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1921)

-현진건-  

◆ 소설 읽기  

● 줄거리

결혼한 나는 지식을 얻기 위해 표연히 집을 떠나 지나와 일본을 굴러 다니다가 중도에 돌아온다. 생활능력이 없는 나는 처가덕으로 집간도 구하고 세간도 장만한다. 살림을 시작했으나 보수없는 독서와 가치없는 창작으로 해를 보내게 되며, 수입없는 생활이 계속되자 아내는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세간과 의복을 손댄다.

나는 외국으로 떠돌아 다닐 때 신풍조에 젖어 까닭없이 구식 여자를 싫어하여 일찍이 장가든 것을 후회도 했으나 아내를 겪어 보고 진한 사랑을 느낀다. 나는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고 가난에 찌들어 말없이 눈물짓는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는다. 오늘 점심을 마치고 막 권련 한 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은행에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찾아왔다. 친척들은 내가 신세를 질까보아서 나와 발을 끊고 살았지만, 그는 우리집에 자주 방문한다.

T는 성실하고 공순하여 소소한 소사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로 주위 어른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그러나 K(나)는 문학을 한다고 평판이 나쁘다. T는 물가 폭등에 대한 이야기며, 월급이 오른 이야기며, 주식 투자를 해서 이익을 본 이야기며, 은행 사무원 경기회에서 우승한 이야기 등을 잔뜩 늘어놓고 간다.

그를 보내고 책상을 향하여 짓던 소설의 결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아내가 살도리를 하라고 말한다. 나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사나운 어조로 몰풍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더니 입안말로 그것이 없다면서 중얼거린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던 나는 무엇을 찾는지 묻는다. 아내는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한다. 나는 아내가 아침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저고리를 찾는 것을 알고, 폈던 책을 덮으면서 한숨을 짓는다. 인적 끊긴 적막한 밤에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구슬픈 생각을 한다. 장앞에 초연히 서 있던 아내가 찾던 물건을 인천 사는 형님이 오시던 날 전당포에 잡힌 사실을 알아내며, 우리는 서로 말을 잃는다.

이튿날 늦게 일어난 우리 부부는 장인의 생신이라는 전갈을 받고 처가에 간다. 초라한 몰골을 한 나는 비소하고 모욕하는 것같은 인사를 받는다. 나는 자격지심에 술을 연거푸 마시고 취해서 돌아온다. 나는 취해서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 아내가 처가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다. 처형의 남편은 기미를 하여 가지고 돈 십만 원이나 착실히 딴 뒤로는 주야로 요리집과 기생집을 돌아다니며 이를 탓하는 처형을 걸핏하면 때린다.

이틀 뒤에 처형이 우리 집에 놀러와 아내에게 신발을 하나 사주고 자기의 새로 산 신을 자랑하다가 남편을 한 바탕 욕을 해댄다. 처형이 돌아간 뒤에 새 신을 집어들고 무척 좋아하는 아내를 보고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한다. 무명작가인 나를 믿고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가며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은 아내에게 위안을 느낀 나는 덥썩 아내의 허리를 잡아 안는다. 출세하여 호강시켜 주겠다는 말에 아내는 기뻐하며, 둘은 그렁그렁 눈물이 넘쳐 흐른다.

● 인물의 성격

◆ 나(K) → 개인적 출세와 물질주의라고 하는 당대의 일반적 가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빈궁과 정신적 고뇌를 겪게 되는 1920년대 지식인의 전형. 무명 작가 지망생

◆ 아내 → 가난하면서도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장래의 기대 속에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 T → 자신의 재질을 수단껏 발휘하고 적응하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인물로, 물질적 가치를 지향함

◆ 처형 → 부유하지만 늘 불만족스럽게 보람없이 살아가는 인물

● 구성 단계

◆ 발단 : 넉넉하지 못한 생활 단면 소개.

◆ 전개 : 아내와 '나'의 갈등.

◆ 위기 : '가난'과 '넉넉함'의 대조에서 생긴 아내와 나의 갈등.

