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묘미                               -김소운-

 

 ■ 이해와 감상

김소운 수필의 매력과 멋은 주변의 사소한 일들을 통해 인생과 행복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해낸다는 것이다. 글 가운데 인용한 것은 자신의 <특급품>이란 수필의 일부이다. 물론 이 글의 ㄱ씨는 작가 자신이다. 수필 <인생의 묘미>는 행복의 기준을 묻고 있다. 행복한 인간, 실패한 인간을 나누는 잣대가 따로 있을 리 없다는 작가의 생각이 구체적인 예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이 글에는 김소운의 문학적 깊이가 여실이 드러난다. 금간 바둑판의 상처가 아물어 오히려 특급품이 되는 이야기, 거기에서 그는 인생의 불행과 그 극복의 지혜를 말한다. 독자는 그가 얼마나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문사인지 짐작할 것이다. 이런 글은 자칫 교훈적인 설교나 추상적 모호함에 머물기가 쉬운 법인데 적절한 예화를 삽입함으로써 구체성이 살아나고 의미 또한 선명해지게 된다. 자기 자신을 ㄱ씨라고 말하는 서술법도 글의 느낌에 객관성을 더한다. 문장은 짧고 경쾌하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묘사에 따로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담담히 기술하면서 거기서 자신이 성찰해 낸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직설법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김소운 수필의 여운은 길다. 인생의 묘미를 여러 각도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독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그의 재주 때문일 것이다. "불행, 실패로 인해 한결 더 깊어지는 인생이 있고 정화되는 사랑이 있다."를 핵심 문장으로 삼으면서 제 상처를 제 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탄력을 극찬하는 김소운의 인생관이 맥맥히 흐른다.

대다수의 그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유기적 구성을 펴나가면서 삶의 양면을 함께 짚어 보는 차분한 안목이 돋보인다. 실패나 불행을 얼버무리거나, 성급하게 좌절하는 인생을 다독거릴 수 있는 설득력을 보이고 있다. 인생에는 절대적인 실패나 성공은 없는 것이므로 한때의 실패에 절망하지 않고 이겨내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함을 깨닫게 한다.

이 글의 끝에 비유적으로 제시한 '목마른 자만이 아는 물 한 그릇의 행복'이 바로 작자가 인생을 보는 관점이요, 그가 생각하는 인생의 묘미라 할 것이다.

 ■ 요점 정리

◆ 갈래 : 경수필, 사색적 수필

◆ 성격 : 교훈적, 사색적, 설득적

◆ 제재 : 바둑판

◆ 주제 : 생활 주변의 사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의 불행과 참다운 용기를 얻는 자세

            인생과 행복의 의미에 대한 성찰(행복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 출전 : <물 한 그릇의 행복>(1968)

◆ 특성

  1)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는 상대주의적 관점

  2) 적절한 예화(수필「특급품」의 일부)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 실패(불행)와 그 극복의 지혜 = 인생의 묘미이자 가치이다.

 ■ 생각해 보기

1. 필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묘미란?

⇒ 바둑판의 예화를 통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생의 가치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이고, 쓸모없는 존재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인생의 묘미라고 한다.

 ■ 작품 읽기

실패란 것이 있고 성공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성공이며 어떤 것이 실패인가를 ㄱ씨는 모른다. 천 원어치 행상꾼이 만 원 밑천으로 판자 가게를 내게 된 것도 성공이요, 10억 자본의 큰 회사가 5억으로 줄어든 것도 실패라면 실패이다. 10만 원 이윤을 기대했던 장사가 5만 원 번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고, 5천 원을 바랐다가 만 원이 생기면 이것은 성공일 수밖에 없다. 하필 물질이나 장삿속에만 한한 것이 아니리라. 인간 일생을 통틀어 과연 어느 것이 성공이요 어느 것을 실패라고 할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ㄱ씨는 회의적이다.

