둘러싼 다양한 비평적 담론이나 연구 성과 역시 활발하기 그지없으며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권의 단행본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박완서 문학의 현대성이나 대중적 관심을 염두에 둘 때,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의 강박관념은 전혀 근거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정을 박완서 문학으로의 여행에 있어 나름대로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한편, 또한 그것에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과도한 '대가 대접'이나 살아있는 '화석' 취급은 90년대 이르러서도 여전히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예가 아니다. 특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를 통해 드러난 박완서 문학의 무궁무진한 예술적 잠재력과 그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현재적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망각에 대한 필사적인 싸움의 기록이라고 할 만한 이 소설들은 "순전히 기억력에 의지해서 써보았다."는 작가의 말이나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는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작가의 과거 경험에 대한 세밀한 복원기이자 자서전으로 읽혀도 무방하다. 물론, 이 작품들이라고 해서 "기억의 더미로부터의 취사선택"과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러주는 상상력"이 개입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전적'이라는 한정어가 붙어 있다고 할지라도 '소설'의 외양을 지니고 있는 이상 그것은 완전히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소설들을 일종의 자서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 소설들에 임하는 작가의 전략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아주 드러내놓고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은연중에 그것을 하나의 창작방법론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창작방법론으로서의 회상(回想)이란 직접적인 자기 경험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지칭되는 박완서의 경우,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소설 속의 인물과 작가를 겹쳐서 읽을 여지를 많이 남겨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목」과 「목마른 계절」, 그리고 「엄마의 말뚝」시리즈나 단편 「조그만 체험기」등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가의 '천의무봉'한 문체가 이러한 착각을 부추기는 데 더욱 일조하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허구로서의 소설 장르는 소설 속의 화자와 작가가 별개의 인물이라는 관습적인 약속에서 출발한다. 또 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작가의 개인사를 소상하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 문학에 있어 자신의 경험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면, 나아가 바로 그 점에서 박완서 문학의 고유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작가의 문학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는 우선적으로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되살려 내고 있는 과거 경험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박완서 문학에 대한 일종의 원형(原型)으로 읽힐 가능성이 없지 않은 이 작품들의 자장(磁場)을 통과하지 않고서 박완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오해의 여지를 남기기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역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곳곳에서 자기 작품의 창작동기로부터 그것이 변용되기까지의 과정을 언급하고 있고, 「미망」을 비롯해서「엄마의 말뚝」,「나목」,「목마른 계절」등에 출몰하는 에피소드나 이미지들은 이 작품들의 그것과 서로 겹치면서 일종의 상호 텍스트성이라고 불릴 만한 차원을 열어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들은 작가의 창작 과정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일종의 창작 수첩으로서, 박완서 문학의 '우물'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이 소설들을 통해 이제껏 박완서 소설의 심층에서 밑그림으로만 일렁이던 과거 경험의 정체를 향하여 내밀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이 우물의 맨 끝ㅇ로 내려가 이 작가의 글쓰기의 기원을 살펴보자. 특히,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의 겹쳐 읽기를 통해 박완서 문학을 관류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와 동인들을 짚어 보자. 이 작업은 90년대 문학에서 이 작품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 보여줌으로써 박완서 문학의 현재적인 의미를 밝혀 줄 것이다.

 

