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이해와 감상

사소한 일을 아름답게 설계하고 거기에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뜻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는 글이다. 작자는 낙엽을 태우는 일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느끼고 목욕물을 데우면서 행복감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내용이 감각적인 표현과 비유적인 표현,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작자의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을 보여 주며, 사소한 일에서 느끼는 상념이 잘 드러나 있다.

  요점 정리

성격 : 주관적, 감각적, 사색적 경수필

표현

* 의문형으로 끝을 맺어 여운을 남기고 있다.

*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개인적 취향이 드러난다.

* 대조적 이미지를 지닌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 관찰과 표현이 뛰어나며, 은유와 직유, 점층법을 적절히 구사함.

주제 : 낙엽을 태우면서 느끼는 생활의 보람

◆ 출전 : <조선 문학 독본>(1938)

  작품 읽기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히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족족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남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내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작자는 가을을 생활의 계절이라고 하면서 낙엽을 태우면서 생활의 의욕을 느껴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정서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작자의 독창적인 시각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 버린 꿈의 시체(낙엽의 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함.)를 ―― 땅 속에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낙엽을 태우면서 느끼는 생활의 의욕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다.(자신의 재정비, 낙엽으로 하여 생활에 의욕을 느낌.)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 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타오르는 불이 신령스럽게 느껴짐. 직유법)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 태곳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목욕물을 데우면서 느끼는 기쁨

나는 새삼스럽게 마음 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프로메테우스)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목욕에서 오는 쾌감, 생활의 만족감)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라, 늘 들어가는 집 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 속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생명체의 근원이 물이기 때문에, 설의법)

*목욕물 속에서 느끼는 기쁨

물과 불과 ――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의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새빨갛게 타는 불이 주는 감동과 따뜻한 물이 주는 쾌감)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사물이 각기 제 기능을 다하는 모습에서 생활의 충만과 의욕을 느낄 수 있다라는 의미)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어)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불과 물에서 생활의 의미를 느낌.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유쾌한 생활의 상념에 잠김.

책상 앞에 붙은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 새 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寸陰)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멸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些事, 작은 일)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사소한 일에서 생활의 의욕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 가는 가을,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늦가을에 낙엽마저도 떨어진 황량한 나무를 바라보며 낙엽을 태우는 것과 같은 작은 일에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뜻을 발견함은 가을이 생활의 계절인 탓이다. 설의법으로 끝을 맺어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하찮은 일에서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뜻을 발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