성공과 실패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결정적인 실패란 것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불행도 있다. 이 실패, 이 불행에 인생을 아로새기는 묘미가 있다고 ㄱ씨는 생각한다.

십여 년 전 ㄱ씨는 '바둑판'을 두고 글 하나를 쓴 적이 있다. 비자나무로 다듬은 일본식 바둑판 ― 단면의 무늬가 고르고, 모든 조건에 합격한 1급품은 30년 전 값으로 2천 원, 요즘 시세로는 30~40만 원은 간다.

이 1급품 위에 또 하나 특급품이란 것이 있다. 용재(用材)며 치수며 연륜의 무늬며 어느 점에도 1급품과 다른 데가 없으나, 반면(盤面)에 머리카락만한 가느다란 흉터가 보이면 이것이 '특급품'이다. 물론 값도 1급보다 10퍼센트 정도 비싸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들여서 기른 나무가 바둑판으로 완성될 직전에 예측하지 않은 사고로 금이 가 버리는 수가 있다. 1급품 바둑판이 목침감으로 전락(轉落)할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후는 아니다. 금 간 틈으로 먼지나 티가 들지 않도록 헝겊으로 고이 싸서 손이 가지 않는 곳에 간수해 둔다. 1년, 이태, 때로 3년까지 그냥 두어 둔다. 추위와 더위가 몇 차례 없이 반복되고, 습기(濕氣)와 건조(乾燥)가 여러 차례 순환한다. 그 새 상처 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디대로 유착(癒着)해 버리고, 금 갔던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번 금 간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바둑판은 열에 하나가 어렵다.

일어(日語)로 '가야방'이라는 이 비자목 바둑판은 연하고 부드러운 탄력성이 특질이다. 한두 판만 두어도 돌자국으로 반면(盤面)이 얽어 버린다. 그냥 두어 두면 하룻밤새 본디대로 다시 평평해진다. 돌을 놓을 때의 그 부드러운 감촉, '가야방'이 진중(珍重)되는 것은 이 까닭이다.

한번 금이 갔다가 다시 제 힘으로 붙어진 것은 그 부드럽고 연한 특질을 증명해 보인, 이를 테면 졸업 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감이 될 뻔한 비자목 바둑판이 이래서 특급품으로 승격한다. ㄱ씨가 말하는 인생의 묘미란 이것이다.

실패나 불행은 환영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실패와 성공을 몇 차례 없이 거듭하면서, 쓴맛 단맛을 고루고루 겪어 가면서 살아가는 인생 ― 만일에 쓰러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실패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막가는 실패요 불행일 수밖에 없다. 금이 간 채 제 힘으로는 아물지 않는 바둑판 맞잡이이다.

그러나  ㄱ씨는 믿고 있다. 때로는 그 불행, 그 실패로 해서 한결 더 깊어지는 인생이 있고 정화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인간이 바둑판만도 못하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옛날 쓴 ㄱ씨의 글에는 이런 끝맺음이 붙어 있다.

비자목 바둑판 이야기(예화)

행복의 기준은 어디다 두어야 할 것인가? 앞 못보는 소경은 단 한 번 빛을 보기를 원할 것이요,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는 제 발로 걸을 수만 있다면 ― 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소망일 것이다.

ㄱ씨는 그 옛날 수인호송차(囚人護送車)에 실려서 대도회(大都會)의 큰 길을 달린 적이 있었다. 호송차에서 내다보이는 길 가는 사람들의 그 행복스런 모습, 그러나 행인들에게 그 행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 눈으로 빛을 볼 수 있는, 제 다리로 기을 걸을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이 만일에 소경이나 앉은뱅이의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불행은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자유롭게 제 발로 길 가는 행인이 호송차에 실려 가는 수인의 마음을 엿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제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가슴이 뛸 것인가?

온 천지에 넘쳐 흐르는 행복!  목마른 자만이 아는 물 한 그릇의 행복!

― ㄱ씨는 눈을 감고 이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blue56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