2. 낙원 상실기, 근대적 자아의 탄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굳이 연작으로 읽을 필요는 없겠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형식을 지닌 각기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개성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전쟁이 벌어지던 해인 스무 살 때까지, 구체적으로 1931년에서 1950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그 많던 싱아는 ~」과 1951년 1 · 4 후퇴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의 그 참혹했던 시간을 그리고 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시간적인 전개의 순서로 미루어 보거나 인물읫 ㅓㅇ격 발전과정으로 짐작해 보거나 간에 서로 너무나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어 아무래도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결혼한 이후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공백기를 메운 또 다른 작품이 첨가된다면 고리끼의 '3부작'에 버금가는 중요한 문학적 자산으로도 자리잡을 수 있을 이 소설들은, 따라서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연작'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연작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구조는 '낙원 상실기'의 그것이다. 고향인 개성 박적골로 상징되는 낙원과 타향인 서울 현저동 일대의 심상이 상호 대립적인 구조를 취하면서 낙원에서의 풍요로움과 비-낙원에서의 헐벗음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점은 「그 많던 싱아는 ~ 」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인데, "땅을 독차지한 집도, 땅을 못 가진 집도 없"고 "다들 일 년 먹을 양식 걱정은 안 해도 될 자작농들"로 구성된 '박적골'은 분명 정지용의 시「향수」만큼이나 우리 문학사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낙원 이미지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밋밋한 동산과 탁 트인 벌판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박적골은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의 소외를 알지 못하는 인류사의 태초의 고향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서울 현저동은 "층층다리처럼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곧 쏟아져내릴 것" 같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오줌과 밥풀과 우거지가 한데 썩은" 시궁창물이 흐르는 환멸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도회 문명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허락되지 않는 서울은 비-낙원의 스산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면서 낙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박적골로부터 서울'로 이동되는 이 연작의 기본적인 공간 이동은, 그런 점에서 '천상으로부터 지상'으로의 이동에 비길 만하다. '실개천'과 '시궁창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두 공간은 단순한 배경에 그치지 않고 이 연작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로 작동하면서 서사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 곧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런 만큼 이 연작에는 잃어 버린 낙원에 대한 풍요로운 기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과 비-낙원에서의 신산스러움과 고통에 가득찬 삶의 내용을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서로 나란히 가고 있다. 소설의 제목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아마 바로 그 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천으로 널려 있어 조금도 눈여겨 보게 되지 않던 '싱아'나 아직도 눈 앞에 가물거리던 '그 산'은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가 버리고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 아쉬움, 이 회한. 이 소설들은 바로 이러한 '상실감'의 정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실감'은 '아카시아'의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맛과 대조되는 '싱아'의 새콤한 신맛으로 감각화되어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 같은 '갈급증'을 불러 일으킨다. 읽어 버린 낙원을 불현듯 손짓하는 '싱아'야말로 아카시아로 인해 생긴 들뜬 비위와 헛구역질을 다스려 줄 비방에 다름 아닌 것을!  이 순간 '싱아'는 단순한 기호품의 차원을 넘어 한 인간의 형언할 수 없는 향수를 드러내기 위한 미각적인 심상의 차원으로 비약한다. '그 많던 싱아'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고향 뒷동산'으로부터 화자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확인시켜주는 한 단서이다. 아기처럼 부드럽고 만만한, 신비와 생명감이 흘러 넘치던 박적골의 뒷동산은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가 없는 매동소학교 어귀의 인왕산으로 대체되고야 만 것이다. 그 사실에 직면한 화자는, 그러기에 ' 하늘이 노래지는' 상실감에 휩싸여 인왕산과 박적골의 뒷동산을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개성/서울, 실개천/시궁창물, 싱아/아카시아, 신맛/비린맛으로 꼬리를 물고 환유되는 이 낙원 상실의 대립 구조는, 달리 말하자면 조부모와 일가 친척들의 한없는 사랑과 보호 속에 놓여 있던 유년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할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양반 가문의 손녀로 행세하던 시절은 끝났다. 다만, "체장수네, 굴뚝장수네, 미장이네, 땜장이네" 아이들과 함께 그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아야 하는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이 싫다면 외톨이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시련을 감내해야만 한다. 박완서와 엄마가 택한 것은 현저동 사람들과 '구분'되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작가는 성장기의 혹독한 시련 앞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지게 된다. 친구 하나없이 혼자 산을 넘어 소학교를 다니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련은 후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포회하고 있는 시간대, 즉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전쟁 기간을 통해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 가혹한 시련 다음에는 모든 시련극복형 서사가 그러하듯 당연히 화려한 백조, 즉 '작가'로의 재탄생이 운명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낙원에서 갑작스럽게 분리된 이후 겪게 되는 혹독한 시련이 작가를 결코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낙원(고향, 유년기) 상실기'는 '성장소설'의 외연 속에 작가 박완서의 탄생을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작이 기대고 있는 낙원 상실의 구조는 단순히 박완서 일 개인의 체험에만 국한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연작은 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봉건적인 공동체의 전통으로부터 황폐한 근대 세계로 나아간 개인들의 '역사철학적인 기록'으로 읽힐 여지를 지극히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전통 세계의 안정감과 풍요로움, 그리고 사랑과 질서에 대한 추억은 인류가 고향이나 유년기에 대해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향수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고향으로부터의 이탈과 유년기의 미성숙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한 개인은 본격적으로 자기 세계를 정립해 간다. 이른 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인류사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이 과정을 우리는 보통 근대화라고 부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친근한 것, 부드러운 것, 요컨대 '싱아'의 신맛처럼 새콤한 그 무언가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근대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은 '아카시아'의 비릿한 내음을 감내하는 것, 양반의 손녀이기를 그치고 삯바느질집 딸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 그리하여 혼자서 산을 넘는 시련을 감수하는 것 따위와 은밀하게 대응된다. 그것은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지난한 과정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이 어떤 세대에게 있어서는 필생의 과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박완서에게서 그러한 '운명'을 본다.

