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 윤흥길 -  

◆ 소설 읽기  

● 줄거리

국민학교 교사인 오 선생은 셋방을 전전하다가 집 한 채를 장만한다. 그리고 문간방을 세 놓는다. 그러나 자신들의 서러웠던 처지를 생각해서 간단한 조건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세를 들어올 사람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해서 보증금도 다 내놓지 않고 기일보다 앞서서 이사온다는 통보를 하고, 게다가 이순경은 문간방 권 씨의 동태를 살펴 달라고 하는 특별한 부탁까지 한다.

권 씨네가 이사를 오는 일요일, 너무 간단한 이삿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데리고 오는 그들의 짐이라곤 이불 보따리 하나와 취사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오 선생이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권 씨는 반짝이는 구두를 바짓가랑이로 이리 저리 닦고 있었다.

세를 들어온 권기용 씨는 성남 지구 택지 개발이 시작될 때,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철거민의 딱지를 샀다가 당국의 거듭되는 불합리한 요구에 결국 손을 들게 되었다. 권 씨는 철거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조직된 대책위원회의 회장을 맡아 시위 주동자로 몰려 감옥 생활을 한 전과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왜소하고 선량한 모습에 무척 내성적인 성격의 권기용 씨는 그래도 대학까지 다녔다는 자존심만은 대단하다. 그는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를 장만하여 구두 닦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구두 닦는 솜씨도 여간이 아니었으며, 구두를 다 닦은 권 씨의 눈빛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못생긴 권 씨의 얼굴에서 눈만은 착하게 보이고 맑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순경이 오 선생을 찾아와 결국 자존심 때문에 권 씨가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사장에서 우연히 가정 방문을 가던 오 선생을 만난 권 씨는 매우 당황해 한다. 저녁에 소주 한 병을 들고 와서 자신이 안동 권 씨의 후손이며 대학까지 나왔다는 권 씨의 기나긴 신세 한탄을 오 선생은 들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권 씨가 학교로 찾아와서 출산하는 아내의 입원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나에게 한다. 내가 당장 마련할 수가 없다고 거절하자,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요' 하면서 그는 돌아갔다. 나는 찝찝한 마음에 돈을 주선하여 병원으로 찾아가 입원 수속을 해주었다. 돈을 마련하러 나간 권 씨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무척이나 서툴렀다. 내가 도둑에게 경력이 일천하다고 하자 그는 도둑 맞을 물건도 제대로 없는 주제에 이죽거린다고 하였다. 강도가 현관의 구두를 신을 때, 그 구두를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강도가 자신도 모르게 문간방 쪽으로 가자, 나는 대문은 저쪽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 권 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그 날 나는 권 씨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복면의 권 씨가 다음 날 떳떳이 나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후회되었다. 새끼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가로막은 그것이 그에게 대체 무엇으로 느껴졌을까. 아내가 병원으로 간 뒤, 나는 권 씨의 방을 살펴보았다. 잘 닦여 있는 일곱 중에서 하나를 생각해 보며, 그 구두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그의 행방 불명을 알리려고 나는 이 순경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 인물의 성격

'나'(오 선생) → 작품의 서술자, 현직 교사로 온건한 성격의 소유자임.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인물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삶의 평안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아내 → 평범한 소시민적인 가정 주부로 개인적임.

권기용 → 대학까지 나온 선량한 소시민이었으나 시위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늘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 놓으며 끝까지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순경 →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인간성을 가짐.

● 구성 단계

발단 : 권 씨가 '나'의 집 문간방에 전세로 입주함.

전개 : 생활 능력이 부족한 전과자이면서도 구두에 대한 정성이 지극한 권 씨

위기 : 아내의 입원비를 빌리려는 권 씨의 청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권 씨 모르게 돕게 됨.

절정 : 권 씨가 '나'의 집에 강도로 침입했다가 자존심만 상한 채 나감.

결말 :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기고 권 씨가 행방 불명됨.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오 선생'이라는 3인칭 서술자를 통하여 '권기용'이라는 가난한 서민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권 씨는 경제적인 능력도 없고, 산업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자존심을 훈장처럼 번득이면서 좌절만 거듭하는 다소 희극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권 씨를 통하여 현대사회의 병증을 함축성 있게 암시한다. 작품의 인물 권 씨는 작가 자신의 반영은 아니지만, 작가의 자기 성찰에 의하여 발견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권 씨의 반짝거리는 구두는 그의 발밑에 떨어진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는 열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고, 그 중 일곱 개의 구두를 닦아놓고는 매일 하나씩 새로운 구두로 일 주일을 보내는 사람이다. 복장은 초라해도 구두만은 반짝이게 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옳은 직업이 없이 전전하지만, 그 내면에 들어박힌 자존심은 지키고자 한다. 그것이 반짝거리는 구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의식은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다.

