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1948)                           -김용준-

  이해와 감상

이 글은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 '게'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고 있는 수필이다. 이 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글쓴이가 게를 화제로 삼기 좋아하는 이유와 게를 인간의 모습과 세태에 빗댄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는 한시를 통해 게의 속성을 인간에 적용하면서 풍자하고 있다. 또한 낚시를 할 때 게들이 작은 이익 때문에 서로 싸우다가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글쓴이는 자신이 게를 그리는 것을 단순한 붓장난이라고 하였지만, 이는 자연을 빌어 글쓴이의 고결한 심경을 호소하는 활동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글쓴이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풍자적 · 해학적-

특성

* 한시를 통해 독특한 관점을 드러냄.

* 게의 속성을 통해 인간의 속성을 풍자함.

*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서술함.

주제 : '게'의 생태를 통한 인간의 삶 풍자

출전 : <근원수필>(1948)

  생각해 보기

◆ '게'의 속성에 대한 글쓴이의 인식

윤희구의 '무장공자'

창자가 없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모름

주변에 있는 한국인의 모습과 비슷한 구성이 많음.

왕세정의 대문(大文)

옆으로 기어가나 결국 사람의 입속으로 떨어질 존재임

해변의 '게' 낚시

조심성 있는 체하나 욕심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빠짐.

 

◆ 근원 김용준의 미술 세계와 수필

근원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이며 차분하다기보다는 우발적이고 호방하다기보다는 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서양화를 숭상하고 동양화에 모멸감까지 가졌던 근원에게 장승업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는 유화에서 문인화로 돌아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그의 이런 변화는 수필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수필을 활바랗게 쓰던 시기가 바로 문인화로 전환되던 때이다. 만약 근원이 시종 서양화풍의 유화를 가까이 하였다면 한국화의 필법이 물씬한 근원 수필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원은 진실한 감성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한 원수원과 정판교의 선비 정신에 문인화적 지조를 투사시켰으며, 사물의 미학적 분석이 가능하였기에 시와 서화의 경계를 최대한 좁히면서 일장일렴(一張一斂)을 수필에 접맥시켰다.

 

◆ 무장공자(無腸公子)

조선 후기 한학자 윤희구(1867~1926)가 쓴 칠언칠구의 한시이다. 무장공자라는 말은 '창자가 없는 귀공자'라는 의미이다. 시인은 가을을 배경으로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들을 바라보고, 게들이 창자가 없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게들의 모습을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시름, 아픔과 대비하여 슬픔 없는 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이 시는 당대의 힘든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느끼는 슬픔을 게의 속성에 빗대어 표현한 애절한 한시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읽기

정소남(송말 원초의 시인이자 화가)이란 사람이 난초를 그리는데 반드시 그 뿌리를 흙에 묻지 아니하니 타족(他族)에게 짓밟힌 땅에 개결(槪潔)한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함이란다.(송나라를 망하게 한 현재의 원나라에 그 뿌리를 두지 않음.)

에 먹을 찍어 종이에다 환을 친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노릇이리요마는 사물의 형용을 방불하게 하는 것만으로 장기(長技)로 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빌어 작가의 청고(淸高)한 심경을 호소하는 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데서 비로소 환이 예술로 등장할 수 있고 예술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글쓴이의 예술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은 단지 사물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물을 빌려 예술혼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나란 사람이 일생을 거의 삼분의 이나 살아온 처지에 아직까지 나 자신이 환쟁인지 예술가인지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딱하고도 슬픈 내 개인 사정이거니와, 되든 안 되든 그래도 예술가답게나 살아 보다가 죽자고 내 딴엔 굳은 결심을 한 지도 이미 오래다. 되도록 물욕과 영달에서 떠나자, 한묵으로 유일한 벗을 삼아 일생을 담박하게 살다 가자 하는 것이 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 할까.

*글쓴이의 예술관과 예술가로서의 소원

<중략>

게란 놈은 첫째, 그리기가 수월하다. 긴 양호(羊毫, 양털로 촉을 만든 붓)에 수묵을 듬뿍 묻히고 붓 끝에 초묵(焦墨, 진한 먹)을 약간 찍어 두어 붓 좌우로 휘두르면 앙버티고 엎드린 꼴에 여덟 개의 긴 발과 앙증스런 두 개의 집게발이 즉각에 하얀 화면에 나타난다. 내가 그려 놓고 보아도 붓장난이란 묘미가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기뻐할 때가 많다. 그리고는 화제(그림의 제목이나 이름)을 쓴다.

滿庭寒雨滿汀秋(만정한우만정추)  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물가에 온통 가을인데

得地縱橫任自由(득지종횡임자유)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公子無腸眞可羨(공자무장진가선)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平生不識斷腸愁(평생불식단장수)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역대로 게를 두고 지은 시가 이뿐이랴만 내가 쓰는 화제는 십중팔구 윤우당(尹于堂, 윤희구)의 작(作)이라는 이 시구를 인용하는 것이 항례다.

왕세정의 "橫行能幾何終當人口(옆으로 기어간들 얼마나 가겠는가. 결국에는 사람 입에 떨어질 신세인 것을.)" 하는 대문(大文)도 묘하기는 하나, 무장공자(無腸公子)로서 단장(斷腸)의 비애를 모른다는 대문이 더 내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이 비애의 주인공은 실로 나 자신이 아닌가. 단장의 비애를 모르는 놈, 약고 영리하게 처세할 줄 모르는 눈치 없는 미물! 아니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중에는 또한 이러한 인사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게'를 소재로 한 한시와 '게'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

맑은 동해 변 바위틈에서 미끼를 실에 매달고 이 해공을 낚아 본 사람은 대개 짐작하리라. 처음에는 제법 영리한 듯한 놈도 내다본 체 않다가 콩알만큼씩 한 새끼 놈들이 먼저 덤비고 그 곁두리를 보아 가면서 차츰차츰 큰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미끼를 빼앗느라고 수십 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동족상쟁을 하는 바람에 그때 실을 번쩍 치켜올리면 모조리 잡혀서 어부의 이(利)가 되게 하고 마는 것이다.(처음에는 미끼에 쉽게 덤비지 못하던 게들이 결국 한꺼번에 잡히게 되는 모습을 서로 욕심을 부리다 한꺼번에 망하고 마는 인간의 세태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게'의 어리석은 속성

어리석고 눈치 없고 꼴에 서로 싸우기 잘하는 놈!

귀엽게 보면 재미나고, 어리석게 보면 무척 동정이 가고, 밉살스레 보면 가증(可憎)하기 짝이 없는 놈!(게에 대한 글쓴이의 복잡한 심정)

게는 확실히 좋은 화제다.(게에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모두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게'를 좋은 화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즐겨 보내고 싶은 친구에게도 좋은 화제가 되거니와 또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친구에게도 그려 보낼 수 있는 확실히 좋은 화제다.

* 다양한 속성을 지녀 좋은 화제가 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