이 연작은 갑작스럽게 그러한 과업에 직면한 박완서 세대의 '이중적인 성장'의 과정, 즉 어른-근대인으로의 자아 확립의 과정을 다른 어떤 기록보다도 절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과정이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천재지변의 시련으로만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시련은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어떤 것'의 외양을 띠고 있는 형편이다. 진실로  '서울 살이'는 얼마나 많은 박완서와 박완서 엄마들의 삶의 목표로 작용했던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사오신 '덕국 물감'을 통해 최초로 문명의 냄새를 맡은 이래, 문명으로 표상되는 '근대적인 것'은 오랜 동안 작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 내밀한 가치가 아니었던가! '농바위 고개'를 넘어 최초로 송도에 다다랐을 때 느꼈던 그 눈부심. 송도에 즐비한 하얀 화강암 건물들이 발하던 빛의 세계 근대는 작가에게 시련을 예비하고 있는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가능성으로 작가를 매혹하기도 했던 '별천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단발머리'와 '신여성' 그리고 '내리닫이' 원피스와 '스케이트'로 상징되는 '서울 아이'로의 변신은 엄마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작가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알 수 없는 욕망으로 몸을 떨던 적극적인 존재 전이의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혐오와 매혹으로 분산되는 근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은 박완서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의도했던 전략이 무엇이든 간에 이 연작은 한 여자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이율배반적인 근대인의 양가적인 감정을 맛보는 데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계기를 제공한다. 박완서 문학이 내포하고 있는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나, 장편 「미망」을 통해 드러나는 근대적인 합리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옹호 등은 혹시 이러한 이율배반의 산물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근대성을 중심으로 박완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이 연작은 우리를 이러한 질문의 연쇄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3. 희생제의와 비극적 장엄미

'낙원 상실기'로 이 연작을 읽게 될 경우, 논의의 핵심은 자연스럽게 '낙원-이후'의 삶에 놓여진다. 사실, 이 연작의 대부분은 서울 현저동과 박완서 가족 간의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악연이라면 악연인, 그런 삶의 과정을 그리는 데 바쳐져 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이 시련의 과정은 그 뒤에 작가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박완서 문학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 그리고 한국 전쟁기에 이르는 우리 근대사의 중요한 대목들을 통과한다는 점에서는 왜곡된 근대화의 격랑에 휩싸인 한 개인의 근대에 대한 매혹과 불안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잇는 이 두 가닥은 '오빠'에 대한 작가의 기억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연작에서 '오빠'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남다르다.

