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밤(1933)

-이태준-  

◆ 소설 읽기  

● 줄거리

성북동으로 이사와서 대엿새 되던 날 밤, 나는 누워서 '여기는 정말 시골이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때문이 아니라, 이 날 저녁에 본 황수건이라는 사람 때문이다. 서울이라고 못난이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런 못난이는 시골에서 유독 눈에 띄기 마련인데, 우둔하고 천진스러운 모습이 시골의 정취를 돋아 주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열시나 되어서 큰 소리로 나를 찾아왔다. 신문 배달을 하는데 사흘 동안이나 찾지 못하다 겨우 오늘 알았다면서 여러 가지 말을 건넨다. 생긴 것이 재미났다. 개를 키우지 않아 좋다고 하면서 공손히 인사하고 나간다.

이튿날 늦게야 배달을 오자 내가 늦은 이유를 물으니, 황수건은 자기가 신문 배달을 하게 된 경위, 그리고 원배달이 아니고 보조배달인 것, 가족 관계며 이름들, 자기 이름에 얽힌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내가 너무 늦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나간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고,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거뜬해지는 것이 좋았다. 어떤 날은 아주 쓸데없는 화제를 꺼내어서 막힌 대화를 뚫어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원배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내가 그럴 것 없이 그냥 신문사 사장이 되라고 해 보니, 딴을 그렇겠다고 하면서 거기까지는 바랄 생각을 못하였다고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원배달이 되었다고 좋아하며 찾아왔다. 나도 진실로 즐거웠다.

이틀 동안 그는 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배달 방울을 흔들며 들어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너무 반편이라 어디 배달원으로 쓰겠느냐며 자기가 구역을 분할을 받아 배달을 맡았다고 한다. 나는 황수건을 못 만날 것 같아 아쉬워했다. 그리고 세상의 야박함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성북동 사람들은 황수건 말만 해도 웃었고 일화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삼산 학교에 급사로 있을 때, 시학관이 학교를 방문한다는 걸 알고는 열심히 일본말을 배워 한 문장만 줄줄 외워 두었다가 시학관이 오는 날 그 말만 되풀이하자 시학관은 처음에는 웃었지만 연거푸 그 말만 하니 그만 화를 내고 말았고, 교실에 있던 선생들이 하도 종이 울리지 않아 그냥 나와 보니, 시학관에게 계속 그 말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또 한 선생이 봄날이 되면 색시들이 도망을 잘 간다고 했더니 오십 분 만에 칠 종을 삼십 분, 이십 분 당겨 쳐 버리고 집으로 갔다고도 한다.

황수건을 거의 잊고 있을 때, 황수건이 나타나서 삼산 학교 급사로 다시 가려고 운동을 하는데, 지금 있는 급사가 근력이 세어서 덤벼들기가 두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천연두 우두를 맞지 말라고도 한다. 그걸 맞으면 근력이 떨어진다고. 내가 삼산 학교 들기만을 바라느냐고 물으니, 돈만 있다면, 학교 앞에 가게를 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참외 장사라도 해 보라고 삼 원을 주었다.

황수건은 여름 내내 우리 집에 얼씬하지 않았다. 참외는 장마가 들어 밑천만 까먹었고 아내가 달아났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런데 요 며칠 전 황수건이 포도를 들고 나를 찾아오는데, 곧 이어 누가 따라오더니 황수건의 멱살을 쥐고는 끌고 나갔다. 나는 그가 포도원에서 포도를 훔쳐 온 것임을 직감하였다. 좇아가서 매를 말리고 포도값을 물어주고 보니 수건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포도를 아끼며 먹었다.

어제 늦게 돌아오는 성북동 밤길은 달빛이 깁을 깐 듯했다. 포도원께로 걸어 올라오는데 누가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알은체를 하려다가 그가 무안해할까 싶어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그는 달만 쳐다보고 노래의 첫 줄만 계속 부르며 걷는다. 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담배까지 빨면서.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 인물의 성격

◆ 황수건 → 우둔하지만 순진 무구한 품성을 지닌 남자로, 학교 급사, 신문 보조 배달원, 참외 장사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끝내 아내마저 도망가자 달을 쳐다 보며 우수에 젖는 주인공

◆ 나 → 황수건을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설 속의 화자

● 구성 단계

◆ 발단 :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황수건이 못난이라는 사실을 앎.

◆ 전개 : 원배달이 소원인 보조 배달원 황수건의 과거

◆ 위기 : 보조 배달마저 쫓겨나고 '나'의 도움으로 참외 장사를 시작함.

◆ 절정 : 참외 장사 실패와 아내의 가출

◆ 결말 : 달을 쳐다보며 깊은 우수에 잠기는 황수건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화자인 '나'와 주인공인 '황수건'이라는 사내가 엮어 나가는 이야기인데,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이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히면서 아픔을 겪는 모습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러한 황수건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애상적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두 인물의 관계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사람됨과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즉, 이 세계는 약삭빠르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기에 '황수건'같이 신문 배달 자체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 그래서 도중에 어느 집에서 지체되면 밤이 되어서 배달하는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통해서 '반편'같은 존재도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살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 이태준의 소설 속의 인물들 → 가난한 자, 못 배운 자, 늙은이, 농투성이, 퇴기 등 모두 생활의 전면에서 이탈되어 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원이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림받고 있다는 시각에서 그들의 고달픈 삶을 재연해 우리를 따사로운 인정의 세계로 이끌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순진 무구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착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소외되는 세상은 참으로 부정적인 세계이다. 왜곡된 세태의 힘에 밀리는 그들을 그림으로써, 세상의 부정성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작가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가치로 숭상하는 것은, 이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인간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이태준은 천생 휴머니스트이다.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됨됨이 → 성북동으로 이사온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만난 사람은 황수건이다. 그는 약간 모자라는 인물로 그려진다. 번잡하고 영악스러움이 넘치는 도시에서 한일(閑逸)이 있는 시골에서 누리는 삶의 여유와 편안함을 대변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황수건은 모자라지만, 세태에 물들지 않은 순진한 품성을 지니고 있으며, 단순하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며,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를 표할 줄 아는 착한 품성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황수건이 삶의 현장에서 쫓겨나고 그의 아내마저 달아나 버림으로 인해, 그의 삶 또한 고단해지고 그 애환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 배경 : 서울 성북동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특징 :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이의 삶을 그림. 애상적 분위기

주제

* 각박한 현실에 부딪혀 아픔을 겪는 삶의 모습

* 모자라지만 천진한 황수건에 대한 연민과 사랑

◆ 출전 : <중앙>(1933)에 발표됨.

● 생각해 볼 문제

1. 황수건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정리해 보자.

⇒ 약간 모자라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착하고 인정이 있으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2. '나'가 황수건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나는 도시인의 영악성과 메마른 심성에 지친 자이다. 따라서 그는 천진한 사람들과 살고 싶어하는데, 이런 태도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 바로 황수건이기 때문이다.

3. 성북동이란 자연 환경과 황수건이 어떤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 성북동의 자연은 메마른 도회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여유와 안식, 풋풋한 건강성을 주는 공간이다. 황수건의 천진한 심성과 그 성격이 서로 일치한다.

4. 황수건이 노래를 부르는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삶의 실상은 어떤 것이겠는가?

⇒ 붙잡혀서 얻어맞았을 텐데도 달밤의 정취에 젖어 노래를 부를 정도로 그는 마음이 평화롭고 낙천적이다. 그리고 모자라는 인물이기는 해도 자기 깜냥의 삶을 누릴 줄도 안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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