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야 기                                -피천득-

 

  ■ 이해와 감상

이 글은 '말'에 대한 일반론과 아울러 각각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를 피력한 수필이다.

앞 부분에서는 '말'에 대한 일반론으로 '말의 중요성, 말의 필요성, 말과 침묵의 관계' 등에 대해 언급했고, 뒷부분에서는 '말'의 한 유형으로 '이야기'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로 거짓말에 대한 견해, 험담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 등을 언급하고 있다. 여러 가지 예들과 인용, 격언 등을 끌어 들여 자기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제재를 매우 쉽고 재미있게 기술해 나갔으나, 거짓말과 험담의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견을 드러낸 경향이 있다.

  ■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신변잡기적 수필

  주제 : 진실한 대화, 이야기의 즐거움

  출전 : <금아시문선>(1959)

 ■ 작품 읽기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초대를 받았을 때 우선 그 주인과 거기에 나타날 손님을 미루어 보아 그 좌석에서 전개될 이야기를 상상한다. 좋은 이야기가 나올 법한 곳이면 아무리 바쁜 때라도 가고,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비록 성찬(盛饌)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가기로 한다. 피난 시절에 음식을 따라 다니던 것은 슬픈 기억의 하나다. 나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추운 날 먼 길을 간 일이 있고, 밤을 새우는 것도 예사였다. 차 주전자에 물이 끓고 방이 더우면 온 세상이 어두워 손을 데이더라도 거기서 더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눈 오는 날 다리 저는 당나귀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림이 있다. 만나서 즐거운 것은 청담(淸談)이리라. 말없이 나가서 술을 받아 오는 그집 부인을 상상한들 어떠리.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금 여성들은 대개는 첫 번 만날 때는 있는 말을 다 털어 놓는다. 남의 말을 정성껏 듣는 것도 말을 잘 하는 방법인데, 남이 말할 새 없이 자기 말만 하여서 얼마 되지 아니하는 바닥이 더 빨리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만날 때는 예전에 한 이야기를 되풀이하기 시작한다. 아름답게 생긴 여성이 이야기를 시작한 지 삼 분이 못 되어 싫증이 나는 수가 있다. 얼굴은 그저 수수하되 말을 할 줄 아는 여인이 좋다. 내가 한 말을 멋있게 받아 넘기는 그러한 여성이라면 얼굴이 좀 빠져도 사귈 맛이 있을 것이다.   

<외모보다 이야기를 잘 하는 여성이 좋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약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정직을 위한 정직은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 죄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갯빛 거짓말일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를 위해 약간의 거짓말은 좋다>

이야기를 하노라면 자연히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요, 이해관계 없이 남의 험담(險談)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답답한 이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악의없이 하는 남이야기는 재미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산다. 그리고 모든 경험은 이야기로 되어 버린다. 아무리 슬픈 현실도, 아픈 고생도, 애끓는 이별도 남에게는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당사자들에게도 한낱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날의 일기도, 훗날의 전기도, 치열했던 전쟁도, 유구한 역사도 다 이야기에 지나지 아니한다.             

<우리의 인생은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다>

     * 청담 - 속되지 않은 청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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