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화 (調和)                          -박경리-

  이해와 감상

모든 삼라만상은 제 나름대로의 개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기준으로 어떤 사물, 혹은 어떤 사람을 좋다, 나쁘다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세상의 삼라 만상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존재한다. 사물은 서로의 보완에 의해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작자는 어떤 상황에 지배되거나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평형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그런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저절로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겉을 보고 쉽게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성급함을 경계한 이 수필은 자신의 주장을 표나게 내세워 설득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여러 편의 소설 작품을 통해 갖은 편견과 독단의 힘에 의해 자행된 우리 한국 근대사에서의 한국 전쟁, 폭력, 위선의 실체에 주목해 온 작가 박경리의 인생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수필이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서정적 수필

표현 : 적절한 비유의 기법 이용

주제 : 아름다움과 조화와의 관계, 조화와 균형을 이룬 아름다움의 추구

출전 : <한국 수상록 전집>

  작품 읽기

무슨 빛깔을 좋아하느냐, 어떤 꽃을 사랑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얼핏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어느 계절이 인상적이냐고 한 대도 역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할 것이며 종내는 잘 모르겠노라는 대답이 될 성싶다. 사람의 경우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격이 매력적이며 어떠한 얼굴에 흥미를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 인간들 앞에서 창문을 닫아 버리고 내 마음이 황무지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하나하나를 추려 내어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하며 서둘러 보기에는 좀 나이 들어 버린 것 같기는 하다.

무릇 어떤 꽃이든 빛깔이든 혹은 계절이든 간에 어느 조화를 이룬 속에서만이 참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조화는 명확하게 구체화시켜 볼 수 없는 일종의 꿈이기도 하다. 느낌 속에 안개처럼 몰려오는 환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정신과 현상이 일치되는 순간 우리는 미(美)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결코 고정된 관념은 아닌 것이다.

내가 작품을 구상할 때도 등장 인물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먼저 포착하는 것은 인물의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에 따라 얼굴이나 몸짓이나 성격을 옮겨 보는 것이다. 전체의 분위기를 잡은 뒤에 포플러를 놓거나 은행나무를 놓거나 구름 혹은 강변을 마련해 본다.

작품에 대한 인스피레이션은 어디까지나 분위기를 잡는 것이며 하나하나를 옮겨 놓을 때는 벌써 나는 설계사처럼 미의식에 앞서 거의 사무적이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남녀를 막론하고 용모나 성격에 앞서 오는 것은 그들이 지닌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는 참말로 신비로운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조화를 이룬 어느 현상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자연 속에는 꽃도 헤일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고 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그 자태가 같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장소와 시기에 따라 각양 가태라 하겠다. 색채는 인간들이 편리상 몇 가지로 분류하여 명칭하고 있지만 역시 꽃과 마찬가지로 명칭해 볼 수 없는, 표현해 볼 수 없는 많은 색채가 있으며 또한 사용되는 방법이나 장소·시기에 따라 그 감각도(感覺度)가 달라지는 것이다. 계절도 그러하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해를 획하고 4계(四季)로 구분 짓고 달과 날을 가르고 또한 시간으로 나누었지만, 한 순간 순간은 결코 동일한 순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같을 수 없듯이, 우주의 별들이 같을 수 없듯이, 계절이라는 개념 속에 시간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잡아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무한한 속에 어쩔 수 없는 개체, 그 수없이 많은, 그러면서도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시간과 현상과 사물 앞에서 나는 무서운 신비를 느낀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끝내 생각하다간 무한한 질서와 힘 앞에 내 작은 머리통은 뻐개지고 말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형벌인 동시에 환희이기도 하다. 영원한 개체(고독)들의 기립 속을 헤매며 우리는 조화(진리나 애정)를 이룰 가능을 갖고 있는 때문이다.

한 인간이 지닌 분위기도 용모나 성격이 아니며, 실로 그 조화 속에서 배어지는 안개 같은 것이다.

 

*  때때로 정신과 ~ 아닌 것이다. : 우리의 내면 심리와 외부의 현상이 일치했을 때 순간적으로 이를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러한 가치 인식이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분위기에 좌우될 수 있다.

* 포착(捕捉) : 꼭 붙잡음. 요점이나 요령을 앎

*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 영감(靈感)

* 사무적(事務的) : (무슨 일을 하는 데) 진심이나 성의가 없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 나는 설계사처럼 ~ 사무적이다. : 인물의 분위기가 마련되면, 그 다음에는 거의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그 분위기를 부각시킬 수 있다.

* 색채는 ~ 달라지는 것이다. : 언어로는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색깔, 장미들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할 수 없다. 언어 기호가 표현하는 것은 사물 하나하나의 구체적 성질이나 특징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공통적이고 추상적인 성질이기 때문이다.

* 계절이라는 개념 ~ 없을 것이다. : 개념은 추상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체적 사물이나 현상의 개별성을 포착할 수 없다는 말이다.

* 그러나 ~ 환희이기도 하다.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시간과 현상과 사물들 속에 놓여진다는 것이, 인간에게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는 형벌이지만 끝내 거기에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질서를 찾아 내고 지극히 큰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환희이다. 따라서, 형벌인 동시에 환희라는 표현은 일조의 역설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한 인간이 ~ 안개 같은 것이다. : 한 인간의 분위기는 마치 안개처럼 그 자신의 내면적 조화와 균형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현상인 것이다. 인간은 용모나 성격이 아니라 내면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