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내국인(1991)

-김원우-  

◆ 소설 읽기  

● 줄거리

40대 후반으로 신경성 위장병 때문에 입원한 장근오는 월간 잡지사의 차장이다. 비노조원인 그를 문병 온 노조 부위원장으로부터 두 달 간의 유급 휴가를 권유받는다. 그는 노조의 요구 조건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다. 노조언들 역시 농성의 심각성이 전혀 없다. 잡지사 중간 관리인인 백두 부장은 뚜렷한 철학이 없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잡지를 만든다. 장 차장은 그런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 국문과 출신이었으나 이제는 돈벌레로 변한 그의 아내는 분당의 큰 아파트와 용량 큰 자가용 이외는 관심이 없다. 응급실로 들어오느라 아무런 돈이 없는 장 차장이 돈을 찾아 오라고 하자, 그의 아내는 자기 돈을 쓸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이기적인 인물이다.

마침 오늘 저녁이 아버지의 기일이다. 형수와 아내는 파출부를 불러 성의 없는 음식을 장만한다. 그런 상황에 염증을 느낀 장 차장은 사람 보기가 싫고 괴롭다.

● 인물의 성격

그(장 차장) → 염인증(厭人症)을 갖고 있는 중년의 잡지사 직원. 격동하는 사회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집안에서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 백두 부장 → 나이에 비해 머리가 하얗게 센 잡지사 부장. 세상을 상식적으로 바라보며, 무가치한 삶에 안주하며 산다.

노조 부위원장(우가) → 다방면에 박식하고 일상적인 삶에 어느 정도 빗겨나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인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 → 대학 국문과 출신이지만 세상사에는 관심 없이 아파트 분양 시장만 쫓아 다니는 소시민. 남편(장 차장)의 내면적 갈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 이해와 감상

제22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서 사계(四季)에 담은 네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풍요 속에서 허덕이는 세태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서로 무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① 가을 - 떠밀리는 세대 또는 자기 점검, ② 겨울 - 굳어지는 통일,  ③ 봄 - 가족은 떠돈다, ④ 여름 - 환상의 바닥'이라는 소제목에 담겨 있다. 4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각 에피소드들은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이미지와 주제를 결합하여 지향점을 잃고 방황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는 인간 본연의 욕망인 의식주가 남아돌 만큼 충족된 시대에 지향점을 잃어 버리고 겉도는 군상들의 내면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신문의 1면을 차지하던 노사 문제, 북방 외교 정책, 수서 사건, 아파트 분양 열기, 지역 감정, 소비 문화, 가족의 붕괴, 향락 산업의 번창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가는 '세계 내 가치 질서가 오늘날처럼 뒤죽박죽이고 말이 소모품으로 마구 버려지는 와중의 우리 세속계 표정을, 세대별 시각을, 배설의 현장을 그려 본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의 신문을 보지 않으면 이해가 힘들 정도로 많은 사건이 대화 속에 튀어나온다. 세태 소설의 문학적 한계와 의미를 되짚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무기질'의 사람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공기 · 물 등과 같이 세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의미이다. 유기질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긍정할 줄 아는 무기질의 세계, 그것은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삶의 메타포이다. 그리하여 작가 고유의 무관심하고 건조한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일상 세계의 부조리함과 비합리성을 천천히 경험하게 만든다.

월남한 실향민으로 자수성가를 이룬 이씨는 큰아들이 독일 유학 중 맹장염으로 갑자기 죽고 독일 혼혈의 핏줄을 남겼지만 그는 한번도 손자를 볼 수가 없었다. 둘째아들 내외는 자식 둘 생각도 없이 영화에 나오는 외국인들처럼 잘 살고 있고, 이혼한 막내딸은 친정에 얹혀 살지만 조만간 일본 유학을 갈 작정이다. 모두가 못마땅한 그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독일이다. 동서독의 통일은 그를 흥분으로 몰았고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이북에 있는 가족 하나라도 빼내 오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독일 손자녀석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김원우는 1947년 경상남도 진영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영문과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7년 중편 <임지>가 '한국문학'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작품집에 <무기질 청년>, <인생공부>, <장애물 경주>, <세 자매 이야기> 등이 있다. 소설가 김원일의 동생이며, 분단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쳐 온 형과는 달리 사실적이며 경험적인 세계의 현재적 묘사에 주력해 왔다.

놀라운 문체, 산만한 세계

방황하는 내국인은 관련없는 네 가지의 이야기를 묶어 놓은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혹시 뭔가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찾게 되었다. 그러나 없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 이야기는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듯한 인상이 강했다. 무엇 때문인가? <방황하는 내국인>이라는 제목에 그 답이 있다. 뭐 사실 답을 찾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그러한 작가의 생각은 뻔히 드러나는 것이다. 방황하는 내국인의 모습을 한 가지의 이야기로 주욱 한번에 속사해 버리기보다는 작달한 그림 네 개로 혼합색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랄까. 암울한 세상에서 받은 작가의 인상은 소설로 드러나고 있다. 일부 염세적이기도 하고, 비판적인 듯 순응적이기도 하다.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의도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는 그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소설의 주인공들 중에는 굉장한 입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작가의 서술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의 산만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지금 제대로 읽어 나가고 있는 것인가, 정교한 문체를 중요시하는 독자라면 일부 입담으로만 글을 이끌어 나가는 환타지 작가들과 비슷한 점이 있는 김원우의 이런 소설을 곱게 읽어 주었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의 그런 산만한 문체가 경박함의 산물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정신없는 세상, 그리고 산만한 정신 상태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두뇌는 정제, 정교와는 거리가 먼 활동을 하고 있을 듯 싶다. 김원우가 오히려 진실을 향한 펜을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 싶다. 문체는 진실을 말한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사실주의 소설, 현실 비판적

◆ 배경 : 1980년대 정치 사회 경제적 격동기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급변하는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전형적인 인물 창조를 통해 세태를 풍자함.

