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바벨탑                                           -전혜린-

이해와 감

1960년대에 쓰여진 이 글은, 물질적 가치를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쓴 수필이다. 작자는 여성의 사치 행태를 나열하면서 여성을 비난하는 듯하지만, 작자가 비난하는 것은 여성에게 비본질적 삶을 요구하는 남성 중심 사회다. 그리고 여성을 사치의 허무한 바벨탑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길은, 여성 스스로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자는 생 전반에 관해 본연적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진실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지닌 여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결국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각성한 여성이 곧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것이 작자의 여성관이다.

 요점 정리

◆ 성격 : 비판적, 논리적 경수필

◆ 특성

* 실존주의적 자유가 돋보임

◆ 주제여성의 태도 비판을 통한 여권 신장 촉구

◆ 출전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

◆ 관련 작품 : 전혜린의 '먼 곳에의 그리움',  입센의 '인형의 집'

생각해 보기

◆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여성의 본질적인 약점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

비본연적인 삶의 태도

본연적인 삶의 태도

* 물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 있음.

* 남성에게 의존하거나 기계와 같은 틀 속에서 안주함. → 자기를 소외하는 불성실한 태도

* 순간순간 자신을 의식하고 사회와 세계에 자신을 투기함.

*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함.

 

◆ '사치의 바벨탑'의 의미

'바벨탑'은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탑이다. 바벨론에 살던 노아의 자손들이 대홍수를 겪은 후, 하늘에 다다를 정도로 높은 탑을 쌓기 시작하였지만 하느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서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벨탑'은 보통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을 비유하는데, 이 글의 제목에서는 물질에 대한 여성들의 맹목적 집착을 비유하고 있다.

 

◆ 실존주의와 실존주의 문학

실존이란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로,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할 수 없는 자기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실존주의 문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현상을 부조리라 보고, 그 부조리에서 탈출한 참된 자아, 즉 실존을 중시하는 문학적 경향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0년대 이후 인간 본질의 문제, 인간 존재의 해명 등을 담은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작품 읽기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일반적으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주체적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자의 손에 쥐어진 경제적 특권, 남자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명예,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게 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부러 따옴표 속에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성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 언급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과 남성과의 사회적 차이와 대립이 완전히 제거된 곳은 없으며, 앞으로도 사회 구조의 전적인 변화가 없는 한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여성에 대한 편견이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쉽지 않음.)

* 여성의 비주체적인 삶과 사회적 차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몹시 느린 속도로 향상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아직도 우리는 평균적으로 보아서 여자가 사회에 한 발을 디디고 서기(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를 얻기)가 마치 미국에서 한 흑인이 그렇게 하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힘드는 처지에 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 간의 커다란 차이를 미리 고려하면서만 우리는 여성의 여러 문제 또는 약점을 파고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를 위해 고려할 점

여성의 가장 본질적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본디 생긴 그대로의 타고난 상태에서 벗어난) 태도를 들고 싶다. 자기 자신을 순간 순간마다 의식하고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자기를 투기하고 초월하면서(실존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순간 순간마다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그 일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적 삶의 타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본연적인 생활 태도라면, 태반의 여성의 생활은 그와 반대(물질적인 세계에서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살아감)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보다 큰, 보다 진실한 문제 ―― 유일한 문제는 회피하고 일시적인 눈가림인 사실의 세계 ―― 물질이 지배하는 ―― 에 빠져 있고, 그 곳에서 아무런 타격도 전율도 반응 없이 흘러가듯이 사는 생활 태도, 말하자면 비진정(非眞情)하고(거짓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가 대부분이 여자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여성의 본질적 약점인 비본연적 태도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실존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순간순간마다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면, 지금까지 잘해 왔던 모든 선택의 가치도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삶은 두렵고도 무서운 것이다.)하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의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들, 물질, 사치스런 생활, 남자에게 의존 또는 기계와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면하는 의식, 이러한 것들 속에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비본연적인 생활의 모습)은 허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신경력을 요한다. 특히 이 사회의 구조와 한국적 풍토(남존여비사상이 주도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너무나 신경이 긴장되는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자기 응시) 없이는 전생(全生)의 의의가 무(無)로 화하는(삶의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우리 삶에의 죄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 더 응시할 수 있을 것, 자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작은 모습, 왜소한 모습)을 긴박한,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 자기 응시의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