이제까지 박완서 문학은 주로 '엄마'와의 길항관계에 의해 설명되어져 왔다. 박적골 양반 가문의 종부로서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과부가 된 엄마는 완고한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하여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로의 이주를 감행할 만큼 대단한 결단력의 소유자이자 어린 박완서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생의 재단사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일찍이 우리는 <엄마의 말뚝> 시리즈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연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박완서 문학에서 무수히 다루어졌던 엄마에 대한 작가의 애증에 가득찬 진술이 이 연작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직접적인 일면성으로부터 벗어나 객관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연작에 드러나는 엄마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끈끈한 추모의 애정과 함께 섣부른 상승욕에 사로잡혀 있는 엄마의 근대적인 열정에 대한 유머러스한 비판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형편이다. 추모와 비판의 양날로 버무려진 이 연작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이해와 사랑으로 가득찬 박완서의 보다 성숙한 안목을 엿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연작은 작가와 엄마가 그토록이나 갈등하면서도 또한 그렇게나 긴밀한 운명적인 연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은밀하고도 심층적인 내면적인 근원을 짚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희생양'으로 선택된 오빠의 존재가 그것이다. 오빠는 총명, 효성, 과묵이라는 전근대적인 미덕에다가 근대적인 덕목이라고 할 약자에 대한 휴머니즘 및 결핵에 걸린 여인에 대한 로맨틱한 사랑까지 겸비한 인물로 그려진다.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공동체의 미덕과 근대적인 개인의 덕성을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는 인간인 셈이다. 특히, 돼지 잡는 모습을 본 이후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하는 오빠의 '식물적인 이미지'는 이 완벽한 인간상의 정신적인 숭고함을 더욱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완벽한 인성을 지니고 있으되 약하고 여리기 그지없는 오빠의 성격이야말로 훼손된 세계에서의 희생양의 순결성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장치일는지도 모른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작가에게 일곱 살 위인 오빠는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규율과 자애가 작가의 유년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박완서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엄격한 부성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일찍 아비를 잃은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의 지나친 애정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듯하다. 그런 반면, 오빠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거의 숭배에 가까운 애정이다. 오빠와 결부되는 경우,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왜소한 양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이 점은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빠가 아비를 대신하는 존재로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는 어찌하여 이토록이나 오빠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혹시 이 아름다운 인간에게 불어닥친 세계의 폭력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전략적인' 기억의 산물은 아닐 것인가. 나는 특히 「그 산이……」를 오빠를 상대로 한 '희생 제의'의 기록으로 읽고 싶다. 마치 사도세자의 「한중록」처럼 이 소설에는 희생양으로 선택된 한 인간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해방 후 잠시 좌익에 몸담은 후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본의 아니게 해방군으로 대접받다가 결국은 어처구니없게도 국군의 오발에 의해 다리에 총상을 입고 모두가 피난가 버린 서울 한복판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영위해 나가야만 했던 오빠는, 과연 더할 나위 없는 이데올로기의 속죄양이라고 할 만하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아니 속하고자 하지 않았던 오빠에 대한 세계의 폭력적 응징으로 '오발'이라는 '우연'은 얼마나 적절한가. 이 과정의 '비극적 장엄미'를 위해서, 한 세계의 폭력성이 얼마나 무참한 것인지를 확실히 증거하기 위하여, 도저히 객관화할 수 없는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기 위하여, 작가는 그토록이나 오빠를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점은 「그 많던 ……」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그 산이……」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자가 오빠의 인간적인 품격에 대한 미화로 일관하면서 오빠를 지상의 인물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있다면, 후자는 이와 달리 그를 단지 살기 위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온갖 행동을 요구하는 비굴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그 산이 ……」에 나타나는 오빠의 비굴함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많던 ……」을 통해 빛나는 오빠의 영혼은 더욱 순결해지면서 그 성스럽던 인간을 그토록이나 무참하게 파괴해 버린 세계의 폭력성을 더욱 여실하게 되비춘다. 이러한 대조적인 양상은 일차적으로 전쟁이 한 인간에게 가한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보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영웅의 추락'은 단순히 전쟁이나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파괴력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오빠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품격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총체적인 인성을 구현하는 그의 인간적인 풍모 자체가 전쟁과 이데올로기라는 야만적 광란으로 일관하는 이 사악한 근대 세계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지상의 인간답지 않게 지나치게 순결하고 정의로왔던 만큼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서울이 진공 상태에 빠졌던 1950년의 그 석 달 동안, 오빠가 보여 주었던 '말더듬증'은 그런 점에서 아주 상징적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누구라는 것, 즉 자신의 영혼이 어떠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인 만큼 끊임없이 그 행위를 지연시키는 것은 '영혼이 존재할 수 없는 불모의 시간'을 드러내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 적절한 메타포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는 자신의 맨 얼굴을 가릴 가면 하나 없이 근대의 사악한 힘을 가로질러 가려고 했다. 그리고 세계는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러한 인성으로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 보여 주었다. 오빠의 인성은 천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어서 지상의 시간 속에 노출될 경우 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음은 물론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머와 여유가 흘러 넘치던 「그 많던 ……」과 달리 「그 산이 ……」가 한 치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는 분노와 연민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이 '희생 제의'의 무자비함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완서 문학은 한번도 세계의 이 폭력적인 힘에 대한 인식을 저버린 적이 없다. 이미 세계는 '낙원'이 아니다. 여리고 순결하기 그지없는 오빠의 영혼을 물가에 내 보낸 어린애처럼 불안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세계의 사악한 힘은 처음에는 현저동을 둘러싼 스산한 삶의 풍경에서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현저동 - 전쟁 - 이데올로기로 환유되는 근대의 파괴적인 동력이 결국에는 오빠를 하나의 무력한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작가는 오빠의 죽음을 통해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지를 배운다. 그것은 말하자면 한 왜소한 개인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이 거대한 근대 세계를 향해 구사하는 혼신의 책략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찌는 듯한 여름에 죽은 지 하루도 못 되어 공동묘지 한 구석에 묻히게 된 오빠는 '작가' 박완서 문학의 내밀한 '출발점'이자 엄밀한 의미에서의 '말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 책략으로서의 자굴감