◆ 주제 풍요 속에서 지향점을 잃은 인간들의 모습

● 더 읽을거리

머릿속에 수 놓았던 '또 다른 삶' 열망  - 소설가 김원우 -

"아버지 원망 많이 했지. 가족이야 죽든 말든. 미친 짓 아냐?"

예순을 넘긴 소설가의 입에서 모진 말이 나왔다. 술자리의 취기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떠난 후 겪은 모진 고초의 잔가지들이 울컥 치밀어 오른 때문이기도 했다.

소설가 김원우(61). 그의 아버지(김종작)는 1950년 광란의 전쟁에서 북을 선택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패퇴하는 인민군과 함께 3남매와 아내를 남겨둔 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떠난 것이다. "아버지는 남로당 조직책으로 꽤 유명했지. 경남도당 부책까지 했으니까. 해방 전에도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렇어."

아버지는 빈자리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 가슴을 보면 시커먼 흉터가 있어. 인두로 지진 흔적 같아. 고문도 많이 당했을 거야." 그 흉터는 빨갱이 가족의 낙인이면서, 아버지 없는 아들, 과부 아닌 과부의 화인(火印) 같은 것이었다.

고향 김해시 진영읍을 떠나 대구에 온 것도 화기(火氣)를 조금이라도 피해보자는 심정이었다. "경찰에 안 불려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었지." 이후 이들 가족의 궁핍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기적같이 살았다."고 표현했다.

아버지가 떠날 때 그는 겨우 네 살이었다. "형은 아버지를 기억하지만, 난 얼굴도 생각 안 나." 그의 형은 <마당 깊은 집>의 소설가 김원일(66)이다. 대구의 삶은 참으로 비루했다. 어머니는 기생들 한복 바느질로 겨우 가족들 입에 풀칠을 했다. 도시락도 못 싸 가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배회하며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다.

아버지의 공백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족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과부는 매질로 아들을 키웠다. "형이 많이 맞았지." 한 번씩 팰 때마다 오줌이 질금질금 나도록 때렸다. '인간이 되라'로 했지만 그것은 '아버지처럼 되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무책임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고단한 삶의 피로감이 회초리에 실렸다. "일종의 화풀이기도 했어. 과부의 히스테리지." 어머니는 억척스러웠다. 바느질감이 없으면, 마산에서 함석통에 든 멸치젓을 떼와 염매시장 등에서 팔았다.

"책 없이 공부한 상처도 혹독해지." 셋집을 전전하면서 겨우 밥을 먹는 형편에 책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그 바람에 결손 가정의 차남으로서 남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낙오자의 상처도 입었다. 자연히 공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세상에 돈 없이 되는 일이 잘 있나? 그런데 소설은 볼펜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

이런 궁핍하고 절박한 상황이 이들 형제를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소설가로, 머릿속을 원고지에 채우면서 살도록 했다. 소설은 냉혹한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슬퍼해도 소용없었어. 소설에 내 얘기를 꾸며보자는 생각이 들었지."

원우는 그의 필명이다. 본명은 원수(源守)이다. 자꾸 놀림감이 되니까 '수'를 '우'로 바꾸었다. "성까지 바꿨어야 했는데…."라는 말에서 아버지의 이름마저 거부하고픈 심정도 담겨 있는 듯했다. 월북한 아버지는 남로당 숙청에서도 용케 살아났으나, 가족을 버린 결연함과 다른 남루한 삶을 살았다. 북에서 황해도 여자와 결혼해 아이도 둘을 가졌다.

김원우는 무기력한 개인의 삶과 타락한 중산층의 허위의식 등 우리 시대의 초상을 선 굵은 필치로 그려오고 있다. 슬픈 가족사를 많이 다룬 형과 달리 그의 작품은 반항아적인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안 그래도 형이 그래. 원우한테 미안하다. 소설가로 쓸거리를 혼자 다 써 먹어서." 그는 작가로서 형의 '그늘'을 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동의 반복도 철저히 피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초기 작품에는 아버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형과 달리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어. 알코올 중독자든, 몽둥이를 든 폭력 아버지든, 아버지의 상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도 없었지." 아버지의 부재와 그로 인한 상처는 자생적인 치유력을 가지게 된다. 바로 세월이다. 이제 아버지의 모습도 작품에 등장한다.

이번 달 문학지에 게재되는 단편 '미치도록 살아간다'에는 최 원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북에서 월남한 '삼팔 따라지(38선을 넘어온 사람이란 뜻)' 부모의 둘째 아들이 썩을 대로 썩은 세속화 과정에서 자기반성에 빠지는 이야기다. 또 이 작품에는 최 원장의 고교 동기인 소설가 교수가 나온다.

2년 전 쓴 단편 <달리는 풍속도>와 곧 발표된 중편 <참을 만한 생존의 가지 끝에서>와 함께 연작 3부작에는 과묵하고 생활력 강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린 김원우의 아버지가 아니라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한 그런 아버지들이다.

그가 비비고 싶은 그런 '언덕'들이다. 흑백사진 속에만 있는 유령 같은 아버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체온을 감지하려는 소설가의 연민이 퇴색된 인화지처럼 아련해 보인다.                            -김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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