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완(古翫)                           -이태준-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글쓴이가 객지에서 운명한 아버지의 유품인 연적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확대하여 옛 물건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수필이다. 글쓴이는 옛 물건은 그것을 사용한 옛 사람들의 생활의 때가 묻음으로써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옛 물건을 대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옛 공예품을 중국과 일본의 것과 비교함으로써 자연에 가까운 천진함이 우리 공예품의 아름다운 점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옛 물건을 모으고 감상하는 행동은 오락이나 허영 또는 직업적 행위, 무위와는 다른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경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완'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러한 생각을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는데, 고아하고 우아한 문체와 적절한 한자어의 구사는 이 글을 예스러움이 깃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수필,   -체험적 · 주관적-

특성

* 연적을 계기로 사색의 번위를 확장함.

* 공예품의 미적 특징을 옛 사람들의 삶과 연관지음.

* 우아한 문체와 한자어 구사를 통해 예스런 분위기를 조성함.

주제 : 옛 물건을 즐기고 감상하는 자세

출전 : <무서록>(1941)

  생각해 보기

◆ 이태준의 수필 세계와 문체

수필은 소설과 함께 근대 산문 문학의 주요 갈래이다. 이태준은 소서링 근대의 싫증주의적 사상에 바탕을 두고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여겼다. 이에 비해 수필은 산문 정신 추구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즉 대상의 싫증적 파악과 사실적 묘사를 희생시키는 대신 문자나 어구의 풍치를 살리고 문체를 다듬는 것으로써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주정적인 문학으로 파악하였다. 수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이태준 문학 특유의 세련된 문체 의식과 결합하여 예스런 멋이 풍기는 독특한 수필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글에 나타나는 다량의 한자어와 한시, 우아한 문장은 이러한 이태준의 수필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태준의 이와 같은 관점은 1930년대 한국 수필 문학의 '미문주의(美文主義)'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이 글에 나타난 서술 대상의 확대

연적

조선 자기와 공예품

옛 물건

아버님의 풍의

천진함과 순박함

손때가 묻을수록 아름다워짐

선인들의 자취

정성스런 제작

 

◆ 옛 물건을 완상하는 태도 비교

올바른 자세

잘못된 자세

입정(입정)을 맛봄.

마음의 어루만짐을 받음.

옛 사람과의 대면

도일거리(무위)

금력으로 수집욕을 채움.(오락)

분을 넘는 것을 탐냄.(허영, 허욕)

직업적 행위

 

  작품 읽기

우리 집엔 웃어른이 아니 계시다. 나는 때로 거만스러워진다. 오직 하나 나보다 나이 더 높은 것은, 아버님이 쓰시던 연적이 있을 뿐이다. 저것이 아버님께서 쓰시던 것이거니 하고 고요한 자리에서 쳐다보면 말로만 들은, 글씨를 좋아하셨다는 아버님의 풍의(風儀,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가 참먹(품질이 아주 좋은 먹) 향기와 함께 자리에 풍기는 듯하다. 옷깃을 여미고 입정(入定, 수행하기 위하여 방 안에 들어앉는 일)을 맛보는 것은 아버님이 손수 주시는 교훈이나 다름없다.

*연적을 볼 때의 느낌

얼마 동안이었는진 모르나 아버님과 한때 풍상(風霜, 어려움과 고생)을 같이 받은 유품(遺品, 고인이 남긴 물건)이다. 그 몸이 어느 땅 흙에 묻힐지도 기약 없는 망명객의 생활, 생각하면 바다도 얼어 파도 소리조차 적막하던 블라디보스토크(동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 항구 도시)의 겨울밤, 흉중엔 무한한(無限恨, 한없는 한)인 채 임종하시고 만 아버님의 머리맡에는 몇 자루의 붓과 함께 저 연적이 놓였던 것은 어렸을 때 본 것이지만 조금도 몽롱한(의식이 흐리멍덩한) 기억은 아니다. 네 아버지 쓰던 것으로 이것 하나라고, 외조모님이 허리춤에 넣고 다니시면서 내가 크기를 기다리시던 것이 이 연적이다. 분원 사기(分院沙器), 살이 담청(淡靑, 옅은 청색)인데 선홍 반점(鮮紅斑點)이 찍힌 천도형(天桃形)의 연적이다.

