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지도(1956)

-서기원-  

◆ 소설 읽기  

● 줄거리

미대생인 형남과 법대생인 상덕은 전쟁 때 피를 나눈 전우였다. 상덕이 먼저 제대하고, 뒤이어 형남이 제대하여 그들은 또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형남은 당시 의지할 곳도 마땅치 않고 해서 상덕의 권유에 따라 그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이미 윤주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상덕이 극장에서 만난 여자로 어떻게 하다 보니 아주 상덕과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세 사람 사이의 묘한 관계는 벌어지는 것이다.

상당기간을 지내던 형남이 극장의 광고판을 그리는 직업을 갖게 되어 밥값이나마 보태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공교롭게도 상덕이 그가 다니던 학관이 폐쇄됨에 따라 직장을 잃고 집에서 놀게 되었다. 상덕은 그 후로, 벌이는 아예 형남에게 떠맡기고 바둑으로 소일하며 술주정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런 상덕을 윤주는 대놓고 나무라지는 못하였으나, 점차 싸늘한 태도로 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상덕에 대한 윤주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의 변화는 형남의 내부에 일종의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막연한 욕망이었다. 이러한 형남의 심경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상덕은 형남에게 둘이서 윤주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형남은 처음엔 깜짝 놀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으나, 마음 속으로는 은근히 바라던 바였음을 생각한다.

다음 일요일 날, 상덕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는 윤주를 찾아갔다. 그러나 윤주에게 거부를 당하고 말았다. 방안에서 나오면서 그는 어떤 원망스런 감정을 느끼기 보다도 윤주에 대한 이미지가 새로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시험해 보려한 상덕에 이겼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음 날, 상덕이 돌아와 간밤의 사정을 전해 듣고 윤주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는 형남이 곧 자신이기 때문에 형남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형남은 이러한 그의 논리가 위장된 것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형남 자신을 비꼬는 우월감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서는 형남의 심정은 더욱 윤주에게 쏠리는 것이었다. 그 후 상덕은 형남에게 의도적인 허세를 취하곤 했다. 윤주는 또한 형남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형남은 스스로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는 결국 윤주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이는 윤주는 목석 그 자체였다. 그것은 차라리 인형에의 자독행위였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형남은 그 사실을 상덕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상덕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남은 자신이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세 사람의 남녀가 벌이는 기괴한 살림살이었다. 그는 윤주와 단둘이 이런 괴상한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졌다. 그는 그 뒤 윤주의 방을 부단히 들락거리면서 그네의 태도에 변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헛수고일 뿐이었다. 윤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형남 자신이었다.

일은 엉뚱하게 터지고 말았다. 윤주가 임신을 하고 만 것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 자연 그 아이를 낳을 것인가, 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세 사람은 이를 놓고 심하게 의견의 차이를 보았다. 상덕은 시종 냉소적인 태도였다. 윤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윤주가 짐을 꾸려 가지고 나가자 형남은 다급해져서 윤주를 뒤쫓아 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상덕의 눈매가 심하게 이지러져 있었다.

● 인물의 성격

◆ 상덕 → 실업의 콤플렉스와 도덕적 불감증, 그리고 인간에 대한 왜곡된 관점에 젖어 있는 파탄자

◆ 형남 → 상덕에 비해 덜 황폐화되어 있지만, 정신적 방황을 겪는 인물. 윤주를 향해 가는 태도에서 인생을 새롭게 전환할 가능성을 보이는 인물

◆ 윤주 → 상덕과 함께 도덕적 파탄에 젖었던 인물이지만, 임신을 계기로 과거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행동화하는 적극성이 보인다. 셋 중에서 가장 의지적이며, 이 작품의 주제는 윤주에 의해 초점화된다.

● 이해와 감상

형남, 상덕, 윤주 이 세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전후의 혼란된 상황, 그 자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기존의 가치체계는 허물어져 버리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전후 세대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암사지도>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기묘한 생활에서 독자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이것이 단순히 기묘한 정도에 그친다면 삼류소설에 그치고 말겠지만, 그 배경과 그 상징성에 눈을 돌려보면 이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포탄에 구멍이 뚫린 집'이다. 이것은 한국 전쟁의 상흔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사람은 그대로 전후 세대를 표상한다. 그들은 전쟁의 와중에 휩싸여 버렸고,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들이다. 또한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는 집이다. 그것은 전통적 윤리 질서의 단절을 의미하며, 섹스를 공유하는 문제가 여기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윤주의 임신은 우리 민족사의 아픈 현실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확실치 않은 아이지만, 확실한 것은 윤주가 아이를 가졌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즉, 전쟁의 원인이야 어디에 있었든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전쟁을 치루었고, 그 상처를 어떻게든 치료해야 한다. 우리 앞에 주어진 미래를 그저 과거의 아픔 때문에 내팽개칠 수는 없다. 어렵고 고단한 것이기는 해도 미래를 착실히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이다.

 

윤주의 집 나가기는 상덕과 형남 때문만은 아니다. '포탄에 구멍이 뚫린 지붕'이 있는 집에서 정신적으로 포탄에 맞고 바스러져 있는 상덕과 형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전쟁이 준 외형적 피해와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열린 세계로 다시 나가려고 하는 몸짓의 상징적 표현이다. 즉, 전쟁이 준 상처에 매몰되지 말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제목인 '암사지도'는 '백지도'를 말한다. 전후의 상황은 그야말로 좌표와 정체성을 잃은 부유의 상태였다. 사회도, 사람들도 뚜렷한 자신의 위치를 가지지 못한, 그래서 백지도와 다를 바 없는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백지도에 새로운 산맥과 강과 지명을 채워나가야 한다. 비워져 있다는 것은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이 백지도에 새로운 지형을 그리기 위해 윤주는 집을 나간다. 새롭게 그리게 될 지형은 미래다. 그것은 또한 윤주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태아이다. 그 태아는 구멍이 뚫린 지붕 아래서, 부권이 상실된 절망에서 방황하지 않고, 어머니의 분명한 가르침 아래 제대로 삶을 설계하며 새날을 열어 갈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전후소설

배경 : 전쟁 직후 서울 시내의 한 허름한 한식 기와집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전쟁이 가져다 준 정신의 파탄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출발

             전후(戰後)의 무질서한 현실과 전도(顚倒)된 가치관에 대한 비판

● 생각해 볼 문제

1. 상덕의 집을 묘사한 대목은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를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므로, 외형상의 참상을 통해 그 점을 부각시킬 수 있음.

 

2. 윤주가 집을 나가는 행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

⇒ 상덕이의 집은 과거의 상처가 고스란히 유지되어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여기서의 벗어남은 과거의 아픔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윤주는 현실의 불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향한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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