오빠에 대한 희생 제의는 이 연작의 꼭짓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 꼭짓점이 사라졌다면, 이제 이 연작의 서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양변에 위치한 작가와 엄마의 길항력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모든 살아남은 자들은 그 험한 시련을 함께 겪어낸 사람들 특유의 결속감과 함께 또한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 대한 경멸을 가슴에 품고 살아 간다. 도착된 애정의 한 형태라고 할 이러한 양면성은 작가와 엄마 사이의 길항력을 설명하는 심리적 매커니즘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되, 결코 상대방에게 체신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작가와 엄마의 안간힘은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생에 대한 대응 방식의 하나인 것이다.

박완서 문학에서 엄마란 무엇인가? 엄마는 '종종머리'의 시골 계집아이를 순식간 '단발머리'로 만들어 버린 채, '농바위 고개'를 넘어 서울로 데려가는 가장 직접적인 매개자이다. '신여성'이라는 확고한 모델을 선정해 주고 작가를 도시로 끌어 들이고 있는 엄마는 전통과 관습의 세계 대신 문명과 이성의 세계를 최초로 보여준 인물인 셈이다. 두 세계의 중간에 위치한 매개자로서 엄마는 박적골을 향해서는 '합리성'을, 현저동을 향해서는 '양반 의식'을 내세우며 도착된 자부심으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일상을 꾸려 나간다. 권위와 전통에 도전하는 '합리성'과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법도와 도리를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엄마의 '양반 의식'은, 사실 상호 모순되는 성격이 아닐 수 없다. 합리성은 봉건적 신분 제도가 강요하는 상하 수직 체계와 그에 따른 신비화에 냉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양반이라는 우월감과 상충한다. 그 역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박완서는 엄마에게서 드러나는 이 모순과 허위를 놓치지 않는다. 이 연작 전체가 엄마가 보여주는 이 양가적인 성격에 대한 희화화로 가득할 정도이다.

그러나 방학을 맞아 의젓한 교복과 내리닫이 치마를 해 입힌 남매를 데리고 금의환향하고 싶은 엄마의 허영은, 현저동에 살면서도 굳이 딸을 매동 소학교에 보내는 자존심의 다른 일면일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의 모순'이라고 부르는 엄마의 양면성은 실은 '매개자'가 지닐 수밖에 없는 혼돈은 아닐 것인가. 그 누구도 엄마에게 근대에 대항하여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신의 본래적인 기질에 근거하여 이 낯선 괴물에 대항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합리성'과 '양반의식'은 유일한 책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순'에는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엄마의 삶에 대한 안간힘이 깃들어 있다.

작가 또한 어찌 이것을 모르랴. 그런 의미에서 엄마에 대한 작가의 비판에는 그 가차없는 언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티없는 유머와 따뜻한 사랑이 동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 역시 엄마의 삶에 대해 무한한 애착과 존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개자로서 두 세계, 즉 봉건과 근대에 공히 걸쳐져 있던 엄마의 책략과 달리 박완서가 선택한 것은 근대에 철저히 무릎꿇는 '자굴감'이다. 이미 세계는 '오빠'와 같은 인간형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오빠를 숭배하는 어린 소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박완서는 이 세계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산이 ……」의 후반부는 오로지 이 욕망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는 작가의 처절하고도 역설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대부분이 바쳐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작가는 세계가 강요하는 '벌레'같은 삶을 감내하기로 한다. 오빠의 순결한 영혼과도 다르고, 엄마의 양면적인 허위 의식과도 다른, 이 성숙의 과정은 지나치게 급박하게 찾아온 것이기에 서구의 '교양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 같은 것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훼손된 가치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작가의 역설적인 '자긍심'과 터무니없는 '복수심'만이 두드러지고 있는 형편이다.

