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와 천재                           -유달영-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수필가이자 농학자인 글쓴이가 과거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쓴 수필입니다. 누에를 먹으면 비상한 재주를 얻게 된다는 외숙모의 말을 듣고 제일 큰 것으로 다섯 마리의 누에를 먹기로 작정하고는, 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아 가며 결국 다 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비상한 재주가 생기기는커녕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되고 나서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재주 없는 것을 탄식하기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주제 :

  작품 읽기

서당에 다니는 내가 긴 머리 꼬리를 잘라 버리고 외숙을 따라서 충청도로 갔을 때에 생긴 우스운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나는 거기서 간이한(간단하고 쉬운) 산술과 일어를 얼마 동안 익혀 가지고 보통학교 1학년에 중도 입학을 하였다. 내 외숙은 일찍 개화한 분이며, 내 외숙모는 외숙의 지시로 신식법으로 누에를 여러 장 쳐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작은 개미 같은 새까만 어린 누에들을 누에씨에서 쓸어 낸 것이 며칠 안 되는 성싶은데, 벌써 손가락만큼씩 큰 누에들이 손바닥 같은 뽕잎을 서걱서걱 먹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도 대견스러웠다. 내가 외숙모 옆에 서서 잠박(누에 채반)에 가득 찬 누에들을 보고 있노라면, 깊은 밤에 창밖에 내리는 봄비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여러 마리의 누에들의 뽕을 먹는 그윽한 소리는 내 마음을 착 가라앉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옥비녀같이 희고도 탐스러운 누에들은 내 눈 앞에서 무럭무럭 몸뚱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오래지 않아 이 버러지들의 입에서 윤이 흐르는 보드라운 비단실이 술술 한정없이 나와서 옥구슬 같은 고치가 눈송이처럼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고치들은 다시 내 외사촌 누나들의 손으로 정성스레 풀려져서 가지가지의 무늬진 비단으로 짜여질 것이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누에들이 신비스럽고 대견스러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외숙모, 누에는 참 재주도 좋아."

혼잣소리로 감탄하고 있노라니, 뽕을 주던 외숙모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구말구. 재주가 좋구말구."

이렇게 내 말에 찬동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외숙모는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 노인들이 그러시는데, 누에를 먹기만 하면 사람들도 비상한 재주가 생긴대.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비상한 재주'라는 한마디에 그만 귀가 번쩍 띄었다. 그래서 입 속으로 '비상한 재주, 비상한 재주' 하고 뇌어 보았다. 그리고 '정말 그럴지도 몰라. 참말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숙모, 얼마나 큰 누에를 몇 마리나 먹으면 된대요?"
하고 내가 슬쩍 물어 보았더니, 외숙모는,

"왜, 너 정말 누에를 먹어 보련?"
하시면서 나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나는 얼떨결에,

"아아뇨, 그걸 징그럽게 어떻게 먹어요."
하고 딴전을 피웠다. 외숙모는 소리를 내어 킬킬 웃으면서,

"먹기로 한다면야 제일 큰 것으로 다섯 마리쯤은 먹어야 약이 될 걸."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일 큰 것으로 다섯 마리.' 이것을 나는 똑똑하게 기억해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정보였다. 그리고 몇 번이고 '누에와 비상한 재주'에 대하여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어느 날 20리가 넘는 학교 길을 서둘러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잠실(누에를 키우는 방)에 들어가 보았다. 오령(누에가 넉 잠을 자고 섶에 오를 때까지의 사이)이 된 누에들은 지네 섶이 가득하게 얹힌 잠박 위에서 고치 지을 자리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벌써 머리를 휘둘러 어리(얼레)를 치는 놈들도 있었다. 누에는 이제 다 올라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올해에는 그 '비상한 재주'에 약이 되는 누에를 먹을 기회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반짝반짝하는 비단실이 뽑혀 나오는 누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재주가 비상해진대.' 하시던 외숙모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가슴에 되살아났다.

나는 결심을 했다. 잠박 위의 섶을 뒤지면서 누에를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되놓았다 하면서 골라 보았다. 그렇게 징글맞게 커 보이던 누에들이 어쩐지 집어 보면 모두 작은 것만 같았다. '더 큰 놈은 없을까?' 하고 한동안 뒤적거렸다. 나는 제일 굵고 탐스러운 누에 한 마리를 우선 골라 추켜들었다.