◆ 절정 : 물질보다는 정신적 행복에 만족함.

◆ 결말 : 갈등의 해소와 부부간의 진실한 사랑.

● 이해와 감상

<빈처>는 1920년대 지식인의 삶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지식인이 생활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그리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현진건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 전개 따위는 없고, 일상사 속의 극히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 양순하고 가난한 아내의 내조와 주인공 '나'의 정신적 가치 추구가 아주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생활에 거의 보탬이 없는 독서와 창작으로 나날을 보내는 무위한 남편인 '나'와, 생계를 위해 장롱 속의 옷가지까지 전당 잡히며 남편의 성공만을 기다리는 아내, 이들의 생활 모습과 심리의 추이 과정이 객관적인 현실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사실적인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주인공 '나'는 당대의 지식인을 표상한다. 각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섭렵했고 새로운 세계의 풍조에 젖은 인물이다. 문사(文士)로서의 완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고, 문사의 청빈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는 의식의 소유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근대적 자아상을 지닌 인물이겠지만, 한편으로 구식여자와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를 알지 못하고, 가장으로서의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내에게는 군림하려고 드는 전근대적 자아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한 '나'는 자격지심(열등감)에 시달리며, 아내로부터 끊임없이 위로를 받는 유아적 자아상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음으로 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열등감은 흔히 우월감으로 역표출되는데, 문사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생활인으로서의 열등감이 숨어 있는 것이고, 아내를 속물처럼 비아냥거리며 자신은 청빈의 정신적 높이를 가진 것으로 내세우는 저변에는 숙맥으로서의 열등감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모습은 가련한 지식인의 허약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갈등은 부부간의 문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대립상에서 오는 것으로, 그것의 갈등은 결국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부부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부간의 갈등이 낭만적으로 해소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따뜻한 애정의 회복을 통해 그 동안의소원함을 극복하는 모습은 참다운 가정의 모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지만, 애정만으로 그들의 가난의 아픔이 치유될 것이라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무슨 일이든 생계를 도모할 만한 돈을 획득하지 못하는 한, 앞서의 갈등은 여전히 일어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낭만적 초월이 아닌 다른 대안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척박한 식민지의 토양에서 아마도 합리적 대안은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신변소설, 사실주의 소설

배경 : 근대화가 지향되면서 정신과 물질의 상관 관계가 극을 이루었던 1920년대

              당대 지식인이 적응하기 곤란했던 사회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나'가 서술자가 되어 아내와 처형 등을 관찰하여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심경을 나타낸다.

◆ 갈등구조 : 빈곤을 둘러싼,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의 일반화된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

◆ 주제 가난한 무명 작가 부부의 생활고와 부부애

출전 : 『개벽』(1921)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은 장인의 생일날에 모인 처형과 아내의 대조가 잘 부각되고 있다. 이 두 인물의 외형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비교해 보라.

⇒ 처형은 비단옷을 입은 화려한 여인이고, 아내는 전당포에나 찾아갈 수밖에 없는 찌든 풋나기 예술가의 처이다. 처형은 '이글이글 만발한 꽃'이고 아내는 '시들어 말라빠진 낙엽'과 같다. 처형은 쌀 투기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부유, 즉 물질적인 면을 상징하고, 아내는 현실적인 보상이 없는 예술, 즉 정신을 상징한다.

2. 가난과 부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무엇인가 ?

⇒ 가난은 정신적으로 부유한 것이며, 부는 정신적으로 가난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3. 이 소설이 당대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당대 지식인의 내면풍경은 어떠한 것인지 말해 보자.

⇒ 당대 지식인들은 전통과 근대의 길목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학문을 섭렵함으로써 교양과 지식은 높아졌지만 생활적 무능력을 보인다. 근대적 지성은 그런 정신주의와는 성격을 달리하는데도 화자는 전통적 의식에 빠져 있다. 따라서 그의 위상은 시대 변혁기의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잡은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비단 화자만이 아니라 당대 지식인의 공통된 내면풍경이라 할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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