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뒤에 있는 것                                         -이어령-

이해와 감

어느 시골길의 풍경과 그 곳에서 겪었던 작은 사건을 통해 우리 민족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있는 글이다. 작자는 '한국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골길의 풍경에 퇴락하고 피폐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곳에 있는 자연 현상과 인간의 축조물, 인간의 모습 등 다양한 풍경을 나열하면서 구체화되고 있다. 즉, 작자가 보고 느낀 다양한 풍경을 나열하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즉, 작자가 보고 느낀 다양한 풍경들은 모두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골길에서 본 노부부의 모습 역시 적극적이고 개척적인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패배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이 작자는 보았던 풍경과 겪었던 일을 우리 조국 또는 민족의 현실로 일반화하여 슬프고도 안타까운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요점 정리

◆ 성격 : 서정적, 비판적, 체험적 경수필

◆ 특성

* 대상에 대한 비판적, 부정적 인식이 드러남.

*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사실로 일반화함.

◆ 주제피폐한 조국의 현실과 억눌린 민족의 역사

◆ 출전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 관련 작품 : 이희승의 '딸깍발이'

생각해 보기

◆ 이 글에 나타난 작자의 역사의식

조그마한 반도국인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잦은 외침에 시달려 왔다. 당, 원, 명, 청 등의 왕조가 있었던 거대한 대륙의 세력과 싸우기도 하였고, 굴욕적인 '신하'의 입장에서 강화를 맺기도 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서구 열강과 일제에 의해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 아래에서 작자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피해와 압박에 시달려 온 이들의 피폐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는 굴욕과 수난의 순간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전력이나 규모로 볼 때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전쟁에서도 장수의 뛰어난 기지와 군 · 관 · 민의 협동과 단결로써 승리를 얻은 전투도 많았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를 전수해 주기도 하였으며, 적극적인 무역 활동으로 동북 아시아 전체를 넘나들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볼 때, 이 글의 작자는 우리의 역사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 대신에 역사의 어두운 부분만 주목한 측면이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해 한층 더 균형잡힌 시각을 지녀야 우리 민족과 우리의 풍경, 우리의 정서 등에 대해 편향되지 않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읽기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이었다. 국도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한국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이따금 하얀 질경이꽃들이 피어 있었다.(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시골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반영된 작자의 정서는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고려할 때 '황토와 자갈'은 가난한 시골을, '하얀 질경이'는 피폐한 노부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붉은 산모퉁이를 끼고 굽어 돌아가는 그 길목은 인적도 없이 그렇게 슬픈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었다.(대상에 대한 화자의 심정이 직접 드러난 주관적 묘사) 시골 사람들은 보통 그러한 길을 '마차 길'이라고 부른다. 그 때 나는 그 길을 지프로 달리고 있었다. 두 뼘 남짓한 운전대의 유리창 너머로 내다본 나의 조국(시골길을 조국으로 일반화함)은, 그리고 그 고향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좁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었다. 많은 해를 망각의 여백 속에서 그냥 묻어 두었던 풍경들이다.(대상을 낭만적으로만 인식한 채 조국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적 진술) 이지러진 초가의 지붕, 돌담과 깨어진 비석,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 서낭당, 버려진 무덤들, 그리고 잔디, 아카시아, 말풀, 보리밭, 정적하고 단조한 풍경이다. / 거기에는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고,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골짜기와도 같은 그런 고요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폐허의 고요(마을을 바라보는 작자의 태도가 압축되어 나타난 표현)에 가까운 것이다. 향수만으로는 깊이 이해할 수도 또 설명될 수도 없는 정적함이다. 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가 크나큰 상처처럼, 공동(空洞)처럼 열려져 있다.(우리 조국의 현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음.)

*우리 민족의 상처가 깃들여 있는 시골길의 풍경

그 상처와 공동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여린 색채의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 확장에 걸린 시골 아이들의 불룩한 그 배를 보지 않고서는, 광대뼈가 나온 시골 여인네들의 땀내를 맡아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무심히 지껄이는 말솜씨를 듣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프가 사태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받이(내리막길) 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던 것(늙은 부부의 사건이 작자의 인식을 함축함)이다.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만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들은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 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때 일어났던 이야기의 전부다.(경험한 사건의 요약적 제시)

*경적 소리에 놀란 노부부

불과 수십 초 동안의 광경이었고, 차는 다시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을 뒤에 두고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는 그들의 거동에 처음엔 웃었고, 다음에는 화를 냈다.(우리 민족에 대한 침략자의 이미지와 상통함.)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운전수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몰고만 있을 뿐이다.

*노부부에 대한 운전수의 반응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잔영(殘影)이 좀처럼 눈앞에 서서 사라지질 않았다.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그 얼굴, 공포와 당혹의 표정, 마치 가축처럼 무딘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 가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 위급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메마른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으려던 그 또 하나의 손, 떨리던 손.](노부부의 모습에 대한 잔영을 상세화하여 제시함. 피폐하고 억압당하는 이미지)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노부부의 모습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 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차에 쫓기던 노부부는 현재의 한국인을 상징함과 동시에 우리 역사 속의 민중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그렇게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이방인(늙은 부부와는 대조적인 모습)처럼 세련되어 있지 않다. 운전수가 뜻 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꼭 길가에서 놀던 닭이나 오리 떼들이 차가 달려왔을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나가는(가축처럼 무딘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 가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 없이 엄습해 왔을 때에,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 가야만 했던 것일까?(작자는 지프로 상징되는 수많은 역사적 시련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수동적 자세로 회피하고 희생되는 모습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작자의 역사 인식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면이 있다.)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 돌이켜 본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