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1963)

-전상국-  

◆ 소설 읽기  

● 줄거리

키 큰 남자와 다부진 체격의 키 작은 남자가 동행이 되어 강원도 산골의 눈 쌓인 밤길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어제 일어난 춘천 근화동의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키 큰 사내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와야리를 찾아가는 형사이고, 키 작은 사내 억구는 근화동에서 득칠이라는 사내를 살해한 후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귀향하는 중이다. 두 사람은 눈길을 함께 가면서 유년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억구는 자신을 업신여기던 득수라는 아이의 장갑 낀 손을 물어뜯은 일로 계모로부터 어둡고 추운 광 속에 갇히는 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추위와 어둠의 공포를 강박관념처럼 지니고 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늘 따돌림을 당하던 그는 6 · 25가 일어나자 빨갱이편이 되어 득수를 죽임으로써 지난날의 분풀이를 한다. 그후 국군이 동네에 들어오자 억구의 아버지는 득수의 동생 득칠에게 죽임을 당하고, 억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한다. 바둥거리며 서른여섯 해 동안 고달픈 삶을 살아온 그는 아버지를 죽인 득칠을 죽이고, 자신도 아버지의 무덤에서 죽으려고 구듬치고개를 올라가는 중이다.

억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던 키 큰 사내는 자신이 소년 시절에 겪었던 한 사건을 떠올린다. 그는 토끼 사냥을 따라갔다가 새끼토끼를 잃은 어미토끼의 살기차고 공포에 질린 눈빛에서 모성의 본능을 확인한 후, 생물 시간에 해부될 운명에 처한 새끼토끼를 풀어주려고 굳게 마음을 먹지만, 도덕적 규범에 얽매여 끝내 생물 선생님 집의 얕은 담을 넘지 못했던 일을 회상한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 부친의 무덤이 있는 산에 이르자, 억구는 키 큰 사내에게 자신이 득칠을 죽였다고 실토한다. 우연히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된 형사는 처음에는 그를 놓칠까 경계했으나 억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의 비극적 인생을 이해하게 되어 체포하지 않는다. 키 큰 사내는 주머니 속의 담배갑을 건네며 하루에 한 개피씩만 피우라고 말하며 웃어 보이고는 억구에게서 몸을 돌려 눈 내리는 산속 길을 걸어간다. 억구는 그 사내의 정체도 모른 채 "하루에 꼭 한 개씩 피우라구요?"라고 울음 같은 외침을 외치고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 인물의 성격

 억구 →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6 · 25 전쟁 때 빨갱이가 되어 득수를 죽인다. 그 후 아버지를 죽인 득칠(득수의 동생)에게 복수를 한 후 자살을 결심하고 귀향한다.

사내 → 형사. 억구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갈등을 겪는다. 토끼를 살리지 못했던 자신의 안타까운 과거를 회상하며 억구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고 그를 체포하지 않는다.

● 구성 단계

◆ 발단 : 서로 신분을 감춘 두 사내가 눈 덮인 산길을 걷는다.

전개 : 키 큰 사내의 소년 시절 토끼 사냥 이야기가 소개되고, 억구의 지울 수 없는 공포의 기억이 소개된다.

위기 : 억구의 기구한 운명과 고난의 역정이 밝혀진다.

◆ 절정 : 억구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말하고 부친의 무덤에서 죽으려고 한다.

결말 : 연민의 정을 느낀 형사는 억구를 체포하지 않고 보내준다.

● 이해와 감상

여로형 소설의 구조와 '동행'

여로형 소설은 인물이 걷는 여정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소설을 의미한다. '동행'은 고갯길을 오르는 두 인물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로형 소설에 속하는데, 그 여정이 작품의 갈등 양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둘의 갈등이 고개를 오르는 과정에서 점차 고조되다가 고개를 내려오면서 서서히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효과적인 내용 전개에 기여하며 형식적인 안정성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동행'은 눈길을 걸어가다 동행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그 치유책을 모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여로형 소설에 속한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 그런 것처럼, 이 작품 역시 길 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길 위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작품에서 길은 두 사람의 현재와 과거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인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해소되는 과정 자체를 상징화하는 공간이다.

와야리로 향하는 두 사람의 여로 중앙에는 구듬치고개가 놓여 있는데, 억구가 며칠 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나고 사내가 형사라는 사실이 암시되면서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둘 사이의 긴장은 구듬치 고개에서 절정에 달했다가 고개를 내려오면서 점점 해소되어 간다. 고개를 오르내리는 과정과 긴장의 고조 및 해소가 중첩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정교하게 플롯을 구성한 증거라 하겠다.

사내가 억구에게 갖는 연민의 감정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사내가 억구를 놓아주는 것은 억구의 살인이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산물이며, 그 일로 인해 36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억구 역시 피해자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대한 공감과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야말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책인 것이다.