*아버님의 삶과 연적의 유래

고인과 고락을 같이한 것이 어찌 내 선친의 한 개 문방구뿐이리오.(글쓴이에게 연적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또한 연적은 우리 옛 공예품의 특징인 자연스럽고 순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글쓴이가 옛 공예품에 대한 취미를 가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나는 차츰 모든 옛사람들 물건을 존경하게 되었다. 휘트먼(미국의 시인, 1819~1892)의 노래에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늙은 여인이여!" 한 구절이 가끔 떠오르거니와 찻종 하나, 술병 하나라도 그 모서리가 트고, 금간 데마다 배이고 번진 옛사람들의 생활의 때[垢]는 늙은 여인의 주름살보다는 오히려 황혼과 같은 아름다운 색조가 떠오르는 것이다.(공예품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이 그 공예품에 황혼처럼 그윽한 아름다움을 더한 것 같이 보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옛 물건의 아름다움

조선시대 자기도 차츰 고려자기만 못하지 않게 세계 애도계(愛陶界, 도자기를 애호하는 분야)에 새로운 인식을 주고 있거니와,(조선 시대 자기의 특징과 그 가치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고려 자기와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자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조선의 그릇들은 중국이나 일본 내지(內地, 변두리가 아닌 중심 지역) 것들처럼 상품으로 발달되지 않은 것이어서 도공들의 손은 숙련되었으나 마음들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였다. 손은 익고 마음은 무심하고 거기서 빚어진 그릇들은 인공이기보다 자연에 가까운 것들이다. 첫눈에 화려하지 않은 대신 얼마를 두고 보든 물려지지 않고 물려지지 않으니 정이 들고 정이 드니 말은 없되 소란한 눈과 마음이 여기에 이르러 어루만짐을 받고, 옛날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 영원한 긴 시간선(時間線)에 나서 호연(浩然, 넓고 크게)해 보게 하고 그러나 저만이 이쪽을 누르는 일 없이 얼마를 바라보든 오직 천진한 심경이 남을 뿐이다.(글쓴이가 조선 시대 자기에서 크고 넓은 느낌을 받은 것이 억눌림과는 거리가 있는 천진한 심경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당시 도공들이 천진한 마음으로 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 자기가 가진 천진함의 가치

수일 전에 우연히 대혜보각사(大慧普覺師, 중국 남송 시대의 선승)의 "서장(書狀)"을 얻었다. 4백여 년 전인 가정년간(嘉靖年間)의 판(板)으로 마침 내가 가장 숭앙하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보던 책이다. 그의 장인(藏印, 자기의 물건에 도장을 찍은 것)이 남고 그의 친적(親蹟, 직접 쓴 필적)인진 모르나 전권(全券)에 토가 달리고 군데군데 주역(풀이와 해석)이 붙어 있다. "서장"은 워낙 난해서(難解書)로 한 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지마는 한참 들여다보아야 책제(冊題)가 떠오르는 태고연(太古然, 아득한 옛 모습 그대로인 듯한)한 표지라든지, 장을 번지며(책장 따위를 한 장씩 넘기며) 선인들이 정독한 자취를 보는 것이나 또 일획 일자를 써서 사란(絲欄, '井'자 모양으로 된 각각의 칸실)을 쳐 가며 칼을 갈아 가며 새기기를 몇 달 혹은 몇 해를 해서 비로소 이 한 권 책이 되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인쇄의 덕으로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버릇없이 된 글, 안된 글을 함부로 박아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 참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오늘날은 옛날에 비해 인쇄술이 발전하여 간편하게 책을 만들 수 있다. 글쓴이는 이 때문에 글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책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반성하고 있다.)

*옛 책의 가치와 오늘날의 책에 대한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