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궁 화                       -이양하-

  이해와 감상

이 수필은 1948년 《학풍》에 발표한 작품으로, 무궁화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날에 맞추어서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쓰여진 것이다. 그것은 무궁화가 국화로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물론 창성(昌盛)과 장구(長久)로 요약된다. 비록 많은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으나, 그 모든 것을 가리고 덮을 만큼 무궁화는 나름의 독특한 미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이러한 주장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먼저 무궁화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든 꽃들이 만개하는 봄에도 무궁화는 여전히 묵은 잎새와 꽃잎을 달고 우중충하니 서 있으며, 더욱이 메마른 가지는 그 화사한 계절에도 잎새를 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제 나름의 영화를 마치고 난 다음, 어느 날 아침 불현듯이 무궁화는 꽃을 피운다. 하얀 꽃, 붉은 화심을 지닌 채.

수줍고, 은근하고, 겸손한 무궁화는 수백 송이의 꽃을 피우며, 장대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대함에도 불구하고 무궁화는 한 나라의 국화로 자리잡기에는 다른 나라의 꽃들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필자는 조심스레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필자는 무궁화에 대한 달라진 생각을 기술함으로써 무궁화를 사랑하는 선인들의 마음이야말로 민족과 자손의 번창하고자 하는 갈망이 담겨 있다고 술회함으로써 무궁화에 다시 많은 표를 던지고 있다.

이처럼 이 글은 마치 설득이 되지 않은 의아심을 갖고 시작하였으나 글의 논지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점차 독자는 무궁화를 국화로 삼은 감추어진 이유를 발견하게 되며, 그로부터 필자와 동일한 정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필자는 무궁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여실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오히려 국화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의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의아심과 동일한 출발점에 서 있음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근거를 밝혀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또한 이 글은 무궁화의 생태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통해 대상에 대한 남다른 인식으로 더욱 풍부한 신뢰를 안겨준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요점정리

성격 : 경수필, 교훈적 수필 → 사색적, 체험적, 관찰적, 설명적 

표현 : 평범하고 하면서도 화려하고 담담한 문체 구사

             대상에 대한 의인화

             끈기있는 관찰에 의한 표현으로 설득력을 얻음.

주제 : 무궁화는 국화로서의 자격이 충분함.

출전 : [나무](1964)

  생각해 볼 문제

1. 교훈적 수필의 특성에 대해서

수필에는 설명, 묘사, 서사, 논증과 같은 여러 가지 문장의 진술 방식이 사용된다. 이러한 진술 방식에 따라 교훈적 수필, 희곡적 수필, 서정적 수필, 서사적 수필 등으로 분류한다. 이 중 교훈적 수필은 인생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그에 따른 사색, 그리고 자연에 대한 관조 등을 통하여 이루어진 예지와 지성을 바탕으로 한다.  교훈적 수필의 일반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작자의 신념이나 인생관이 강하게 드러난다.

 ② 주로 논증이나 설득의 진술 방식이 쓰인다.

 ③ 교훈성을 중시한 나머지 작자 자신의 자유분방한 표현이나 예술성이 결여될 수 있다.

 ④ 인도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⑤ 주제를 직접 전달한다는 점에서 논설문과 유사하나, 주관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  진술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2. 무궁화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낸 구절을 본문 중에서 찾아보자.

 

3. 필자가 제시한 무궁화의 미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작품 읽기

우리 고향은 각박한 곳이 되어 전체 화초가 적지만 무궁화가 없다. 어려서부터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무궁화를 본 것은 십여 년 전, 처음 서울에 살기 시작한 때다. 서울 어디서 첫 무궁화를 보았는가는 ---역시 연전 교정(延專校庭)이 아니었던가 한다.---기억에 어렴풋하나, 그 때 느낀 환멸만은 아직도 소상하다. 보라에 가까운 빨강, 게다가 대낮의 햇살을 이기지 못하여 시들어 오므라지고 보니 빛은 한결 생채를 잃어 문득 창기(娼妓)의 입술을 연상하게 하였다. 그러면 잎새에 아름다움이 있나 하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봐야, 거세고 검푸른 것이 꽃 잎새라느니보다 나무 잎새였다. 요염한 영국의 장미 고아하고 청초한 프랑스의 백합, 소담한 독일의 보리(菩提), 선연(鮮姸)한 소격란의 엉겅퀴, 또는 가련한 그리스의 앉은뱅이, 또는 찬란하고도 담백한 일본의 벚꽃을 생각하고 우리의 무궁화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무리 하여도 우리 선인의 선택이 셈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국화로서 무궁화를 선택한 데 대한 회의>

그래 상허(尙虛)는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로서 가당하지 못하다는 여러 가지 적당한 이유를 들고, 우리에게 좀더 친근하고 보편적인 진달래를 국화로 하였으면 하는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나 국화로서의 무궁화에 대한 혐오의 감을 더 절실하게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친구의 다음 이야기겠다. 이 친구는 전라도 태생이 되어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를 많이 보아 왔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란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서울 와서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순간의 그의 감명은 이러한 것이었다.  “ 게 무강나무 아닌가. 우리 시골 가면 집 울타리 하는 바루 그게 아닌가.”  

