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이                           -정진권-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로 한국인 고유의 정서를 재현하고 있다. 글쓴이는 다듬잇돌과 다듬이 방망이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떠올리고 있으며, 다듬잇돌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추상어나 개념어보다는 구체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함축적인 의미가 강한 고유어를 써서 서정적인 느낌과 전통적 색채를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회고적 · 서정적 · 낭만적-

특성

* 현재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비교함.

*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진정성을 느끼게 함.

* 구체어, 고유어로 함축적 의미를 드러냄.

주제 : 다듬이에 대한 추억과 옛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출전 : <한국인의 향수>(1996)

  생각해 보기

◆ 정진권이 제시한 수필 문학의 특징

1. 언어는 함축적이고 독자의 정서에 호소해야 한다.

2. 수필가는 사실을 모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수필 문학도 예술인 한, 독자에게 예술적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4. 수필도 문학이므로 언어의 정교한 구조물이어야 한다.

◆ 수필이 독자에게 주는 것

수필은 때때로 지식을 전달한다.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이 목적이라면 논설문이나 설명문에 미칠 수가 없다. 수필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서적 만족이다. 그것은 감동일 수도 있고 공감일 수도 있다. 더러 독자는 이런 만족을 맛보기 위하여 수필을 읽는 것이다.

  작품 읽기

요 얼마 전에 이사를 한 일이 있다. 그대 나는 다듬잇돌을 들어다 실으면서 잠시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 다듬이질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풀 먹인 흰 빨래가 꼽꼽해지면, 다듬잇돌에 맞게 네모로 접어놓고 방망이질을 했다. 빨래가 너무 마르면 입으로 물을 뿜어서 다시 꼽꼽하게 한 뒤에 다듬이질을 했다. 나는 이따금 바가지로 찬물 심부름도 했다. 다듬이질은 혼자서도 하고 둘이 마주앉아 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소리는 좀 둔탁한 느낌이었지만, 맞다듬이질을 할 때의 그 소리는 경쾌하고도 청랑한 것이었다.

휘영청 달이 밝은 가을밤에 혼자 뒷간에 앉아 있자면, 마을은 온통 그 경쾌하고 청랑한 다듬이 소리투성이었다. 소년은 그 다듬이 소리에 취했다가 달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랫배에다 힘을 주었다.(글쓴이가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뒷간에서 달을 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부분이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청랑한 소리와 어우러지고 있다.) 그러다가 뒷간을 나와 보면, 환히 불 밝은 아랫방 문에 맞다듬이질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때 사립문 뒤에 세워 놓은 수숫대의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듬이질을 하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감 껍질 말린 것을 내다 놓고 주근주근 먹었다.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으로 밤참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소년은 배 아픈 핑계로 홍시나 곶감을 졸랐었다. 홍시나 곶감을 먹으면 설사도 그친다고 했다.

다듬잇돌은 여름에도 차가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나는 그 서늘한 다듬잇돌을 베고 누운 일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이걸 보시고는 깜짝 놀라 일으켜 앉히셨다.

"다듬잇돌을 베고 누우면 입이 돌아간다. 알았니?"

그 후 나는 한 번도 그걸 벤 일이 없다. 찬 것을 베고 누우면 안면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말은 내가 다 커서 들은 것이다.(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마치 현재 일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 글이 글쓴이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중첩하여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듬잇돌을 보면, 그때 어머니가 놀라시던 그 모습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다듬이 방망이를 보아도, 또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산골로 피란을 갔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호열자가 돌아서 온 동네에 울음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때 세 살이던 내 아우도 그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안고 하루 스물네 시간씩 한 주일을 견디셨다. 온몸에 마마 같은 것이 마치 팥을 삶아 뿌린 듯이 돋아서 방바닥에 누일 수가 없었다. 얼굴도 눈코를 분간할 수 없고, 입 안도 다 터져서 쌀 한 톨 넣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국수를 만들었다. 우선 밀가루를 개고, 그것을 다듬이 방망이로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어다가 끓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한 가닥씩 아우의 입에 넣어 주셨다.(글쓴이와 어머니는 병 때문에 입안이 상해 밥을 먹을 수 없는 아우에게 다듬이 방망이로 국수를 만들어 먹이고 있다. 여기서 국수와 다듬이 방망이는 아우에 대한 두 사람의 정성과 사랑을 의미한다.) 자다가 문득 깨서 일어나 보면, 어머니는 그 애를 안고 말없이 들여다보고 계셨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 가장 간절한 기원이 담긴 그런 눈이었다. 아, 우리 어머니의 그 애절한 기구(祈求)가 하늘에 사무쳤음인가, 내 아우는 마침내 살아났다. 그 애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날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그 눈을 생각했다. 그 애의 콧잔등에는 지금도 마마 자국이 몇 개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 자국에 어린 슬픈 사연을 모를 것이다. 아니,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인들 무엇을 안다 하랴.(성인이 된 아우를 보면서 그가 병에 걸렸을 때 걱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자식이 평가하기에 어머니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고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다듬잇돌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지금은 물에 빨아서 다리지도 않고 입는 옷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내 아내는 그것으로 북어나 두들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