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이야기(1948)                           -김용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세상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시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는 자세가 담긴 수필문학이다. 작가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나열하면서 답답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나부터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다.

1948년에 출간된 <근원수필>에 실린 작품이다. 격동적인 시대와 민족의 수난 속에서 자아와의 갈등 현상을 표현하는 긴 이야기를 좁혀 놓은 글로 평가되고 있다. 또 시대와 민족과 인생이라는 3자 갈등 속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며 저주하기도 하는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자조적으로, 심지어는 약간 소극적으로 표출한 글로도 읽을 수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체험적, 성찰적-

특성

*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현장감을 더함.

*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내용을 서술함.

* 자신이 경험한 일을 나열하며 주제를 강조함.

주제 : 세상에 대한 답답한 마음과 자기반성

출전 : 수필집 <근원수필>(1948)●

  작품 읽기

오죽잖은(변변치 못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서로 핏대를 세우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때가 많다. 속 시원하게 탁 풀어 버리고 한번 껄껄 웃으면 그만일 텐데 왜들 저러나 싶어진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해 놓고 보면 그리 쉽사리 해결이 될지 의문은 의문이야…….

늙은이들이 흔히 길을 가다가도 괜히 혼자 무어라고 중얼중얼하는 꼴을 본다.

"저 늙은이가 미쳤나 혼자 왜 저럴까?"

따라가면서 보노라면 웃음이 나와 견딜 수 없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험 삼아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소리가 입속에서만 뱅뱅 돌고 종시 나오지는 않는다.

역시 천착스런(더럽고 상스러운 데가 있는) 늙은이고서야 중얼거리게 되는 게로군 하고 나만은 늙어도 안 그럴 것을 자신했다. 한데 현대 사람으로서는 내 나이 아직 늙은이 축에는 채 끼지도 못할 처지인데 어느 날 길을 걷다 말고 불의에 군성거리는(웅성거리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로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역시 내가 그 경우에 처해 보지 못하고서는 세상일이란 장담할 건 못 되는 것이다.

집에 환 · 진갑을 지낸 노인 한 분이 계시는데 어떤 때 방에 앉아 있노라니 밖에서 "허허, 글쎄 왜 이러니?" 하고 후다닥거리는 노인의 소리가 난다.

'누구하고 저러실까?' 하고 내다보니 닭의 새끼가 말을 안 듣고 마루에 올라온다고 야단이다. "원 답답도 하시유. 닭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듣습니까. 두들겨 내쫓아야지요." 하나 그 다음에도 이 노인은 의연(흔들림 없이) 짐승들에게 이야기를 다 건네시는 걸 본다. 지금 보기에 답답해 하는 마음이었지만 나도 나이 환 · 진갑을 지나면 또 혹시 저렇게 될지 누가 아나 싶어 장담을 할 수 없다. 남의 심중을 모르고 답답해지는 일은 이런 것뿐만은 아니다.

벌써 지난 일이지만 쌀이 없어 굶네 죽네 하는 판에 모 외빈(外賓, 외부나 외국에서 온 귀한 손님) 한 분의 말씀이, "조선 사람은 이해할 길이 없다."고 "맛 좋고 영양 좋은 사과나 고기가 가게마다 그득한데 하필 그 비싼 쌀만 먹자고 야단들이냐."고.

세상에 이보다 더 답답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내 창자를 그와 바꾸어 본다면 혹시나 알는지.

그분네들이 우리를 볼 때 사사건건이 이러할 테니 이 일을 장차 어이하면 좋단 말이냐. 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싸우는 심정도 내가 싸워 보면 알 일이요,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을 비웃는 것이나 닭과 주고받고 이야기하는 것쯤은 나이를 먹으면 알 수도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맛 좋은 사과와 고기를 못 먹는 심정은 무슨 수로 알게 할 도리가 있을 거냐!

내 소갈머리가 좁고 답답한 탓인지 공교롭게 타고난다고 난 것이 요런 시기에 걸려든 것인지 싸움질도 많고 답답한 꼴도 많이 볼 바에는 신경이나 든든하여 남이야 어쨌든 내 할 일이나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진정 이 따위 환경에선 살기가 어려워 어느 깊숙한 산촌에 소학교 교장(현재의 답답한 심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도, 즉 현실도피로 생각해 낸 자리)이나 한 자리 얻어서 죽은 듯 몇 해만 지내다 왔으면 싶다가도 들어보면 산촌은 산촌대로 서울 뺨치게 더 야단들이란다(시골은 도시보다 더 답답한 일들이 많다).

그래 그도 저도 단념하고 요즈음은 멍청이처럼 멍하니 그날그날을 지내는 판인데 어느 날은 친구가 야국(野菊, 들국화, 깨달음의 계기가 되어주는 소재) 한 포기를 심으라고 갖다주기로, 하도 오래간만에 화분을 찾고 뿌리를 담을 비료 섞인 흙을 구하러 마당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일에 보면 헤어진 게 흙이고 보이느니 비료뿐이더니 막상 꽃을 위한 흙을 구하려니 그도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대체 흙조차 이렇게 귀한 건가.

한 송이 꽃이 피는 데는 좋은 비료는 물론 매일같이 신선한 물을 얻어 먹어야 하고 햇빛을 보아야 하고 주인이 잡초를 뽑아 주어서 그러고도 오랜 시일을 경과하고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탐스런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다.(깨달음=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에 흙을 담다 말고 나는 문득 비감한 생각(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이 솟아오름을 금할 길이 없다. 이 꽃뿐 아니라 내가 하는 일도 어느 때나 꽃을 보려나, 꽃은커녕 물은커녕 하다못해 거름 노릇이라도 했으면 다행이겠는데 거름 축에도 못 드는 아무런 쓸 곳 없이 뭇사람의 발에 짓밟히기만 하는 노상(路上, 길바닥) 흙(의미 없는 존재, 글쓴이 자신의 처지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대상, 비료 섞인 흙과 대조되는 표현임.)이나 되지 않을까.(반성 =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및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