                                                                                                                                      <국화로서의 무궁화에 대한 혐오감>

그러나 연희(延禧)에 있는 십 년 동안 여름마다 많은 무궁화를 보아 오고, 또한 사오 년 동안은 두서너 그루의 흰 무궁화가 자라는 집에 살게 되어 아침 저녁으로 이 꽃의 이모저모를 보아 온 이래, 무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오늘에 있어도 우리 국화론 꼭 무궁화라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국화 대접을 하여 부끄러운 꽃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아니한다. 그러고 생각하면 우리의 선인들이 무궁화를 소중하게 여긴 뜻과 연유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고, 또 꽃 자체로도 여러 가지 미덕을 가져 결코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무궁화에 대한 생각이 달라짐>

앵두꽃이 피고, 살구, 복숭아가 피고 져도 무궁화는 아직 메마른 가지에 잎새를 장식할 줄도 모른다. 잎새가 움트기 시작하여도 물 올라가는 나무 뿌리 가까운 그루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어서 온 뜰이 푸른 가운데 지난 해의 마른 꽃씨를 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오랫동안 눈에 거슬린다. 라일락이 피고, 황매가 피고, 장미가 피고 나야 비로소 잎새를 갖춘다. 잎새는 자질구레한 것이 나무 그루터기부터 가지 가지의 끝까지 달리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온 나무가 잎새가 된다. 꽃 피는 것도 무척 더디다.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여도 한두 주일을 기다려야 꽃이 피는데, 첫 꽃이 피는 것은 서울시는 대개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칠월 초순이다. 오래 기다리던 나머지요, 또 대개의 꽃이 한봄의 영화를 누리고 간 뒤의 뜰이 적이 쓸쓸한 탓도 있을 터이지마는, 하루 아침 문득 푸른 잎새 사이로 보이는 한 송이의 흰 무궁화---무궁화는 흰 무궁화라야 한다. 우리의 선인이 취한 것도 흰 무궁화임에 틀림이 없다. 백단심(白丹心)이라는 말이 있을 뿐 아니라, 흰빛은 우리가 항시 몸에 감는 빛이요, 화심(花心)의 빨강은 또 우리의 선민들이 즐겨 쓰던 단청(丹靑)의 빨강이다.---는 감탄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꽃은 수줍고 은근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자신은 없지 아니하다. 왜 그러냐 하면, 한번 피기 시작하면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대개 그 날 밤 사이에 시들어 뒤말라 버리고 말지만, 다음날 새 송이가 잇대어 피고 하는 것이, 팔월이 가고 구월이 가고 시월에 들어서도 어떤 때는 아침 저녁 산들 바람에 흰 무명 바지 저고리가 차가울 때까지 끊임없이 판다. 그 동안 피고 지는 꽃송이를 센다면 대체 몇천 송이 몇만 송이 될 것일까? 그 중 많은 꽃을 피우는 때는 팔월 중순경인데, 이 때면 나의 키만한 나무에 수백 송이를 셀 수가 있다. 형제가 번열하고 자손이 자자손손(子子孫孫) 백 대 천 대 이어 가는 것을 무엇인가 큰 복으로 생각하던 우리의 선인들은 첫째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아마 무궁화를 사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꽃으로서도 이만큼 무성하고 이만큼 오래고 보면 그것만으로도 한 덕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할까?                               

                                                                                                                                 <선인들이 무궁화를 소중히 여긴 이유①>

이와 관련된 의미에 있어 우리 선인들은 또 무궁화의 수수하고 부쩝 좋은 것을 좋아하였을 것이다. 무궁화는 별로 토지의 후박(厚薄)을 가리지 아니하고 청송오죽(靑松烏竹)처럼 까다롭게 계절을 가리지 아니한다. 동절(冬節)을 제하고는 어느 때 옮겨 심어도 자라고, 또 아무데 갖다 놓아도 청탁 없이 잘 자란다. 밭기슭에서 자라고, 집 울타리에다 심으면 집 울타리에서 자라고, 사랑 마당에 심으면 사랑 마당에서 자란다. 아니, 심에서 자란다느니보다 씨 떨어진 곳에 나서 자라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 쫓은 벌레 타는 법이 없다. 혹시 진딧물이 끼고 거미가 줄을 스는 법은 있어도 벌레 때문에 마르는 법이라곤 없다. 이렇게 너무도 까닭 부릴 줄을 알지 못하고 타박할 줄 모르는 것이 이 꽃이 사람의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소이의 하나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하도 부쩝이 좋고 까닭이 없고 보니 사람이 비록 소중히 하지 아니한다 하여도 절종(絶種)되거나 희소(稀少)해지거나 할 염려는 조금도 없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어디까지든지 퍼지고 자라고 번성할 운명을 가졌다. 여기 우리는 무궁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선인의 마음 가운데서 다시 자손의 창성(昌盛)과 국운(國運)의 장구(長久)를 염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겠다.    