강도 사건 이후, 권 씨는 사라지고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게 되었다. 열 켤레 중에서 한 켤레의 구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구두만은 지키던 그가, 그야말로 가난의 극에까지 가서는 자존심을 잃지 않았을까? 현실은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물질적 결핍이다. 정신의 높이를 지향하는 자에게,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다. '나'는 결국 이 비극적 현실에서 아프게 살아가는 권 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와 '권 씨'는 모두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인은 양심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대중과의 정신적 거리를 얼마간 지닌 계층이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반도덕적 행위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식인은 흔히 '관조적 지성'이라 비판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어떤 실상을 비교적 바르게 보고, 판단 또한 옳지만, 그 실상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 태도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권 씨는 그의 과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그 역시도 하층민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지만, 인간의 처절한 본성을 본 뒤 시위에 뛰어 들어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비록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참담함에 달려 들었던 것이다. 이런 권 씨에 비해 화자인 ''는 같은 지식인이면서도 안락한 생활에 젖으려 하고, 관조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권 씨의 태도가 화자보다 높은 위상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중편 소설, 세태 소설, 시대 고발적 성격

배경 : 1970년대 후반 급격한 도시 개발로 인한 도시 빈민 계층이 발생하던 시기의 성남 지역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1인칭 관찰자가 서술자로 선택될 경우, 1인칭 관찰자는 자신의 눈에 비친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과 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오 선생이라 불리는 '나'는 전형적인 소시민이자 지식인으로, 권 씨 역시 본래 같은 처지였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갖고 있어 그의 심리를 잘 이해하여 전달하고 있다.)

'아홉 켤레의 구두'가 갖는 의미 : 스스로 지식인임을 자부했던 권 씨는 열심히 살려고 했으나 산업화 · 도시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밀려 도태되고,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간다. 즉 '아홉 켤레의 구두'는 권 씨의 부재를 상징하며, 동시에 소외된 서민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비하면 '열 켤레의 구두'는 자신은 하층민이 아니고 지식인이라는 권 씨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출전 : <창작과 비평>(1977)

주제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자존심에 대한 문제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비극적인 삶

● 생각해 볼 문제

1. 권 씨가 '나 이래뵈도 대학 나온 사람이오'라는 말을 자꾸만 되뇌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 비록 가난하여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코 자존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생활적 무능에 대한 콤플렉스의 표현이기도 하다.

 

2. 화자인 '나'의 권 씨에 대한 심리의 추이를 정리해 보자.

⇒ '나'는 권 씨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만 여기다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란 인식에 이르고, 그가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이 지경의 삶에 처한 것을 알고는 우호적으로 바뀐다. 권 씨가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을 때, 그에 대해 진정한 연민을 품고, 찾아보려 애쓴다. 결국 심정적 이해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보인다. 즉 '사랑하게 될 겁니다'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3. '구두'가 지닌 상징성에 대해 말해 보자.

⇒ 주인공 권 씨는 소시민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의 현실은 막벌이 노동 계층으로 전락해 있지만 그의 정신적 삶은 지식인으로서의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구두'에 대한 애착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부정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존심의 표현이자 욕망의 반영인 것이다.

 

4. 강도가 되어 침범한 권 씨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 화자의 배려는 권 씨의 자존심에 더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배려가 사랑의 차원이 아닐 때, 그것은 커다란 아픔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화자는 진정한 사랑이 없는 어설픈 배려를 뉘우치고 있다.

● 더 읽을거리

◆ 권 씨에 대한 '나'의 태도

이 소설의 첫 장면에서 이 순경은 권 씨를 감시하는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 권 씨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이러한 이 순경의 우호적인 태도는 '나'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때로는 자신이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며, 안동 권 씨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자존심을 지키며 살려는 모습에 연민과 애정을 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강도로 돌변해 침입을 하지만, '나'는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는커녕 동정하며 공감해 준다. 이러한 서술자의 태도는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권 씨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함으로써 다소 희극적인 요소를 가진 인물임에도 독자는 이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 권 씨가 집을 나간 이유

권 씨는 뜻하지 않은 일로 시위에 휘말려 전과자가 되고, 지금은 살길조차 막막한 처지이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만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닦여 있는 그의 구두는 그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내의 수술비가 없어 강도짓까지 하게 되고, '나'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결국 권 씨는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 하나로 버텨 오던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 이 사건으로 인해 권 씨는 마지막 자존심의 상징인 구두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간 것이다.

◆ 작품의 배경인 광주 대단지 사건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 대단지 주민 5만여 명이 정부의 무계획적이고 졸속한 도시화에 반발하여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당시 도시적 갈등 문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입주민의 생업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자급자족 도시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선전만 믿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주민들이 실업 상태에 빠지고, 토지 투기를 둘러싼 각종 사기, 협잡 그리고 폭력, 절도 등의 범죄 행위가 급증했다. 이에 입주민들이 이러한 불합리한 정책을 시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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