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딴 문답                             -김소운-

 

  ■ 이해와 감상

김소운의 수필은 인정에 감싸인 유려(流麗)한 문체로 개인과 민족애에서 우러난 분노의 감정이 깃들어 있으며, 명상보다는 성찰(省察)의 경향이 주된 특징이다.

이 수필은 희곡적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두 가지의 예화를 인용함으로써 지은이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 마치 작은 논평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이런 글이 수필다워 보이는 것은 주변의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화 중 하나는, 지열(地熱)에 의해 알맞게 익혀진 오리알 피딴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썩기 직전의 쇠고기가 풍기는 독특한 맛에 관한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보아 넘기기 쉬운 두 가지 예화를 통하여 인생에 대한 멋진 감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두 가지 예화는 모두 인간의 노숙미, 또한 잘 삭는 생활의 멋이나 중용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즉, 도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무르익었을 때야말로 특유의 멋과 향기를 품을 수 있는 인생을 암시한 것이다.

  ■ 요점 정리

  ◆ 성격 : 경수필, 희곡적 수필, 교훈적 수필

  표현 : 대화를 중심으로 한 극적 구성.

               '피딴'이라는 낯선 소재로 이국적 분위기 연출

                예화를 통한 주제의 구체화

  주제 : 원숙한 생활의 멋과 여유 예찬

  ◆ 출전 : <김소운 수필 전집>

  ■ 생각해 보기

1. 이 글에서 '피딴'은 인생의 어떤 면과 대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오랜 시일의 수련을 통한 자기 완성

2. 본문에서 '피딴만한 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삶의 연륜과 독특한 풍미가 담긴 글

3. 본문에서 '망건을 십년 뜨면 문리(文理)가 난다'는 무슨 뜻인가?

  →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연륜이 쌓이게 되면 그 일을 훤히 꿰뚫어 알게 된다.

 ■ 작품 읽기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알[鴨卵] 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알이던가?"

"오리알이지. 비록 오리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 외에 따로 가열(加熱)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오리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아니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妵]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 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 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망건을 십 년 뜨면 문리(文理)가 난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초심불망(初心不忘)이라지 않아……. 늙어 죽도록 중학생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야……. 이왕 글이라도 쓰려면, 하다못해 피딴 급수(級數)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 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에서 전별 (餞別)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 속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 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더란 거 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한 것이 가풍(家風)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제일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 있는 얘기 같지 않아……?"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긴 하 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 할 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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