                                                                                                                                   <선인들이 무궁화를 소중히 여긴 이유②>

무궁화는 어떤 의미에 있어, 아니 어떤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은자(隱者)의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외인은 혹 우리 한국을 불러 은자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연유를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자연 은자의 나라다운 곳이 있다면, 무궁화는 따라서 우리 나라를 잘 상징하는 꽃이 되겠다. 무궁화는 첫째, 성을 따진다면 결코 여성이 아니다. 중성이다. 요염한 색채도 없고 복욱(馥郁)한 방향(芳香)도 없다. 양귀비를 너무 요염하다 해서 뜰에 넣지 않는 우리 선인의 취미에 맞을 뿐 아니라, 향기를 기피하여 목서까지 뜰에서 추방한 아나톨 프랑스의 사제(司祭)도 타협할 수 있을 은일(隱逸)의 꽃이다. 그리고 은자로서의 우리의 선인의 풍모를 잠깐 상상한다면, 수수한 베옷이나 무명옷을 입고 살부채를 들고 조그만 초당 뜰을 거니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 모습에 잘 어울리는 꽃으로 무궁화 이외의 꽃을 쉬이 상상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무궁화는 은자가 구하고 높이는 모든 덕을 구비하였다. 무궁화에는 은자가 대기(大忌)하는 속취(俗臭)라든가, 세속적 탐욕 내지 악착을 암시하는 대가 미진(微塵)도 없고, 덕(德) 있는 사람이 타기하는 요사라든가 방자라든가 오만이라든가를 찾아볼 구석이 없다. 어디까지든지 점잖고 은근하고 겸허하여, 너그러운 대인 군자의 풍도(風度)를 가졌다. 서양 사람들은 무슨 꽃을 겸허의 상징으로 삼는지 즉금(卽今) 잠깐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나는 어떤 꽃보다도 우리의 무궁화가 겸허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무궁화는 최고의 덕을 가진 탁월한 꽃이라고 찬양할 수 있겠다. 왜 그러냐 하면, 겸허는 사람의 아들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심경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온 땅을 누릴 수 있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궁화는 어느 정도 우리 한국 사람의 성질을 말하고 우리의 지취(志趣)가 흔구(欣求)하는 바에도 상부(相符)하는 것이어서 국화로 삼아 의당할 뿐 아니라, 무궁화가 가진 덕을 몸소 배워 구현하는 데 힘쓴다면,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선인들이 무궁화를 소중히 여긴 이유③>

이것은 여하튼 때는 마침 팔월, 무궁화가 가장 아름답고 무성할 무렵, 마침 새 나라의 기초가 서게 되니 상서로운 일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원하건대, 우리의 새 나라 새 백성, 무궁화처럼 천 대 만 대 길이 남아 훌륭한 나라 훌륭한 백성되기를…….                    

                                                                                                                                                       <국화로서의 자격이 충분함>

*소상(昭詳) : 분명하고 자세함.

*생채(生彩) : 생생한 빛이나 기운

*고아(高雅) : 고상하고 우아함.

*소담한 : 생김새가 탐스러운

*보리(菩提) : 보리수의 준말

*선연(鮮姸) : 산뜻하고 아름다움.

*소격란(蘇格蘭) : 스코틀랜드(Scotland)

*엉겅퀴 : 엉거시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

*담백(淡白) : 욕심이 없이 마음이 깨끗함.

*셈 : ① 사실의 형편 또는 까닭. ② 사물을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임.

*가당(可當) : ① 대체로 합당함. ② 정도나 수준이 별로 차이가 없거나 사실과 비슷함.

*그루터기 :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을 베고 남은 밑둥.

*황매(黃梅) : 황매화나무의 꽃. 황매화나무는 장미과에 딸린 갈잎의 떨기나무로 관상용임. 봄에 노란 꽃이 하나씩 가지 끝에 피고 작은 견과는 가을에 익음.

*영화(榮華) : 귀하게 되어서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빛남.

*단심(丹心) :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어린 마음.

*화심(花心) : 꽃의 한 가운데 꽃술이 있는 부분.

*단청(丹靑) : 옛날식 건물의 벽, 기둥, 천장 등에 여러 가지 그림이나 무늬를 그린 채색.

*은근(慇懃) :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이 깊음.

*번열→벌열(閥閱) : 나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음.

*부접 : 남이 따를 수 있는 성질이나 태도.

*후박(厚薄) : 후하게 구는 일과 박하는 구는 일

*타박 : 허물을 잡아 크게 탓함.

*은자(隱者) : 속세를 피하여 사는 사람. 둔세자(遁世者)

*복욱(馥郁) : 짙게 풍기는 향기

*방향(芳香) : 꽃다운 향내. 좋은 향기

*목서(木犀) : 물푸레나무

*사제(司祭) : 천주교의 성직

*초당(草堂) : 집의 본채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억새나 짚 등으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

*대기(大忌) : 몹시 꺼림.

*속취(俗臭) : 세속의 추한 냄새

*타기(打棄) : 냉정히 끊어 버림.

*풍도(風度) : 풍채와 태도

*상고(詳考) : 상세히 참고함.

*지취(志趣) : 의지와 취향

*흔구(欣求) : 흔쾌히 원하여 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