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점묘(早春點描)-공지(空地)에서(1936)            -이상-

  이해와 감상

이 글은 텅 빈 덕수궁과 스케이트장이 된 궁 안 연못,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이른 봄의 계절감을 배경으로 하여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글쓴이는 문명화된 도회지의 공간이 모두 누군가에게 차지되어 더 이상 진정한 공지가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지가 모두 누군가에 의해 차지된 이유를 이윤 추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점차 자본주의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이 더욱더 어려워진 당시 일제 강점하 조선의 실상을 예리하게 통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글쓴이의 감성과 지성이 통합되어 나타난 문명 비판적 수필로 볼 수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독백적, 체험적, 비판적-

특성

* 중심 대상에 대한 심리 변화가 나타남.

* 물질 중심의 삶이 만연한 것을 비판함.

주제 :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

출전 : <매일신보>(1936)

  생각해 보기

◆ 조춘점묘(早春點描)

'조춘점묘'는 이상이 1936년 3월 3일부터 26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한 수필이다. '조춘'은 이른 봄을, '점묘'는 인물이나 사물의 전체를 묘사하지 않고 그 작은 부분을 각각 떼어서 따로따로 묘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보험 없는 화재(火災)', '단지(斷指)한 처녀', '차생윤회(此生輪廻)', '공지(공지)에서', '도회의 인심', '골동벽(骨董癖)', '동심행렬(同心行列)'로 이루어져 있다.

◆ 이 글에 나타난 글쓴이의 태도

이 글에서는 공지의 의미가 달라지면서, 공지에 대한 글쓴이의 태도 역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 변화가 상반된 국면으로의 반전이기 때문에 자칫 글의 통일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글의 통일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의 진실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지에 대한 글쓴이의 태도가 변화하는 계기는 글쓴이의 관점이 연못의 얼음 위에 있는 사람에서 얼음 아래 금붕어 쪽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작품 읽기

얼음이 아직 풀리기 전 어느 날 덕수궁 마당에 혼자 서 있었다. 마른 잔디 위에 날이 따뜻하면 여기 저기 쌍쌍이 벌려 놓을 사람 더미가 이날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 이렇게 넓은 마당을 텅 이렇게 비워 두는 뜻이 알 길 없다. 땅이 심심할 것 같다. 땅도 인제는 초목이 우거지고 기암괴석이 배치되는 데만 만족해하지는 않을 게다.(글쓴이는 현재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 없이 텅 빈 덕수궁 마당을 보면서 느끼는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을 땅에 이입하여 표현하고 있다.) 차라리 초목이 없고 괴석이 없더라도 집이 서고 집 속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또 집과 집 사이에 참 아끼고 아껴서 남겨 놓은 가늘고 길고 요리 휘고 조리 휘인 얼마간의 지면(地面)――즉 길에는 늘 구두 신은 남녀가 뚜걱뚜걱 오고 가고 여러 가지 차량들이 굴러 가고 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렇게 땅의 성격도 기호(嗜好)도 변하였을 것이다.

*공지를 남겨 두려 하지 않는 땅의 기호 변화

그래 이건 아마 겨울 동안에는 인마(人馬)의 통행을 엄금해 놓은 격별(格別, 어떤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자세 따위가 유달리 특별함)한 땅이나 아닌가 하고 대단히 겸연쩍어서 부리나케 대한문(덕수궁의 정문)으로 내달으려니까 하늘에 소리 있으니 사람의 소리로다 ―― 그러나 역시 잔디밭 위에는 아무도 없고 지난 가을에 헤뜨리고 간 캐러멜 싸개가 바람에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할 뿐이다.('소리'는 이 뒤에 중략된 부분에 나오는 덕수궁의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팅을 즐기는 소리를 가리킨다. 글쓴이는 연못 밑의 어족을 고려하지 않고 그 위에 공지를 만들어 즐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인적이 없는 땅의 쓸쓸한 모습

<중략>

그날 황혼 천하에 공지 없음을 한탄하며 뉘 집 이층에서 저물어 가는 도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실로 덕수궁 연못 같은 날만 따뜻해지면 제 출몰에 해소(解消)될 엉성한 공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참 훌륭한 공지를 하나 발견하였다.

×× 보험회사 신축 용지라고 대서특서한(크고 두드러지게 쓴) 높다란 판장(板墻, 널빤지로 친 울타리)으로 둘러막은 목산(目算) 범 천 평 이상의 명실상부의 공지가 아닌가.

잡초가 우거졌다가 우거진 채 말라서 일면(一面)이 세피아 빛(검은색에 가까운 흑갈색)으로 덮인 실로 황량한 공지인 것이다. 입추의 여지가 가히 없는 이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인외경(人外境, 사람의 흔적이 없는 지역)의 감(感)을 풍기는 적지 않은 공지가 있다는 것은 기적 아닐 수 없다.

*기적과 같은 인외경의 공지

인마(人馬)의 발자취가 끊인 지 ―― 아니 그건 또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 오랜 이 공지에는 강아지가 서너 마리 모여 석양의 그림자를 끌고 희롱한다. 정말 공지――참말이지 이 세상에는 인제는 공지라고는 없다.(공지는 입추의 여지가 없는 도회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바로 현대인들이 상실하고 있는 삶의 자유와 여유로움을 가리킨다.) 아스팔트를 깐 뻔질한 길도 공지가 아니다. 질펀한 논밭, 임야, 석산, 다 아무개의 소유답이요, 아무개 소유의 산깣(산갓. 산림의 의미)이요, 아무개 소유의 광산인 것이다. 생각하면 들에 나는 풀 한 포기가 공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땅 소유자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이치대로 하자면 우리는 소유자의 허락이 없이 일보(一步)의 반보(半步)를 어찌 옮겨 놓으리오. 오늘 우리가 제법 교외로 산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세상 인심이 좋아서 모두들 묵허(默許)를 해 주니까 향유할 수 있는 사치다. 하나도 공지가 없는 이 세상에 어디로 갈까 하던 차에 이런 공지다운 공지를 발견하고 저기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하고 나서 또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역시 ×× 보험 회사가 이윤을 기다리고 있는 건조물인 것을 깨달았다.(글쓴이는 '×× 보험 회사 신축 용지'가 현재는 공터로 남아 있지만 결국 보험 회사 건물이 세워질 공간이므로 이미 편하게 쉴 수 없는 '건조물'로 이해하고 있다.)

*모든 공지가 소멸된 현대 사회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꽈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 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두 다리를 뻗고 누워서 담배를 피우기(최소한의 삶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는 이 동글납작한 공지는 너무 좁다.

*진정한 공지를 가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