'이런 것 다섯 마리만 먹어 놓는다면, 난 힘 안 들이고 학기마다 첫째를 하고 우등상을 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솟아나고 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누에를 먹자는 결심은 이제 무엇으로도 돌릴 수가 없을 정도로 확고해 있었다. 누에 꽁지를 쥐고 쳐들어 입에다 넣으려고 하니, 머리를 내두르고 손가락으로 둘러붙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이 이처럼 굳게 섰으니 놓아줄 수야 있겠는가? 눈을 꼭 감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누에를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입 속이 뜨겁고 컴컴해서인지 누에는 꿈틀거리고 뒤틀고 들러붙고 하면서 못 견디어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딴판으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도저히 삼켜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대로 어금니 사이에 넣고 꽉 깨물어서 삼켜 버릴까?' 하고 생각했으나, 터진 누에가 입안에 흥건할 것을 상상해 보니, 이건 참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깨끗한 누에를 고스란히 삼켜서 곱게 내 몸속에 흡수시켜야 그 '비상한 재주'가 조금도 허실이 없이 내 것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시 혼란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대로 삼켜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단이고, 속에서 욕지기(토할 것 같은 메슥메슥한 느낌)가 나서 뱃속에 있는 것이 모두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시 죽을 힘을 다하여 혓바닥을 안으로 우기기도 하고, 목구멍을 크게 벌려 보기도 하고 온갖 노력을 다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징그럽게 큰 누에도 최대한의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땀은 비오듯 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인내와 욕망은 누에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그러나 식도에서도 위 속으로 순수닣 들어가지 않고 꿈틀거리고 들러붙고 야단이었다. 나는 '비상한 재주'의 5분의 1을 이렇게 삼킨 것이었다. 이제 몹시 힘이 들기는 했지만 다음 순서를 중지할 수는 없었다. 다시 두 마리째, 세 마리째, 네 마리째, 차례로 목구멍 너머로 넘기기에 성공했다.

땀은 쉴새없이 흘러서 적삼은 물에서 건져 낸 듯이 젖었다. 이렇게 해서 다섯 마리의 누에를 저녁 밥상이 들어오기 전에 다 먹기에 성공한 것이다. 위 속에서 다섯 마리의 커다란 누에들이 한데 엉키어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비상한 재주를 뱃속에 넣고 있다.' 하는 한 가지 기쁨이 모든 힘들고 괴로움을 극복하고 말았다. 나는 잠실 문을 열고 빨리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 비밀을 단단히 간직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저녁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외숙모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너 무엇을 했기에 옷이 그렇게 젖었니?"
하고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으나, 누에를 먹느라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어물어물해 버렸다. 만일 내가 누에를 다섯 마리나 산 채로 삼켰다는 사실을 말해 버린다면, 분명히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질뿐더러, 다른 아이들이 곧 누에를 나처럼 먹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비상한 재주'는 아무런 보람이 없어질 것이 아닌가? 그 날 나는 속이 느글거려서 저녁을 몇 술 못 뜨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렇게 힘들여서 먹은 누에의 효과는 도무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며칠 후부터는 비상한 재주가 나올는지 모르지. 아니, 몇 달 후부터는 나올지도 모르지.' 하고 끈덕지게 기다려 보았으나 전에 없던 재주가 솟아나는 것 같지도 않고, 숙제도 꼬박꼬박 힘들여 해 가야 했다. 꾸준한 노력을 전과 같이 계속해 가야 했다.

지금도 섶에 올린 굵다란 누에를 볼 때마다 내 어릴 적의 철없던 일을 회상하고 혼자 웃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일 그 다섯 마리의 누에가 내 뱃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비상한 재주를 정말로 내게 주어서 내가 비상한 재주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필연코 지금쯤은 그 재주를 믿고서 교만하고 게을러져서 어떤 어둡고 슬픈 골짜기 속에 떨어져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둔함을 알고 모든 일에 노력해 보려는 이 작은 밑천마저 그 재주가 앗아 가지고 갔을 것이 틀림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점점 '비상한 재주'에 대한 매력이 없어지고 오히려 둔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친밀과 친화가 생긴다. 진정 어리석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보고 싶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비상한 재주'가 확실히 생긴다고 하더라도, 다섯 마리의 누에를 산 채로 삼키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재주 없음을 탄식하기보다는 노력의 부족함을 뉘우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 뉴튼의 겸손과 에디슨의 노력은 그들이 이룬 발견과 발명보다 더욱 귀중한 유산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