'동행'은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인해 살인을 하고 쫓기는 억구를 통하여 삶의 상처와 이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그린 작품이다. 형사와 범인, 큰 키의 사내와 키 작은 사내라는 대립적인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분단이 남긴 아픔과 그것을 치유하는 인간애를 모색하고 있다. 작가는 큰 키의 사내가 억구를 체포하지 않고 삶을 이어 나갈 것을 당부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인간애를 통한 아픔의 치유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분단 소설, 여로형 소설 (사실적, 회고적)

배경 : 시간적 - 1960년대 어느 해 정월,  공간적 - 눈 내리는 강원도 산골의 밤길

◆ 시점 : 3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상 특징

* 대조적인 두 인물을 동일선상에 배치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구조적 안정감을 얻음.

* 전쟁으로 인한 뿌리 깊은 상처와 실향의식 및 뿌리찾기를 다룸.

* 객관적 시점을 견지한 간결한 문체로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시켜 극적 효과를 높임.

◆ 출전 : 소설집 <바람 난 마을>(1977)

◆ 주제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와 그에 대한 인간적 연민

● 생각해 볼 문제

1.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억구의 말에 키 큰 사내가 놀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추리해 보자.

⇒ 현재 키 큰 사내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억구를 쫓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억구의 입에서 살인 사건이라는 말이 나오자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놀라고 있다.

 

2. 작품 속에 'ㅎㅎㅎ'라는 웃음 소리가 주는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웃음을 상징하는 'ㅎ'은 그 감정에 따라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후후후, 히히히, 흐흐흐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는 억구가 가지는 공허한 내면 심리를 이러한 표현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3. 이 소설에서 고개 마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 고개 마루는 억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 나온 곳이다. 따라서 억구에게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의미한다. 또한 이 고개 마루는 소설의 구성상 절정의 위치에 있다. 즉, 인물들 간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다가 고개 마루를 기점으로 하여 풀리고 있다.

 

4. 이 소설은 사실 또는 진실을 '감추는' 듯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체가 가지는 효과를 생각해 보자.

 ⇒ 한 명은 살인을 저지르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는 살인자이며, 다른 한 명은 그 살인자의 뒤를 쫓는 형사이다. 따라서 이들의 동행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겨야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많은 따옴표와 말 줄임표를 사용하고 있다.

 

5. '키 큰 사내'가 살인범인 '억구'를 놓아준 이유를 생각해 보자.

⇒ 형사라는 '키 큰 사내'의 직업으로 본다면, 그는 사람을 죽인 '억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눈길'의 동행을 통해 '키 큰 사내'는 '억구' 또한 역사의 피해자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저노한이 억구를 놓아주게 되는 계기가 된다.

● 더 읽을거리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전상국이 지은 단편소설. 1963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었고, 1977년 창작문화사에서 펴낸 창작집 <바람 난 마을>에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6 · 25 당시에 한 마을에서 야기된 살벌한 살육의 소용돌이와 개인의 원한 및 죄의식을 추구한 것으로서, 개인의 내면에 숨은 욕망이 역사적 흐름과 엇물리면서 비극적 모습을 일으키는 한 단면을 극적으로 압축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야기는 눈 덮인 어두운 밤길을 폐결핵에 걸려 있는 한 형사와 살인자로서 죄책감과 원한에 사로잡혀 살아온 최억구가 동행하는 길을 따라 전개되고 있다. 눈 덮인 어두운 산길은 삶의 간고한 의미가 내포된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추운 밤의 배경 속에서 삶의 비정한 의미가 한 가닥씩 풀려 그 내면의 어긋남이 해명되어 간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도 학생 때 토끼몰이를 할 때에는 어린 새끼를 살펴보려고 무던히 애썼던 일이 있는, 이를 테면 인간애의 정신을 소유한 인물로 설정되어 그의 형사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반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최억구가 살인자임을 확신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의 묘에 성묘하고 스스로 자결하려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담배를 나누어 주면서 하루에 한 개비씩 피울 것을 권하여 좀더 깊이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암시한다.

최억구는 6 · 25 당시 공산당의 사주에 의하여 득수와 득수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다. 그리고 득수의 아우 득칠이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도중에서 득칠까지도 죽인 비정한 인간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비정함은 유 · 소년기의 소외감이 한 원인이 되고 있으나 그에 못지 않게 6 · 25 당시 공산당의 교묘한 사주에 의한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대의 소용돌이와 개인의 욕망이 한데 어울려 비정한 사건이 벌어짐을 해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의 내밀한 분석이 개연성의 논리에 따른 창조적 상상력에 의하여 시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최억구의 어렸을 때의 한 회상에서, 그가 물어뜯은 득수의 장갑 실밥이 이 사이로 끼어 빠지지 않은 일을, 그가 죄책감에서 일생 동안 빠져 나오지 못할 심리적 고통을 암시하는 시적 장치로 마련하였다.

이 작품은 이런 뜻에서 성취 욕망이 운명적 엇갈림에 의하여 죄책감으로 살아 남는 삶의 내재적 고통을 적절히 묘사한 수작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깨어진 존재인 채로 고향으로 복귀하려는 지향성이 인물의식의 근저에 살아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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