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루는 생각들                 -유경환-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글쓴이가 어릴 적 고향에서 경험했던 기억들을 한 폭의 병풍처럼 그려 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고향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사건이나 장면의 내용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억들을 다양한 감각적 표현을 사용하여 열거하고 있다. 이렇게 고향에 대한 기억을 구체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글쓴이의 고향 모습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여기에 고향 사투리의 사용, 과거와 현재의 교차, 회상 시제 선어말 어미 '-더-'의 사용 등이 더해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글의 말미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에 얽힌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기억들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회고적 · 낭만적 · 서정적 · 감각적-

특성

* 경험을 열거하는 병렬적 구성을 취함.

* 다양한 감각을 동원하여 장면을 묘사함.

주제 : 어린 시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출전 : <길에서 주운 생각들>(1966)

  생각해 보기

◆ 유경환의 문학 세계

'봄이 왔다 / 새들이 가지에 앉아 노래했다 // 나무가 말했다 / 그러자 연못이 입을 열었다 / 나도 잘 들었어 // 물이나 한 모금씩 마시고 가렴 / 새들이 포롱포롱 물 마시고 갔다.'

유경환의 유고 시집 "나무와 연못"에 실린 동명의 연작시(총10편) 중 일부이다. 나무와 연못이 사계절을 지나며 어울리는 과정 속에 시인의 일생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유경환의 시와 동시들은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모습을 자주 그리고 있다. "흰 사슴", "산 노을", "이 작은 나의 새는", "누군가는 땅을 일구고" 등의 시집 제목에서 보듯이, 유경환의 시편들은 '자연'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자연은 깊은 산 속이나마 먼 바닷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에 거주한 경험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시집인 "원미동 시집"은 양귀자의 연작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과 함께 부천을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작품 읽기

내 나이 대여섯 살 적에 나는 동리 사람들이 '금융 조합 이사 집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대명사가 '금융 조합 집'인 것도 귀담아듣게 되었다. 때문에 송천, 사리원, 겸이포, 장연 등지로 번질나게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송천, 사리원, 겸이포, 장연 등지로 번질나게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이사(理事)네 집이기 때문에 이사만 다닌다고,(어린이다운 천진스러움이 나타남) 나는 그때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도라지꽃, 하늘 색깔 닮아 고웁던 그 구월산 줄기 남쪽엘 거의 안 다닌 곳 없이 다닌 것이었다.(이곳저곳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요즈음도 그 몽금포 타령(고향 회상의 매개체), 라디오에서 흐르는 그 가락은, 가끔 날 눈감게 하여 주고, 그러고는 나의 고향을 그 가락에 매어 끌어다 준다.(고향을 회상하게 함) 마치 수평선 저쪽에서 다가오는 한 척의 돛배처럼 느리고 잔잔하게.(천천히 차분하게 떠오르는 추억. 시각적 심상)

감나무 두 그루가 엇갈려 서 있는 송천의 금융 조합 이사 집이, 내 감은 두 눈 속에서 얌전히 찾아와 스며든다. 그것은 빛바랜, 옛날의 사진처럼 부우연 원색화이다.(시각적 심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송천 집에 대한 추억)

*집안 소개와 고향에 대한 회상

뽕나무 밭이 줄 그어 가시울타리까지 달려간 뒷밭에서, 오디 철 한여름을 보내면, 감나무의 감이 어린 나를 어르면서 익어 갔다.

오딧물 들어, 입술이 너나없이 연둣빛이 되던 그 한 철이 지나, 뽕 잎에 기름진 여름이 줄줄 녹아 흐르고 나면 그 다음엔 떫은 입속의 감 맛을 느끼게 된다.(고향에 대한 기억을 시각과 미각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조차도 오감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서술 대상을 바꾸며 계절의 변화도 드러내고 있다.) 그 떫은 감겨를 소매에 부빈다고 야단을 맞던 어린 시절이 나의 눈앞에서 희죽희죽 웃는다. 내가 순수무구하게 웃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런 혼자만의 회상 속에서 가능한 것 같다.(순진무구했던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순수한 웃음을 잃어 버린 현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나'의 심정이 나타나고 있다.)

처음 담근 감의 떫음이 빠지기를 기다리다 못해, 가을이 먼저 오는 곳이 그곳이었다. 개암 익기 기다려 산을 파헤치고 다닌다. 또 두 산이 기역 자처럼 붙어 버린 산그늘(시각적 심상), 그 속의 바위 냇물로 빨래 가는 아낙들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따라다니던 생각……. 사라지지 않는 방망이 소리(청각적 심상). 또 먼지 피우며 달아나는 한두어 대의 목탄차가 신작로로 빠져 나가는 것(시각적 심상) 바라보고 가슴 설레던 생각도, 시금털털한(미각적 심상) 머루 따 먹느라고 쐐기에 쏘이던(촉각적 심상) 생각도, 지금은 애써 다 그려 보고 싶은 풍경들이다.(고향에 대한 글쓴이의 그리움)

송편 쪄서 파는 할머니 집에, 떡 싸는 난쟁이 떡갈나무 잎 따다 주고, 아주 크고 넓적한 놈을 따 왔노라, 좋은 일 해 준 듯이 뽐내고 송편 한 개 얻어먹고 물러서는 동리 아이들……. 청송 잎 훑어다 주고 송편 찌는 데 깔아 시루에 찌면, 송편에 향긋한 청솔 향기(후각적 심상)가 올랐다. 참기름 발라 스며든 그 청솔 향기 고소하게 마시던 것도 그 고향에서만의 송편 맛이었다.

*어린 시절의 먹을거리와 풍경에 대한 추억

고향은 지워지지 않고, 잊어 버릴  뿐. 그러나 아직 잊어 버리지 않으나, 잃어버리는 생각(어린시절의 순수함)은 있다. 쬐그만 옛날의 장난감을 잃어 버리듯이.(고향에 대한 생각은 잊어 버리지 않았지만, 과거의 순수함을 잃어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비 온 뒤, 광에서 체를 훔쳐 내다가 달치('치리'의 방언) 새끼나 건져 나누며 싸우던 냇가의 생각, 또 포플러 높은 키의 그림자가 물속에 드리울 때, 잔등에 뿔이 솟은 쏘가리가 그 그늘로 기어들고 모래 속에 주둥이만 콱 파묻는 모래무지가 무지무지하게 많던 강가.

그놈들 잡아서 한 마리도 국 끓여 먹어 보질 못했건만, 무엇 때문에 잡으려고 고무신만 떠내려 보내고 울곤 하였던가.

수수깡 뽑아 마디마디 끝마다 씹어 빨아 먹고,(미각적 심상) 안경 만들어 쓰고 '에헴!' 우편소의 문을 밀고 들어서 보던 시절로(천진난만하게 장난치던 어린 시절의 모습) 지금도 달려가는 나의 생각들, 그것이 몰려가선, 나의 고향을 이룬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릴 적 순수함을 잃어 버린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