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윤오영-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글쓴이의 체험에 대한 회상적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춘기적 감수성인 부끄러움의 의미를 넘어선 한국적인 정서로서 부끄러움의 멋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 나오는 소녀의 얼굴에 띤 홍조를 통해 우리 민족의 멋스런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의 은은하고 담담한 시선이 이러한 고전적 부끄러움을 표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별다른 부연 설명이나 감정의 표출 없이, 사춘기적 감수성을 통해 발견한 한국적인 정서가 우리 민족 특유의 은은함과 멋스러움으로 연결되는 데 이 수필의 묘미가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회상적 · 서정적 · 일화적-

특성

* 이야기 형태로 구성함.

* 자신의 경험을 한국적 정서로 표현함.

주제 : 부끄러움의 한국적 아름다움

출전 : <곶감과 수필>(2000)

  생각해 보기

◆ 윤오영의 작품 세계

윤오영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학에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 소재나 정서를 많이 다루었으며, 작품을 통해 우리글이 나아갈 바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둘째, 그는 수필 또한 엄연한 문학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글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장르의 작자들이 기울이는 노력 이상의 수련과 습작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몸소 실천했다.

셋째, 수필의 생명인 자아의 경지를 살려 나가는 점을 뚜렷하게 인식했다. 그의 수필에는 고독에 시달리고, 고독을 음미하고, 고독을 사랑하기도 하는 품위와 통찰력을 갖춘, 그러면서도 정감의 순박함을 지닌 지성인으로서의 그의 인간됨이 투영되어 있다.

 

◆ 윤오영의 작품에 나타난 문체적 특징

시각적 이미지 : 윤오영의 수필을 읽으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수필이 어떤 사상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백의 문장 : 윤오영의 수필을 읽으면 독자는 상상을 하게 된다. 글쓴이가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 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문장들이 여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읽기

고개 마루턱에 방석소나무가 하나 있었다. 예까지 오면 거진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 마루턱에서 보면 야트막한 산 밑에 올망졸망 초가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 집이 내 진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의 집이다.

*친척 아저씨 집 소개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한 번씩은 이 집을 찾는다. 이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열세 살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촌수를 따져 가며 통내외까지 할 절척(切戚, 성과 본이 같지 않으면서 가까운 친척)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수(다른 사람과 이루어져 있는 어떤 관계나 사이)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그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의 몸매며 옷매무새는 제법 색시꼴이 박히어 가기 시작했다.(글쓴이가 사춘기 시절에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은근한 호기심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당시 양가에서 여자에게 예의범절과 바느질, 음식 솜씨를 갖추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만 해도 시골서 좀 범절 있다는 가정에서는 열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 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친척 소녀 소개

집 문 앞에는 보리가 누렇게 패어 있었고, 한편 들에서는 일꾼들이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안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꾼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돗자리도 깔려 있었다.(소녀가 나를 위해 건넌방을 정리한 모습)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 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도 훨씬 성숙해 보였다. 반쯤 닫힌 안방 문 사이로 경대 반짇고리들이 한편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막 건넌방에서 옮겨 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꾼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 눈썹 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정결하고 깔밋했다(아담하고 깔끔하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는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차분하고 조용한 소녀의 자태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맞은편 벽 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곤때가 약간 묻은 분홍 적삼은 소녀의 체취를 환기시키는 물건으로, 소녀는 이 때문에 부끄러워 하게 된다. 여기서 반복과 도치에 의한 표현이 글쓴이의 사춘기적 감수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약간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나 맛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수다스럽게 떠벌려 늘어놓는 말)는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소녀의 사춘기적 심성에 대한 배려)

*소녀의 적삼에 어리는 호기심

상을 내어 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부끄러움에 '나'를 보지 못하는 소녀)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얘도 새롭기는." 하며 미안한 듯 머뭇머뭇 기다렸으나(보리 베는 일꾼들의 점심 식사를 챙기느라 적삼에 얽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아주머니의 미안한 감정이 나타나 있다.)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때 뒤를 흘낏 훔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뺨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어여쁜 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