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이문열-

  이해와 감상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중에서 여주인공이 근무하는 잡지사가 특집으로 다룬 '독신여성이 증가하는 원인'을 분석한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결혼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석이 들어있고 현대에 와서 결혼의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고찰도 정교해서 소설이라기보다 사회평론의 하나로 읽힐 수 있는 글이다.

우리 사회의 상식인 일부일처혼은 성(性)과 종족보존의 기능, 경제적 협력의 기능, 정서적 기능, 보험적 기능의 다섯 측면을 가진다고 이 작가는 분석한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는 이 다섯 기능이 제구실을 못하도록 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독신여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해석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소설의 구도 속에 집어넣은 이문열의 진지한 태도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평론적 성격

주제 : 현대사회에서의 결혼제도에 대한 통찰

출전 : 소설<레테의 연가>

  생각해 보기

1. 만혼이 늘어나는 이유를 지은이가 짚어준 대로 하나씩 정리하고 이를 비판적 태도로 반박해 보라. 일부일처혼에 대한 찬반 토론을 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2. 현시점에서 자신의 이성관과 결혼관을 피력하라. 자신의 주관을 펼 때는 먼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를 분석한 후 생각을 펼쳐 나가는 것이 논리와 설득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작품 읽기

독신 여성이 늘어가는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결혼이란 제도의 본질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결혼이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의 하나로서, 난혼(亂婚) 또는 모계사회나 집단혼(集團婚)을 인정하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나 결혼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일부일처제는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그릇 믿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쓰는 결혼이란 좁은 뜻에서의 일부 일처혼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혼은 대략 다섯 가지 측면을 가진 제도로 보인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성(性)과 종족보존 외에 경제적 협력과 정서 및 보험의 기능이 그 다섯 가지 측면의 내용이다.

먼저 성의 제도로서의 결혼으 그 성이 일반적으로 금지된 상태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성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인 금지에서 유보된 부분, 더욱 적극적으로 보면 성에 대한 금지를 합법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아주 특수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간의 성행위는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다.

그 다음 종족보존의 면은 일부일처혼의 경우에는 특히 남성의 후계자 확정을 위한 제도로 파악하는 편이 보다 정확하다. 사람의 일 가운데서 가장 괴로운 것의 하나는 일생을 피땀흘려 이룩한 것들, 이를테면 재산이나 권세나 명예같은 것을 죽음과 함께 내놓고 떠나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혈통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함으로써, 그 자식과 자신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그쓰라림에서 벗어나려 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일부일처제의 결혼이다.

세 번째로 결혼은 경제적인 협력을 위한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노동력은 일차적인 생산 및 전투에 유리한 반면 여자의 노동력은 관리나 가공 같은 이차적인 생산과 봉사 및 접대에 유리하다. 결혼은 그렇듯 서로 다른 특질을 가진 남녀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보다 효율적인 생활을 도모하는 제도의 하나이다.

네 번째로 결혼은 정서의 제도이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위로와 격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성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격려이다. 결혼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삶의 비참함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상설의 상담역, 위로역, 격려역을 갖게 만들어주는 제도이다.

마지막으로 결혼은 가장 오래된 보험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의 일생에는 반드시 남의 도움에 의지해 넘겨야 할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질병이라든가 재난 같은 개별적인 것은 물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쇠 같은 것이 바로 그 고비이다. 거기에 대한 일차의 인적 보험은 부모 형제이다. 하지만 통상 부모는 자신보다 일찍 죽어 보험능력을 상실하고, 형제 자매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의 노쇠에 대한 보험은 결국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맡게 된다. 결혼은 우리가 바로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을 갖게 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현대로 접어들면서 결혼제도의 그 같은 기능들은 차츰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성을 위한 제도로서의 결혼은 그 방면의 욕구 충족이 손쉬워지면서 필요의 절실함이 많이 줄었다. 아직 성은 그 대부분이 금지 상태에 놓여 있지만, 그 금지를 실효있게 만드는 책벌은 우리 시대에 들어와 더욱 노골적이 된 성의 상업화와 산업사회의 익명성으로 거의 불가능해졌다. 성의 상업화는, 오늘날의 미혼 남성들을 결혼이란 거추장스런 의식을 치르지 않고도, 거리에 넘치는 인스턴트 식품을 구입하듯 몇 푼의 돈으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도회의 익명성은 미혼 여성들로 하여금 지난 시대의 여자들이 입었던 불리를 거의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자신의 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하려고만 들면 도심에 나가 이름을 숨긴 채 가장 멋진 남자를 골라 하룻밤을 세우고 빈 콜라 깡통 버리듯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경제적인 협력제도로서의 결혼도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눈에 띄게 그 의의를 잃어가고 있다. 남자의 경우 옛날에는 여자의 봉사에만 의지해야 했던 대부분을 이제는 여자의 도움없이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재봉틀 같은 기계며,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는 기성복, 인스턴트 식품, 또 세탁소, 여관, 식당 같은 서비스업의 발달이 그 원인이다. 여자의 경우도 이제는 더 이상 남자의 생산력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일차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듦에 따라 근육의 힘과 거친 용기에 있어서 남성보다 불리한 여성들에게도 알맞는 일자리가 늘어났고, 특히 고급한 학력을 가진 여성의 경우에는 남자에 지지 않는 보수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구태여 결혼이란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필요한 봉사나 스스로의 생활을 남녀가 각기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된 것이다.

