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전설 슈바빙(1966)             -전혜린-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글쓴이가 가진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수필이다. 글쓴이가 독일 뮌헨의 슈바빙 구역을 그녀의 정신적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유럽의 물질문명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성, 이국적인 정취와 그것들에 관한 동경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로등 하나부터 안개, 더위, 거리에 이르기까지 그 먼 이방 지대를 시화(詩化)시키고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1960년대의 문화적 특징과 관련된 감수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한 감수성이 실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되 뿌리가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회고적 · 낭만적 · 비판적 · 사색적-

특성

* 날씨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을 드러냄.

* 두 도시를 대조하여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을 서술함.

주제 : 독일 슈바빙 지역에 대한 그리움

출전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

  생각해 보기

◆ 전혜린의 생애

전혜린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었으며, 천부적인 지적 능력으로 한국 여성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독일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그곳의 자유로움과 소박한 생활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고, 한국에서 느낄 없는 자유로운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후 25살에 서울대에 출강하게 되었지만, 안정된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상의 권태와 구속에 염증을 느꼈다. 그러던 1965년 1월 10일 그녀는 자택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그러나 전혜린의 뛰어난 감수성과 처절할 정도로 이상을 추구하던 정신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그녀의 글은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다.

 

◆ 전혜린에 대한 동생 '전채린'의 평가

전채린은 '나의 언니 전혜린'에서 전혜린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과 결단성을 갖고 언니는 생을 긍정했다. 생의 완벽성을 추구했다. 고집에 가까울 만큼 열심히 살았다. 매 순간마다 포함되어 있는 가장 강렬한 것, 또는 그 어떤 짙은 것을 끄집어 내려 했다. <중략>  언니의 생은 자기의 모든 것(지식과 정열과 그리고 사랑)을 모든 이에게 쏟아 부은 일생이며, 꿈과 기쁨과 괴로움이 팽팽하게 찬 일생이었다. 자기의 생을 완전히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했다. 언니의 생은 자유로우려는 정신과 현실 세계와 대결해 나가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작품 읽기

요새 같은 염열(炎熱, 몹시 심한 더위)의 날씨에는 뮌헨에 대한 나의 향수가 더 짙게 느껴진다.

덥지 않은 도시, 안개 낀 비가 자욱이 가려 덮고 있는 도시, 이것이 내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뮌헨의 이미지다.

<중략>

거기가 그립다. 방학에 만약 그곳에 다시 갔다 올 수 있으면…… 이런 공상을 해 본다.

*슈바빙에 대한 그리움

내가 4년 살았던 동네(독일 유학 기간 중 거주한 곳)는 슈바빙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 뮌헨 대학교 미술 대학 주립 도서관을 비롯해 많은 새 책방과 헌책방, 화랑 등으로 특징지어진 뮌헨 문화의 심장부이며 또 가난한 학생과 대학생들, 이방인들이 모여서 사는 이색적인 지대이기도 했다.

뮌헨의 다른 구는 비교적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도시와 구별이 없으나 이 슈바빙 구만큼은 일국적으로 뮌헨적인 곳으로 유명하다.(지역 전체가 그 도시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음)

그곳 주민의 태반을 이루고 있는 학생이나 시인, 작가, 화가, 교수, 음악가 등은 한국에 오더라도 그보다 더 수수하고 초라할 수는 없을 만큼 극단적인 복장을 하고 있고 머리도 안 빗고 안 자르고 안 매는 것을 예사로 하고 있다.(겉모습보다 문화나 학문적 지식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것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슈바빙'의 이러한 특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구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남아 있는 인종적 편견이 이 구에만은 조금도 없었다.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친칭(Duzen)을 사용해서 얘기를 걸고 마지막 담배 꽁초도 나누어 피우고 때로는 공짜로 점심을 먹고 유유히 달아나고…….(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 사람들) 아무튼 매우 반시민적인 곳(질서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으로 소시민 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슈바빙 사람이 제대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남자는 언제나 스웨터 바람이고 여자는 넓은 검은 스커트에 검은 스웨터, 검은 양말, 검은 머릿수건, 길게 늘인 금발의 제복이었다. 누구나가 조금씩 더러운 옷을 입어서 여기서는 깨끗하거나 단정한 정식 옷은 우습게 보였었다.(자유로운 감성을 추구하는 '슈바빙'에서 깨끗하거나 단정한 정식 옷은 질서와 규칙에 얽매여 사는 것으로 여겨져 우습게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또 주위의 건물이나 도로도 대부분 폭격을 면해서 매우 낡아 있었기 때문에 이런 거무스름한 남녀의 군상이 더욱 어울렸다.

*슈바빙에 대한 설명 -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

여기에는 옛날부터 이런 자유의 전통이 길러져 있어서 히틀러 정권 밑에서의 레지스탕스도 완강했다 하며 릴케, 토마스 만, 스테판 게오르게, 토마스 울프, 루 살로메, 루트비히 토마, 기타 수많은 표현주의 시인들이 이곳에 거주했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 음식점에서처럼 전람회와 시의 밤, 소설 낭독의 밤, 여류 작가의 밤 등이 매일 저녁 있는 곳은(슈바빙에서는 늘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짐)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과 발표가 전통이나 인습에 반기를 들고(생활의 온갖 면에 있어서) 행해지고 있는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아무튼 딱딱하고 관료적이고 친밀감이 적고 이론적이기만 한 독일의 다른 곳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슈바빙만은 생각할 때마다 시원한 바람같이(슈바빙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심신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

*슈바빙에 대한 설명 - 자유로운 분위기

덥지 않은 기후나 끝없는 강우와 안개만이 그곳을 그렇게 시원스럽게 만든 것은 아닌 것 같다.(기후나 자연조건 때문에 슈바빙에 대한 느낌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허물없음과 사고의 자유로움 때문에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에 시원함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시원하고 마음이 넓고 도대체 남의 일에 관심을 안 갖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그들의 선천적인 예술가 기질과 물질에 구애되지 않는 소박하고 초속한(세속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초탈한) 생활 양식(글쓴이가 그리워하는 슈바빙만의 장점)이 슈바빙을 그처럼 시원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더위의 지속과 단절하는 소나기, 그러고는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훨씬 더 심각한 흥미를 갖는 인간들……. 이러한 것이 그에 반해서 한국의 여름을 이처럼 견디기 힘들게 끈적끈적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슈바빙에 대한 글쓴이의 그리움은 현재 한국 사회의 답답한 모습에서 기인하고 있다. 슈바빙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릴수록 한국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