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객의 신년 만필                                  -신채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중국에 머물며 독립 운동에 가담하고 있던 작자가 국내 독자들을 위해 쓴 것이다. 이 글에는 국권상실의 시대에 우리 문예의 의식과 사명이 오로지 일제 강점기라는 현실 극복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여기에 제시된 부분은 문예 운동의 피해를 비판한 부분이다. 작자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으므로 조선의 현실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근래 문예 운동이 성행하는 사실을 안다고 하며 그 문예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 비판을 위해 중국의 한 잡지에 실린 중국 문예 운동의 폐해에 대한 글을 인용하는데, 중국의 경우가 우리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 작자의 주장이다. 결국 문예 운동의 성행이 다른 사회 운동을 소멸시키고 있다는 것이 작자의 판단인 것이다.

  요점 정리

성격 : 비판적 수필

표현 : 문어체. 딱딱한 한문투의 문장

주제 : 조선 문예에 대한 비판과 그 나아갈 길의 제시

  작품 읽기

■ 문예 운동(文藝 運動)의 폐해(弊害)

낭만주의, 자연주의, 신낭만주의 등의 구별도 잘 못하는 현대에 가장 유행하는 굉굉한 서방 문예가들 유명한 소설이나 극본 등을 거의 눈에 대해 보지 못한 문예의 문외한이, 게다가 십여 년 해외에 앉아 분단이 소식이 격절하야, 무슨 작품이 있는지, 낫는지 어떤 것이 환영을 받는지 알지 못하니 조선 현재 문예에 대하야 가부를 말하랴. 다만 3·1운동 이래 가장 현저히 발달된 자는 문예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경제 압박이 아모리 심하다 하나 아귀의 금강산 구경같은 문예 작품의 독자는 없지 안하여, 경성의 신문지에 끼여 오는 책사 광고를 보면 서적은 거의 십오 년 전 그 때의 한 꼴이나, 시인과 소설 선생의 작물은 비교적 다수인 듯하다. 그래서 이 난필이 문예에 대하야 망론을 한 마디 하려 하나, 아! 재료가 없어 남의 말이나 소개하고 모으랴 한다.

 일즉 중국 광동의 <향도>란 잡지에 그 호 몇째던지, 작자가 누구이던지를 지금에 다 기억하지 못하는 중국 신문예에 대한 탄핵의 논문이 났었는데 그 대의를 말하면 '중국 연래에 제1혁명, 제2혁명, 5 · 4혁명, 5 · 7 운동······ 등이 모다 학생이 중심이었다. 그러더니 근래에 와서는 학생 사회가 왜? 이렇게 적막하냐 일반 학생들이 신문예의 마취제를 먹은 후로 혁명의 던지고 문예의 붓을 잡으며 희생 유혈의 관념을 버리신시, 신소설의 저작에 고심하여, 문예의 도원으로 안락국을 삼는 까닭이다. 몇 구의 시나 몇 줄의 소설을 지으면서 이를 팔아 그 생활비가 넉넉히 될 또한 독자의 환영을 받아 시가라 소설가라 하는 명예의 월계관을 쓰며 연애에 관한 소설을 잘 지으면 어여쁜 여학생이 그 뒤를 따라 무한한 염복을 누리게 됨으로 혁명이나 다른 운동같이 체수포살의 위험은 업고 명예와 안락을 얻으며 연애의 단꿈을 됨으로 문예의 작자가 많아질수록 혁명당이 적어 문예품의 독자가 많을수록 운동가가 없어진다 하였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에 3·1운동 이후에 침적하여진 우리 학생 사회를 연상하였다. 중국은 광대, 침혹 대륙인 고로 한 가지의 풍조로써 전국을 멍석말이할 수 없는 나라이어니와 조선은 청명협장한 반도인 한 가지의 운동을 전 사회를 곶감꼬치 떼이듯 할 수 있는 사회니, 즉 3 · 1운동 이후  신시, 신소설의 성행이 다른 운동을 초멸함이 아닌가 하였다.

 

* 굉굉 : 소리가 굉장하고 요란하게 우르렁거림.

* 격절 : 사이가 서로 동떨어져 연락이 끊어짐.

* 책사 : 서점.

* 난필 : 자기의 글씨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 망론 : 부질없는 망령된 말.

