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글씨                       -김용준-

  이해와 감상

<근원수필>에 수록된 이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과 일화를 통해 추사 글씨가 지닌 가치와 위대함을 잘 말해 주고 있으며, 정갈하고 담백한 문체 속에 우리 서화에 대한 작자의 관심과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의 작자인 김용준은 뛰어난 화가이자 비평가, 미술사학자였다. 수필 문학의 전범으로 꼽히는 그의 수필집 <근원수필>은 날카로우면서 익살맞고, 산뜻하면서도 묵직하고, 문학과 예술의 깊은 향기를 품고 있다. 유려하고 담백한 문장과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깊은 지성과 감성이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 준다.

작자는 추사의 작품의 위대함을 예찬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술품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하기보다는 진품 · 위조 여부에 관심을 두고 수집하고 자랑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는 세태를 풍자 · 비판하고 있다.

  요점 정리

성격 : 비판적, 교훈적 경수필

표현

* 일화를 도입하여 글의 내용에 흥미를 더해 줌.

* 담백한 문체, 쉬우면서도 예스런 문체

* 예술 작품에 대한 작가의 전문적인 식견이 드러남.

주제 : 사 글씨의 위대함, 예술 작품을 대하는 속물적 태도 비판

출전 : <근원수필>(1948)

관련 작품 : 김용준의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작품 읽기

어느 날 밤에 대산(袋山,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장남인 사학자 홍기문의 호)이 "깨끗한 그림이나 한 폭 걸었으면." 하기에 내 말이 "여보게, 그림보다 좋은 추사 글씨를 한 폭 구해 걸게." 했더니 대산은 눈에 불을 번쩍 켜더니 "추사 글씨는 싫여. 어느 사랑에 안 걸린 데 있나."(너무 대중적인 예술품은 소장하고 싶지 않다는 뜻임) 한다.

* 추사 글씨에 대한 대중의 선호

과연 위대한 건 추사의 글씨다. 쌀이며 나무 옷감 같은 생활 필수품 값이 올라가면 소위 서화니 골동이니 하는 사치품 값은 여지 없이 떨어지는 법인데(물가와 골동품 간의 상관 관계) 요새같이 서점에까지 고객이 딱 끊어졌다는 세월에도 추사 글씨의 값만은 한없이 올라간다.

추사 글씨는 확실히 그만한 가치(값이 지속적으로 치솟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필 추사의 글씨가 제가(諸家)의 법을 모아 따로이 한 경지를 갖추어서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서 맛이 아니라 시인의 방에 걸면 그의 시경이 높아 보이고 화가의 방에 걸면 그가 고고한 화가 같고 문학자, 철학자, 과학자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갖다 거는 대로 제법 그 방 주인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상점에 걸면 그 상인이 청고한 선비 같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상품들까지도 돈 안 받고 거저 줄 것들만 같아 보인다.](추사 글씨의 위대성을 단적으로 말함) 근년에 일약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과 높은 자리를 차지한 분들 중에도 얼굴이 탁 틔고 점잖은 것을 보면 필시 그들의 사랑에는 추사의 진적(眞蹟, 친필)이 구석구석에 호화로운 장배(裝背, 벽을 장식하는 것)로 붙어 있을 것이리라.

*추사 글씨의 가치

추사 글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미난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일화의 도입)

진 군은 추사 글씨에 대한 감식안(추사 글씨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눈)이 높을 뿐 아니라 일반 서화 고동(古銅, 오래된 동전)에는 대가로 자처하는 친구다.

그의 사랑에는 갖은 서화를 수없이 진열하고,

"차라리 밥을 한 끼 굶었지 명서화(훌륭한 글씨와 그림 작품)를 안 보고 어찌 사느냐." / 하는 친구다.

양 군도 진 군 못지 않게 서화 애호의 벽이 대단한데다가 금상첨화로 손수 그림까지 그리는 화가인지라 내심으로는 항상 진 군의 감식안을 은근히 비웃고 있는 터였다.

벌써 5, 6년 전엔가 진 군이 거금을 던져 추사의 대련(문이나 기둥 등에 써 붙이는 대구)을 한 벌 구해 놓고 장안 안에는 나만한 완당서(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가진 사람이 없다고 늘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양 군 말에 의하면 진 군이 가진 완서는 위조라는 것이다.(후에 양 군은 자신이 위조라고 하던 진 군이 가지고 있던 추사 글씨를 구입하여 자신의 사랑에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보아 양 군은 추사 글씨를 손에 넣기 위해 가짜라고 헛소문을 냈음을 알 수 있다.) 이 위조란 말도 진 군을 면대할 때는 결코 하는 것이 아니니,

"진 형의 완서는 일품이지." 하고 격찬을 할지언정 위조란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진이 그 소식을 못 들을 리 없다. 기실 진은 속으로는 무척 걱정을 했다.(전문가 중 하나인 양 군이 위조라고 했으므로) 자기가 가진 것이 위조라? 하긴 그럴지도 몰라. 어쩐지 먹빛이 좋지 않고 옳을 가(可)자의 건너 그은 획이 이상하더라니……. 감식안이 높은 진 군은 의심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 이 글씨가 누구의 사랑에서 호사를 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최근에 들으니까 어떤 경로를 밟아 어떻게 간 것인지는 모르나 진 군이 가졌던 추사 글씨는 위조라고 비웃던 양 군의 사랑에 버젓하게 걸려 있고 진 군은 그 글씨를 도로 팔라고 매일같이 조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추사 글씨란 아무튼 대단한 것인가 보다.

*추사 글씨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