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유홍준-

이해와 감

이 글은 기행 수필로 경주 박물관에서 본 삼화령 애기 부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삼화령 애기 부처의 이름의 유래와 경주 박물관에 오게 된 과정, 삼화령 애기 부처의 발가락이 까맣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일반적인 기행문은 여정, 견문, 감상의 세 요소로 구성되는데, 이 글은 경주 박물관에서 생의사 미륵 삼존상(삼화령 애기 부처)을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기행문의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정이나 여행지에서의 견문이나 감상 전달에 그치지 않고 유물을 둘러싼 유물을 감상하는 어린 학생들의 반응 등을 다루면서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아냈다는 다른 기행문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닌다.

 요점 정리

◆ 성격 : 설명적, 서정적 경수필

◆ 특성

* 여정보다는 대상에 대한 일화와 감상을 주로 씀.

* 대상에 대한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각을 보임.

◆ 주제삼화령 애기 부처의 발가락이 까맣게 된 이유(문화재에 대한 애정)

◆ 출전 :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1993)

◆ 관련 작품 : 한비야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작품 읽기

삼화령 애기 부처

선덕 여왕 시절 문화 유산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유물은 삼화령 애기 부처(이 글의 중심 소재)이다. 정식 명칭은 생의사(生義寺) 미륵 삼존상(三尊像)이다. 이 3개의 석불은 본래 남산 삼화령 고개에 있던 것인데, 1925년 원위치에 있던 본존불을 박물관으로 옮겨 오고, 또 민가에서 훔쳐 간 협시 보살 2개를 입수해서 지금은 경주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이 삼존불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생의사 석미륵'인 것을 밝혀 낸 것은 황수영 박사였다. 기록에는 선덕 여왕 13년(644)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 삼존불은 참으로 귀엽게 생겼다. 모두 4등신의 어린아이 신체 비례를 하고 있어서, 그 앳된 얼굴의 해맑은 웃음이 보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는다.(작자는 삼화령 애기 부처를 어린아이의 신체 비례를 하고 있고 해맑은 웃음을 띤 귀여운 부처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삼화령 애기 부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대상에 대한 작자의 깊은 애정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왼쪽의 협시 보살 입상(立像)은 비록 코가 깨졌지만 불심(佛心)과 동심(童心)의 절묘한 만남(부처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통해 느껴지는 기묘한 조화)을 느끼게 해 준다.  <중략>

*삼화령 애기 부처 소개

3년 간의 해외 여행(1979년 미국에서 열린 '한국 미술 5천 년 전'에 진열된 것)을 마치고 돌아온 애기 부처는 다시 경주 박물관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 불상실에 진열되었다. 그런데 이 애기 부처가 그 때부터 발가락이 새까맣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다 싶어 소불 선생님(박물관 관장 정양모 씨)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대답이 "자네가 몇 시간만 그 앞에 서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될 걸세."라는 것이었다. 소불 선생의 답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직접 답을 이야기해 주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함.) 나는 말씀대로 무작정 그 앞에 서 보았다. 그리고는 한 시간도 못 되어 알 수 있었다. 진평 왕릉에 비하면 너무도 쉬운 문제였다.

*애기 부처의 발가락에 대한 궁금증

경주 박물관의 하루 평균 관람 인원은 2만 명이 넘는다. 초등 학생부터 중 · 고등 학생의 수학 여행, 신혼 여행, 효도 관광, 일본인들의 해외 관광 등으로 항시 만원이다. 심한 경우에는 진열장마다 일렬로 늘어선다. 고등 학생들은 '재미 없는' 박물관 견학을 진작 제쳐놓고 밖에서 맴돌지만 초등 학생이나 중학생들은 선생님의 눈이 무서워 마지못해 구경하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보아도 감동이 없다.(박물관 견학의 문제점을 제시한 부분이다. 마음으로 문화 유산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유물을 보게 함으로써 흥미도 감동도 없는 견학을 하는 것이다.) <중략>

*학생들의 박물관 관람 모습

불상실에 들어서면 이제까지와 달리 한쪽 벽에 불상 세 분이 널찍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까지처럼 답답했던 공간이 아니다. ―― 본래 박물관 진열은 이래야 한다.(답답한 박물관의 진열 방법에 대한 비판) 그래서 관람객들은 좀 차근히 보게 되는데(유물들이 널찍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한쪽에 귀여운 애기 부처가 서서 웃고 있다.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쟤 좀 봐, 쟤 좀 봐." 이내 방 안에는 "우와! 귀엽다. 우리 애기 같다."는 소리가 나온다. "조용히 해!" 선생님의 타이름이 있어도 막무가내다.(애기 부처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반응)

*애기 부처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

감성적 공감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게 마련이다.(예술 작품에서 감동을 받고 감탄하는 것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연주가 끝나면 박수 치는 것이 그렇다. 귀엽다는 탄성을 억누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선생의 재촉에도 이 애기 부처가 귀여워 그 자리를 좀처럼 못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귀여운 애기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보고 싶듯이 어떤 아이들은 한번 애기 부처 손이라도 만져 보고 싶으나 들어가지 못하는 금줄이 있고, 저쪽엔 모자 쓴 아저씨가 있다. 그래도 뱃심 좋은 아이(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는 수위 아저씨가 잠시 돌아서면 몰래 뛰어들어가 슬쩍 만져 보고 얼른 튀어나온다.(감성적 공감의 표현) 그러나 순식간에 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이나 손까지는 만져 보지 못하고 고작해야 발가락만 손 대 보고 만다. 그 개구쟁이 아이들의 손때가 쌓이고 쌓여 애기 부처의 발가락은 이렇게 까맣게 됐다.(삼화령 애기 부처의 발가락이 까맣게 된 이유가 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애기 부처의 아름다움에 대한 아이들의 감상적 공감의 결과이다.)

*애기 부처의 발가락이 까맣게 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