* 안락국 : 극락정토

* 염복 : 아름다운 여자가 잘 따르는 복. 여복

* 체수 : 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가두어 둠. 혹은 오래 가두어 둠.

* 포살 : 총포로 쏘아 죽임.

* 침적 : 물 밑에 가라앉아 쌓임.

* 침혹 : 속이 응큼하고 의심이 많음.

* 청명협장 : 맑고 깨끗하고 좁고 길다.

* 초멸 : 무찔러 없앰.

* 낭만주의 자연주의 , ~ 대하야 가무를 말하라.: (신채호 자신으로서는)문예사조도 잘 알지 못하고, 당시 유명한 서양문학가들의 작품도 읽어보지 못하여 문학예술에 전문적 식견도 없고, 조선을 떠나 중국에 망명한 지가 10년이나 되어서 조선의 현재 문학작품이나 그 경향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

* 아귀의 금강산 구경같은 ~ 독자는 없지 안하며 :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밥보다는 문예적 미를 구하는 사람이 없지 아니하며

* 중국은 광대 참혹한 ~ 수없는 나라어니와 : 중국은 넓고 큰 대륙이기 때문에 한 가지 사조나 경향으로 전국을 일거에 다 지배할 수 없는 나라이어니와.

* 3.1 운동 이후 신사,~ 초멸함이 아닌가 하였다. : 3.1 운동 이후 조선의 문사들에게 예술 지상주의적 신시,신소설 등의 문예 저작 경향이 지배적이어서 민족의 현실을 생각하고 개혁하는 운동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 예술주의의 문예와 인도주의의 문예 중 어떤 것이 좋은가

전술(前述)과 같이 설혹 신시와 신소설이 성행하는 까닭에 사회의 모든 운동이 침적하다 할지라도 만일 순예술주의자에게 말하면, '빈처의 단속곳(여자 한복에서 치마 안에 입는 통이 넓은 바지)을 팔아서라도 훌륭한 몇 짝의 신시를 삼이 가하며 강토의 전부를 주고라도 재미있는 몇 줄의 신소설을 바꿈이 가하다.' 하리니 그까짓 운동의 침적 여부야 누가 알겠느냐, 하리라. 존화주의(중국을 높이 여기는 사상)를 위하야 조선이 존재하며 상감오륜을 위하야 인민이 존재하며 권선징악을 위하야 역사와 소설이 존재하며, 기타 모든 것이 자(自)의 존재할 목적이 업시 타의 무엇을 위하야 존재한 줄로 단정한 누백 년 래 노예 사상에 대한 반감으로는 현 세계에 인도주의의 문예가 예술주의의 대신하려 함에 불구하고 나는 곧 예술 지상주의로 찬성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술도 고상하여야 예술이 될지어늘 환고랑자(부잣집 한량)의 육노(육체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랴는 자살귀의 강명화도 열녀되는 문예가 무삼 예술이냐, 누백만의 아귀를 곁에다 두고 1원 내지 5원의 소설책이나 팔아 일포(한순간의 배부름)를 구하려는 문예가들이 무슨 예술가이냐, 금강의 경이 아모리 좋을지라도 기아의 눈에는 일시의 밥만 못 하며 솔거의 화송(소나무 그림)이 아모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익수자(물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일편의 목판만 못하며 살도 죽도 못 하게 된 조선 민중의 귀에는 모든 미려한 가극과 소설의 이야기가 백두산 속 미신귀(미신 속에 등장하는 귀신)인 조 선생의 강신필(신을 청하여 내리게 하는 이야기)만 못하리니 1원이면 일가 인구의 며칠 생활활, 민중의 눈에 들어갈 수도 없는 2원, 3원의 고가 되는 소설을 지어 놓고 민중 문예라 호호함(큰소리로 부르짖음)도 얄미운 짓이어니와 민중 생활과 접촉이 없는 상류 사회 부귀가 남녀의 연애 사정을 그림으로 위주하는 장음(음란함을 부추김) 문자는 더욱 문단의 수치이다. 예술주의의 문예라 하면 현 조선을 그리는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인도주의의 문예라 하면 조선을 구하는 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니 지금의 민중에 관계가 없이 다만 간접의 해를 끼치는 사회의 모든 운동을 소멸하는 문예는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니다. 구주(유럽) 각국에는 매양 문예의 작물이 혁명의 선구가 되었다 하니 이는 그 역사와 환경이 다른 까닭이니 조선의 현재에 비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