 

5. 개인사의 증언에서 보편사의 기록으로

90년대에 이르러 많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범박하게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만한 소설들이 양산된 바 있다. 우리 사회 전역을 휘몰아쳤던 경제개발계획의 여파 속에서 나름대로 풍요로웠던 고향을 떠나 어린 노동자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던 작가의 지난 시절을 현재의 부채감과 함께 다루고 있는 신경숙의 『외딴 방』이나 적나라한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탐사하고 있는 김형경의 『세월』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경향은 박완서의 이 연작과 더불어 90년대 소설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난 연대를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90년대를 일상성의 시대라고 부르는 화법은 이미 일반화된 느낌이다. 문학은 이제 거대담론을 대신하는 미시담론에 대한 주목으로 그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신경숙이나 김형경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 최근 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개인의 내밀한 상처와 그것의 극복과정은 그 자체 지난 연대 문학에 나타났던 민중의 자기 정체성 회복과정과 맞먹는 무게를 획득하면서 이제 문학은 바다를 뒤집는 격랑이 아니라 바람결에 일렁이는 나뭇잎의 무게에 대해서도 아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의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그 고백의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당당하게 소설화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분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충격을 가져온다. 자신의 은밀한 개인사를 노출함으로써 그들은 한 실존적 개인의 연대기가 집단이나 민족의 연대기에 맞먹는 것임을 실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최근 소설들 역시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작가 박완서의 위대함이 놓여 있기도 하다. 끊임없이 당대의 새로운 흐름을 알아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경향을 새로이 점검해 본다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박완서의 고백은 90년대의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의미를 달리하는 측면이 있다. 우선, 박완서의 개인사에는 박완서와 동일한 시대를 살았던 무수한 개인들의 개인사와 공명하는 바가 훨씬 크다는 것. 이것은 박완서 세대가 우리 역사에서 남달리 중요한 시기, 예컨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기간, 그리고 해방기의 혼란으로부터 한국 전쟁의 참상에 노출된 시기 등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그러할 뿐만 아니라 작가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회한에 가득차 회고하는 삶의 내용이 동세대의 일반적인 경험의 양상으로부터 크게 유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곧바로 한 집단이나 한 세대의 일반적인 경험의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은 그 경험이 강제하는 고통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분명 작가에게는 커다란 축복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연하게 주어진 이 역설적인 축복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작가에의 예감'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자신에게 밀려오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공포를 견뎌낼 수 있는 정신만이 간직할 수 있는 행운일 지도 모른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만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출판사, 1992. p.287)

서울 시내 모든 사람들이 다 피난가고 천지에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대한 공허를 눈 앞에 두고 박완서는 그것을 신의 소명으로 되돌린다. 혼자만 이것을 보았다면 언젠가는 이것을 증언하라는 것이 아니겠냐는 이 발상의 전환은 기실 박완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꼈던 너무나도 감각적인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순간 한 개인의 실존적인 상처와 고통을 넘어서 역사적인 한 순간에 대한 '증언'으로 각인되어 온다. 이 증언만이 또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힘이다.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혹은 아무도 믿지 못할 순간을 겪게 한 그 어떤 힘에 대한 '복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인훈의 『화두』에 버금가는 이 증언은 이 순간 개인적인 기록으로부터 한 세대의, 한 집단의, 한 민족의 야만의 시간에 대한 기록으로 전위된다.

이 '전위'(轉位)는 박완서의 자전적 기록이 갖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한 개인의 기록에서 한 세대의 기록으로의 전위는 보편적인 인류사의 기록으로의 전위를 가능하게 하는 중간 단계이기도 하다. 증언 욕망과 복수심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어느 순간 한 개인, 한 세대의 특수한 경험의 양상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자리바꿈한다. 포근하게 자아를 감싸주던 고향으로부터의 이탈과 낯설고 사악한 근대 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과제는 박완서의 고향-유년 상실과 훼손된 세계에서의 시련이라는 경험과 은밀하게 대응하면서 이 연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지평을 열어 보인다. 이미 살펴본 대로 그것은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절망과 환멸의 시간임과 동시에 그 시간을 감내한 정신이 도달한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박완서는 자신을 둘러싼 계급의 물질적 기반에 접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닌 한계를 끊임없이 폭로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완서 문학의 근저에는 증언과 기록을 통한 자기 의식의 확립과정이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완서 문학의 보편적인 힘의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박완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를 오늘의 우리의 저편으로, 그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와 끊임없이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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