정서적인 제도로서의 결혼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삶의 외로움이나 고통은 별로 줄어든 바 없지만, 그것들을 잊게 해주거나 우리의 감정을 마비시켜주는 장치와 고안의 발달로 이제는 반드시 그 역할을 결혼에서만 기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술의 대중화 - 값싸고 질 좋은 전자기기의 발달은 비싼 자리값을 물고 오페라 하우스나 음악당을 찾지 않아도 유럽의 명문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나비 부인>이나 로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고, 필하모니의 연주로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게 한다. 스포츠나 프로화 - 이제는 야구는 물론 권투, 레스링, 축구, 테니스 따위 스포츠의 대부분이 직업적인 곡예에 가까워져, 그것을 하는 사람의 심신 단련이나 인격 도야를 위해서보다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거기다가 그밖에 새로이 고안된 각종의 위락 장치까지 가세하여 고개만 돌리면 우리의 눈과 귀와 코와 혀를 사로잡고, 때에 다라서는 사고까지 마비시킬 준비를 갖추고 있다.

결혼을 통한 종족 보존 또는 후계자 확정에 의한 삶의 연장도 개인주의 발달로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오늘날 아무도 자신의 삶과 자식의 삶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으며, 죽은 뒤 자기의 피붙이가 대를 잇는다 해서 그것이 자기 삶의 연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개인적인 성취에 삶을 걸기 때문에, 이제 그런 이유로 미혼의 남녀에게 결혼을 권유하려 드는 것은 낡은 미신의 권유와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험적인 제도로서의 결혼도 이 시대에 와서는 역시 예전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확실하고 경제적으로 정비된 현대의 각종 보험과 발달된 사회보장제도를 두고,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인간의 애정과 선의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혼은 보험으로서는 가장 낡고 인기 없는 품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같은 다섯 가지 측면의 변화에서 보편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만혼(晩婚), 또는 독신과 이혼율의 증가이다. 그런데 이혼율의 증가는 당면한 논의와 무관함으로 그걸 빼면 결국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비정상적인 만혼 또는 독신의 증가 원인을 일반론에 따라 추적해 본 셈이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쪽이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쪽이 비교적 우리의 경험에 새로운 현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독신여성이 늘고 있는 것을 앞서와 같은 일반론으로만 처리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회의식의 표면에 떠올라 우리의 주의를 끌 게 된 데는 그런 일반론에 가세하여 일을 한층 심각하게 만든 다른 특수하고 구체적인 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남녀의 연령별 분포다. 어찌된 셈인지 이 나라의 통계는 혼인적령기의 남자가 여자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좀 과장적인 것은 삼할에 가까운 부족률을 보이고, 그보다는 덜한 통계라 해도 남자 쪽의 부족에 우려를 보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 다음에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갑작스런 교육량의 증대에서 비롯된 결혼적령기의 변화다.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이 나라에서 제대로 구실을 할 만큼 교육을 받는데 통상 16년이 걸린다. 거기다가 남자들은 병역 의무가 더해져 그들의 사회진출은 빨라야 스물 예닐곱이 된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의 출신인 경우에는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밀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 다시 몇 년이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부모들을 대개 자신의 경제력인 여력을 교육비로 다 써 버려, 교육이 끝난 자식은 도울래야 도울 수 없는 형편이 돼 버리기 십상인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학 교육만으로 부모에게 감사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시작해야 되는 까닭에 그들의 결혼은 일쑤 서른을 넘기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있다. 그럭저럭 결혼 준비를 끝낸 남자들이 자신의 신부감을 그들의 연령층에서 구하지 않고 훨씬 어린 층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신혼부부간의 연령 차이가 전에 비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 그들의 연령층인 20대 후반의 여성들이 노처녀란 이름으로 체증을 이루게 된다. 물론 세월이 지나가면 나름의 균형을 회복하여 절로 해결될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어쨌든 그것이 최근 들어 유난히 눈에 띄는 독신여성 증가의 한 원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다음에 또 들 수 있는 것은, 근년에 두드러진 여성의 사회 진출이다. 고급한 교육을 받은 여성의 태반은 결혼 때까지 직장을 가지게 되는데, 자기가 맡은 일이 마음에 들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기를 놓치고 만다. 취직을 않고 자기 분야에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룩한 경우에도 결과는 비슷하다. 그런데 남자는 혼기가 엄격하지 않고, 또 넘겼다 해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종종 치명적이 된다. 이 나라의 여자들은 아직도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의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는 것으로 독신여성, 정확히 말해서 노처녀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여자의 선택 범위가 남자보다 좁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남자는 상대가 마음에 들면 학력이나 나이, 재산, 신분 등에 크게 구애되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큰 문제가 된다. 특히 학력의 경우가 그러해서 이 나라에서는 아직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가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정상적인 결혼에서는 거의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남자보다 선택의 범위가 좁다보니 자연 여자 쪽이 잔류자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남자에 대한 여자들의 인내심이 줄어든 것도 이혼율의 증가뿐만 아니라 독신여성의 증가의 한 원인이 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주부로서의 희생과 봉사가 이제는 예속이나 굴종으로 이해되며, 또는 당연하게 인정되어 왔던 남성의 일반적인 우위가 이제는 독선이나 횡포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지난 날에는 거의 아무런 저항없이 포기되었던 여성의 여러 권익도 현대교육에 힘입어 차츰 그 회복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 따라서 그런 현대 여성의 눈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 청년들이 종종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비쳐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