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 읽기                        -김 현-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글쓴이가 작고하기 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동안 쓴 독서 일기를 묶은 유고집의 일부이다. 문학과 문화,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사유를 잘 다듬어진 평이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 듯 생전의 기억과 지적인 체험을 기록하며 삶과 문학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남기고 있다. 글쓴이는 자신이 읽은 책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등에 대한 단상을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의 언어로, 때로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시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왕성한 독서는 비평가로서의 직업적인 행동이 아닌, 인간의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이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분석적 · 비평적-

특성

* 자신의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함.

* 삶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더 나은 방향을 추구함.

주제 : 책과 연극 등에 대한 감상과 비평

출전 : <행복한 책 읽기>(1992)

  생각해 보기

◆ '행복한 책읽기'에 대한 비평 -신동호-

1985년에서 1989년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격동의 한 시절이라 할 만한 시기입니다. 1987년에는 6월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6 · 29 선언과 7, 8월 노동자들의 대투쟁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1980년 군사 독재의 암울한 시작과 이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싸움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 책은 1985년 12월 30일에 시작하여 1989년 12월 12일에 끝난 일기입니다. 일기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글쓰기 형식을 빌려 여러 책과 저자들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반대로 세계에 대한 깊고 넓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비평지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행해진 자신의 고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책 읽기'는 김현 선생의 생활 속에서 가까웠던 동료들에게 먼저 비판의 시선이 던져지고, 스스로가 반성하며,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고 굳어 있는 정신을 떼 보자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작품 읽기

1986. 2. 25.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위대한 선동가는 그것을 이용하여 우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이 축제로 변할 수 있을 때 혁명은 완성된다.

    Ne renvoyez plus, mon ami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람을 보내

    A moi parlerː venez y vous,            말하지 말고, 제발 직접 와 주세요.

    car messagiers sont dangereux      중간에 사람이 끼면 위험하니까요.

중세의 연애시의 서두이지만, 이 서두는 하나의 깊은 암시를 간직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작품은 직접 읽어야 한다는 권유로 이 서두는 새롭게 읽힐 수 있다.(제시된 중세 연애시의 내용 중 '사랑하는 사람'에 '책'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독자들에게 '책은 직접 읽어야 한다.'라는 의미로도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중세 연애시의 재해석

1986. 3. 22.

강석경의 '숲속의 방'(민음사, 1986)은 삶의 전망이 막힌 지식인――생활인들의 몸부림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린 단편집이다. 삶의 전망이 막힌 이유는 예전이나 앞으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에 주인공들이 침윤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근거는 가정생활의 파탄(파산, 일만 아는 가장, 돈만 벌어다 주는 가장……)이라 할 수 있다. '밤과 요람'(1983년에 출간된 강석경의 소설집)보다 치열성이 떨어지지만 글은 훨씬 담담하다. 어느 정도 생겨난 문명이 그녀의 치열성을 그만큼 지운 것인지. 나무에 묻은 때를 지우는 미친 여자의 행위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읽는 그녀의 한 주인공의 모습은 그녀 자신의 그것이겠지만 깊은 울림을 울리지는 않는다.(강석경의 전작이 더 좋았다고 솔직하게 비평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날카롭게 지적하며 밝히고 있다. 솔직한 태도가 좋은 비평문의 요건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단편집 '숲속의 방'을 읽은 후의 감상

1986. 11. 21.

양귀자의 '원미동 시인'은 좋은 소설이다. 호적에는 일곱 살로 되어 있는 아이가 원미동의 사람들을 영악스럽게 관찰한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핵심적 인물은 시인이다. 그는 후취를 얻은 아버지 집에 살고 있는 막동이이다. '계집애/시인'은 '영악함/순진함'의 대립이며, '함부로-말함/죽어-지냄'의 대립이다. 그것은 또한 '드러냄/감춤'의 대립이다. 그것은 그러나 어린애의 영악한 시선에 의해 드러나 생경하지는 않다. 김 반장의 배신을 게집애 · 시인은 다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진국이라" 생각하지만, 계집애는 그 거짓말 때문에 "속 터지려" 한다. 그는 시인에게 그것을 알려 주지만 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딱 잡아뗀다. 시인은 박해받고 싶은 순교자이다.(일부러 괴롭힘을 당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임.)

* 소설 '원미동 시인'을 읽은 후의 감상

1988. 3. 12.

어제는 이인성(소설가, 1953~ )이 재미있게 꾸며졌다고 해서 정명교 · 성민엽 · 홍정선 · 최수철 등과 함께(글쓴이의 동료 작가와 교수들. 글쓴이의 일상이 드러남) 황지우의 시들을 연극으로 만든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연우무대 : 88. 2. 9 ~)를 보러 갔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삼선교 쪽으로 조금 올라가는 길에 연우무대가 있었다. 무대는 재미있었으나, 지나치게 삽화적이어서, 깊은 감동을 주진 않았다.(연극이 주제의 전달에 무게를 두지 않은 점을 아쉬워 함) 실컷 웃고 온 셈이다. 배우들은 젊고 아마추어 같았으며 신선한 맛은 있었다. 김춘수/김지하를 대립시킨 듯한 삽화, 광주 사태를 암시하는 삽화, 변소 삽화 같은 것은 재미있었다. 나오면서 보니 '버라이어티 쇼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고 되어 있다. 그것이 훨씬 올바른 것 같았다.(글쓴이가 감상한 연극이 깊이 있는 주제를 형상화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연출자의 의도와 극의 제목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공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은 쇼지 극은 아니다. 주인석의 대본은 황지우의 시를 자기 식으로――현실 비판 시로 이해한 뒤에 쓰인 것이어서 그 나름으로는 수긍할 만했으나, 황지우의 서정성 · 절망보다는 경쾌한 풍자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온 해석이었다.(이 글을 보면 글쓴이는 단순히 어떤 작품의 위상을 올려 주려는 것이 아니고, 수준 높은 비평 문화를 만들기 위해 때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이러한 비평은 창작자와 수용자가 모두 굳어 있는 정신에서 깨어나 한층 더 나아가자는 의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석만의 연출은 뛰어난 연출이다. 검은 옷, 간략한 무대, 빠른 전환 …… 다 사 줄 만했다.(무대 연출 중 좋았던 점을 간략히 서술함.)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각색한 연극을 본 후의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